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역/ 석촌호수

일상 2017. 6. 2. 13:14


  우울을 이겨내보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도 잠시, 5월의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황폐화 되어, 군포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자기의 고급 취향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가끔 다독하는 사람들 중에 은근한 우월감을 과시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인 나에게 조차 그런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는 대인배다. 그 친구와 얘기하고 와서 다시 나쓰메 소세키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내가 느끼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함부로 사람에 대해 단정짓지 않는 것' 이다. 그래서 그런지, 의외로 다독인들은 조언도 잘 해주지 않는다. 다년간의 독서로 사람 마음은 다른 사람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까.

  사람들에게 언제나 좌절하고 상처받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오히려 더 고독해지는 것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나에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속상하다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뭘 그런 거 가지고 속상하냐고 거 참 이상하다고 하거나, 그거 다 니 탓이라고 하는데, 친구는 진짜 속상하겠다고 공감을 해준다. 요즘 육아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서 나 만날 시간이 없었을텐데, 나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산본역 카페에서 바깥을 보는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친한 친구와 비바람 바라보며, 얘기를 딱 2시간 했는데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친구와 얘기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내 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친구 말고 여기 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 후' 는 몇 년전 읽었던 책인데도 너무 새롭고, 요즘 나의 유일한 위안이다.




  저번 주말에 회사 동료 결혼식 때문에 잠실에 갔다. 이상하게 요즘 잠실갈 일이 많이 생겨 평균 2주에 한번 꼴로 가게 된다.

  회사에서 워낙 같이 많은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축의금은 전혀 아깝지 않았지만, 1시 30분까지 가느라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잠실까지 갔는데 그냥 오기 아쉬워서 친구를 만나 석촌호수를 좀 걸었다. 나는 잠실에 볼 일 있을 때만 가기 때문에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날 친구와 주변을 좀 걷다 보니, 사람들이 왜 강남 강남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석촌호수와 가까운데 살면서 거기서 운동할 수 있으면 난 정말 매일 매일도 할 수 있을 것 이다.

  결혼식 때문에 평소 잘 입지 않던 불편한 원피스를 입었는데,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다. 운동화에 청바지 입고 갔으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았을텐데.

 

  엄마가 아빠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서, 둘이 여행이라도 가시라고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사드렸다. 평일에 출발하니 2인 왕복이 9만원도 안한다. 숙박도 제주도에서 게스트 하우스 하는 친척이 그냥 방을 내준다고 하셔서 편히 다녀오실 것 같다. 예의상 10만원은 드리려고 한다.

  돈한푼 못버는데 왜 그런거 예약하냐고 하지 말라고 만류하던 엄마가 막상 내가 예매를 해드리니 그렇게 좋아하셔서 마음이 좀 찡했다. 어린 애 처럼 들 뜬 마음으로 옷 뭐 가져갈지, 가서 뭐 신을지 고민하는 엄마를 보니 귀여웠다.

 

  나도 요즘 부쩍 혼자 1박 2일이라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또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의 배경인 시코쿠를 좀 가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 하는데, 여름에 일본 여행 갔던 20대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고개를 절래 절래 하게 된다. (일본의 여름 너무 덥고 습하고 불쾌하다!!)

  이제 금방 대한항공에서 소멸예정 마일리지 안내 메일이 왔다. 어떻게든 2018년 전에 여행을 가야 하는데, 나 이번 마일리지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여행가는데 쓰고 싶었는데 크크크크. 너무 큰 꿈이었나보다. 그냥 나 혼자 빨리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