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오는 답장

단문 2015. 10. 23. 16:31

사무실에 또래 여자가 한명도 없다. 대학교에 근무할 때도 사무실을 혼자 쓰긴 했지만, 단대 내 다른 과 조교들이랑 좀 친하게 지내서 혼자라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정말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회사에서의 관계야 한계가 있고, 이익관계가 얽혀 때로는 완전히 솔직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 회사의 친구가 좀 그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해서 편한 점이 더 많지만. 

오늘 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아 가끔가는 만화가의 블로그 글을 읽다가 5년 전 잠깐 홈스테이 했던 주인을 만나는 대목에서 바보같이 눈물이 났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날 반겨준다면 정말 기쁘겠지.

생각해보면 영국 여행 갔을 때 엄청 외로웠다. 다들 너무 차가웠고 영어도 못했고. 외국에서 좀 살다 온 사람들은 나한테 너같은 성격이 외국가서 살면 잘살 성격이다 하지만, 나는 아마 한달도 못버티고 돌아올 것 같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니까. 

독일 여행 때 함께 했던 고모에게 메일을 썼다. 외로운 마음에.

시차가 있어서 바로는 아니어도 그래도 항상 답장을 보내주신다.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른다. 쓰면 바로 회신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떤 편지의 주인공

일상 2015. 5. 11. 00:53

모교에 일하면서 졸업생과 재학생 모두의 학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난 대학 다닐 때 알았던 모든 이의 학적을 조회해봤다.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는 물론이고 졸업 성적, 석차, 주소, 졸업 후 취업한 회사, 출신 고등학교, 입학 전형 등등 대학교 직원으로서 알 수 있는 개인 정보는 생각보다 많았다.

당연히 나와 관련 있었던 남자들의 정보를 더 자세히 볼 수 밖에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른 건물 갈 때마다 제발 만나지 않기를 기원하곤 했다.

 

저번에 용인 친구네 집 놀러가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에게 그동안 전혀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기억 저편에 있던 남자애가 떠올랐다. 대학교 근무할 때 걔 정보도 조회를 해봤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그 뒤로는 그냥 잊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걔 이름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신기했다.  

 

갑자기 생각난 그 아이는 2003년에 입학했고 나보다 1년 늦게 입학했지만 재수를 해서 나와는 동갑이었다. 사투리를 심하게 썼고, 덩치가 컸다. 어느날 걔와 내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저녁을 한번 같이 먹은 후, 학교 앞 당구장에 갔다. 걔는 가끔 나에게 연락을 했지만, 딱히 의미있는 연락은 아니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걔를 무척 싫어했다. 결국 얘가 나에게 연락하는 것 때문에 나는 남자친구와 크게 싸웠고, 어쩔 수 없이 걔와는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게 걔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의 전부다.

 

그런데 2005년 4월에 뜬금없이 걔에게서 편지가 왔다. 보낸 주소를 보니, 얘는 공군에 입대했고, 벌써 상병이었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얘는 대체 누굴까... 싶었다. 나는 이름의 주인공을 기억해내기 위해 엄청 애를 써야만 했다. 마침내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나는 편지를 읽었다.

 

학교에 있을 때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던 이 남자는 예상 외로 글을 무척 잘썼다. 정말 잘 쓴 편지라, 난 그 편지를 200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나 따위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줬다는 것이 황송할 지경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편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걔는 여전히 구만리 같이 군생활이 남아있었고, 걔가 전 남자친구의 후배라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무척 꺼려졌다. 전 남자친구와 관계된 모든 것이 싫었기 때문에. 2005년 부터 나는 여러가지 일을 겪었고, 원래 살던 집에서 이사까지 하면서 걔와는 결국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가끔 편지의 내용이 떠올라 위로를 받곤 했지만 그것도 그 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것이다.

 

용인에 다녀온 뒤 왜 이런 생각이 나는건지 신기해서 편지를 모아놓는 박스를 뒤졌고, 걔 편지가 나왔다. 어디서 그런 미친 짓을 할 용기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모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 남자의 학적조회를 부탁했고, 학적에 있는 핸드폰 번호로 걔가 2005년에 나에게 보낸 편지사진을 찍어 보냈다.

 

솔직히 좀 망설였다. 내가 이 남자 애라면 정말 황당할 것 같았다. 또 중간에 전화번호를 바꿨을 수도 있고, 자기 전화번호를 무단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에 화가 날 수도 있고, 문자를 받았음에도 아예 무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일하는 기계 처럼 살고 있을 사람한테 이런 황당한 문자는 반가웠으면 반가웠지 절대 짜증날 문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낸 황당한 문자에 답장이 왔는데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가 보낸 편지 맞고, 부대 주소 보니 본인이 근무했던 부대도 맞는데, 내가 누군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었다. 정말 재밌는 반전이었다.

내 일생에서 남자에게 받은 편지 중 그 편지는 단연 제일 잘 쓴 편지였고, 이 정도 편지면 엄청 오래 고민하고 썼겠구나 생각했는데 정작 그 편지를 쓴 사람은 나를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니.

 

이 얘기를 들은 남동생은 군대에서 여자에게 쓴 편지를 기억 못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그 남자가 거짓말 하는 거 같다고 했지만, 내가 볼 때는 정말로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얘가 군대에서 외로운 마음에 이런 편지를 한 열댓명한테 보냈나보다.. 했다. 그래서 정 기억 안나시면 기억 안하셔도 된다, 직장생활 어차피 매일 똑같은데 그냥 저 때문에 잠시 재밌는 일이 있었다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기억이 났다고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왔고, 어찌저찌 하다가 그 남자를 10년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사투리는 여전히 심하게 썼고, 평일에는 무조건 야근, 주말에도 근무를 밥 먹듯이 하며 영혼없는 사람처럼 피폐하고 살고 있었다.

 

내가 벌인 황당한 일 때문에, 며칠동안 꽤 재밌었다. 편지의 주인공인 이 사람과 내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또 어떻게 보면 10년이나 지난 편지 가지고 여자가 남자에게 수작을 건 거니깐 걔한테 좀 쪽팔리기도하다.

하지만 요즘 가만히 있다가도, 밤낮 일만 하는 걔가 참 딱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 걔도 가끔 내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걔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알아주지 않는 꽃

단문 2015. 4. 15. 00:53

우리동네에서 월미도 가는 길에는 도무지 정이 안가는 공장이 쭉 늘어서 있다. 평일 낮에 그 길을 걸어가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엄청난 고압전류가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그 동네 공장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게 벚나무가 무척 많이 심어져있다. 매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항상 예쁘지만, 봐주는 이는 적다.
삭막하고 외로운​ 곳에서 그 나무들이 피워낸 벚꽃은 정 떨어지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존재지만,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다.
난 나 혼자라도 걔네들의 아름다움을 봐주리라 결심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올해도 난 그 꽃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이틀째 비오는 밤에 운전을 했더니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이 비와 함께 꽃도 다 떨어질 것이다.
나 자신을 꽃에 비유하기도 웃기지만, 공장 앞 꽃들에게 정이 갔던 건 묘한 동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 이미 지고 있는데, 가장 예뻤던 때 부터 지금까지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준 이는 없었다는 슬픈 생각에 봄마다 좀 우울해진다.
괜히 봄에 자살을 많이 하는 게 아니다. 이상하게 봄만 되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
며칠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의 수신자는 아마 영원히 그 편지를 읽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고 보냈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편지에 답장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거짓말이다. 난 죽을 때 까지 기다릴 것 같다. 절대 오지 않을 답장을.


단 하나 뿐인 상대

일상 2007. 12. 6. 21:59
내친구의 편지 내용 중에서 (친구도 이정도 공개는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

가끔, 몇년전 생각을 자주 해. 모두가 서로를 장기판 졸이요.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으로 보고 사는 세상에서 의미있는 미소, 존중하는 눈빛과 따뜻한 대화로 호의를 확인하는 거. 진짜 생각보다 귀한거였어.
운명이래도 놓칠 수 있는거야. 다만 자기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상대인거지.
운명이라고 잡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보증이라면 세상에 비극이 왜 있겠어 그치?

-----------------------------------------------------------------------------------------------------

내가 이성애자라는 가정하에
영원히 동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과 영원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
꼭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뭘 택할까.
예전에는 당연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을 택한다고 말을 했다.
이성들하고 어울리는 시간보다 동성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만신창이가 되어서 세상에서 겪은 설움을 눈녹듯이 녹여줄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난 이 친구한테도 저 친구한테도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남자한테는 그게 또 아니다. 너 아니면 누구한테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남자에게만은 우정처럼 너도 이만큼 좋고 너도 이만큼 좋아. 난 너에게 못받음 다른 사람에게 가면 돼. 이게 안된다. 적어도 나는.
(그래서 인기가 없나)

내 친구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관계가 바로 친구 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하긴 여타의 의무관계가 없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남녀는 헤어지면 끝 이니까 말이다. 속으로는 이랬었지 저랬었지 생각하고 가끔씩은 무릎꿇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은 맘도 들고 날 특별한 여자 대접 해줘서 고마웠다고 진심으로 인사해주고 싶고 그런데.
정작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에게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그놈의 자존심과 이러면 내가 또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싶어서 마음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고 억누른단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라는 우려때문에 그런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상대방을 다시 한번 잡아보고 싶다거나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동에 장애가 되는 생각은 '거절당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상대가 부처수준의 자비과 관대함을 발휘하여 참아줄 수는 있지만 헤어질 때의 여러가지 정황과 상대방의 행동 말 등을 통해 '나와는 되지 않을 사람' 이라는 것을 신체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꼈다면 그건 거의 맞을 경우가 높단 말이다. 아니 높은 정도가 아니라 그게 진실이다. 믿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치고 시덥지 않은 말로 그렇지 않다는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도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자신이 다 알고 있을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내가 이렇게 한 번 무너져서 예전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 우스워지고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할 뿐이다. 속으로는 골백번 매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려 하면 할수록 난 비참해지고 웃기는 여자되고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고 내 소중했던 진심, 내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어려웠던 결심  그 조차도 희화화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번도 시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절대 아니다. 시도했을 때는 안 그랬을 때의 백배도 넘는 후회와 자기혐오감이 밀려든다.  

그런데도 정말 내가 싫어지는 건. 예전보다 현명해진 지금 상태에서도
내가 한 번만 더 잡았으면 지금 우리는 함께였을까?
나 정말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놓친 건 아닐까?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똑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아주 강하게 든다는 거다.

그리고 더욱 슬픈 건 나만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또 다행스러운 건 단 한순간이라도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 그러니까 내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고, 놓쳐서 조금은 아깝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었다면. 내가 가끔 이것 때문에 울곤 하는 것 처럼 진심을 다해 단 1초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정말로 고마워할만큼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는 거다.

풋. 술도 안마셨는데 이런 거나 쓰고 있고.
요즘 아주 배불렀다 배불렀어.

편지 읽기

일상 2007. 11. 9. 16:21
핸드폰에 45개 전화번호만이 저장되어 있는 나는 솔직히 말해서 너의 진짜 친구가 몇명이냐 묻는다면?
흠.. 하나,둘,셋,넷. 손가락 4개 펴고 4명~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하하핫.
그 네명도 중학교 친구,고등학교 친구, 대학 1학년때 단 몇개월 활동했던 동아리에서 알게 된 친구 하나, 다른 과 수업 듣다 알게 된 친구 하나 란 말이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1:1 로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다.
원래 한 테이블에 4명이상 있으면 정신을 못차리는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어제는 몸이 좀 아팠는데 그 때문인지 매사에 짜증이 났다.
그나마 일찍 끝났으니까 망정이지 거기에 야근까지 했으면 진짜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거깃다 나 내일도 일하잖아? 아아아아아악.
어제 퇴근길에는 뭔가 위로할만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피곤했고, 결국 마을버스 앞에 있는 파리바게뜨에 들어가 맛있어 보이는 빵을 구입 했다.
그리고선 집에 가서 먹어도 될 빵을 굳이 마을버스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먹었다. 그만큼 긴급했달까.
꽤나 큰 베이비슈를 (생크림이 밖으로 빠져나올까봐) 억지로 한 입에 넣고 씹다보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이거야 말로 원초적 행복 아니던가.

집에 도착해서는 우울한 나를 위해 또 한가지 행동을 했다.
일요일에 만났던 친구의 편지 읽기.
저번에도 말했지만 친구의 편지는 언제나 나에게 큰 위로를 주기 때문에 받은 즉시 읽기 보다는 힘들때 읽곤 한다.
어제야말로 '잇츠 레터 타임!' 이었단 말이다.

다른 내용들이야 다 개인적 내용들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내 친구가 한 두가지 질문에 답하고 싶다. 나중에 답장으로 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쓰냐면. 생각보다 질문에 답 생각하기가 재밌어서.

첫째 질문은.
너는 니 맘이 제일 약해있던 때를 생각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아쉬움일까. 어쩜 시간이 더 지나면 쪽팔림 보다 다른 감정이 더 지배적일지도 몰라. 그땐 어떤 생각을 할까.
- 짧게 말하자면 난 아직도 쪽팔림 인 것 같다. 쪽팔림 이전에는 '난 불쌍하고 힘들었어.'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 이후에는 그 따위 것 가지고 그렇게 내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쪽팔려 지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맘을 그렇게 약하고 힘들게 만든 그 사건이 시간 지나고 보니 전혀 힘들지 않았고 별 거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이 당당해지려면 힘든 사건에 대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전혀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마음속으로부터 떳떳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더 중요한 건 .. 난 절대 그런 사람이 못된다는 거고, 그런 사람 보면 인간미 없다고 느낀다는 거지. 흐흐흐

둘째 질문은.
15년 후 바라는 모습은 어떤 그림이야?
- 내 친구는 혼자 가고 싶은데로 드라이브 가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트렁크에 책 가득 싣고 오는 것 이란다. 꽤나 멋진 모습이다. 근데 난 또 한 가지 깨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내 나이 마흔을 생각하면 정말 언제나 꼭 옆에는 남편님이 계셨던 거다. 내 자식에 대해서는 생각 안해봤지만, 어찌되었든 불과 5년 후를 생각해도 꼭 내 곁에 남자 한명이 있다는건데. 갑자기 기분 나빠졌다. 왠지 내가 의존적이 된 것 같잖아!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신랑곁에서 어떻게 하면 이쁜짓을 많이 할까 궁리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안하는 건 아니었다.
훗. 이제 연애고 뭐고 아무 생각 없어진 이 마당에 비참하게시리 왠 남자 생각;
15년 후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멋진 것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원하는 것을 억지로 생각해 낼 순 없는거고.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생각하고 또 그 모습을 그려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 아직 나와 앞으로를 함께할 정해진 남자가 없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까 내 구미에 맞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
뭐.. 솔로의 특권이라면 특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