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생

  우여곡절이 좀 있긴 했지만, 3월 둘째 토요일에 동생의 결혼식을 잘 마쳤다. 구두에 불편한 옷 입고 정말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이제는 동서가 된 신부네 집이 남양주라서 천호동에서 식을 올렸는데, 오전 9시반까지 가서 아침 먹고, 머리하고 화장하는 것만으로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 그 날 인천-천호동 왕복 운전까지 내가 다 해서, 결혼식 끝나고 완전히 뻗었다.

  중간에 동생에게 들어온 축의금을 입금하라는 특명을 안고 남자친구랑 은행가서 어마어마한 거액을 입금했다. 축의금 받아주는 두 친척오빠가 너무 빨리 데스크를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늦게 온 몇몇 하객들은 식권을 못받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 남자친구를 처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에게 공개했는데, 양복입은 남자친구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뛰어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제일 친한 이종사촌 언니들이 남자친구 잘 생겼다고 칭찬해서 기분 좋았다.

 

2. 엄마

  내일 모레 PET 검사 결과가 나온다. 아주 드물게 PET 에서는 암이 발견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암이 아니리라 하고 기대하면 처음 암판정 받을 때처럼 너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다.


3. 회사

  회사에서 자꾸 일을 너무 많이 시키려고 한다. 난 이미 두 사람 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 누가봐도 두 사람의 일을 하지만, 내 월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다. 바로 전 직장을 쫓겨나다시피 그만둬야 했고, 대학 졸업하고 첫발을 들였을 때 부터 이미 망한 경력이지만, 가끔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내 연봉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요즘 수십번 씩 때려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전 직장에서 정말 최악의 상사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그때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다. 난 아무리 연봉 올려주신다고 해도 회사에서 제시하는 업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말해놨는데, 그 말 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자기들끼리 이미 다 결정해놓고 나한테 통보만 할 작정인 것 같다. 이기적인 인간들. 자기들은 놀고 먹으면서.


4. 급체

  저저번주에 남자친구의 친남동생과 재수씨 그리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평소 남자친구가 집이나 부모님 얘기를 전혀 안해서 내심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건가 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어머님께 인사를 하니 왜 이제야 나타났냐며 안아주고 어화둥둥 좋아해 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재수씨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나를 초대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 분이 보령 굴단지 가서 굴먹자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보령까지 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굴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가서 평소 내가 먹는 양의 2배를 먹었다. 결국 급체해서 차안에서 토했다. 1차로 던킨도너츠 먼치킨 담는 종이 컵에 토하고, 토하는 와중에 오빠가 겨우 찾은 허술해보이는 비닐봉지에 2차로 토하고, 나때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3차로 모든 음식을 다 토해버렸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너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지만, 차안에 토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 사랑

  주말에 오빠가 결혼하자고 했다. 정식으로 청혼을 안해서 서운하냐고 말했지만, 내가 서운할 리가 있을까. 좋아서 울 뻔했다. 결혼 얘기를 꺼낼 때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 자기가 무슨 한류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말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깐, 홧김에 말하고 후회 중은 아닌 것 같다.

  한 때는 결혼 같은 거 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애인 없어도 외롭다는 느낌 전혀 없었는데....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나보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 마다, 매 순간 반하고 가슴이 뛴다.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이토록 좋아하고 원할 수 있는건지 신기할 뿐이다. 난 진정한 사랑 이런 거 불가능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평생 안들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소원은 오직 하나, 매일 매일 오빠를 보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뤄질 소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결산 시즌

일상 2017. 3. 26. 22:42

재무제표

  아직도 악감정이 남아 있는 전 회사에서 3월은 최고로 일하기 힘든 시즌이었다. 왜냐면 12월말 결산 법인의 법인세 신고 마감이 3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 특성 상 유형자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그 많은 재고자산이 1년 내내 전혀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1년 내내 엉망으로 내보내고 들여오던 무수한 재고자산을 3월에는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싫어했던 최악 부장이 전권을 쥐고 책임졌다. 그 부장이 3월 내내 우리에게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히스테리와 짜증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

  그 부장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기도 한 게, 3월 내내 거의 철야로 일을 했다. 대체 그런 회사에 대한 무한 충성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마흔 넘은 나이에도 연장자에게 칭찬받고 인정 받기 위해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쩌면 회사 생활에 가장 필요한 재능이 아닐까.

  2016년은 1월부터 12월까지 온전히 나 혼자 일을 해서, 결산하는데 훨씬 덜 힘들었다. 회계법인 도움을 받긴 했지만, 꽤 힘든 일이어서 재무제표가 나오면 막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다. 뭐 워낙 구멍가게 같이 작은 회사라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난 결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전 회사의 최악 부장같이 주변에 온갖 짜증 부리고 징징 거리진 않았으니 스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음 주 중에는 완전히 마무리될 것 같다.


사랑의 정의

  내가 혐오하는 사람 중 한 부류가 모든 일을 쉽게 정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뭔가에 대해 단정 짓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를 애초에 접는다. 사랑에 실패해서 상심이 깊은 사람에게 '사랑은 타이밍이다.' 같은 말 하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가슴 찢어지고 끝없이 자학하고 있을 사람에게 왜 그딴 근거 없는 말을 지껄이는가. 본인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랑' 에 대해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는가.

  내가 너무 순진할 걸수도 있지만, 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타이밍이 아무리 안 좋아도,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끝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타이밍'이 서로 안 맞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난 절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기로도 썼지만, 내가 '사랑'에 대하여 탐구한 각종 글과 영화, 음악 통틀어 이정도면 정말 사랑의 절대 정의 에 가깝다 생각했던 건 단 두 작품 뿐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사랑에 대하여' 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사랑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안톤 체호프나, 키에슬로프스키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걸까? 하여튼 정말 싫다.


다이어트

  다이어트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요즘 평일 저녁에 계란과 채소, 과일만 먹고 있다. 요즘 퇴근 하고 와서 몸무게 재면 50키로다. 내 인생 최초로 50키로를 돌파했다. 앞자리가 바뀐 체중계의 몸무게를 처음 본 날 너무 슬퍼서 내 방에서 막 비명을 질렀다. 이건 별로 영광스럽지 못한 기록 갱신이다. 3월이 되면 뭐라도 하자. 는 결심의 '뭐' 중에 운동도 포함이었는데, 주말마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심하게 몸이 늘어져서 운동도 못했다. 요즘 저녁 때 채소 먹는 것도 다이어트보단 유지가 목적이다. 내 몸무게 목표가 이렇게 소박해졌다. 이렇게 살찐 중년이 되어가나보다.


쭈꾸미

  내 성격과 체력 모두 사회생활의 걸림돌이지만, 입맛도 꽤 큰 걸림돌이다. 난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신라면도 매워서 못먹을 정도니 이 정도면 '전혀' 못 먹는다는 표현이 어색치 않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또 먹고 싶어하는데, 난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가면 차라리 굶는 것을 택하다보니, 그런 자리 가면 괜히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 든다.

  맨날 맛있는 거 타령하는 부장님 때문에 저번주 어느 날에는 마리오 아울렛을 30분이나 헤맸고 금요일에는 쭈꾸미 먹으러 꽤 멀리까지 갔다. 나는 혼자 먹겠다고 주장해봤지만, 어떻게 혼자 먹게 두냐면서 자꾸 같이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쭈꾸미 식당 가서 혼자 양푼에 김치찌개를 먹었다.

  저번 금요일에 사장도 없고 전무도 외근 가서 부장급 들이 아주 놀기로 작정을 하고 쭈꾸미 먹으면서 소주랑 맥주를 내리 마셨다. 그 광경을 보자니, 이 회사도 3년 넘으면 미련 갖지 말고 떠나는 게 내 미래를 위해 유리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그 때 되면 나이가 꽤 있어서 어디 다른 회사 가지도 못할 가능성이 많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불판의 쭈꾸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술도 싫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IMF 이전에 얼마나 회사 일 하기 편했는지 그리워 하면서 말하는 거 듣기 싫단 생각을 하며 난 정말 체질적으로 단체 생활이 맞지 않음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거기 앉아서 술 마시느니 일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난 그냥 중간에 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오후 늦게 부장들이 들어왔는데 역겨운 술냄새 풀풀 풍겨서 그 냄새 참고 일하느라 힘들었다.


불행한 여자들

  내 주변에는 50살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남편한테 맞고 사는 분도 있고, 선물 옵션으로 이미 2억 넘게 재산을 날렸는데 아직도 실시간으로 일이천만원씩 날리는 남편을 둔 분도 있다. 이 얘기를 다 이번 주말에 들었다. 대체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 존재하긴 하는걸까. 교회 사람들도 친척들도 엄마 친구들도 죄다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와 친한 친구분 딸은 대학 기숙사 세탁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하고. 큰 엄마는 진지하게 황혼 이혼 고민 중이시고...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가 시집가서 애기 낳고 남편이랑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딱해 죽겠댄다.


아기

  요즘 고양이 사진을 너무 많이 본다. 고양이만 키워도 고양이가 이뻐 죽겠다는데, 만약 내 자식을 키우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감정의 백배 천배는 내 애기가 예쁘고 사랑스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신혼일때 아빠가 가끔 숙직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셨는데, 엄마 혼자 자려면 그렇게 외롭고 무섭고 슬프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후 나랑 같이 자니깐 그렇게 든든하고 좋았댄다. 그래서 갓난 아이가 엄마를 지켜주지도 않는데 든든해? 하고 물었더니 그래도 아기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다고, 근데 넌 아직도 아기를 못 낳아서 어떡하냐 면서 엄마는 또 슬픔에 빠지셨다. 이 얘기를 들은 후에는 나도 좀 슬펐다. 나는 동물은 키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기는 좋다. 가끔 아기들을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아기 처럼 예쁜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두려운 마음

단문 2016. 5. 3. 22:03

사랑이 주는 기쁨만큼이나 사랑이 주는 슬픔도 어마어마하다.
나에게 다정하면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만, 평소와 다르면 만사에 의욕이 없다. 가끔 내가 사랑하는 것 만큼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면 순식간에 콱 죽고 싶어지기도 한다.
내가 더 사랑하지 않도록, 언제든 헤어나올 수 있을만큼만 마음을 열게된다.
나는 참으로 딱한 인생을 살고 있다.

긴 시간 함께 있고 싶지만, 또다시 예전의 흉한 내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마냥 기다린다. 예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될 것 같았던 일을 용케도 잘도 한다. 쯧쯧.


Love is losing game

단문 2015. 3. 10. 00:59

에이미 와인 하우스 노래 중 저런 곡이 있다. 정말 슬픈 제목이다.
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싫다.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는 결국 서로 힘들어 지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틀림없이 지는 승부인 줄 알면서도 결국 어리석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보며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나쁜 의도 없이 나에게 사랑을 받았을 뿐인데 졸지에 가해자가 된 사람들도 딱하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그대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알면서도 왜 이렇게 마음이 슬퍼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