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근무 시절

단문 2015. 2. 5. 16:20

  대학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원래 벌던 돈에 비해 월급이 너무 짰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정시퇴근을 하니 시간은 남아도는데 돈이 없으니 뭘 배우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대학교 근무할 때는 프로야구를 그렇게 열심히 봤다. 일한 년수에 비해서 모아놓은 돈이 너무 적어서 가끔 내 통장을 보면서 민망하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때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봤던 교수들만큼 사회적으로 잘난 사람들과 함께할 일은 없을 것이다. TV에서만 보던 학벌과 연봉이었으니까. (연말정산 서류를 내가 걷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연봉까지 알아버림) 내가 대학에서 일하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교수님은 딱 2명이었는데 그 2명 빼고는 교수들 특유의 세상물정 모름과 자기잘난 맛을 감당하느라 힘들었다. 

  계약직이라 2년 지나면 짤리는 자리인만큼 그 자리는 정말 2년이 딱 적당한 자리였다. 교수들 성격 받아주는 것도 2년 지나니 너무 지치더라. 

  

  우리 과에는 단과대학에서 유명한 연락 두절 교수가 있어 일하는 내내 행정실과 대학 본부의 재촉 전화 로 너무 시달렸고 아직도 그 교수는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과 보다 일하기 편했던 건 내가 속한 과 교수들이 전원 다 청결에 무던한 남자 교수들이었다는 것. 

  가끔 회의실이 내가 봐도 너무 더럽다 생각이 들 때조차도 교수들 중 어느 누구도 치우라고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단과대학 내 다른 학과는 어떤 교수 한명이 너무 깔끔하여  그 직원은 매일 매일 청소만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과 교수들은 쓰레기통이 차고 넘쳐도 쓰레기통 한번 비우라고 얘기 안했으니 그 점만은 참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오랜만에 청소나 해볼까 하고 회의실 들어갔는데 바닥에 커피믹스가 막 흘려져 있고 심지어는 막 검정 원두가 녹아서 바닥에 말라 붙어 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바로 직전 시간에도 학과 교수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어찌나들 무던한지 바닥에 그렇게 믹스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도 치우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회의를 하신 것이었다. 그때 좀 교수들한테 미안했다.


  보고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교수들이 좀 생각났다. 다른 교수는 안보고 싶지만, 멋지고 똑똑똑해서 동경해 마지 않았던 두 분의 교수님은 좀 보고 싶다. 이 회사에는 그런 멋진 분이 단 한명도 없는데 그래도 대학에서 일할 땐 두명이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진 않지만. 



잠이 안온다.또...

단문 2011. 10. 11. 00:54
요즘 학교에서 교수들이랑 일하면서, 그냥 학사만 나온 사람들하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사무치게 한다. 교수 하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어딜가도 대접받을 것 이다. 때문에 누구 명령을 받아본 적도 없고 학교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나를 가끔 미치게 만든다. 전혀 협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25살 이후 돈을 벌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그냥 병신인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어딜가도 이렇게 적응 못하고 홧병날 것 같으면 그냥 내가 병신인거다. 남들은 잘만 사는데 말이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지금 일하면서 배워가는 건 행정력 이라면 행정력인데 좋게 말해 행정력이지 이건 뭐 교수들의 씨다바리 of 씨다바리일 뿐이다.
난 일할 때 똘똘한 편이고 교수들이 뭔가를 얘기하면 나름의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근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거다. 어차피 계약직이라 2년 후 짤리는 거 알고 온거고 1년도 안남아서 참아보려 하지만 몸이 편한 한편으로는 약간의 자괴감을 항상 곱씹으며 돈을 벌고 있는 중이다. 중학교이후로 한번도 어긋난 적 없는 생리주기도 이상해졌다. 날짜가 10일이 지났는데 기별도 없고 배만 묵직하니 아프다.

줄 곳 없는 마음.

일상 2010. 10. 7. 17:55
나는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덩그라니 혼자.
혼자 일하니까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난 교수 9명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비서와 다름없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대학원 행정 업무도 매일 대학원 행정실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교수님이랑 몇마디 할라 치면 혀가 굳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런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 교수들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예전 회사도 내가 나이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대리 과장도 거의 30대였고 심부장도 40살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학교는 나이든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색하고 도대체 그 나이대 아저씨 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 하면 뭔가 한가한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난 정말 과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뭐해라 뭐해라 계속 공문이 온다. 공문 보면 기한이 항상 있는데 난 그 기한내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지금 내 업무 능력 안에서는 모든 기한이 다 촉박하기만 하다. 거기서 하라는 내용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또 여기는 엄청 외롭다. 전화가 많이 오니까 음악을 틀어놓기도 뭐하고 교수님을 맞상대해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한명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을 함께 토로하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
회사에서 사귀는 친구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 좀 씁쓸했지만, 친구사이인 척 하는 한시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지낼 딱 한 사람은 필요한 거 같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라디오 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기도 하고.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어디에 있든 진짜 친한 한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로움도 안느끼고 잘 지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 한사람이 없네.
아. 청승맞게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아... 힘들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예전 회사에서는 거기만 벗어나면 장밋빛 행복한 미래일 줄 알았는데.

많은 일.

일상 2010. 8. 9. 21:56
1. 3일 동안의 해프닝
회사를 다닐 때도, 지금도 난 후회 중이다. 이제와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해서 후회 해봤자 나만 괴롭지만, 이대로 그냥 인생이 잘못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난 아무래도 대학 때부터 길을 잘못든 거 같다. 내가 원하는 전공은 죄다 대학 졸업해서 손가락 빨고 있어야 되는 전공들이라 지금 전공을 고수했지만 그 때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전공도 회사에서 했던 일도 모조리 괴롭기만 해서 그래서 관뒀다. 가려고 마음 먹었던 직장은 찝찝함이 있었지만 안정성과 업무가 내 마음에 들어서 간 거였다. 어디가서 대졸 연봉이라고 말하기도 쪽팔린 월급이었지만.
그러나 큰 문제가 생겼고, 지금은 다행히 해결이 되었다. 업무가 내가 생각한 업무가 아니었다. 나중에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같은 또래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날 뽑은 사람이 자기 후임에게 너무 관심이 없어서 무슨 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댄다. 하루 갔다와서 어떤 업무인지 확인 하고 경악을 하고,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평소 내가 다른 사람보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고민으로 잠을 못잔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 이전까지는 아무리 심한 고민이 있어도 눈을 감으면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중간에 깨도 다시 잠을 잘만 잘 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결국 난 하루 일하고 그 다음날 가서 관둔다고 이야기 하고 그 다음날 오전까지 일하고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2. 무서운 교수
회사를 관두고 나오면서 난 전직장 첫 월급으로 산 시계를 잃어버렸다. 날씨도 엄청 더웠다. 고민이던 일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절대 못살 시계라고 생각하니 두고 두고 아깝다. 더운데 중앙선 전철을 15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날 추천한 교수는 엄청 다혈질 교수였다. 자기가 추천한 학생이 이렇게 황당하게 관두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히 전화해서 욕을 퍼 부을 것이다. 하고 각오를 했다. 일단 메일을 남겨놓긴 했지만 난 사형선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전화를 기다렸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다고 메일 답장이 와 있었다.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메일을 보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다닌 학교 때문에 덕 본적은 단 한번도 없고, 그 교수도 업무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거고 난 이미 졸업자니까 그렇게 쫄고 죄송해할 필요 없는 거였는데.

3. 야구장
일을 시작하면 야구장에 가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 더운 날씨에 야구장에 다녀왔다. 2000년 이후 야구장 가서 단 한번도 이기는 경기를 못 본 우리 아빠와의 야구 관람은 앞으로 피해야겠다. 뭐 아버지 때문에 기아가 지는 건 아니겠지만, 아빠랑 가면 다 진다. 7월 31일에는 동생이랑 갔기 때문에 기아가 이겼다. sk 랑 붙는거라 당연히 진다는 생각으로 갔는데도 이겼다. 2008년에 기아가 시즌 내내 sk 한테 딱 3승 했을 때 첫 승 하는 경기는 내가 혼자 야구장에 갔었던 서재응 선발 경기였다. 이 정도면 괜찮은 확률로 이기는 경기를 관람하는 편이다.

4. 부모님과의 휴가
백수가 된 뒤로 매일 놀고 있기 때문에 휴가가 필요없지만, 처음으로 부모님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회사를 다닐 때는 맨날 비행기 타고 떠나서 부모님과 휴가를 보낼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차를 타고 전북 정읍을 다녀왔다. 4명이서 한 방에서 자고 차타고 산 속 돌아다니는게 한 일의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부모님께 서운했던 마음이 많이 가시는 느낌이다. 부모님께서 원하는 내 모습이 최종적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부모님도 만족하고 나도 나름 만족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5. 고등학교 친구
인천에서 정읍으로 처음 전학을 갔을 때 이런 곳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8살이 되어 보니 이제와서는 그런 산골에서 조용히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인천에 있다고 해서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가도 더 싸고 어차피 친구는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면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또 그게 아닌 모양이다. 시골에서 젊은 시절 낭비하면서 시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친구는 많이 힘든 모양이다. 친구 차로 고창 가서 장어도 먹고 내장산 안에서 분수도 보고 했는데 걔나 나나 많이 답답한 미래인 것 같아서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

피곤해서 빨리 자야겠다. 위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는 차차 포스팅할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