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나와 제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름도, 나이도, 소속도 모르는 타인들. 사람들로 뒤엉킨 신도림역 플랫폼이나, 기어코 전철에 탑승하는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매일같이 부대끼고 어쩔 수 없이 몸을 맞닿은 체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과 나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다. 키가 작은 나의 눈에 보이는 건 그 사람들의 스카프 색이나, 핸드폰 기종이나 양복 색깔 뿐.

2. 혼자 점심 먹는 게 좋다. 은행 간다는 핑계로 혼자 길을 나서 편의점에서 튀김우동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2,030 원 주고 사먹었다. 오른쪽에는 겨울을 알리는 호빵이 왼쪽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어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꽤 시달렸지만, 말 한마디 안해도 상관없어서 정말 평화로운 점심시간이었다.

3. 점심을 먹다가 회사 건물 1층 카페 쿠폰 12개를 다 채워서 공짜로 커피 한잔을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별안간 기분이 좋아졌다. 쿠폰으로 평소 잘 안먹던 카라멜 마끼아또를 공짜로 받아 마시는 중이다.

4. 어제 밤에는 평소 전혀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토니안이 내 애인으로 등장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5. 대학시절 갑자기 이사를 가야해서 복덕방 아주머니와 학교 주변 원룸을 보러 다녔다. 아주머니는 주인도 없는 원룸을 열쇠로 마구 열고 보여주셨는데,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등교 후 남자 대학생들이 살고있는 원룸의 실상을 목격했다. 벗어놓은 팬티를 대체 몇 개를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방바닦에 그대로 벗어져 있는 남자애들의 체크무뉘 사각팬티를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봐야만 했다.

6. 작년 같으면 미국야구 한국야구 가리지 않고, 야구를 엄청 열심히 시청했을 시즌이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재미가 없다. 어제 기아 타이거즈가 이겼는데도 무감흥.

7. 하석진이 나오는 혼술남녀가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이다. 어제는 하석진 님 분량이 너무 적어서 짜증났다.


​1. 수인선



집 앞에 전철역이 생겼다. 우리집 역사상 전철과 이렇게 가깝게 살아본 적은 없었다. 아직 역주변 정리가 끝나진 않았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내부는 깨끗하다.

안산, 시흥 가기 좋아진거라 나와 큰 관계가 없다는 게 좀 슬프다.

일요일에 AS 맡긴 부츠 찾으러 갈 때 수인선 체험도 할 겸 한번 타고 가봤는데, 버스 타면 넉넉잡아 30분 잡아야 하는 인하대가 한 정거장 밖에 안되고, 시내버스로 가려면 배차간격이 너무나도 긴 버스를 타야했던 송도도 정말 가까워졌다. 

우리집에서 원인재역까지 가며 창 밖을 보았는데, 도저히 2016년의 풍경이라 볼 수 없는 후진 풍경이 내내 나왔다. 다시한번, 그래 인천이 이런 곳이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뭐 그런 동네까지 전철이 다니게 된 거니 좋다면 좋은거다.

아, 그런데 원인재역은 인천같지 않았다. 인천같지 않다는 건 후지지 않고 좋다는 뜻이다.


2. 승리

호들갑 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경기는 관심이 갔다. 일요일에 이세돌이 승리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세번 다 졌을 때 다섯번 다 질 줄 알았는데, 그런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다니..
쉽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걸 직접 보여준 이세돌 구단, 정말 멋졌다.

괜히 세계 최강 자리를 오래 지킨 게 아닌 것 같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이세돌 구단의 몸매와 비율이 옷발 참 잘 받을 것 같은데 너무나도 펄럭거리는 양복을 입은 모습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는 점.


3. 마른 손

제일 친한 친구와 나는 정말 상극의 남자 이상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번에 이세돌 구단 보면서 다시한번 깨달은 건, 난 흔히 어른들이 듬직하다고 표현하는 몸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친구는 약간 나온 뱃살에 평균 몸무게보다 살짝 더 나가면서 키가 큰, 전형적으로 듬직한 남자를 좋아하고, 나는 그와 정반대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제까지 좋아했던 남자들을 돌이켜봐도 대부분 마른 편이었고, 손과 손목이 가늘고 긴 편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바둑을 하나도 볼 줄 모르는데도 이세돌 구단의 손과 얇은 손목을 몇 시간 내내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것이다. 이세돌 부인 부럽다.


4. 티어가르텐

독일을 다녀와서 의외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베를린에 있던 티어가르텐 이라는 공원이다. 런던에서 갔던 유명한 공원들보다 백배는 좋았다. 나무가 엄청나게 크고, 조용하고, 가로등 모양이 고전적이어서 예쁘다.

만약 베를린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다면 티어가르텐에 하루종일 있으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며 음악을 듣고 싶다.

그런데 티어가르텐 안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난 험한 일을 겪었다.

시내로 가는 길에 장이 요동쳐서 하는 수 없이 그 화장실에 뛰어 들어갔는데 쥐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너무나도 긴박하고 진땀나는 상황이라 난 죽은 쥐가 있던 그 칸에서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흑흑.

어딘가에 깨끗한 유료 화장실이 있었겠지만 찾을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때는 죽은 쥐 따위 아무 문제도 아니긴 했지....)

내가 이런 일을 겪고도 티어가르텐이 그리운 걸 보면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얼마나 좋은 공원인지 알 수 있다.


5. 결산

생전 처음해보는 년 회계 결산이 끝났다. 뭐, 회계사사무실에서 거의 알아서 한다지만 좀 힘들었다. 어쨌든 하나만 끝나면 재무제표도 끝날 것이다. 큰 일 하나 끝낸 것 같아서 후련하다.


6. 문제적 남자

일요일 밤마다 문제적 남자를 보며 월요일이 다가와서 우울한 마음을 위로한다. 내가 문제적 남자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하석진. 이장원도 매력있지만, 하석진 외모 너무 훌륭하시다. 못푸는 문제만 주구장창 나오는데도 오로지 하석진 하나로 기분 좋게 잠드는 일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