이불을 뒤집어 썼다.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이 나는 것 같다.
유리로 된 체온계를 꺼냈다. 살에 닿는 순간 그 체온계가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이런건 딱 하루만 누워서 푹 쉬면 그냥 낫는건데. 아 제발 딱 하루만.
새벽 5시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해열제 때문에 몸이 식었는지 땀이 많이 났다.
으으.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열에 취약한 아동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 번 열이 나면 39도 이상, 40도가 넘었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아주 갓난쟁이 였을 때는 열 났다하면 40도.
그렇게 아동기 학동기 청년기를 지나서 난 이제 열도 잘 안나고 나도 한 38도선에서 더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 비정상적인 편도선으로 인해 열이 자주 올라서 엄마가 물수건을 올려주고 체온계로 열 재고, 일찍 퇴근한 아빠가 들어오시면 아빠의 손이 그렇게 찰 수가 없었다.
열이 나면 만사가 다 귀찮고 그냥 누워서 쉬고 싶은데. 오늘 쑤시는 뼈마디와 부서질 듯 아픈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고 사무실에 와서 이러고 앉아 있다.
진짜 하루만 푹 쉬고 싶다. 아직 수요일이라 내일도 나와야 되고 내일모레도 나와야 하는데.
평일에 퇴근 후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다시한번 굳히게 되는 순간이다. 저번 주 화요일 금요일에 명동을 갔던 것이 화근이다. 그러고선 토요일에 또 친구를 만났다. 아. 벌써 이렇게 체력이 바닥나서야 원. 사람들 조금 만났다고 이모양이라니.
타고난 약골체질에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체력 좋은 사람임에도 난 끔찍히도 운동을 싫어한다.
근데 이제 진짜 운동할 때가 임박한 것 같다. (아.. 재작년에도 나 이거랑 똑같은 소리 했지 아마)
이정도 아픈거 가지고 골골 대는 거 보면 좀 웃긴거 같기도 하고, 설마 또 작년같은 폐렴이 오는 것 아닌가 두려워 하는거 보면 오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에이쒸. 그래도 자기전에 스트레칭 30분 정도는 매일 열심히 했는데. (유산소가 아니라 소용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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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몇년전 생각을 자주 해. 모두가 서로를 장기판 졸이요.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으로 보고 사는 세상에서 의미있는 미소, 존중하는 눈빛과 따뜻한 대화로 호의를 확인하는 거. 진짜 생각보다 귀한거였어.
운명이래도 놓칠 수 있는거야. 다만 자기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상대인거지.
운명이라고 잡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보증이라면 세상에 비극이 왜 있겠어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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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성애자라는 가정하에
영원히 동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과 영원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
꼭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뭘 택할까.
예전에는 당연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을 택한다고 말을 했다.
이성들하고 어울리는 시간보다 동성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만신창이가 되어서 세상에서 겪은 설움을 눈녹듯이 녹여줄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난 이 친구한테도 저 친구한테도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남자한테는 그게 또 아니다. 너 아니면 누구한테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남자에게만은 우정처럼 너도 이만큼 좋고 너도 이만큼 좋아. 난 너에게 못받음 다른 사람에게 가면 돼. 이게 안된다. 적어도 나는.
(그래서 인기가 없나)
내 친구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관계가 바로 친구 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하긴 여타의 의무관계가 없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남녀는 헤어지면 끝 이니까 말이다. 속으로는 이랬었지 저랬었지 생각하고 가끔씩은 무릎꿇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은 맘도 들고 날 특별한 여자 대접 해줘서 고마웠다고 진심으로 인사해주고 싶고 그런데.
정작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에게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그놈의 자존심과 이러면 내가 또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싶어서 마음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고 억누른단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라는 우려때문에 그런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상대방을 다시 한번 잡아보고 싶다거나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동에 장애가 되는 생각은 '거절당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상대가 부처수준의 자비과 관대함을 발휘하여 참아줄 수는 있지만 헤어질 때의 여러가지 정황과 상대방의 행동 말 등을 통해 '나와는 되지 않을 사람' 이라는 것을 신체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꼈다면 그건 거의 맞을 경우가 높단 말이다. 아니 높은 정도가 아니라 그게 진실이다. 믿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치고 시덥지 않은 말로 그렇지 않다는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도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자신이 다 알고 있을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내가 이렇게 한 번 무너져서 예전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 우스워지고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할 뿐이다. 속으로는 골백번 매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려 하면 할수록 난 비참해지고 웃기는 여자되고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고 내 소중했던 진심, 내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어려웠던 결심 그 조차도 희화화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번도 시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절대 아니다. 시도했을 때는 안 그랬을 때의 백배도 넘는 후회와 자기혐오감이 밀려든다.
그런데도 정말 내가 싫어지는 건. 예전보다 현명해진 지금 상태에서도
내가 한 번만 더 잡았으면 지금 우리는 함께였을까?
나 정말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놓친 건 아닐까?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똑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아주 강하게 든다는 거다.
그리고 더욱 슬픈 건 나만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또 다행스러운 건 단 한순간이라도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 그러니까 내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고, 놓쳐서 조금은 아깝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었다면. 내가 가끔 이것 때문에 울곤 하는 것 처럼 진심을 다해 단 1초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정말로 고마워할만큼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는 거다.
풋. 술도 안마셨는데 이런 거나 쓰고 있고.
요즘 아주 배불렀다 배불렀어.
직장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제 블로그 할 시간이나 있으려나 싶었는데,
오히려 일하기 싫을 때 열중할 수 있는 한 가지 과업이 되서 더 열심히 하고 있다. 파일이나 그림 등을 올리기에는 좀 번거로워서 거의 텍스트로만 꾸며지고 있지만 뭐 원래 난 그랬으니까.
심리테스트
일요일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지금 생각나는 고사성어 두 개 대봐. 해서
목불인견, 죽마고우. 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첫번째는 인생철학 이고 두번째는 결혼철학 이랜다.
인생철학이 목불인견 이라니. 봉두난발 이라고 하려다 말았는데.
흠 죽마고우는 그럭저럭 의미상으로는 통하지만 난 죽마고우 같은 남자랑 결혼하기 싫은데.
회사메신저
난 공채출신이 아니다. 대기업에 공채로 들어간 한 친구가 동기 없어서 진짜 심심하겠다. 진짜 힘 안나겠다. 난 동기들한테 의지하면서 산다. 동기들이랑 뒷다마 안까면 무슨 재미냐. 이런 얘기할 때마다 빈정상했다. 그래. 넌 공채출신이다. 흥! 하고 속으로만 말했다. 근데 또 할 말 없는게 내 수준에 노릴 수 있는 공채는 하나도 없기도 했다. 난 아마 1년 더 놀고 도전했어도 공채란 공채는 다 떨어졌을 게 뻔하다. 100대 1 이상의 공채 경쟁률 뚫고 입사한 사람들은 동기들하고 실컷 친하게 지내라지. 난 동기 따위 없어도 잘 산다고. 라고 생각은 하지만. 쪼끔 심심한 거나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요런 상황때문에 회사메신저에 접속해도 말할 사람도 한명도 없고 나한테 말거는 사람도 한명도 없고 뭐 그렇다. 근데 어제 한명이 말을 걸었다. 그 사람도 나처럼 중간에 입사한 9월 입사자 인데 저번에 회사 교육 때 같은 조로 편성되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했지만, 그냥 그 사람도 회사메신저 켜면 아무도 말 안걸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니 묘하게 동질감 느끼면서 슬퍼졌다.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남자라서 좀 불편하다. 그..그리고 사실 또 말걸면 무슨 얘기해야허나 싶어서 메신저 꺼놨다.;; 큭큭 역시 난 이런 관계에는 적응이 안되나보다. 동기 없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건망증
가끔 상대방의 답문자에 대하여 이해를 못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금방 내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문자를 보냈는지 기억이 안나기 때문이다. 어제는 "그런 마인드 아주 맘에 들어!" 라는 답문자를 받았는데 내가 뭐라고 했길래 이런 문자를 보냈나.. 한참 생각하다 결국 포기했다. 아직도 기억 안난다. 앞으로는 그냥 보낸 문자도 다 저장할까보다.
펀드수익률
펀드로 재미보는 건 재작년 혹은 작년 투자자들로 끝이 났나보다. 다들 펀드 수익률 좋다는데 나는 뒤늦게 넣어서 그런가 다 마이너스다. 심지어는 수익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생전 듣도보도못한 펀드에 돈을 넣은것도 아니다. 나름 다 유명한 펀드다. 근데 다 심하게 마이너스다. 거기에 돈을 많이 안넣길 잘했지. 그냥 적금 예금이나 넣으련다.
명동
어제 그냥 퇴근하고 곧장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잘 것이지 괜히 설렁탕 먹는다길래 혹해서 명동까지 갔다. 한 정거장이라 걸어가는데. 오마이갓! 진짜 추웠다. 설렁탕만 딱 먹고 곧장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잘 것이지 괜히 또 레깅스 산다는 분들을 쫓아갔다. 밀리오레에서 레깅스와 스타킹이란 스타킹은 다 펼쳐보고 안사는 옆에 분들, 왜 내가 민망한건지. 괜히 주인한테 수면양말 있냐고 물어봤다가 안사고 오기 뭐해서 사버렸다. 우리동네에서는 천원인데 명동밀리오레에서 사천원이나 했다. 언제부턴가 가게 들어가서 미안한 짓(옷 여러번 입어보기, 가게에 있는 거 다 구경하기, 이것저것 물어보기)을 하면 꼭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서 꼭 뭔가 하나씩을 사게 된다. 우리동네 천원짜리와 비교해도 전혀 나을 것 없는 사천원짜리 수면양말. 아 돈아까워. 그리고 들어가는 길에 세일하는 스타킹을 하나 샀다. 찐한 와인색에 무뉘 약하게 있는건데 예전부터 은근히 무채색 이외의 무뉘있는 스타킹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백화점 스타킹코너 갔다가 식겁하고 돌아왔다. 스타킹 하나에 3만3천원 이라니! 장난해?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제 단돈 팔천원에 꽤 유명한 브랜드의 스타킹을 구입했다. 흐흐. 그래서 수면양말로 인한 돈 아까움을 무마했다.(결국 돈 더 썼으면서 무마했다고 좋댄다)
유예기간
내년 부터 무슨 목표설정을 한 다음에 연봉에 반영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당연한 거였다. 난 아무래도 내년에 죽어날 것 같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힘을 내자. 라고 하기엔.. 크흑. 12월을 마지막으로 이렇게 조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근무시간이 될 것인지.
저번에 아직 졸업을 안한 선배의 선배가 목표설정때 맨날 4~5번씩 빠꾸 당한단 말 듣고 울컥하면서 그 분 만나서 손 붙들고 함께 직장인의 울분을 토하고 싶었다. 대학생때 생각한 직장과 진짜 직장과는 역시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게 겪어보면 원래와는 하늘과 땅 차이이지만. 그 하늘과 땅 차이를 알게 되는 계기가 대부분은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면서 부터니 우울한 일이다.
일본사람
예전에 만화나 코메디 보면 일본사람들 흉내를 내면서 "알게스므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많이 봤는데, 엊그제 한국말 잘하는 일본 아줌마랑 이야기 하는데 그 아줌마가 "알게스므니다" 라고 발음하는 걸 똑똑히 들었다. 오오. 일본사람들을 희화화 하느라고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라 진짜 일본 사람들은 "알게스므니다" 라고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좀 웃겼다.
다음년도 내 다이어리의 이름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다.
음헤헤헤헤.
평소 소심의 끝을 달리는 나로서는 가슴이 답답하면 책상에 쪼그려 앉아서 다이어리에 내 우울을 토로한다. 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울적한 감정은 덜어진다.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난 다이어리를 중3때부터 썼는데, 1년내내 한 다이어리를 쓰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 해에 다이어리를 샀으면 1년내내 그 다이어리를 쓸 수 있다.
대신 다른 여자애들 처럼 이쁘게 꾸미는 데는 잼병이다. 고작해야 색연필로 찍찍 줄을 긋거나 스티커 하나 띡 붙여놓는 식. 다른 여자애들은 어떻게 그렇게 꾸미는지 신기하다. 근데 난.. 그런거 좀 별로다. 다이어리를 쓰고싶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쓰는 느낌이 들어서.
고1때 홍대 나온 미술선생이 있었는데 그 미술선생의 취미는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여자애들 다이어리 보기 라고 그랬다. 내용은 안볼테니 내가 니네 다이어리 들면 싫어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진짜로 안 읽었을까?) 그 이유인 즉슨 여고애들이 다이어리 꾸며놓은 거 보면 가끔 놀랄 정도로 미적으로 멋있는 페이지 들이 있어서 자기가 일할때 아이디어로 참고하기 위해서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다이어리 꾸미는 거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미술시간에 해달라고 흐흐. 뭐 내 다이어리는 열외였지만;
난 다이어리를 다 모아놓긴 했는데 예전에는 그 다이어리를 다신 펼쳐보지 않고 나중에 결혼할 때 남편될 님에게 줘야지. 했다. 하지만 며칠전에 재작년 다이어리 한페이지를 읽고서는 미련없이 그 생각을 접었다.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낯뜨겁고 나 진짜 왜이랬니?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걸 어떻게 남에게 줄 수가 있나.
다행스러운 건 내 주변의 다이어리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거의 동일하게 나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거다. 내 친구 하나는 며칠 전 발견한 2005년 다이어리를 누가 볼까봐 다 찢어 버리느라 손아파 죽는 줄 알았다고 하고, 다른 친구 하나는 무조건 새해에 작년 다이어리를 아무도 못보게 버린댄다. 이건 다이어리를 쓴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수치감 이다.
나 역시도 가끔 종이가 되어준 나무에게 사죄해야 할 정도로 찌질한 내용들을 적어놓지만, 그로써 내 맘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다음 해 다이어리는 修身에 촛점을 맞췄다.
'마음의 평화'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중에 고민하다가, 왠지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로 정했다. 1년 내내 내 곁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열심히 고르는 편이다. 다이어리에 집착이 심한 한 친구와 함께 작년에는 코엑스를 갔다. 거의 '다이어리 원정대' 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코엑스에 있는 모든 다이어리를 봐주겠다는 각오로 다이어리 구경에 임했는데 결국 체력이 딸려서 몇 개 못봤다. 요즘 한참 다이어리가 나오는 시즌이라 틈틈히 구경하고 있는데, 나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한 다이어리 고르기 기준을 알려주고자 한다. (큭. 인생에 절대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1. 딱딱한 하드 커버 별로 안 좋아한다.
2. 그림 너무 많으면 안된다. 특히 글씨쓰는 부분은 흰색이었으면 좋겠다.
3. Monthly 만 쭉 있고, Weekly 만 쭉 있는 것 보다는 Monthly + Weekly 가 12개월 반복 되는게 좋다.
4. Weekly 가 한쪽에 좁게 있는 것 보다 두쪽에 넓게 있어야 한다. (Weekly 제일 열심히 쓴다)
5. 특정 목적을 위한 칸 (용돈기입장, 체크리스트, 쇼핑목록, 영화 티켓 붙이는 란 등등) 싫어한다.
6.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안된다. 가지고 다니기 좋아야 하니까.
7. 본드제본 말고 실제본이 좋다. 그래야 쫙 펴진다.
8. 종이가 두꺼우면서 연필도 잘 써지는 재질이어야 한다.
9. 각 시각별 계획이나 일일 계획표가 있는 건 최악이다.
10. 가격은 이만오천원 이내!
대략 이런 기준으로 다이어리를 구경하지만,
결국 나는 작년에 던킨도너츠에서 공짜로 주는 다이어리를 썼다. 왜냐하면 위의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다이어리는 내가 제작하기 전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번년도에 거의 부합하는 다이어리를 찾았으나 아끼는 웹카툰을 그리는 작가들의 다이어리를 보면서 침 흘리다가 결국 저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아래에 보이는 다이어리로 결정했다. (내가 그렇지 뭐;)
내년이면 이제 20대 후반인데. 나 참 어울리지 않게 이런 다이어리 써도 되나 몰라;; 쫌 부끄럽네.
그래도 귀여워서 맘에 든다!!!
우리 엄마가 미운털 박히니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고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렇다고 일을 만들어서 할 필요는 없지 흐흐."
라고 말을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회사에 남아봤자 내가 안해도 되는 일 해야 하고 내가 일찍 갈 수 있는 건 근무시간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어찌되었든
저번 주말에 푹 쉰것과 3일 연속 칼퇴와 여러가지 이유로 수요일 까지는 컨디션이 최상 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목이 아프더니 오후쯤에는 콧물이 계속 나오고 오늘 아침에는 열이 났다.
코를 너무 닦았더니 코가 빨갛게 헐었다.
익숙치 않은 칼퇴에 내 몸이 놀란건가.
집에 가서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좀있다 눈치봐서 이비인후과나 슬슬 걸어갔다와야겠다.
아 쉬고 싶어!
1. 12월 22일 동지전까지는 밤이 점점 길어진대지만 오늘 아침은 좀 심했다. 난 6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하는데 저번주까지는 먼동이 터오는 새벽이었는데, 오늘 새벽은 완전히 밤이었다. 밤. 가로수등도 다 켜져있고 하늘도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까만색 이었다.
아.. 오늘부터는 매일 이렇게 밤 같은 때 출근해야 하는건가 싶어서 좀 우울해졌는데 무언가를 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항상 '잠' 이었던 내가 새벽에 이렇게 걷고 있다는 거 자체가 신기하고 심지어는 대견했다. 회사앞에 도착했을 때는 8시 20분 이었는데 8시 20분인데도 해가 떠있질 않고 어두컴컴했다. 아무래도 오늘 새벽이 밤 같았던 건 오늘 날씨가 특이해서 그랬던거지 밤이 길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2. 6시 50분에서 단 1분이라도 늦으면 7시 08분 직통을 타는데 무리가 따른다. 우리 집 앞에서 가는 버스는 딱 1개 빼고 모두 역을 거쳐 가기 때문에 버스가 안와서 속 썩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면 버스들이 우회전 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절대 변하지 않는 이 교통체계가 문제다. 내가 건너자마자 버스들은 우회전을 하고 난 항상 30미터가량을 버스와 달리기를 한다. 저번에 달리기를 하지 않고 그냥 걸어갔다가 전철 놓치고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다. (우리회사는 지각 3번 하면 시말서 쓴다) 그 이후로는 구두를 신 건 무릎이 아프건 옷이 불편하건 무조건 뛴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열심히 뛰었는데 내가 버스를 타려고 문앞에 서는 순간 버스기사가 문을 닫더니 스피드를 내며 그냥 출발해버렸다. 빌어먹을 버스운전기사. 그건 명백히 나를 약올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쳇.
도대체가 인천광역시 버스 운전기사들은 승객기분나쁘게하기실습을 하는건지. 급정거 급출발 급커브 난폭운전을 위한 지덕체를 고루 갖췄다. 인천 버스를 타면서 세계 최초로 버스로 드레프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두번 한 게 아니다.
아침에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하루종일 꼬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 한껏 쫄았는데 다행히 현재 5시 15분까지는 아무일 없었다. 오바.
3. 화요일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휘엉청 밝은 달을 보았다. 이제 난 밤에 출근해야 하나보다. 어제 아무일도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집에 가기 전에 공포에 떨었다. 아.. 나 진짜 무서워서 일을 할 수 가 없다!
4. 출근을 위한 셋팅이 제대로 되었든 안되었든 난 6시 50분에 현관문을 나서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르면 입어야할 겉 옷, 머플러, 엠피쓰리, 가방 등등을 줄줄이 손에 들고 그냥 나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려서, 걸어가면서 옷을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엠피쓰리를 귀에 꽂고 장갑을 끼고 가방의 지퍼를 잠근다. 그 중 가장 신경쓰는 것은 엠피쓰리 음악 고르기다. 매일 고민하는데 새벽에 제일 잘 어울리는 곡은 역시 the verve 의 bitter sweet symphony 다. 어제는 새삼스럽게 그 곡이 너무 좋았다. 좋은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원래 좋아했던 것의 한 100배 정도는 좋게 들렸다. urban hymns 는 명반 중의 명반 중의 명반이다. 진짜로. sonnet, this time 등등의 노래가 어제따라 귀에 쏙쏙 박혔다.
5. 제일 신경쓰는게 음악고르기라면 매일 아침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전철안에서 쉽게 잠들까 하는 거다. 부천역 전에 잠이 들어주면 좋으련만 아직까진 무리다. 예전에는 한숨도 못자다가 노력끝에 이제 잠드는 법을 터득했다. 우르르 몰려서 내리는 신도림역에서 잠을 깨지만 단 10분 간이라도 잠을 자면 몸이 가뿐하다. 신도림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2호선에 직장이 있지 않음에 항상 감사드린다. 매일 매일 노력해서 눈을 감고 5분안에 잠들고 말테다.
6. 원래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야외활동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이틀 연속 야외활동을 하고 출근했다가 그 주 목요일때는 피곤해서 죽을 뻔 했기 때문에 하루로 제한을 한 것이었다. 저번에 동기 남자애 아는 누나가 '주말에 쉬어야 주중에 일할 수 있어.' 라면서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단 얘기를 들었는데. 이 얼마나 명언이냐. 어찌되었든 난 이번주말에 이틀연속으로 실내활동=집에서 놀기 만 했는데.. 슈퍼도 안가고 이틀연속 바깥에 안나갔다. 나중에는 좀 지겨웠지만, 월요일 아침에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놀랍도록 가벼운 이 육체! 정말 몸이 가뿐했다.
이러면 안되지만 이 개운함에 매혹되어버릴 것만 같다.;;
7. 화요일쯤 되면 정말 막막하다. 일주일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수요일에는 스트레스가 정점을 치고 목요일 저녁 때는 내일이 금요일이다. 라는 희망으로 충만하여 퇴근을 한다. 엊그제 말했지만 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 '퇴근' 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당연히 '출근' 이지. 킬킬킬.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출근'을 좋아하고 '퇴근'을 싫어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8. 화요일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길 바란다. 나와 날 아는 모든 사람들도. 저는 이제 점심 먹으러 갑니다.
사람들이 많이 관두고 교체되어 가는 분위기.
원래 있던 자와 새로온 자간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싸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들 때문에 괴로운 건 말단들 이지만
말단이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힘든 건 마찬가지.
and the winner is
누가 될 것인가!!!! (사실 재밌음)
골초에 주량은 소주 7병, 당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이제 와서 청승맞게시리 왜 예전에 알던 남자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괜히 이젠 주변에 남자 없으니까 저런다. 쯧쯧..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여중, 여고를 졸업했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등학교 시절 내내 또래 남자애와 한 번도 대화할 일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몇 번 있었지만) 그 이유를 찾자면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역이 혼자 30분 넘게 걷는 중에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못하는 일도 있을 만큼 시골이었다는 점, 동아리나 학원 등을 전혀 다니지 않은 점, 우리학교 앞이 다 산과 논 밭이었다는 점, 축제 때에도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했다는 점. 등등 찾자면 무궁무진한 이유가 있다. 이래 놓고도 고3때 여대를 가려고 했으니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왠지 ‘한국인은 삼세판! 여중 여고 여대까지 졸업해 주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점수 모자라서 못간 건 그렇다치고;
그런 나에게 20살 처음 입학한 대학은 진정한 쇼크! 였다. 후문에 들어섰는데 온통 남자뿐 이었다.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처음에 눈을 어디에 둘지도 몰랐을 뿐 더러 ‘이 세상에 내 또래 남자가 이렇게 많이 살았구나!’ 하는 거 자체에 좀 놀랐다. 그 덕분에 입학해서 몇 개월간은 ‘오빠’ 라는 호칭이 굉장히 낯설어서 혼났다. 집에 오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최 불러봤어야지. 안 그러려고 노력은 했지만 남자들 앞에만 서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눈도 제대로 한 번 못 쳐다보고 안절부절 했다. 그래서 ‘너 내외하냐?’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지금이야 20살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남자랑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게 나쁜 건 절대 아니지만 그만큼 나이 들어버린 기분이다.
어찌되었든 20살의 나에게 생전 처음 듣는 소리만 해주는 남자가 있었다. 내 입으로는 도저히 못할 엄청난 칭찬들이었다. 나를 왜 좋게 봤는지 이해는 좀 안되지만, 사람이 주변에 있든 없든 너무 노골적이고 진지하게 나한테 ‘예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 안 그래도 어색한 사람들 속에서 난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진짜로 이쁘고 귀여운 여자애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애한테 그러시니 주변 사람들이 다 비웃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블로그를 보면서도 비웃는 사람 꽤 될지도 모르지 크크)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이 매일 같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나중에는 ‘내가 생각보다 이쁜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 드린다. 20살 이전에는 한 번도 못해본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해 주셔서.
매일 같이 하던 그 말이 진짜였는지 거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구장창 나에게 잘 대해준 것만은 맞는 것 같다. 대학 4년을 통틀어 소갈비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보고. (풋. 그때 소갈비!!! 진짜 맛있었다!) 그냥 밥이나 그 외의 먹을 거 사준 건 아마 셀 수도 없을 것 같고. 누구랑 밥 같이 먹으면서 그렇게 챙김을 받아보기도 처음이었고. 이거 맛있다 먹어봐라. 저거 맛있다 먹어봐라 등등의 말까지.
남자들을 아예 구경도 못해본 나에게 ‘술, 담배, 당구’ 라는 남성적 이미지 (이분을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엄청 잘하는 분이었으니까) 자체는 막연하게 좀 두려웠고. 왠지 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고 그랬다. 선뜻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 예요!’ 라고 물어 볼만한 용기도 당연히 없었다.
그러다가 그 분에게 몇 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여자가 엄청나게 이쁘다는 것 까지. 이거야말로 3단계 펀치 아닌가. 나중에는 친구랑 학교 앞에 그 여자분하고 같이 다니는 걸 목격까지 했는데 그 친구가 날 위로해주려 그랬는지 어쨌는지 전혀 돈독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했다. 듣던 대로 과연 미인이긴 했지만. 근데 뭐 돈독하지 않은데 어떻게 몇 년을 사귀느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 둘은 돈독하구나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여자친구분 엄청 이쁘던데요?’ 라고 시치미 때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여동생이라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무언(無言)의 인정을 해버렸다. 그리고선 3년 동안 점점 소원해 졌는데 가끔가다 도서관에서 만나거나 친구가 쿡쿡 찌르면서 맛있는 거나 얻어먹자고 부르라고 (맛있는 거 먹으려고 그런 거라기 보단 이 친구는 그 분이랑 내가 잘 되길 원하는 애 중 하나였음) 해서 가끔 밥을 먹을 때의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지금 25살이 되고 생각해보니 절대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그 당시에는 그 분이 나이가 많은 것 처럼 느껴졌고 난 잘 사귀고 있는 사람 떼어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랬다. 지금도 바람둥이인가? 진심이었나? 아리송하지만, 상대방이 이랬든 저랬든 나는 뭐 항상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으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쁜 여자 사귀면서 왜 나 혼자 가슴 설레게 왜 그러나 싶어서 ‘나 가지고 장난 좀 그만 치세요.’ ‘거짓말 좀 그만하세요.’ 등등의 말도 진지하게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벌써 3학년이 되어버린 나에게 그분이 어느 날 이젠 연락 안 하겠다. 여기서 연락을 안하고 안 봐야 나중에 날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는 말을 했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못 만났다.
위에 등장하는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흠.. 앞으로 그 이상 남자 없을 것 같은데.’ 라는 말을 했다. 대부분은 ‘괜찮아.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건데 너무 솔직하게 그렇게 말해버린 내 친구. 그 뒤로 우리 둘의 대화는 이러하다.
‘아니 그런데 왜 여자친구랑 안 헤어지고 나한테 사귀자고 안 해.’
‘너는 그냥 그 사람이랑 사귀고 헤어져도 나이 어리고 창창하지만, 그 사람은 그 나이에 그렇게 헤어져버림 진짜로 다 끝인데 어떻게 쉽게 그러냐.’
‘아냐 아냐. 진짜 내가 좋았으면 그렇게 했어야 돼.’
이게 내 결론이었다. 진짜 좋았으면 그렇게 해야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별 아쉬운 마음도 안 들고 종종 생각나면 그랬었지~ 하고 말아버렸다. 흠.. 사실 이제까지 말 안한 게 있는데 나랑 나이차가 5살 넘게 났으니 좀 나긴 했다. 그래서 매일 나에게 ‘내가 3살만 어렸어도!’ 이런 이야기를 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늘에 맹세하는데 난 정말 나이차에 대해서는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지금도 뭐 내 위로 10살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고.
나에게 그 사람은 그냥 종종 생각나는 정도였고 아주 가끔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현재 나는 이제 그 사람을 생각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곳에 살게 되었다. 언젠가 또 그 분에게 삼겹살을 얻어먹고 있는데 (같이 먹은 음식들이 소갈비에 삼겹살에..;;)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하고 인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아는 사람인가? 하고 말았는데 중학교 동창이라면서 송도중학교 나왔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작년에 이사온 여기 동네가 바로 송도중학교 옆이다. 이제까지 그 송도중학교를 기억하고 있는 나도 웃기지만, 매일같이 출퇴근을 위해 송도중학교를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이 상황도 무지하게 웃긴 거 아닌가.
아직도 그 분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유부남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몇 년이 지난 일을 생각하게 되고 그 분을 차마 완전히 지우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저주라면 저주일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자신을 매일 같이 회상하고 곱씹어주는 사람이 지구상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축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은 분명 결혼 후에도 잘 사실 거라 믿는다.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은 나는 매일같이 송도중학교를 지나가겠지만 말이다.
나 참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다니. 혹시 이 긴 글을 다 읽으신 분이 있다면 축하합니다. 다 읽으셨습니다. ;;
내 첫 휴가였던 금요일에 친구와 4시반에 헤어진 게 그 하루의 끝은 아니었다. 평소에 '굳이 안해도 될 불쌍한 짓을 괜히 만들어서 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나는 또 한 가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월미도에 가야겠다" 바로 이 생각!

우리집 앞에 있는 표지판
월미도
月尾島
wolmido
↑ 3.2 km
이 표지판을 보고 나서 부터 태도를 180 도 바꿨다.
우선 이름의 뜻 - 달 월, 꼬리 미, 섬 도. 너무 아름다운 이름아닌가. 특히 '꼬리 미' 자라니!!!!
이름 때문에 좋아졌다면 사실 좀 거짓말이고 우리집에서는 저 멀리로 바다가 보이는데, 인천 앞바다의 석양이 꽤나 이색적이면서도 쓸만하다는 걸 몇개월간 살면서 알았기 때문에 좋아졌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다.
다시 금요일의 내 소중한 첫 휴가 때로 되돌아 가자면, 4시반에 집에 들어와서 그럭저럭 TV나 인터넷을 하면서 내 소중한 첫 휴가를 보내기엔 뭔가 안타까웠다. 바닷바람이 꽤 차겠지 싶어서 난 두꺼운 옷과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서선 45번 버스에 혼자 올랐다.

애초의 목적은 해가 진 직후를 보는 것 이었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바람에 해가 진 직후라기보단 깜깜해지기 직전 에 가까운 바다를 보게 되었다. 애초의 목적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썰물이라서 바닥에 바위만 보고 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완벽한 밀물이라서 물은 충만했다!
월미도에 가면 사람이 없는데 워낙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공장 뿐이고 음식점들도 다들 촌스러움과 동시에 엄청 맛없어 보이는 외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주 오래전서부터 그렇게 천천히 빛바래오고 재미없는 장소가 되어버린 월미도의 처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월미도지만,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아니던가! 그것도 다 이런 처량하고 처연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갔을 때도 거의 1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월미도 주변을 걷고 있었다. 나로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보단 왠지 끝없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단 몇 분 사이에도 바다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싸구려 카메라인데다 사진 찍는 기술이 없어서 첫번째 사진과 두번째 사진의 변화가 별로 안 느껴지지만 말이다. (하늘색만 비교하면 미세하게나마나 알 수 있다)

혼자 온 아저씨 한명이 눈에 뛰었는데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다가 좀 웃겼다. 저렇게 바위위에 올라가셔서 폼 잡으실 것 까진 없으실텐데 싶었다. 푸흐흐. 포즈로 봐서는 소리라도 크게 지를 태세지만, 그냥 저러고 멍하니 계시다가 바위에서 내려와선 돌아가셨다.

모든 바다에 모래사장이 있는 건 아닌가보다. 월미도에는 모래사장 따위 없다. ;; 대신 바닷물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바로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계단.
이거야 말로 Stairway to heaven 인가?
훗. 계속 걸어들어갔다간 동사하기 딱이겠지.

음악이 딱 필요한 순간이었는데 한쪽 이어폰 고무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너무 손시려워서 정신없는 동안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뭐 그렇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물결 소리라서 안들어도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 이어폰이 고장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노래들을 들었을 것 같다.
-제목과는 달리 노래 분위기는 자살 직전에 들음 딱일 것 같은 radiohead의 Optimistic
-1집 2집과는 달리 정붙이기 힘들었던 coldplay 3집의 x and y
-'나는 널 위해 여기 있어. 나의 꿈에 들어와.' 서울전자음악단 의 꿈에 들어와.

갑자기 말하고 싶어서 말하지만 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눈동자안에 점이 있다. 왠만한 관찰력이 아니고는 발견 못하는 건데, 왼쪽 동공 바로 밑에 약간 미세하게 동공 색과 비슷한 게 또 하나 있다. 아직까지는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보는 사람을 못봤다. 그냥 내 신체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인거 같아서 말하는 거다. 어렸을 때 잘못된 줄 알고 엄마가 안과에 데려갔는데 사는데 아무 지장없고 종종 이런 경우 있다고 말했댄다.
완전히 어두워진 월미도에서 단 몇 분동안 아주 골똘히 했던 생각은.
"지금이 '그때'만큼 힘드냐?"
"지금 힘든 게 도저히 감정조절 하기 힘들 정도냐?'
하는 질문이다.
두 질문 모두 대답은 '아니오.' 다. 그래. 아니니까, 버티자 이거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난 남자가 아니라 군대에 안가고 앞으로도 갈 일 없지만, 거기서 버티는 원동력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거 아니겠나. 군대와 직장은 다른 거지만. 나도 그냥 끝을 기다리는 맘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루하루 시간은 가는거니까.
내가 지금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굉장히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과 시간은 가는거니까 그리고 굉장히 고맙게도 그 시간이 다른 때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 처럼 느껴지니까 괜찮을거다. 라는 위안을 얻고 나니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배가 많이 고프기도했고, 더 있기에는 내 손이 완전히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나중에는 장갑도 소용없었음)

전국 점포수 1위라는 GS25에 들어가서 내 손을 녹여줄 막강한 임무를 맡길만한 음료수를 찾다가 생전 처음 보는 '로얄 밀크티'라는 따뜻한 캔음료를 마셨다.
종점이라 멈춰있는 버스를 잡아타고 동인천역을 지나서 집에 오면서 '이제 겨우 3일중 하루가 지난거잖아!' 라는 생각이 드니 기뻤다.
그리고 이제 5분만 있으면 월요일이다. 월요일. 스크롤의 압박이 굉장할 이 포스트를 끝마치고 잠이 들어 눈을 뜨면 나는 또 하루하루를 죽이려 회사로 간다.
다음주부터는 회사에서 굉장한 일이 있을 예정인데, 월미도에서 느꼈던 그 자신감은 어디가고 벌써부터 무서워지고 있다.
나 견딜 수 있을까?...
P.S 마지막으로 내가 처음으로 찍은 월미도 동영상까지 올린다. (그냥 걸어가면서 찍은 아주 재미없는)
훗. 이걸로써 휴가일기 진짜로 끝!

경축할 일이면서도 슬퍼해야할 일이다. 도저히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눈치보면서 휴가를 냈고 받아들여졌다. 입사이후 처음 월차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연달아 쉴 수 있다. 현재 12시 58분이니 벌써 토요일이 되고도 한시간이 다 되가는구나.
휴가 때 뭐할거예요? 물어봤을 때 늦잠이요. 라고 대답했다. 계획대로 오늘 12시에 일어났고 부랴부랴 챙겨서 오후 2시에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휴학했을 때 이틀이 멀다하고 만났던 내친구. 농담삼아.. '사귀는 사이에도 이렇게 자주 만나기 힘들거야 그치?' 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는데 요즘에는 한 달에 한 번정도만 만나니.. 그때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걔나 나나 오늘이 어제같고 오늘은 또 내일 같은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별 할 말은 없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할말이 참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만나도 별 말 없이 앉아 있는 상황이 슬픈 건 아니다. 그만큼 편한 사이라는 증거일 수 있으니.
백화점 앞에서 만나서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 구월동 던킨도너츠를 찾았다. 오 구월동 던킨도너츠!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우리가 항상 앉는 자리가 비워져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난 친구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돈주고 산 건 아니고 디카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따라온건데 내 손목에는 너무 크고 놓아둬봤자 아무도 안 쓸 것 같아서. 선물을 주고 나니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 기분 좋았던 건 요즘 던킨도너츠에서 사은품 행사를 하는데 난 4등에 당첨되서 쿠숀을 받았다. 꽤 크고 귀엽다!

원래는 코엑스나 인사동 둘 중 한군데를 갈까 했는데, 친구가 항상 멀리 다니는데 쉬는 날도 멀리가면 피곤하지 않겠어? 하길래. 흠. 그것도 그렇군 해서 결국 구월동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으론 그러길 잘한 것 같다. 가끔.. 내가 주말에까지 서울에 가야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주말에 혼자 용산 직통 지하철을 타면 출근하는 기분 나서 심히 기분이 묘하면서 나빠질 때도 있고.. 주말에는 아비규환 같은 구월동도 금요일 오후에는 한가했다.
오늘은 정말로 고마운 날씨였다. 친구 말로는 하루하루가 예술이라는데, 난 오늘에서야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어딜가든 기분이 좋아질만한 날씨였고, 우리는 예술회관에서 곧장 걸어가면 나오는 작은 공원에서 이제 일주일이면 낙엽도 다 떨어지겠지. 제길. 이라며 뜬금없이 인생무상을 논했다;
왠지 이번 주말이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만 같은데.. 괴로운 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친구와는 4시반 쯤 헤어졌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친구가 색,계 를 봤다는데 나도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 오늘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와는 안그런 친구들보다 '얘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라는 생각 들기가 힘든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친해봤자 여동생이나 언니만큼 친한 친구는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친한 친구 4명중 이 친구는 유일하게 여자형제가 있는 친구인데.. 그런 생각이 자주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나면, 난 이 친구랑 색,계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이미 여동생이랑 봐버렸다고 말하니.. 서운해서 흑. (별 게 다 서운하다) 아무래도 또 혼자 봐야할 듯 싶다. 내일에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