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싶은 모습

일상 2019. 2. 20. 13:54

  요즘들어 내가 싫어하는 어떤 사람의 성격은 어쩌면 가장 외면하고 싶은 나의 일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상대방의 별나거나 특이한 점을 인식하고 호불호를 분별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다. 이를 순식간에 알아채고 상대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의 단점이 나에게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개월전에 마흔이 넘은 여자 과장님이 입사했다. 여러 회사 짧게 짧게 다닌 경력과 목소리가 가끔 격앙되는 점, 별것도 아닌 일에 고집 부리는 점,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결혼 전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싫어해서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대체로 피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남들 기분을 기가 막히게 맞춰줄 때가 있는데, 이 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다. 성질머리에도 맞지 않는 직장생활을 십수년 하다보니 그럭저럭 분란 일으키지 않고 회사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익혔을 뿐이다. (회사생활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


  하여튼 위에 새로 들어온 과장님에 대해 더 말하자면, 과장님이 입사한 후 나는 나름대로는 노하우랍시고 이것저것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내가 뭘 알려드릴때마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수많은 반론에 지쳐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는 게 좋다." 고 항상 단서를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다다다다 쏴대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가 빨리는 것 같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이후 부터는 그 분이 다다다다 말하면 항상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어느 날, 왜 맨날 죄송하다고 하냐고 비아냥 대는 거냐고 하시더라.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오해를 하게 만들어 죄송하다고 했다.


  요즘 지켜본 그 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거다.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잘못으로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가 잘못 혹은 실수를 일으킨 모든 이유는 부장님의 지시가 잘못되서 혹은 내가 제대로 안 알려줘서 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도 엄연히 위계서열이 있는 조직인데, 상사가 지시한 업무에 대해 '못하는 일이다. 필요가 없는 일이다. 지시하신 이유를 모르겠다.' 등등 자기가 그 일을 하기 싫은 이유 혹은 불평불만을 마구 쏟아낸다. 그러다가 엊그제부터 무언시위 중이다. 바로 옆에 계신 분이라 분위기가 너무 숨막힌다. 


  결혼 전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저래서 결혼을 못했겠지 쯧쯧쯧 같은 말을 은연 중에 많이들 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애써 누구도 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외면했지만, 요즘들어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옆에 과장님 같은 모습이어서 사람들이 혀를 찼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어제부터 좀 우울하다. 결혼한 사람이 더 인간성이 좋고 성숙한 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혼자가 되고보니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결혼이 뭐길래.

  어쩌면 옆에 과장님을 타산지석 삼아 내가 인간으로서 한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


  한편으론 집도 가난한데 고집부려 사립대학 나와 고작 한다는 일이 이딴 일에 이딴 월급이라니 나도 참 한심하단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이 회사를 때려치면 대안이 있냐? 문제는 그것도 없다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자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열패감 같은 건 모르겠지.


  결론은 처음에는 과장님과 닮은 면이 있다고 느꼈지만, 내가 옆에 과장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었으면 좋겠고 만약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난 적어도 대화 중 상대방이 지쳐 나가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근무시간에 이거저거 주절거려봤다.  


 


가장 피곤한 일

일상 2016. 6. 13. 17:13

트위터를 가입한 계기는 좋아하는 야구구단 뉴스와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이젠 웃긴 사진 보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데,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은 통하는 것도 없는데 잘 통하는 척 해야 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 이라는 글을 보고 많은 공감을 했다.

그렇다. 그 느낌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거짓 맞장구도 쳐줘야 하고 거짓 추임세도 넣어줘야 하고 거짓으로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해야 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정말 그보다 피곤한 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직과 모임에 어떻게든 섞이고자 노력하고 교류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 하려면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유리하겠지..

하지만 난 거짓행세하며 슬픈 느낌드는 모임이라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다.

서른살이 되면서 너무 우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는 엄청난 시도 (하지만 남이 보기엔 정말 소심한 시도) 를 해본 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깨달은 바는 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된다는 거다.

잔소리꾼 동생한테 주말에 내 문제에 대해 열심히 또 야단을 맞았는데, 어쩔 수 없다. 난 그냥 나 나름대로 잘 살아보는 수 밖에 없다.


맥없이 이번 목요일에 휴가를 냈다. 할 일도 딱히 없는데, 휴가가 너무 남아돌고 또 이 회사는 연차수당 같은 것도 없으니 그냥 휴가를 낸 것이다. 뭘 할지는 차차 정하겠지만, 회사 나와서 일하는 것보단 뭘하든 재밌을 것이다.


헛된 노력

단문 2015. 7. 1. 18:44

저번 주말은 오랜만에 이틀 내내 즐거운 일을 했다. 송도에 갔고, 용인에 갔다. 이틀 다 좋았다. 

영화 시리어스 맨을 보면 모든 일을 간단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이 맨 앞에 나온다. 

언제나 내가 명심해야 할 말인 거 같기도 하다. 사람을 대할 때도. 회사에서도. 


이 회사에서도 3년이 다 되어 간다. 

예전에 다른 회사에서 이 회사로 이직하여 일하던 여자는 회사 내 어떤 사람과 전화하다가 화를 못 이겨 회사 전화를 집어 던지고 그 길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회사에서는 그 여자가 최고 싸이코에 성격 더러운 노처녀로 욕하고 있는데, 나는 그 여자 심정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할 것만 같다.

다른 회사에서 일해본 사람은 지금 이 회사의 상당부분이 비정상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다. 뭐 이 회사 사람들이야 입사해서 쭉 여기서만 일했으니 전혀 모르겠지. 

나야 소심해서 그정도 의사표현도 못하지만, 어떤 느낌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하루였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백날 다른 세계에 대해 말해봤자 아무것도 모르는 건데.. 

내가 못나서 여기 앉아 있는 걸 탓해야지 별 수 없다. 대책이 필요함을 느낀 하루였다. 


점점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고, 어떤 절차로 행동해야 할지 알 것 같다. 중요한 건 언제나 감정을 배제하고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하면 되는 건데, 이렇게 간단한 걸 이제까지 왜 열내고 원통해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 또 힘들어질지 모르지만, 7월 1일 부터는 초인 처럼 회사생활 하는데 내 모든 힘을 쏟아볼 작정이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간단한 것도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그런데... 내가 아무리 말해도 모르니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약간의 좌절도 했던 토요일이었다. 두려운 건 그게 다 핑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건데. 이건 정신 건강에 해로우니 그냥 그만 생각하련다.  


모르겠다. 이렇게 결국 7월 1일을 재수없게 시작하였고, 또 결심을 하며 보낸다. 


아침에 운전하면서 생각에 잠길 때가 있는가 하면, 지각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속 운전에 집중할 때가 있다. 매일같이 왔다갔다 하는 길이라 그런지, 이젠 출발하는 시각이 언제든 지각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시간이 넉넉하여 이상한 생각만 잔뜩하면서 출근했다. 지금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 흰옷을 입어서 스킨색 브라를 하고 왔는데 와이어가 만나는 가슴 가운데 지점이 너무 아프다. 이런건 가슴이 너무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인걸까? 가슴이 커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살색 속옷을 입을 수 밖에 없는데, 오늘 입은 이 브라는 그냥 버려야 할 것 같다.  


요즘 음악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최근 재생한 음악 목록을 랜덤으로 재생시키면 한시간 가량은 정말 즐거운 기분으로 보낼 수 있다. 재생 목록에 라흐마니노프 곡도 하나 있다. 락을 듣다보면 재즈를 듣게 되고 재즈 듣다보면 클래식으로 넘어간다는데, 요즘에는 종종 좋아하는 클래식 곡도 찾아 듣고 있다. 


우리 동네에 유니클로가 하나 생겼다. 주차장도 엄청 크고, 정말 뜬금없는 곳에 뜬금없이 좋은 건물에 흡사 미국같은 분위기로 유니클로 매장이 떡하니 생긴 것이다. 

어제 엄마랑 슬슬 걸어갔다가, 세일하는 티셔츠도 사고, 브라탑도 3개 사고 셔츠도 하나 샀다. 돌아오는 길에 정말 작지만 알찬 공원에 가서 구청에서 설치해놓은 운동기구에 올라가 조금 몸을 풀었는데, 생각보다 시원했다. 


어제는 엄마 생신이었다.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엄마에게는 돈을 보내드리고, 오랜만에 동생이 와서 동생의 연애스토리를 들었다. 오토바이를 산다고 해서 나와 엄마는 동생과 크게 싸웠다. 어차피 우리가 아무리 말려도 오토바이 살테니까 여자친구라도 말려야 되는거 아니냐고 했는데, 여자친구는 오토바이에 긍정적이라고 해서 엄마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떻게 남자친구가 오토바이 사서 위험하게 타고 다닌다는데 안 말릴 수가 있냐며 그 자리에도 없는 여자친구에게까지 화를 냈다. 


일하기 싫다. 벌써 점심시간도 끝. 


동안병

단문 2014. 3. 21. 20:01

30대 여자들이 흔히 걸리는 병이 동안병이라고 한다. 

엄청 공들여서 셀카 찍어놓고 그 사진보면서 나정도면 그래도 동안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병 말이다. 


며칠전에는 나 23살때 찍었던 사진을 봤다. 사진 속 내 피부는 엄청 좋고 볼살은 딱 보기 좋게 통통했다.

지금 보니 그때 내 겉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대학 때 내가 예쁘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이유로 누구한테도 자신있게 나서본 적도 없고. 

오죽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쁘다는 말을 해준 분의 메신저 아이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어디가면 아직은 내가 20대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 꽤 있는데, 만약에 내가 봐도 누가 봐도 어느 누가 봐도 30대 이상으로 보이게 되면 참 우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보여요. 이 말 그냥 예의상 30살 넘은 여자에게 해주는 말일 수도 있는데, 난 그 말을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거 보면 나도 동안병이야. 


나의 하루는 12시간이라서나혼자만 2배로 빨리 늙어버린 것도 아니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지만, 요즘 들어 부쩍 나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며칠 전에는 퇴근 후 차 안에서 신호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회사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엄청 혐오면서도 그 사람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고분고분 어떻게든 신경 거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 이런게 사회생활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지만, 

못내 비애감 때문에 잠깐 눈물이 흘렀다. 


꽃다울 때도 32살 때도 사실 난 그다지 달라진 건 없는데...

난 변한 거 없는데 나이에 맞춰 겉모습은 변해가고 사람들도 그 나이에 맞는 대접을 해주고 또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주길 원하니 말이다. 

참 비극적인 일 아닌가. 난 16살 때부터 별로 변한게 없는데 그의 2배로 나이를 먹어버리다니.


금요일인데 차 밀려서 집에도 못들어가고 저녁도 못먹고... 일은 하기 싫고. 회사에서 이런 시덥지 않은 푸념이나 적고 있다. 사무실이 참 조용하다.


토탈 리콜 생각

단문 2013. 10. 4. 17:23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SF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건 아니더라도, 뭔가 현실에 없는 것들이 나오거나 하는거 무지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영웅물을 좋아하는 건 또 아닌 거 같고. (X맨도 한편도 안봤으니)

  워낙 SF를 좋아해서 그런지, 남들이 완전 혹평한 토탈 리콜 리메이크판도 극장에서 엄청 재밌게 봤었다. 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콜린 파렐 짱 멋있쪄. 라고 되내이며 눈이 완전히 하트로 변했었다. (이와 같은 증상은 킹메이커라는 조지클루니 나오는 영화 봤을때도 동일했음) 그 와중에 나는 한가지 진한 아쉬움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건 바로 콜린 파렐의 노출신이 너무 너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심하게, 여성 관객에 대한 배려는 1g 도 하지 않는 영화였던 것이었다. 저스틴 팀벌레이크랑 결혼한 제시카 비엘도 내 눈에는 너무 여장군 같아서 콜린 파렐이랑은 좀 잘 안어울리는 거 같아 보였고. (콜린 파렐 자체가 별로 체구도 안크고 키도 안큰데, 제시카 비엘은 어깨 부터 뼈대까지 완전 장난 아님)

  내가 업무 시간에 뜬금없이 이따위 글이나 쓰는 이유는, 어제 본 관상의 이정재가 너무 너무 섹시했다는 친구의 말에 바로 "왜? 노출이 좀 있나?" 라고 묻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

 나이가 드니 오히려 이런 1차원 적인 것에 집착을 하게 되는구나 싶어서 혼자 킬킬킬킬 거리면서 웃다가 토탈 리콜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느꼈던 진~한 (아주 진한) 아쉬움이 떠올랐다.

  징검다리 휴무라 다 휴가가고 한 5명 회사에 앉아 있는데 일도 안되고, 이미 개천절 전날 퇴근길에 차 많이 밀렸으니 오늘은 뻥뻥 뚫리겠지? 잇힝 칼퇴해야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다.

  근데 정말 그 토탈 리콜 리메이크 판은 워낙 원래 토탈 리콜이 SF 의 전설이 된 영화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좋은 소리 못들을 영화였지만, 여자 주인공을 좀 더 예쁜 (콜린 파렐과 어울리는) 여자로 하고 거기에 과하지 않은 러브신 (콜린 파렐 노출 + 여자 배우 노출) 을 살짝 넣었으면 그보다 훨씬 관객이 들었을거다. 나같은 속물 관객. 크킄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