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를 읽고

위로 2017. 7. 8. 18:26
그 후
국내도서
저자 : 나쓰메 소세키 / 윤상인역
출판 : 민음사 200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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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첫 직장에서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었다. 아마 이 블로그에도 독후감을 올렸을 것이다. 당시 내 상태가 형편 없었기 때문에 그때 쓴 글은 읽어보고 싶지 않다. 아마 끔찍하게 못썼을 것이다.

  직장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당시 나는 히라오카를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 없이 우아하게 사는 다이스케가 절대 미치요를 택할 리 없다고 확신하며 책을 읽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30대하고도 중반이 된 지금 다시 읽으니, 히라오카 같은 놈에게는 아무런 동정이 가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딱한 사람은 바로 미치요다. 대학시절 미치요와 다이스케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다이스케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친구인 히라오카와 미치요의 결혼을 적극 돕는다. 오빠도 엄마도 갑자기 죽어 의지할 곳 없던 미치요는 결국 사랑하지도 않는 히라오카와 결혼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 몇년이 지나 도쿄에서 다시 만난 미치요와 다이스케는 함께하기로 하지만, 이미 미치요는 몸이 약할대로 약해진 상태이고, 다이스케는 가족에게 의절당하고, 남편인 히라오카는 아픈 미치요를 다이스케와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불륜에 빠지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남녀가 서로 오랜 기간 사랑하다, 어느 한쪽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헤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실연한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며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심하여 이별을 통보한 사람을 죄인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사람의 감정에 벌을 주고, 상을 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평생 옳은 선택을 할 수 없고, 언제나 마음이 한결같을 순 없을 것이다. 설령 사회적으로 큰 도덕적 의무가 요구되는 결혼을 한 후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혐오하는 작가의 태도가 소설 군데군데 드러나서, 나쓰메 소세키가 평생 얼마나 외롭게 살았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나쓰메 소세키 뿐이구나. 하는 생각도 이 소설을 읽으며 자주 했다. 다만, 난 나쓰메 소세키 처럼 쓰지 못한다. 이렇게 대신 내 마음을 표현해주는 작가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도 이게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고,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 만으로도 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히 이 소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편소설 중 하나인데, 다시 읽으니 처음 읽는 것 처럼 새로웠다. 특히 다이스케가 마침내 미치요에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내 기억에는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다이스케가 자신이 가진 특권 전부를 포기할지 안할지 그 부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다른 부분에는 집중을 안했던 것 같다. 이렇게 대충 읽어놓고,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그 후' 라고 자부했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그는 스스로가 정당한 길을 걸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걸로 만족했다. 그 만족을 이해해 줄 사람은 미치요뿐이었다. 미치요 이외에는 아버지도 형도, 그리고 사회도 세상 사람들도 전부 적이었다. 그들은 시뻘건 불꽃 속으로 두 사람을 밀어 넣고 태워 죽이려 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미치요를 부둥켜안고 그 불길이 빨리 자신을 태워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p. 347



산본역/ 석촌호수

일상 2017. 6. 2. 13:14


  우울을 이겨내보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도 잠시, 5월의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황폐화 되어, 군포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자기의 고급 취향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가끔 다독하는 사람들 중에 은근한 우월감을 과시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인 나에게 조차 그런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는 대인배다. 그 친구와 얘기하고 와서 다시 나쓰메 소세키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내가 느끼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함부로 사람에 대해 단정짓지 않는 것' 이다. 그래서 그런지, 의외로 다독인들은 조언도 잘 해주지 않는다. 다년간의 독서로 사람 마음은 다른 사람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까.

  사람들에게 언제나 좌절하고 상처받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오히려 더 고독해지는 것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나에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속상하다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뭘 그런 거 가지고 속상하냐고 거 참 이상하다고 하거나, 그거 다 니 탓이라고 하는데, 친구는 진짜 속상하겠다고 공감을 해준다. 요즘 육아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서 나 만날 시간이 없었을텐데, 나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산본역 카페에서 바깥을 보는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친한 친구와 비바람 바라보며, 얘기를 딱 2시간 했는데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친구와 얘기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내 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친구 말고 여기 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 후' 는 몇 년전 읽었던 책인데도 너무 새롭고, 요즘 나의 유일한 위안이다.




  저번 주말에 회사 동료 결혼식 때문에 잠실에 갔다. 이상하게 요즘 잠실갈 일이 많이 생겨 평균 2주에 한번 꼴로 가게 된다.

  회사에서 워낙 같이 많은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축의금은 전혀 아깝지 않았지만, 1시 30분까지 가느라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잠실까지 갔는데 그냥 오기 아쉬워서 친구를 만나 석촌호수를 좀 걸었다. 나는 잠실에 볼 일 있을 때만 가기 때문에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날 친구와 주변을 좀 걷다 보니, 사람들이 왜 강남 강남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석촌호수와 가까운데 살면서 거기서 운동할 수 있으면 난 정말 매일 매일도 할 수 있을 것 이다.

  결혼식 때문에 평소 잘 입지 않던 불편한 원피스를 입었는데,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다. 운동화에 청바지 입고 갔으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았을텐데.

 

  엄마가 아빠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서, 둘이 여행이라도 가시라고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사드렸다. 평일에 출발하니 2인 왕복이 9만원도 안한다. 숙박도 제주도에서 게스트 하우스 하는 친척이 그냥 방을 내준다고 하셔서 편히 다녀오실 것 같다. 예의상 10만원은 드리려고 한다.

  돈한푼 못버는데 왜 그런거 예약하냐고 하지 말라고 만류하던 엄마가 막상 내가 예매를 해드리니 그렇게 좋아하셔서 마음이 좀 찡했다. 어린 애 처럼 들 뜬 마음으로 옷 뭐 가져갈지, 가서 뭐 신을지 고민하는 엄마를 보니 귀여웠다.

 

  나도 요즘 부쩍 혼자 1박 2일이라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또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의 배경인 시코쿠를 좀 가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 하는데, 여름에 일본 여행 갔던 20대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고개를 절래 절래 하게 된다. (일본의 여름 너무 덥고 습하고 불쾌하다!!)

  이제 금방 대한항공에서 소멸예정 마일리지 안내 메일이 왔다. 어떻게든 2018년 전에 여행을 가야 하는데, 나 이번 마일리지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여행가는데 쓰고 싶었는데 크크크크. 너무 큰 꿈이었나보다. 그냥 나 혼자 빨리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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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음

나쓰메 소세키


스마트 폰을 금요일 밤에 사서 이거 저거 여러가지 하던 중에 교보 e북을 시험해보고자 전자 책을 구매하는데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마음을 구매하였다.
예전에 충무로로 출퇴근 할 때 스마트폰 샀으면 딱 좋았을 것을. 그때 무거운 책을 시원찮은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끈이 끊어진 적도 있는데, 무려 1시간 30분 동안 무거운 책 들고 왔다갔다 한 거 생각하면 참 억울하다.
책은 종이로 된 거 넘기는 맛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이 필요 없는 글로만 된 책은 e북도 괜찮은 것 같다. 읽고 느끼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비통한 마음이 들어 중간 중간 끊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읽다가 다른 책 읽고 또 다른 책 읽다가 다시 돌아와서 읽고. 그렇게 무려 5개월에 걸쳐 끝을 보았다.
미천한 독서 경력으로 미루어 보면, 이 소설은 "문" 랑 느낌이 비슷했는데 "문" 의 주인공이 안고 사는 죄책감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선생님의 젊은 시절은 어떻게 보면 비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나였다 하더라도 그와 똑같이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자신의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절망감과 어렵게 털어놓은 진심에 대한 묵살 난생 처음 느낀 사랑의 실패 등으로 인해 친구는 결국 자살을 택하고 그 자살로 인해 선생님은 평생을 무거운 마음으로 살 게 된다.
이렇게 쓰다보니 그래도 내 입장에선 선생님보단 그 선생님 친구가 더 불쌍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을 다 덮었을 때에는 선생님이 너무 안쓰러웠는데.

p.s e북은 북마크가 아주 편해서 인상깊은 부분 표시하기가 좋다.
페이지는 모두 교보e북 기준.

p.29 -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렇지만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팔 벌려 안아 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p.80 - "옛날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엔 그 사람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게 한단 말일세. 나는 앞으로 그런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다네. 나는 지금보다도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참고 견디기보다는, 외로운 지금의 나를 참고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모두 그 희생으로 외로움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걸세." 나는 이런 각오를 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p.87 - 아버지의 의식에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생기면서 그 밝은 부분이 어둠을 꿰매는 하얀 실과 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p. 71 - 진정한 사랑이란 종교를 믿는 마음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아름다워지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네.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 고상한 마음이 금방이라도 나에게로 옮겨질 듯했지. 만약 사랑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물체에 두 가지 단면이 있어 그중 높은 곳에 있는 한가지는 신성한 느낌이 작용하고, 낮은 곳에 있는 한 가지엔 성욕이란 것이 작용한다면, 나의 사랑은 정확히 높은 곳에 있는 극점을 취한거라고 생각하네. 나는 원래부터 육체를 떠난 인간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녀를 보는 내 눈이나 마음에는 육체를 탐하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네.
p.264 - 죽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내 마음은 가끔씩 외부 자극에 놀랄 때가 있다네. 하지만 내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힘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 마음을 꽉 움켜쥐고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내라고 마치 압력을 가하듯 말하지.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축 늘어져 버린다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어서려고 하면 또다시 나를 억누른다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남의 일을 방해하느냐고 호통을 치지. 그 어마어마한 힘은 그저 차갑게 웃다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네. 그러면 나는 다시 축 늘어지고 말지.

나쓰메 소세키 - 행인

위로 2010. 10. 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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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行人)

나쓰메 소세키

문학과 지성사


나는 . 애초에 이 세상이라는 건 기쁜 일보다 슬픈일이 훨씬 더 많고 신발을 신고 바깥에 나가면 즐거운 일 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근거도 책임도 없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강요하는 문구나 사람 사상 등을 마주대하면 "실망하면 책임질거냐" 고 따지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 반사회적 인물로 불만투성이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은 행복한 일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으니까.  
이런 나에게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출근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즐거운 하루가 될 거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얼마나 괴로울까? 내 괴로움을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죽어라 위로를 해줘봤자 그 사람은 더 외로워질 뿐이다.  
예전 회사를 출근 하면서 출근길에 홧김에 자살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던 때가 있었다. 단지 회사 자체가 괴로운 것을 떠나서 이렇게 매일 매일 아둥바둥 살면서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난 괜찮다고 자위하는 삶을 평생 살다가 늙어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내가 행인의 "형" 을 보면서 연민이 드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형이 고민하는 문제는 내가 고민하는 "먹고 사는 문제" 보다 훨씬 고차원 적이고 심각한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이걸 아껴 읽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뒷면에 옮긴이 해설 을 보면 '인간존재에 깃든 에고이즘' 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저건 뭘 말하는 지 잘 모르겠고, 난 소설 행인을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내 수준 답게  간단히 말하고 싶다.

가장 빨리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겼던 부분은 역시 형수와 책 주인공인 '나' 가 와카야마에 하룻밤 머무르는 장면이었다. (긴장감도 긴장감이고, 그 하룻밤의 형수님과 나의 대화를 보면 형수님의 성격과 분위기 등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기 때문에) 쓸쓸한 보조개를 가지고 있는 형수도 형의 딸도 동생도 부모도 모두 형의 구원이 되어주 질 못하는데 나쓰메 소세키가 제대로 서술해주지 않은 결혼 전날 형 앞에서 울던 하녀 '오사다' 는 형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위에까지는 10/22에 쓴거고 지금부터는 11/3 에 쓴 내용임-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적고나서  다시 덧붙이지면, 난 형도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여자라 그런가 더 인상깊고 애정이 갔던 인물은 형수님 이었다.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도 형수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 친구와 어제 네이트 쪽지로 이야기 하다가 생긴 의문인데 이 책의 주인공인 '동생' 이 형수에 대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동경? 존경? 연민? 분명 애정 쪽은 아닌데 말이다.
책의 주제는 맨 마지막 페이지 370쪽에 나온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나마 이 형에게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 점은 자신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친구가 딱 한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일 거다.  믿을 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가끔 친구나 아직은 없는 애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마 이 소설 쪽 '동생' 처럼 생각기가 쉽겠지. (어떻게 끝맺을 해야할 지 모르겠음;)

P. 156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 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될 법한 심정을 맛 보았다.
  조금 있다가 우리는 누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다소 잠잠하던 폭풍우가 이때는 밤이 깊어짐에 따라 거세지는지, 새까만 하늘이 새까만 대로 활동하며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무서운 하늘에서 검은 전광이 맞부딪쳐 서로 검은 바늘 비슷한 걸 쉴 새 없이 내보내어, 이 어둠을 굉장한 소리로 유지하는 거라 상상하며 또한 이 상상 앞에 위축되었다.

P.159
  나는 이때 비로소 여자에 대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형수는 어디를, 어떻게 떼밀어도 밀려나지 않는 여자였다.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마치 포렴처럼 흐물흐물했다. 하는 수 없이 이쪽이 물러나면 돌연 엉뚱한 곳에서 강한 힘을 보였다. 그 힘 가운데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서운 것도 있었다. 또는 이 정도라면 상대해줄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가 미처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녀로부터 농락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농락당하는 기분이 내겐 불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P.162~P.163
  나는 형수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다시 그녀의 사람 됨됨이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평소에 형수의 성격을 어느 정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막상 정식으로 그녀의 입을 통해 진심을 듣게 되고 보니 도무지 깊은 미로에 빠진 듯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모든 여자는 남자가 관찰하려 들면 누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수 같은 모습으로 귀착되는 게 아닐까? 경험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다른 여자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형수만의 특징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형수의 정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늘은 파랗게 개고 말았다. 나는 김빠진 맥주같은 심정으로,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았다.

P.176
  나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래도 내 밑에 있는 형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유쾌했다. 동시에 불쾌했다. 어쩐지 부드러운 구렁이에게 온몸이 휘감기는 느낌이었다.
  형은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마치 몸이 누워 있다기보다 참으로 정신이 누워 있는 듯 여겨졌다. 그리고 이 누워 있는 정신을, 예의 흐물흐물한 구렁이가 비스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친 휘감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내 상상으로 그 구렁이는 때로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했다. 그리고 느슨히 휘감았다 옥죄었다 했다. 형의 안색은 구렁이의 열기가 변할 때 마다, 또는 휘감기는 힘이 변할 때마다 달라졌다.

P.244
  밖은 바람이 어지럽게 불어댔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가루처럼 보잘것없는 힘을 모아 이 바람을 버티며 반짝였다. 나는 쓸쓸한 가슴 위에 양손을 얹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곧장 파고 들었다.

P.260
  긴 듯하나 짧은 겨울은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내 앞에 찬비, 녹아드는 서릿발, 강바람....... 등의 짜여진 일정을 평범하게 반복하며 이렇게 지나갔다.

P.272
  그리고 나서 사나흘 동안 내 머리는 끊임없이 형수의 유령에 쫓겨 다녔다. 사무실 책상 앞에 서서 중요한 도면을 그릴 때조차 나는 이 화(禍)를 물리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중략)...
  어느 순간에 그녀는 인내의 화신처럼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인내에는 고통의 흔적조차 용납하지 않는 고상함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지었다. 쓰러져 우는 대신 단정히 앉았다. 마치 그렇게 앉은 자리 밑에서 자신의 발이 썩기를 기다리는 듯이. 요컨데 그녀의 인내는 인내라는 의미를 넘어 거의 그녀의 자연에 가가운 무엇이었다.

P.357
   형님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 앞에 머리 숙여 눈물을 흘릴 만큼 바른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할 만큼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할 만큼의 식견을 갖춘 사람입니다. 형님의 머리는 지나치게 명민하여 자칫하다간 자신을 내버려두고 앞서가고 싶어합니다. 마음의 여타 도구가 그의 이지(理智)와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데에 형님의 고통이 있습니다. 인격으로 보자면 거기에 빈틈이 있습니다. 성공으로 보자면 거기에 파멸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부조화를 형님을 위해 슬퍼하는 나는, 모든 원인을 너무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의 이지의 죄로 돌리면서도 역시 그 이지에 대한 경의를 버릴 수 가 없습니다. 형님을 그저 까다로운 사람, 그저 고집센 사람으로만 해석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형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형님의 고통을 덜어줄 가능성은 영원히 멀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P.370
  여러분들은 형님의 장래에 대해 특히 명료한 지식을 얻고 싶다고 바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언자가 아닌 나는, 미래에 참견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또한 비가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볕을 보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하여,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던지는 모양입니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에게 남을 행복하게 해줄 힘이 있을 리 없습니다. 구름에 가린 태양에게 어째서 따스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건, 다그치는 쪽이 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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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향연


그 후, 산시로, 문 까지 3부작 다 읽었다. '문'은 '그 후' 의 다음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인데 생각보다 너무 불행해서 속상했다.
소설 '그 후' 에서 다이스케 보면서 부럽고 질투나고 심지어 화까지 났지만 '문' 에서는 불쌍했다.
소설 주인공은 소스케 인데, 오요네와 서로 의지하며 도쿄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친구의 아내를 동생인 줄 알고 본의 아니게 빼앗아버린 소스케는 3번의 유산 역시 하늘이 내려주는 벌이라고 생각할만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다.
'그 후 에서는 친구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미치요와 다이스케가 도망치지만, '문' 에서의 소스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님에도 왜 그렇게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라고 소개한 야스이가 더 잘못 아닌가.
나 때문에 남이 불행해졌다는 느낌을 아직 받아본 적은 없다. 나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 때문에 남이 불행해졌다는 그 죄책감은 어떤 느낌일까?
소스케처럼 그 어떤 불행이 오더라도 다 예전의 나 때문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일까? 죄책감은 어차피 다가올 수 밖에 없었던 불행까지도 과거의 일과 인과 관계를 억지로 만들 수 밖에는 없는 것일까.

한 때는 그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었다.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로 불행하게 만든 적은 없고, 없다고 믿고 있지만, 아주 잠시 한 2년동안 나에게 닥친 불행이 다 과거 내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척, 괴로운 느낌이긴 했다. 후회해도 되돌릴 수 있는 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괴로움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으니 우울할 수 밖에는 없다.
3부작을 주인공의 나이순으로 배열해보면 산시로-그 후-문 이 순서가 되는데 날씨 역시 봄 여름-여름 초가을-가을 겨울 순으로 되어 있다. 사랑에 빠지는 봄,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마는 여름, 그에 대한 댓가를 치루는 겨울.
'산시로' 읽을 땐 기분이 좋았고, '그 후'는 흥미진진 했는데 '문'은 읽는 것 만으로도 괴로워 지는 책 이었다. 그만큼 나쓰메 소세키가 잘 썼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못된 숙모 말이다. 완전한 악역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유형의 악인 인 거 같다.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르게 아닌 척 나쁜 짓 하는 못된 사람 말이다.
요즘 드라마 유행은 악인한테 한방에 복수하는 거 던데, 이렇게 복수 하는 거 왠지 품위 떨어지는 거 같다. 읽기 괴롭고 화나도 그냥 아무말 못하고 당하는 사람 심리나 모습 보여주는 게 공감이 가기 마련이다. 실제로 그렇게 당하고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기도 하고 말이다. 소스케도 결국 끝까지 당하고 산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겨울을 지나 봄을 맞지만, 소스케는 다시 겨울이 오겠지. 라고 말을 한다. 결국 소스케와 오요네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 일까? 나쓰메 소세키는 아무래도 이 부부를 끝까지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나보다.
아 당분간은 재밌는 소설 읽어야지. 우울해지는 소설은 그만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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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배게

나쓰메 소세키

책세상

솔직히 말하면 이 책 억지로 읽었다. 내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고난이도의 책이다. 특별한 스토리도 없고, 특별한 주인공도 없고, 특별한 배경도 없고 단지 글쓴이의 생각을 줄줄 나열해 놓은 책인데 나같은 무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사 놓은지 오래되어놔서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이 책을 산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저 사진 때문인가보다. (전에 유리문 안에서 에서 나왔던 이야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핵토르"일화가 생각나는 귀여우신 사진 아닌가) 그리고 출퇴근 시간에 가지고 다니기 좋은 크기도 한 몫했다. 아 물론 가격도 싸다.
이 책에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의 견해 사상에 대해 동감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책이 되겠지만, 나로서는 거의 모든 페이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님) 나는 책 읽을 때 앞에 부분이 별로면 영원히 읽지 못하는데 이 책은 앞부분이 특히 좋았는데, 내가 이해한 구절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음부터는 좀 쉬운 책을 읽겠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知)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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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소담출판사


풀베개와는 달리 아주 빠른 속도로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최고 좋아하는 장면은 도련님이 시코쿠의 중학교 선생으로 배정되어 교무실에 들어가서는 각 과목 선생들을 묘사하며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 뒤 부터는 각 과목 선생 이름 등은 생략하고 모두 다 별명으로만 불리는데, 이 방법은 내 친구들과 내가 자주 애용하는 방법 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가?)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 때 좋아했던 남자들에 대해 말할 때도 친구들에게는 실명을 말하며 설명한 적은 거의 없다.
이 책의 주인공한테 많이 공감한 이유는 주인공도 학교를 벗어나 사회생활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치를 떨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도련님은 후련한 복수를 하고 시코쿠를 떠나와 어렸을 때 부터 자기를 이뻐해주던 (엄마와 다름없는) 하녀와 함께 사는데 나도 여기 도련님 처럼 그런 하급 인간들처럼 되지 않고 고고해야 할텐데 조금 자신이 없다.

내가 요즘 들어 곰곰히 생각하는 게 있는데 사방에 적이 없는 사람은 사방이 적인 사람들보다 더 경계를 해야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적을 안 만들면서 친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불가능 하다는 쪽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적이 같아서 친구가 되든가 친구기 때문에 적이 같든가. 둘 중 하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우애 같은 걸 논하면 웃기겠지만 싸우는 대상이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보다는 혐오하고 증오하는 것이 같을 경우에 훨씬 친구 사이가 돈독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우정과 의리는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100배 이상으로 위대한 것이다. (크크크 새벽에 블로그 하니까 이상한 얘기 막나오네)
직장생활이라는 게 이런 면에서는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재까지는 잃은 것이 더 많지만, 여기 책 주인공 처럼 나도 나중에 직장 박차고 나가면서 깨닫고 얻는 바가 많을 거라 위로해야지.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옳지 못한 일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악하게 굴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듯 하다. 가끔 순진하고 솔직한 사람을  보면, '샌님'이니 '쑥맥'이니 하면서 트집잡고 경멸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윤리 시간에 왜 '거짓말을 하지 말라' 라든가,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인가? 오히려 대담하게 '거짓말하는 비법'이라든가, ' 사람을 믿지 않는 술법', 또는 ' 사람을 속이는 술책' 등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편이 세상을 위해서도 당사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p.95

내가 번역된 책을 읽을 때 마다 궁금한 게 있었는데 항상 책에서 나오는 특히 일본어 번역체에서 나오는 " ~라든가" 라는 말 밀이다. 일본에는 특별히 많이 쓰는 말일까? 솔직히 말하면 난 평소 때 대화에서나 일기 쓸때도 "~라든가" 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유독 일본어 번역체에는 저 말이 많은 것 같다. (위에 구절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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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얼마전에 산시로를 다 읽었다. 해설부분을 보면 이광수도 이 소설을 읽었다고 써 있다. 이광수 하면 내 친구가 해줬던 일화가 생각나는데 이광수가 친일을 조금 했지 않나. 그래서 김동인이 이광수네 집에 와서 형 그냥 자살하라고 그렇게 하면 후대 사람들이 형을 기억해줄거라고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단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광수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읽은 책에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집착은 남다른 것이었다." 이렇게 써 있어서 완전 웃겼다는. (그 필자는 이광수가 죽었음 했나보다)
산시로를 읽은 이유는 요 전에 읽었던 그 후의 바로 앞 이야기라고 해서였다.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후 남자주인공의 대학생 시절 이야기 쯤으로 생각하면 쉽겠다.
산시로의 첫 부분은 뒷장이 너무 궁금해서 못견딜 정도로 재밌다. 이 책의 첫 부분은 산시로가 구마모토에서 도쿄로 공부하러 상경하는 부분부터 시작을 한다. 산시로가 기차를 타고 가는데 히로시마에 사는 어떤 여자가 아이 장난감을 사러 간다며 기차에 탄다. 중간에 산시로가 여관에서 묵으려고 내리는데 그 여자가 따라 내린다. 그리고선 여관까지 같이 들어와선 목욕하러 가는데 등 밀어드릴까요? 라고 해서 산시로가 놀라며 거절, 심지어 산시로 옆에서 드러누워서 같이 자기까지. 이불이 하나 뿐이라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누워 있는데 이때 산시로가 한 행동은 그 여자와 자신이 누워있는 이불의 경계를 손으로 착착착착 세워서 선을 만들어 놓는 것 이었다. 흐흐흐.
"아무일 없이" 하룻밤이 지나고, 여자는 기차를 타는 산시로에게 마지막에 "당신은 참 배짱없는 분이군요." 라고 말을 하고, 산시로는 얼굴이 붉어진다.
산시로의 성격과 처지를 이 에피소드 하나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나쓰메 소세키는 역시 멋쟁이. 그런데 산시로의 고향 구마모토 말이다. 작년 여름 휴가 때 한 번 간적이 있던 동네다. 지금도 구마모토는 1930년에 만든 것 같은 전차가 다니고 거리에 사람도 몇 명 없는 깡시골이던데, 웬지 완전 반가웠다. 외국 소설인데 내가 아는 곳이 나오니까.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또 내가 이 책 읽으면서 공감했던 건 대학교 때문에 도시로 올라와서 겪는 산시로에 심리상태인데, 내가 올라와서 공부하겠다고 올라와서 엄마한테 땡깡도 못 부리고 외롭고 힘들긴 하고,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고 고등학교 때랑 달라져가는 심리상태에 좀 혼란스럽고 그런 하여튼 허한 감정에 감정이입 해버렸다. (그 부분은 바로 아래에) 이래서 역시 소설이 좋다.

산시로가 가만히 연못 수면을 응시하고 있으려니까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인가 물 속에 비치고 그 속에 푸른 하늘이 보인다. 산시로는 이 때 전차보다도 도쿄보다도 일본보다도 멀고 또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느낌 속에 옅은 구름과도 같은 외로움이 온 몸으로 퍼져왔다. 지금 노노미야씨의 지하실에 들어가 홀로 앉아 있는 듯한 적막감을 느꼈다. 쿠마모토의 고등학교에 있을 때도 이보다 조용한 타츠타야마에 오르기도 하고 달맞이 꽃만이 온통 피어있는 운동장에 눕기도 하며 완전히 세상을 잊은 듯한 기분이 든 적은 몇 번인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고독감은 지금 처음으로 느꼈다.   ----p.23

책 자체에 대해 불평을 말하자면, 설명 같은 거 제대로 써 있는 건 좋은데 예전 사회과부도같이 무겁고 번떡거리는, 수성펜을 사용할 시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무거운 종이라 출퇴근 시간에 들고다니느라 무거워서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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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숲

나쓰메 소세키가 지병으로 죽기 직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놓은 산문집. 글씨가 아주 큼지막하고 생각보다 무지하게 얇아서 빨리 읽힌다. 난 그냥 Yes24 에서 유리문 안에서를 치고 맨 위에 있는 책을 샀는데 사고 보니 이 책 디자인에 돈을 많이 들인 책 이었다. 저 표지에 있는 사진이 표지에 인쇄된 게 아니라 표지 바로 안에 인쇄가 되어 있는거고 검정색 표지는 저 사진이 보이도록 구멍이 뻥 뚫려있다.
그런데 왜 이 책 내용과 전혀 관계 없는 저 그림이 들어가 있는 지 모르겠다. 소금호수라고 하던데. 차라리 이 산문집과 정말 관계 있는 나쓰메 소세키가 실제로 집에서 보았던 유리문 밖 풍경을 보여주든가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래도 뭐 가볍고 재밌었으니까 참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인생철학이나 불행했던 어린 시절 등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책을 덮고나서 첫번째로 생각나는 건 나쓰메 소세키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 핵토르 였다는 것 이었다.;;; 강아지 이름을 핵토르로 지은 것을 말하면서 핵토르는 아킬레스에게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죽은 뒤 시체가 말에 매달린 뒤 질질 끌려갔다는 일화까지 소개해주시는 센스.
어쨌든 강아지한테 핵토르라고 이름 지어준 걸 보면 역시 나쓰메 소세키 아저씨는 그 외모에 부응하는 꽤나 귀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람된 말이지만 난 나쓰메 소세키 아저씨 귀엽게 생기신 거 같어;;)

'그 후' 를 읽고 관심이 폭증하여 사놓은 나쓰메 소세키 책이 아직 몇 권 더 있는데 어서 읽어야겠다. 생각보다 하루에 책읽는 시간이 매우 적어 일년에 읽는 책의 양은 안습수준. 그렇다고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읽는 건 싫고.
지금 읽는 건 '도련님' 인데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산시로' 와는 달리 엄청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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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츠메 소세키

민음사


나쓰메 소세키 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가 최고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또 그 책 부터 시작하긴 싫어서 아무 이유없이 선택한 책이 '그 후' 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보다는 훨씬 더 뒤에 쓰여진 책으로 그 때 문체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고 하는데 난 나쓰메 소세키 책은 이게 처음이라서 그런 것 까지 비교할 주제는 못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다이스케 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하인 거느리고 책 읽고 산책하고 낮잠 자고 하는게 하루 생활의 전부인 30살 다이스케.
책의 뒷부분 서평을 보니 그 사람 의견은 다이스케를 통해 나쓰메 소세키는 그 때 당시 근면, 성실 만을 외치며 영국 등 서양 열강들을 쫓아 일본도 잘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시 가치관에 환멸을 느끼는 지식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서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 90% 이상)
단, 읽다보면 나쓰메 소세키는 다이스케 라는 인물에 대해 비난하고 비웃으려고 그런 인물을 만든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그 인물에 대해서 옹호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
다이스케라는 주인공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재수 없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여러번 공감하기도 했는데 가장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던 건 아무리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낼 수 없는 성격, (진짜 꼴같지 않게) 자기 이외에 모든 것은 낮게 보는 거나, 자신의 주변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점 등등.

이 소설은 대학 때 친구 히라오카가 오사카에서(오사카였나 교토였나 하여튼 저쪽 간사이 지방) 일하다가 빚만 잔뜩지고 도쿄로 올라와선 다이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서로 왕래하다가 다이스케가 히라오카의 부인 (대학 때 부터 알고 지내던) 미치요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앞서 말한 것 처럼 다이스케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공감하긴 했지만, 이 다이스케의 대학 때 친구 히라오카는 진짜 눈물나도록 불쌍하다. 다이스케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나, 고단하게 사는 모습이나 거기에 심지어 지 부인도 뺐기잖아. 하긴 불쌍한 걸로 치면 미치요가 100배는 더 불쌍하긴 하지만. 음... 아닌가. 그래도 다이스케에게 사랑은 받았으니까 히라오카가 더 불쌍할 수도 있겠네.

난 소설, 영화 등에 있어서는 혐일에 가까울 정도로 일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필력의 소유자 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을 소상히 표시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여기에 쓰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어떻게 이 정도로 심리묘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봤던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 읽으면서 나쓰메 소세키 책을 꽤 여러 권 사놓고 지금은 산시로를 읽고 있다. 산시로, 그 후, 문 이 3개는 3부작으로 똑같은 인물이 나오진 않지만 대학을 다니는 산시로 - 30살의 다이스케 - 친구의 부인을 빼았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 중년 남성 이런 이야기가 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 대학 시절의 산시로를 읽고 있는데 '그 후' 보다는 재미 없다.; 이것도 다 읽으면 여기에 쓰긴 하겠지만.

아 그런데 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말이다. 인지도에 비해서는 읽기 편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산시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에서 출판한 책인데 약간 애매모호한 단어나 지명 등은 주석을 달아서 그 때 당시 상황이랑 연계해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읽기 편리하고 좋은데 이 책은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물론 거의 모든 소설책이 그렇긴 하지만, 저 시리즈로 된 책을 많이 읽었지만, 막 다른 출판사 번역본에 비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는 시리즈는 아닌 것 같다.(인지도에 비해서!!) 뭐 그래도 번역하고 출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에 다이스케가 미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미치요는 울면서 왜 대학 때 저를 버렸지요? 하고 묻는다. 원래는 둘이 좋아하다가 다이스케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적극 주선하여 결국 결혼하게 된 건데, 이 다이스케라는 놈 정말 못난 놈 아닌가. 그런데 난 또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날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서 그 때 확실히 날 잡을 걸 하고 가끔이라도 후회하는 남자가 일생동안 한 명이라도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에 대하여 크크큭. (아 구리다 이런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니 급 우울해졌는데, 아무래도 예전에도 앞으로도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그 후' 같이 훌륭한 소설에 이따위 감상평을 쓰고 있으려니 나쓰메 소세키에게 또 죄송하다.

아래 구절은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서 적어둔다.

P.313

다이스케는 생기가 넘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한참 동안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이윽고 그 아름다움을 암암리에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자 슬퍼졌다. 그는 오늘도 그 아름다움의 일부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위해 미치요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