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본 해외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이야 멀어봤자 2시간.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가운데 3명 앉는 자리의 복도 쪽 자리였는데 맙소사 나는 그 긴 시간동안 한잠도 못잤다. 우선 비행기에서 나는 소음이 너무 너무 컸고, 혼자 먼 곳을 가는 거라 긴장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거깃다 우리 비행경로에 문제 생겼다고 비행기 안에서 한 40분 멀뚱멀뚱 기다렸다. 총 비행기만 13시간 탄 건데 나중에는 무릎 어깨 등 안아픈 데가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신체 상태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실내임에도 한국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바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내 전화 기다리느라 잠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영국 입국 심사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이 어디 호텔? 여기 처음? 이 두가지 질문만 하고 쿨하게 도장을 찍어줬다.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왔고, 티켓을 사려고 러셀 스퀘어 라고 말했는데 표파는 여자는 스퀘어 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영국 사람들 스퀘어 발음 참 특이하게 하던데 난 따라도 못하겠다. (약간 스쿠에어? 라고 하는 느낌)

  내가 런던에 도착한 시간이 토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피카디리라인 전철 안에는 놀러 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정말 철저히 이방인 이었다. 갑자기 위축이 되서 캐리어만 쳐다보고 사람들 얼굴을 쳐다도 못보고 약 50분 가량을 갔다. 러셀 스퀘어 역에 내렸는데 바람이 쌩쌩불고 너무 너무 추웠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호텔 러셀이라는 호텔인데, 별 4개짜리 꽤 큰 호텔이었다. 러셀 스퀘어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호텔. 나는 밤에 호텔 제대로 못 찾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체크인할때 호텔 프론트에서 나한테 무슨 무슨 질문을 한 것 같았는데, 기억은 안나고, 그냥 말이 전혀 안 통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저녁도 못먹어서 배고팠는데 뭘 사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비도 약간 흩날리고 있기도 했고.

  조속히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배가 고파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룸서비스를 시키기로 했다. 수프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큰 실수였다. 수프가 우리나라 냉면 그릇만한 그릇에 담겨 왔고, 샌드위치는 내 팔뚝길이만 했다. 비싸기도 비쌌고.

  룸서비스를 온 인도 아저씨께서 체크아웃할 때 계산하면 된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오케이라고 대답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그 아저씨가 다시 와선 너 지금 당장 계산해야 한다고 하는거다. (이유는 못 알아들음) 그래서 프론트로 가서 되도 않는 영어로 이러저러 설명하면서 계산을 하긴 했는데, 하... 프론트 있던 남자애의 도저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해하는 무표정은 나를 더욱더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외국 호텔에서는 룸서비스 시켜 먹으려면 Pre-Authorization 이라고 해서 카드를 등록해야 하는데 내가 그 카드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당장 계산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스코틀랜드 호텔에서 카드 등록하면서 알게 됨)

  호텔은 정말 좋았다. 화장실도 넓고, 욕조도 있고, 이번 여행 중 묵은 4개의 호텔 중 유일하게 난방을 해준 호텔이기도 하고. 비행 때문에 엉망이 된 피부를 보며 속상했고, 짐을 대충 풀어놓으며 난 벽돌같이 딱딱한 샌드위치와 냉면 그릇만한 볼안의 노란 수프를 종종 떠 먹었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내가 정말로 런던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 다음으로는 이것이 과연 꿈인가 생시인가 확인도 할 겸, 잠을 청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고 창문 밖의 전기 돌아가는 나지막한 소음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잊은 사람도 많겠지만 1월 29일 30일은 2011년 들어 최저 온도였다. 영하 18도였나? 친구와 이미 호텔 예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 남이섬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녀와서 저번 주말에 남이섬 다녀왔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 추울 때 다녀왔냐면서.
나름 핫팩도 붙이고, 오리털로 무장했지만 추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추워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와 난 큐슈 갔을 땐 정말 너무 더워서 문제였고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문제고.

어그부츠 안에 발에다 붙이는 용 핫팩을 붙이고 등에도 붙이고 했지만, 추위를 막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친구와 나는 근성으로 남이섬을 구경했다. 나중에 봄에 바깥에 나와앉아도 안 추울때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춘천가는 기차는 결국 못타보고 나와 친구는 춘천가는 전철을 탔는데 엄청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처럼 춘천으로 놀러가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무리들이 많았다.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 준 덕분에 편히 앉아서 갔다.
어렸을 때 원주에 살 때 엄마아빠가 바람 좀 쐬려고 맘 먹으면 종종 춘천으로 갔었다는데, 난 전혀 기억이 없다. 우리 부모님 말로는 우리집은 강원도를 벗어나면서 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강원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데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정관루" 라는 호텔인데 하룻밤에 9만9천원으로 둘이 나눠 낸다면 별 부담 없는 가격이다. 처음에 방 안에 TV 인터넷이 전혀 안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친구와 나는 과자먹고 라디오 들으면서 자기 직전까지 열심히 떠들었다. 혹시나 하여 핸드폰에 영화도 넣어갔는데 전혀 못보고 왔다. (밤에 먹으려고 컵라면 까지 사갔지만, 과자 때문에 먹지도 못함)
다음날 아침에 배를 타고 나오기까지 못본 곳을 더 둘러보고, 차도 마시고 했는데 그때 들어간 찻집이 정말로 불친절했다. 흐흐흐
기념품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남이섬 가서도 또 하나를 샀다.


 연꽃잎 받침이 맘에 들어서 구입한 잔인데 꽤 비쌌다. (2만원 넘었나 만원 넘었나 기억이 안나네) 저기 있는 수저는 강원도에서부터 썼던 거로 아마 한 27년 정도 됐을 걸로 예상된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저 수저로 밥을 먹고 포스트를 우유에 말아 먹고 지금은 유자차를 타 먹는다. 막상 보면 머그컵을 훨씬 많이 사용하고, 저런 컵은 사용할 일도 별로 없다. 저 기념품 잔도 사와서 한 2주 동안은 맨날 쓰다가 이제는 또 별로 사용안한다.



잊기 전에 그래도 일본에서 내가 뭘 했는지 정도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도 생각보다 많이 못찍고 원래 계획했던 여행 일정도 결국은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지만, 오늘 만난 내 친구 말대로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드디어 해외를 나가본 거 아닐까.
뭐 대학때는 시간이 남아 돌았는데 돈은 없었고, (여행을 위하여 돈을 벌고 싶지도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여행이 필요 할 만큼 괴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난 요즘도 대학생인데 여행가는 건 별로 안 부럽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 때 여행은 돈 있고 마음 있음 갈 수 있는 거 니까.
그런데 직장인이 여행 가는 건 진짜 부러워 미친다. 돈 있고 가고 싶은 맘은 굴뚝같아도 상황이 안되면 절대 못가는 거니까 말이다.
나도 회사에서 일본 간다고 말했더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해줬다. 그 마음 내가 안다. 저번에 대리님이 추석연휴 이용해서 아일랜드 가는 거 보고 정말 부러워서 반쯤 기절할 뻔 했으니까.
내가 여행한 곳은 일본의 오사카 (大阪) 우리나라 말로 읽음 대판. 뜻 풀이를 하면 큰 비탈. 도쿄 이전에 계속 일본의 수도가 있었던 관서지방의 상징인 곳이다. 갔다와서 생각이지만 도쿄 안가고 오사카 가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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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도착하자마자 어딘가를 가려고 했는데 비도 오고 호텔을 찾느라 너무 고생해서 뭐 다른 거 할 엄두가 안났다. 우리가 묵은 비지니스 호텔은 약도가 정말 알아보기 힘들게 그려져 있었는데 나 같음 그냥 사카이스지센 에비스쵸역 1번 출구에서 오른쪽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방향으로 육교가 있을 때 까지 쭉 걸어와 길을 건넌 다음 다음 오른쪽을 보세요. 1층에는 세븐일레븐과 Pronto 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겠다. 당최 알아볼 수도 없었던 지도 때문에 어찌나 고생을 했든지. 물론 난카이센 난바역에서 사카이스지센 에비스쵸 역을 가려면 2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그게 훨씬 빠를 뻔 했다.

일본에 도착해서 느낀 내 첫 느낌은 경차도 많고 자판기도 많고 자전거도 많구나. 하는 거랑 사람들 키가 크다는 거랑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옷 입는 거나 생긴거나 우리나라랑 완전히 비슷하구나. 하는 거였다. 내 생각엔 한중일 중에서 가장 튀는 건 역시 중국사람이고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이랑 일본 사람은 엄청 비슷한 거 같았다.
그리고 일본에 있으면서 내내 느낀 점은 한마디로 '일본 철도 짱' 이였다. 진짜 철도 짱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딜가도 전철역이 있고 수많은 종류의 전철이 있어서 어디든지 철도로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교토 시내 안에서 빼고) 우리나라에도 용산역 급행 말고 서울역 특급 쾌속 등등의 열차가 있어서 내 출퇴근 시간 좀 줄어들었음 좋으련만.

비도 많이 오고 어두컴컴해지고 해서 우리가 항상 전철을 탈 난바역 주변이나 점검하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난바역은 오사카에서 우메다역과 함께 큰 도심지인데 난카이센 난바역, 미도스지센 난바역, 요쓰바시센 난바역, JR 난바역, 긴테츠 난바역 이 있었고 우리가 주로 이용할 전철선은 미도스지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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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 또 하나는 저녁 9시만 되면 도시가 조용해 진다는 거다. 9시 경의 일본 도로는 우리나라 1시 2시쯤 과 비슷할 정도로 차가 없는데 상점도 8시면 다 문 닫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벌써부터 노숙자들이 상자로 하룻밤을 지낼 자리를 마련하고 그런다. 한국은 9시부터가 시작인데 말이다.
그걸 보면서 선진국은 선진국인가 싶었던 게 어찌되었든 8시 이전에는 다 퇴근을 한다는 건데 부러웠다. 우리도 9시쯤 되니 딱히 도심에서 할 일이 없어져서 호텔 1층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서 먹을 것 좀 사가지고 올라왔다.
방에 있던 온풍기 리모콘을 보니 모조리 한자라 결국엔 호텔 프론트에 있는 여자 불러다가 따뜻한 바람 나오게 하는 법을 배웠다. (알고보니 우리가 에어컨으로 켜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자 앞에 한없이 무력해지는 나를 보며, 앞으로가 조금 걱정이었지만 일본에 도착해서 일본어 한마디도 안했는데 전철 표도 끊고 저녁도 먹고 숙소도 잘 찾아온 거 보면 앞으로도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새로운 잠자리에 익숙치 않았던 탓인지 첫날밤에 난 중간 중간 계속 깨고 뒤척거렸다. 날씨를 보니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하던데.. 하는 걱정도 하고, 비가 안오면 교토. 비가오면 오사카를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생각보다 별다를 것 없었던 일본에 도착한 첫날 밤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