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난 것 처럼 우울해서 찌질하기 그지 없는 일기를 쓰다보니 이제 좀 회복이 된 것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뭐 그렇게 아쉬울 일이 아니다.
즐거운 상상을 하고, 읽던 책을 읽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내일 술을 마시기로 결심했고, 월요일 오후에는 상담실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퇴근 후 신도림역까지 와도 하늘이 낮처럼 밝고, 내가 좋아하는 여름도 다가오고 있고, 또 언젠가는 좋은 일도 생길 것 같고 그렇다.
친구들도 부지런히 만나고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낯선 사람과도 만나고 싶고 그렇다.
우울하다고 엄청나게 유난 떠는 게 나름대로 내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엄청나게 중요한 대부분의 결정은 장고 끝에 내려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단 몇 초, 몇 분만에 감정적으로 결정되는 일이 허다하게 많으며 그 여파는 불행히도 일평생 간다.
이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살면 오히려 속이 편하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살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나이들 수록 자주한다.
감정적으로 대처했다가, 죽도록 후회하다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피똥을 싸며 노력해도 결국 이미 늦었다.
'회복'에 해당되는 글 2건
내 블로그 맨 위에 있는 글이 괴로울 때 썼던 글이라, 볼 때마다 다시 짜증이 솟구치는 것 같아 이를 무마하고자 근무시간에 짧은 글을 쓴다.
지금부터 죽을 때 까지 영혼과 신체를 분리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스트레스 안받고 내 뜻대로 살려면 꼭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다. 영혼까지 거론하며 거창하게 말했지만, 쉽게 말하면 난 멍하니 있는데 남들은 내가 멍한지 못 알아채도록 하는 연습을 하겠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종종 써먹고 있다.
기분이 생각보다 좋아졌다. 저번주 내린 함박눈이 역할을 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근 10년 동안 눈에 관련된 추억은 모두 엉망진창인 것 밖에 없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 보면 아마 강원도 살던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언젠가는 눈와서 엄청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보다. 그 때 사진을 보면 대부분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고, 난 모자와 목도리안에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있다.
강원도에 살던 시절, 눈이 쌓인 공터에 가서 내 몸보다 큰 눈덩이를 굴렸던 기억이 이상하게 또렷하다. 눈덩이 두개를 만들었지만, 한 눈덩이를 다른 눈덩이에 올릴 수가 없어서, 결국 누워있는 눈사람을 만들었고, 누워있는 눈사람을 만화에 나오는 것 처럼 흙없이 깨끗한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까만 부분마다 흰눈을 붙여 땜질했던 생각이 난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 커서 겪고 행하는 일이 훨씬 많지만, 각자의 정신의 핵심은 만 10세 이전에 거의 형성되는 것 같다.
작년 12월에 존메이어 1집을 너무 열심히 들어서 그런지, 가끔 길을 가다가도 존 메이어 1집에 있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또 12월말에는 내 생일이 있기 때문에 종종 Blur 의 Birthday 라는 노래가 또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호밀밭의 파수꾼 생각도 나고. 겨울이 정말 싫지만 낭만으로 따지면 겨울이 사계절 중 최고인 것 같다. 겨울이 배경인 사랑 영화는 수없이 떠오르는데, 여름이 배경인 사랑 영화와 소설은 인도차이나, 그 후 정도 밖에 안 떠오르는 걸 봐도 그렇고.
저번 1월에 생일인 친구에게 생일 잘 보냈냐 물었더니 Blur 의 Birthday 같은 분위기로 보냈다고 했는데, 나도 아마 올해 그럴 거 같다. 뭐 올해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매년 그랬다.
2015년은 지긋지긋해서 이렇게 끝나는 게 전혀 아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