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 회사생활

단문 2018. 12. 14. 16:20

1. 결혼생활

  남편과 나는 몇십년 결혼생활한 부부마냥 살고 있다. 처음 한 2주간은 울면서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웬만해선 싸우지도 않고. 이제 한달 남짓 됐는데 마냥 편하다.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 

  남편은 참 여리고 순진한 사람이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럴까? 란 생각을 엄청 자주 한다. 워낙 사람을 안만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사람이라 그런것 같다. 순한 남편 얼굴 보고 있노라면 내가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유부녀에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는 적응을 못하고 있다. 


2. 회사생활

  월급 꼴랑 몇푼 올려줘놓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내고, 직원 한명이 그만뒀는데 충원도 안시키고 그 일을 다 나한테 시키고 있다. 그래서 예전처럼 회사에서 블로그 업데이트 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3. 추신. 우리 엄마

  어제 정기검진 검사 결과 수치도 CT 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어제 회사에서 엄청 짜증나는 일이 있었는데 엄마 소식에 간신히 참았다. 


  많은 위로가 되주었던 이 공간을 너무 버려두는 것 같아 흔적을 남긴다. 


적막

일상 2018. 9. 4. 15:39

1. 적막

  어느날 엄마가 입원하셨을 때, 혼자 TV도 오디오도 안켜고 빨래를 갰다.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빨래를 개며 내가 만약 앞으로 영영 혼자 산다면 매일 매일 이런 밤이겠지. 매일밤이 이렇게 조용하고 적막하고 내가 뭘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안들리겠지 싶었다. 순간 이런 삶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교생 실습 나온 선생님들이 다들 엄청 늙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습 나온 선생님들은 다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등학생 때 36살인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중년에 아무것도 다시 시작할 수 없는 나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막상 36살이 되고보니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내 본질은 그닥 다를 게 없다. 산술적 나이는 만만찮지만 의외로 내가 엄청나게 늙었단 생각이 안든다. 

  난 혼자살다가 엄마 돌아가시고 쉰살 쯤 되고 직업도 잃고 경제력도 없어서 남루해지면 차에다 번개탄 피워놓고 혼자 죽으려고 했다. (사람 죽은 차는 폐차시킬 수 있지만 집에서 죽으면 그럴 수 없으니 폐끼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쉰' 이라는 나이가 지금 내 생각처럼 어마어마하게 늙은 나이가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쉰이되어도 난 학생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게 없고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같다. 참 무섭고 슬픈 일이다.


2. 신경

  남동생과 전화하고 며느리 눈치를 보는 엄마를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우리 엄마와 며느리는 얼굴 안보고 전화 통화 안한지 거의 3개월 이상 됐다. 며느리가 우리 부모님에게 신경 안쓰는 건 그렇다 치자. 예상했던 바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엄마가 그걸 너무 가슴 아파하신다는 것이다. 아들 장가보내면 그냥 자기들 살림 차리고 살겠지... 하고 엄마 나름의 삶을 살면 좋으련만 우리 엄마는 그게 안되나보다. 엄마가 속상해할 때마다 난 열심히 연준이 처의 좋은 점을 나열해서 엄마를 위로한다. 그런데 아마 내 위로는 하나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 엄마아빠는 동생이 결혼할 때 돈 한푼 못보태줬다는 것 때문에 은연 중에 당신들이 동생 부부에게 죄를 진 것마냥 행동한다. 그래서 동생한테 이랬음 좋겠다 저랬음 좋겠다 말한마디 못하고 그냥 속만 썩는다. 엄마 보면 결혼도 하기 싫고 자식은 더더욱 낳기 싫고 그런다.


3. 시부모님

  내가 우리 엄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건 우리 엄마와 시어머님이랑 너무 크게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약 한달쯤 전에 심각하게 결혼을 하지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 분들을 대해야 할지 자신이 없고 앞날이 깜깜하다.


4. 인내

  요즘 내 심란함에 대해 정말 친한 사람들한테 구체적 상황을 말하고 의견을 구했는데

  (1) 초반부터 진지하게 시부모님께 의견을 말씀드리고 싸가지 없는 며느리로 찍히고 난 편히 산다.

  (2) 시부모님들이 그냥 회사의 진상 부장님이다 생각하고 네네 하고 대충 얼굴볼 때만 기분 맞춰 드린다.

  (3) 남자친구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남자친구 낳아준 부모님이다 생각하고 참을 수 있다. 

  위와 같이 총 3가지 의견이 있었다. 나름대로 다 도움이 되는 의견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빠진 기분은 다시 좋아지질 않는다.


5. 결혼 후

  빨리 모든 상황 종료되고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새로운 집에서 회사 왕복하면서 일이나 하고 싶다. 진급하면서 새로 맡은 일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차라리 잘된 거 같다.


6. 미래 남편

  가까운 미래에 내 남편이 될 사람은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해맑기만 한다. 결혼해서도 아마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내 결혼식에 건강하게 참석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항암도 견디시는데, 내가 유부녀가 되면 정말 더 행복할까? 요즘 집관련해서 여러가지 문제와 시부모님의 통제욕구를 참아내고 Bach 음악 들으면서 어떻게든 평정심을 찾으려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만약 지금 남자친구와 평생 안헤어지고 연애만 할 수 있다면... 결혼을 할 필요도 없을텐데. 난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평생 안 헤어지고 싶었나보다.


  저번 주말에 엄마 환갑이라 남동생과 우리집 며느리와 남자친구가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엄마는 항암 직후라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셨지만, 아빠가 그냥 넘어갈 순 없다고 생각하셔서 부랴 부랴 집에 모였다. 결과적으로는 모이기를 잘한 거 같긴 하다. 안그래도 엄마가 너무 상태가 안좋아서 침울한데 환갑인데도 아무것도 없었다면 더 우울해졌을 것 이다.

  어제는 남자친구와 통화하다가 눈물이 쑥 나와버렸다. 집에 환자가 없으면 암환자가 얼마나 아픈지 짐작을 못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시어머니 될 분이 너무 심하셨단 생각이 든다. 시어머니 되실 분이 너무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성격이 강한 분이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

  좋아하는 남자랑 같이 살 수만 있으면 마냥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벌써 도망가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평소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참고 쌓아두다가 결국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편이다. 작년 6월 경 우울증도 원인은 결국 이거였다. 그때는 털어놓을 대상도 없었으니까.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결혼까지 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난 '징징거리지 않아야 한다.' 는 강박 때문에 어떻게든 내 감정을 돌려서 말하려고 노력한다. 내 딴에는 그게 최선의 표현법이지만, 번번이 상대방은 내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울다가 잠들었고 꿈속에선 내가 남자친구한테 결혼 하지 말고 그냥 평생 연애만 하자고 말했다. 한번 잠들면 절대 안깨고 쭉 자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잠결에 기도했다.

  우리 엄마 소원은 여전히 내가 결혼하는 것이다. 내가 결혼한 후에는 아마도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일 거고... 그런데 정말 엄마 소원대로 내가 결혼하면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요즘들어 나같은 사람과 결혼은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든다. 분명 남자친구를 사랑한다. 매일 매일 보고 싶다. 그런데 결혼은?? 자신이 없다. 정말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 이제 5% 정도 준비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친구는 해맑고 항상 즐거우신 것 같다. 너무 애 같아서 걱정이다. 연애할 땐 애 같아서 좋았는데 이제와서 애 같아서 걱정이라니..


1. 동생

  우여곡절이 좀 있긴 했지만, 3월 둘째 토요일에 동생의 결혼식을 잘 마쳤다. 구두에 불편한 옷 입고 정말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이제는 동서가 된 신부네 집이 남양주라서 천호동에서 식을 올렸는데, 오전 9시반까지 가서 아침 먹고, 머리하고 화장하는 것만으로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 그 날 인천-천호동 왕복 운전까지 내가 다 해서, 결혼식 끝나고 완전히 뻗었다.

  중간에 동생에게 들어온 축의금을 입금하라는 특명을 안고 남자친구랑 은행가서 어마어마한 거액을 입금했다. 축의금 받아주는 두 친척오빠가 너무 빨리 데스크를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늦게 온 몇몇 하객들은 식권을 못받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 남자친구를 처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에게 공개했는데, 양복입은 남자친구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뛰어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제일 친한 이종사촌 언니들이 남자친구 잘 생겼다고 칭찬해서 기분 좋았다.

 

2. 엄마

  내일 모레 PET 검사 결과가 나온다. 아주 드물게 PET 에서는 암이 발견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암이 아니리라 하고 기대하면 처음 암판정 받을 때처럼 너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다.


3. 회사

  회사에서 자꾸 일을 너무 많이 시키려고 한다. 난 이미 두 사람 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 누가봐도 두 사람의 일을 하지만, 내 월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다. 바로 전 직장을 쫓겨나다시피 그만둬야 했고, 대학 졸업하고 첫발을 들였을 때 부터 이미 망한 경력이지만, 가끔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내 연봉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요즘 수십번 씩 때려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전 직장에서 정말 최악의 상사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그때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다. 난 아무리 연봉 올려주신다고 해도 회사에서 제시하는 업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말해놨는데, 그 말 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자기들끼리 이미 다 결정해놓고 나한테 통보만 할 작정인 것 같다. 이기적인 인간들. 자기들은 놀고 먹으면서.


4. 급체

  저저번주에 남자친구의 친남동생과 재수씨 그리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평소 남자친구가 집이나 부모님 얘기를 전혀 안해서 내심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건가 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어머님께 인사를 하니 왜 이제야 나타났냐며 안아주고 어화둥둥 좋아해 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재수씨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나를 초대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 분이 보령 굴단지 가서 굴먹자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보령까지 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굴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가서 평소 내가 먹는 양의 2배를 먹었다. 결국 급체해서 차안에서 토했다. 1차로 던킨도너츠 먼치킨 담는 종이 컵에 토하고, 토하는 와중에 오빠가 겨우 찾은 허술해보이는 비닐봉지에 2차로 토하고, 나때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3차로 모든 음식을 다 토해버렸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너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지만, 차안에 토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 사랑

  주말에 오빠가 결혼하자고 했다. 정식으로 청혼을 안해서 서운하냐고 말했지만, 내가 서운할 리가 있을까. 좋아서 울 뻔했다. 결혼 얘기를 꺼낼 때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 자기가 무슨 한류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말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깐, 홧김에 말하고 후회 중은 아닌 것 같다.

  한 때는 결혼 같은 거 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애인 없어도 외롭다는 느낌 전혀 없었는데....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나보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 마다, 매 순간 반하고 가슴이 뛴다.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이토록 좋아하고 원할 수 있는건지 신기할 뿐이다. 난 진정한 사랑 이런 거 불가능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평생 안들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소원은 오직 하나, 매일 매일 오빠를 보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뤄질 소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결산 시즌

일상 2017. 3. 26. 22:42

재무제표

  아직도 악감정이 남아 있는 전 회사에서 3월은 최고로 일하기 힘든 시즌이었다. 왜냐면 12월말 결산 법인의 법인세 신고 마감이 3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 특성 상 유형자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그 많은 재고자산이 1년 내내 전혀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1년 내내 엉망으로 내보내고 들여오던 무수한 재고자산을 3월에는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싫어했던 최악 부장이 전권을 쥐고 책임졌다. 그 부장이 3월 내내 우리에게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히스테리와 짜증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

  그 부장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기도 한 게, 3월 내내 거의 철야로 일을 했다. 대체 그런 회사에 대한 무한 충성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마흔 넘은 나이에도 연장자에게 칭찬받고 인정 받기 위해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쩌면 회사 생활에 가장 필요한 재능이 아닐까.

  2016년은 1월부터 12월까지 온전히 나 혼자 일을 해서, 결산하는데 훨씬 덜 힘들었다. 회계법인 도움을 받긴 했지만, 꽤 힘든 일이어서 재무제표가 나오면 막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다. 뭐 워낙 구멍가게 같이 작은 회사라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난 결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전 회사의 최악 부장같이 주변에 온갖 짜증 부리고 징징 거리진 않았으니 스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음 주 중에는 완전히 마무리될 것 같다.


사랑의 정의

  내가 혐오하는 사람 중 한 부류가 모든 일을 쉽게 정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뭔가에 대해 단정 짓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를 애초에 접는다. 사랑에 실패해서 상심이 깊은 사람에게 '사랑은 타이밍이다.' 같은 말 하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가슴 찢어지고 끝없이 자학하고 있을 사람에게 왜 그딴 근거 없는 말을 지껄이는가. 본인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랑' 에 대해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는가.

  내가 너무 순진할 걸수도 있지만, 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타이밍이 아무리 안 좋아도,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끝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타이밍'이 서로 안 맞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난 절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기로도 썼지만, 내가 '사랑'에 대하여 탐구한 각종 글과 영화, 음악 통틀어 이정도면 정말 사랑의 절대 정의 에 가깝다 생각했던 건 단 두 작품 뿐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사랑에 대하여' 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사랑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안톤 체호프나, 키에슬로프스키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걸까? 하여튼 정말 싫다.


다이어트

  다이어트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요즘 평일 저녁에 계란과 채소, 과일만 먹고 있다. 요즘 퇴근 하고 와서 몸무게 재면 50키로다. 내 인생 최초로 50키로를 돌파했다. 앞자리가 바뀐 체중계의 몸무게를 처음 본 날 너무 슬퍼서 내 방에서 막 비명을 질렀다. 이건 별로 영광스럽지 못한 기록 갱신이다. 3월이 되면 뭐라도 하자. 는 결심의 '뭐' 중에 운동도 포함이었는데, 주말마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심하게 몸이 늘어져서 운동도 못했다. 요즘 저녁 때 채소 먹는 것도 다이어트보단 유지가 목적이다. 내 몸무게 목표가 이렇게 소박해졌다. 이렇게 살찐 중년이 되어가나보다.


쭈꾸미

  내 성격과 체력 모두 사회생활의 걸림돌이지만, 입맛도 꽤 큰 걸림돌이다. 난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신라면도 매워서 못먹을 정도니 이 정도면 '전혀' 못 먹는다는 표현이 어색치 않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또 먹고 싶어하는데, 난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가면 차라리 굶는 것을 택하다보니, 그런 자리 가면 괜히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 든다.

  맨날 맛있는 거 타령하는 부장님 때문에 저번주 어느 날에는 마리오 아울렛을 30분이나 헤맸고 금요일에는 쭈꾸미 먹으러 꽤 멀리까지 갔다. 나는 혼자 먹겠다고 주장해봤지만, 어떻게 혼자 먹게 두냐면서 자꾸 같이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쭈꾸미 식당 가서 혼자 양푼에 김치찌개를 먹었다.

  저번 금요일에 사장도 없고 전무도 외근 가서 부장급 들이 아주 놀기로 작정을 하고 쭈꾸미 먹으면서 소주랑 맥주를 내리 마셨다. 그 광경을 보자니, 이 회사도 3년 넘으면 미련 갖지 말고 떠나는 게 내 미래를 위해 유리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그 때 되면 나이가 꽤 있어서 어디 다른 회사 가지도 못할 가능성이 많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불판의 쭈꾸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술도 싫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IMF 이전에 얼마나 회사 일 하기 편했는지 그리워 하면서 말하는 거 듣기 싫단 생각을 하며 난 정말 체질적으로 단체 생활이 맞지 않음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거기 앉아서 술 마시느니 일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난 그냥 중간에 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오후 늦게 부장들이 들어왔는데 역겨운 술냄새 풀풀 풍겨서 그 냄새 참고 일하느라 힘들었다.


불행한 여자들

  내 주변에는 50살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남편한테 맞고 사는 분도 있고, 선물 옵션으로 이미 2억 넘게 재산을 날렸는데 아직도 실시간으로 일이천만원씩 날리는 남편을 둔 분도 있다. 이 얘기를 다 이번 주말에 들었다. 대체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 존재하긴 하는걸까. 교회 사람들도 친척들도 엄마 친구들도 죄다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와 친한 친구분 딸은 대학 기숙사 세탁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하고. 큰 엄마는 진지하게 황혼 이혼 고민 중이시고...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가 시집가서 애기 낳고 남편이랑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딱해 죽겠댄다.


아기

  요즘 고양이 사진을 너무 많이 본다. 고양이만 키워도 고양이가 이뻐 죽겠다는데, 만약 내 자식을 키우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감정의 백배 천배는 내 애기가 예쁘고 사랑스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신혼일때 아빠가 가끔 숙직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셨는데, 엄마 혼자 자려면 그렇게 외롭고 무섭고 슬프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후 나랑 같이 자니깐 그렇게 든든하고 좋았댄다. 그래서 갓난 아이가 엄마를 지켜주지도 않는데 든든해? 하고 물었더니 그래도 아기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다고, 근데 넌 아직도 아기를 못 낳아서 어떡하냐 면서 엄마는 또 슬픔에 빠지셨다. 이 얘기를 들은 후에는 나도 좀 슬펐다. 나는 동물은 키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기는 좋다. 가끔 아기들을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아기 처럼 예쁜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는 준비된 노처녀였다. 남자 만나는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또 이건 얼토당토 않은 얘기긴 한데 한때는 내가 무성애자가 아닐까 심각히 고민도 했으니까 말이다. (무성애자 테스트 해주는 기관이 있나 심각히 알아본 적도 있음) 

근데 내가 무성애자 인게 아니라 짧은 만 29년을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맘껏 사랑받아본 적 없는 가련한 인간이라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혼자 위안하고 자괴감을 무마 시키려고 한 것 같다. 내가 설마 무성애자겠어. 이거 참... 하우 피티 라이프 구만. 쩝. 

난 친구가 5명 정도 밖에 없는데 신기하게 이날 이때까지 결혼한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토요일에 오랜만에 만난 제일 친한 친구 한명이 10월 결혼소식을 전했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남자친구의 사진도 봤는데 인상도 좋고 잘살 것 같고. 부러워 죽을 뻔 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결혼할 마음이 먹어지는 건지 너무 너무 신기했다. 나는 그런 마음 자체가 안들 것 같아서. 지금까지는. (물론 나랑 결혼할 마음을 먹는 남자도 없지만 크크큭)
사실 예상은 좀 했었다. 내 친구는 친구들에게 남자친구 이야기를 일절 안하는 친구였다. 나한테 남자친구 소개 시켜준적도 한번도 없고 사진 한번 보여준 적 없고, 싸웠단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오히려 좀 섭섭한 적도 많았을 정도로.  

나는 연애할 때 정말 작은 것에도 세상이 끝난 것 처럼 크게 낙심하고 어떻게든 그 마음을 잊으려고 친구들한테 다 떠들고 그랬는데.

친구가 결혼해서 내 노처녀 처지가 더 부각되는게 아쉬운 게 아니라, 인천에서 같이 중학교 졸업하고 우리 만날까? 하면 30분 내로 만나서 햄버거 먹고 커피 마시고 했던 걸 이제 다신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는 수리역으로 벌써 신혼집도 정해졌댄다. 

내가 "이제 너랑 여기서 볼 날도 없겠구나. " 

이렇게 말을 했더니... 아무말 안하고 웃는거다. 정말 이제 인천에서 보기 쉽지 않겠지. 일년에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결혼한 친구가 없어서 이것도 감이 안잡힌다. 

말이 10월이지 나는 안다. 그 10월이 얼마나 빨리 올지. 

축하는 하지만, 이제, 내 친구는 가정에 충실하고 나는 어느때고 만날 친구 한명이 또 줄어드는 것이구나 싶었다.

가끔 사람들이 결혼하는게 친구가 한명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결혼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겠지만... 

만약 내가 마지막으로 남고 내 지금 친구들이 다 결혼해버린다면 아마 나도 결혼하고 싶어지겠지. 


기분이 너무 너무 이상하다. 내 친구가 결혼을 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