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 행인

위로 2010. 10. 22. 17:20
사용자 삽입 이미지

행인 (行人)

나쓰메 소세키

문학과 지성사


나는 . 애초에 이 세상이라는 건 기쁜 일보다 슬픈일이 훨씬 더 많고 신발을 신고 바깥에 나가면 즐거운 일 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근거도 책임도 없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강요하는 문구나 사람 사상 등을 마주대하면 "실망하면 책임질거냐" 고 따지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 반사회적 인물로 불만투성이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은 행복한 일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으니까.  
이런 나에게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출근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즐거운 하루가 될 거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얼마나 괴로울까? 내 괴로움을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죽어라 위로를 해줘봤자 그 사람은 더 외로워질 뿐이다.  
예전 회사를 출근 하면서 출근길에 홧김에 자살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던 때가 있었다. 단지 회사 자체가 괴로운 것을 떠나서 이렇게 매일 매일 아둥바둥 살면서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난 괜찮다고 자위하는 삶을 평생 살다가 늙어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내가 행인의 "형" 을 보면서 연민이 드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형이 고민하는 문제는 내가 고민하는 "먹고 사는 문제" 보다 훨씬 고차원 적이고 심각한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이걸 아껴 읽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뒷면에 옮긴이 해설 을 보면 '인간존재에 깃든 에고이즘' 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저건 뭘 말하는 지 잘 모르겠고, 난 소설 행인을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내 수준 답게  간단히 말하고 싶다.

가장 빨리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겼던 부분은 역시 형수와 책 주인공인 '나' 가 와카야마에 하룻밤 머무르는 장면이었다. (긴장감도 긴장감이고, 그 하룻밤의 형수님과 나의 대화를 보면 형수님의 성격과 분위기 등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기 때문에) 쓸쓸한 보조개를 가지고 있는 형수도 형의 딸도 동생도 부모도 모두 형의 구원이 되어주 질 못하는데 나쓰메 소세키가 제대로 서술해주지 않은 결혼 전날 형 앞에서 울던 하녀 '오사다' 는 형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위에까지는 10/22에 쓴거고 지금부터는 11/3 에 쓴 내용임-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적고나서  다시 덧붙이지면, 난 형도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여자라 그런가 더 인상깊고 애정이 갔던 인물은 형수님 이었다. (밑에 책에서 발췌한 부분도 형수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 친구와 어제 네이트 쪽지로 이야기 하다가 생긴 의문인데 이 책의 주인공인 '동생' 이 형수에 대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동경? 존경? 연민? 분명 애정 쪽은 아닌데 말이다.
책의 주제는 맨 마지막 페이지 370쪽에 나온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나마 이 형에게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 점은 자신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친구가 딱 한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일 거다.  믿을 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가끔 친구나 아직은 없는 애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마 이 소설 쪽 '동생' 처럼 생각기가 쉽겠지. (어떻게 끝맺을 해야할 지 모르겠음;)

P. 156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 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될 법한 심정을 맛 보았다.
  조금 있다가 우리는 누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다소 잠잠하던 폭풍우가 이때는 밤이 깊어짐에 따라 거세지는지, 새까만 하늘이 새까만 대로 활동하며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무서운 하늘에서 검은 전광이 맞부딪쳐 서로 검은 바늘 비슷한 걸 쉴 새 없이 내보내어, 이 어둠을 굉장한 소리로 유지하는 거라 상상하며 또한 이 상상 앞에 위축되었다.

P.159
  나는 이때 비로소 여자에 대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형수는 어디를, 어떻게 떼밀어도 밀려나지 않는 여자였다.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마치 포렴처럼 흐물흐물했다. 하는 수 없이 이쪽이 물러나면 돌연 엉뚱한 곳에서 강한 힘을 보였다. 그 힘 가운데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서운 것도 있었다. 또는 이 정도라면 상대해줄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가 미처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녀로부터 농락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농락당하는 기분이 내겐 불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P.162~P.163
  나는 형수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다시 그녀의 사람 됨됨이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평소에 형수의 성격을 어느 정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막상 정식으로 그녀의 입을 통해 진심을 듣게 되고 보니 도무지 깊은 미로에 빠진 듯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모든 여자는 남자가 관찰하려 들면 누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수 같은 모습으로 귀착되는 게 아닐까? 경험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다른 여자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형수만의 특징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형수의 정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늘은 파랗게 개고 말았다. 나는 김빠진 맥주같은 심정으로,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았다.

P.176
  나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래도 내 밑에 있는 형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유쾌했다. 동시에 불쾌했다. 어쩐지 부드러운 구렁이에게 온몸이 휘감기는 느낌이었다.
  형은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마치 몸이 누워 있다기보다 참으로 정신이 누워 있는 듯 여겨졌다. 그리고 이 누워 있는 정신을, 예의 흐물흐물한 구렁이가 비스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친 휘감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내 상상으로 그 구렁이는 때로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했다. 그리고 느슨히 휘감았다 옥죄었다 했다. 형의 안색은 구렁이의 열기가 변할 때 마다, 또는 휘감기는 힘이 변할 때마다 달라졌다.

P.244
  밖은 바람이 어지럽게 불어댔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가루처럼 보잘것없는 힘을 모아 이 바람을 버티며 반짝였다. 나는 쓸쓸한 가슴 위에 양손을 얹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곧장 파고 들었다.

P.260
  긴 듯하나 짧은 겨울은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내 앞에 찬비, 녹아드는 서릿발, 강바람....... 등의 짜여진 일정을 평범하게 반복하며 이렇게 지나갔다.

P.272
  그리고 나서 사나흘 동안 내 머리는 끊임없이 형수의 유령에 쫓겨 다녔다. 사무실 책상 앞에 서서 중요한 도면을 그릴 때조차 나는 이 화(禍)를 물리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중략)...
  어느 순간에 그녀는 인내의 화신처럼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인내에는 고통의 흔적조차 용납하지 않는 고상함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지었다. 쓰러져 우는 대신 단정히 앉았다. 마치 그렇게 앉은 자리 밑에서 자신의 발이 썩기를 기다리는 듯이. 요컨데 그녀의 인내는 인내라는 의미를 넘어 거의 그녀의 자연에 가가운 무엇이었다.

P.357
   형님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 앞에 머리 숙여 눈물을 흘릴 만큼 바른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할 만큼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판단할 만큼의 식견을 갖춘 사람입니다. 형님의 머리는 지나치게 명민하여 자칫하다간 자신을 내버려두고 앞서가고 싶어합니다. 마음의 여타 도구가 그의 이지(理智)와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데에 형님의 고통이 있습니다. 인격으로 보자면 거기에 빈틈이 있습니다. 성공으로 보자면 거기에 파멸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부조화를 형님을 위해 슬퍼하는 나는, 모든 원인을 너무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의 이지의 죄로 돌리면서도 역시 그 이지에 대한 경의를 버릴 수 가 없습니다. 형님을 그저 까다로운 사람, 그저 고집센 사람으로만 해석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형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형님의 고통을 덜어줄 가능성은 영원히 멀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P.370
  여러분들은 형님의 장래에 대해 특히 명료한 지식을 얻고 싶다고 바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언자가 아닌 나는, 미래에 참견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릴 수도 있고 또한 비가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볕을 보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하여,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던지는 모양입니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에게 남을 행복하게 해줄 힘이 있을 리 없습니다. 구름에 가린 태양에게 어째서 따스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건, 다그치는 쪽이 무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