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에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아마 올해와 비슷했나보다.

24일에는 회사에서 좀 시달렸다. 쓸데없는데 삘 꽂힌 어떤 사람 때문에 계속 시달려서 평소보다 두 배는 피곤했다.

저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이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어느 회사나 회사의 윗사람들은 본인들이 직원들에게 준 것이 엄청나게 큰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들이 준 것의 효용 가치가 직원에게 1 밖에 안 되는데 10을 준 것 마냥 행동하고, 직원들도 10만큼의 고마움을 표현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제발 그런 짓 좀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만 든 24일이었다.

일을 간신히 업무 시간 내 마치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친구와 수다를 떨고, 생일 선물을 받아왔다. 친구의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이 났다. 항암 끝에 오는 괴로운 몸의 변화를 한번 더 견뎌 내야겠지만, 이제 1월부터 친구는 머리카락도 나고, 항암도 안 받아도 된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내다니 정말 장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푹 쉬었다. 24일에 생각보다 많이 시달렸는지 잇몸이 다 상했다. 집에 있으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었는데 잇몸 때문에 그러질 못해 우울했다.

저녁쯤에는 엄마와 이마트에 갔다. 이마트에서 내 케익도 사고 오랜만에 마트 구경을 했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틀어주는 겨울왕국을 보며 이마트에서 사온 칭따오를 마셨고, 맥주에 먹으려고 산 수제 소시지를 먹다 잠이 들었다.

먹자마자 잤더니 속이 부대껴 다시 일어나서 밤 1시까지 쓸데없이 스마트폰 보다가 크리스마스가 끝이 났다.

26일에는 커피가 떨어져 용인 친구네 집으로 원두를 사러 갔다. 친구네 카페에서 1년만에 만난 다른 친구와 회사 얘기를 했고, 성남의 동생보고 카페로 오라고 하여 걔를 태워서 인천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는 부모님과 동생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초를 껐다. 남동생과 떨어져 사니까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동생이 연봉 올랐다고, 선물을 비싼 거 사준다고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20만원 내외의 어떤 물건을 사야 제일 보람차고 즐거울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남동생은 나보고 스마트 워치 사라는데, 그건 전혀 사고 싶지 않고.

그리고 오늘 내 생일은 역시 엄청나게 추웠다. 12 27일 내 생일의 추위 신화는 오늘도 깨지지 않은 것이다. 안 춥다가도 내 생일만 되면 엄청나게 추워진다.

오늘 몇 명의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도 고마웠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에서 남의 생일을 다 알려줘 기억할 필요 없지만, 그래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거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내일은 아침에 영하 9도라는데, 3일 쉬고 출근하려니 우울하다.

회사를 너무 많이 옮겨 다닌 탓일까? 이제 회사에 거는 기대 자체가 없다. 어딜 가도 괴로울 것이고 답답할 것 이다. 그러니 그냥 군말 말고 다녀야지 싶다.

어제 친구랑 얘기하다 알게 된 건데, 지금 회사에 온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다. 6개월도 안된 거 치고 잘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실수 하나에 절절 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너무 위축되지 않기로 했다.

아까 어떻게 입어야 내일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심사숙고하여 두꺼운 옷을 골라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다음주에는 2015년이 끝이 나고, 난 한 살 더 먹는다. 내년에 올해보다는 나아질 거라 믿는다. 그렇게 되도록 다른 해보다 조금 노력도 해볼 작정이다.


조용한 성탄절

일상 2014. 12. 25. 23:06

  컴퓨터로 좀 할일이 있어서 하루종일 느려터진 내 노트북을 만졌다. 엄마는 모친상 당한 친구한테 가셨다. 우리 엄마가 집을 비운 건 잘 된 일이겠지. 작년과 똑같이 집에서만 죽치는 내 모습보면서 또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지 안봐도 비디오다.

  엄마가 잠깐이나마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서 얘기하고 올 수 있어서 잘됐단 생각을 했다. 아까 저녁때 집에 오셨는데 기분이 아주 룰루랄라 시다.

 

  덕분에 하루종일 아빠와 함께 둘이 집을 지켰는데, 너무 심심해 하셔서 모시고 영화라도 볼까 싶어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아무리 검색해도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숲속으로는 아빠가 너무 돈 아까워하실거 같고, 엑소더스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 그래도 아빠 혼자라도 엑소더스 보고 오시라고 했어야 했나? 아빠 그런 구약성경 스토리 영화 좋아하시긴 하는데.  

 

  오후 늦게 요즘 최고로 더러워진 차를 세차했고, 세차하러 나온김에 운동이나 하자 하고 공원으로 갔다. 그런데 성탄절날에도 뽕짝 틀어놓고 여러명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기억으론 설날 연휴 중에도 하루도 안 빼놓고 나와서 에어로빅 했던 거 같은데, 거기 단상에서 에어로빅 지휘하는 엄청 마른 아저씨는 365일 내내 6시만 되면 자유공원으로 와서 춤을 추시는 것인가.. 싶어 경외감이 들었다.

  원래 사람이 단 10분이라도 꾸준히 하는게 참 힘든건데, 10분도 아니고 거의 30분을 매일같이 눈이오나 비가오나 나와서 춤을 추시다니. 대단한 분이다. 이정도면 TV 에 나오셔도 될 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빠 혼자 심심하게 집에 놓고 온게 미안해져서 오는 길에 칭따오를 4병이나 사와서 아빠 한캔드리고 4500원짜리 영화를 함께 봐드렸다. 모스트 원티드 맨 이라는 영화인데, 워낙 평이 좋아 선택했는데, 너무 현실적인 현대 첩보를 다뤄서 재미는 별로 없었다. 총싸움도 없고 추격신도 전혀 없는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첩보물.. 흥미롭긴 했다. 실제 저렇겠지 싶어서.

 

 요근래 엄청 춥고 아침에 눈 내렸던 한 3일동안 아빠는 내가 차 타기 전에 차에 눈을 다 치워놓고, 심지어 차안에 히터까지 틀고 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차탈 때 너무 추울까봐서.

  난 중학생 이후로 아빠에게 실망한 적도 많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적이 많아서 무뚝뚝해도 그렇게 무뚝뚝할 수 없고 아빠께 하루에 한마디도 겨우하는 딸인데,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코 시동 켜놓고 기다리는 아빠를 보면 가끔 눈물이 핑 돈다.  

 

  모친상 당한 분의 어머니는 올해 97살로 100살을 3살 남겨놓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정도면 호상이겠지. 97살이라니.

  사람이 기력이 쇠해지는 것이 45살 부터라고 치고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까지 살아온 기간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몸이 약해지고 보기 흉한 몰골로 변해가는 걸 매일 매일 봐야한다는 말이 된다.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 주어진 인생이니 끝까지 살아내야겠지만,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는 것 같다. 100년동안 기력 팔팔하고 생기로운 기간은 끽해야 15살때부터 30살까지 15년 남짓이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오늘 꼭 일요일 같다. 그런데 내일은 금요일.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  

 

 


26일은 운 좋게 휴가를 낼 수 있어서 난 25일부터 28일까지 4일이나 쉴 수 있게 되었다. 얏호!
24일 밤은 앞에 포스팅에서 썼듯 그냥 바로 집으로 왔고, 25일은 엄마 때문에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서 나보고 성가대도 하고 교회학교 선생님을 하랜다. 나보고 주말에까지 하기 싫은 일 하면서 보내라고 이 인간들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열이 빡 받아서 엄마한테 다시는 교회 안간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진짜 너무 열받아서 울뻔했다) 어렸을 땐 잘 다니던 교회인데 난 그냥 교회가 너무 싫다. 그냥 조용히 다니게 만들어 줄 순 없는걸까? 내가 그렇게 교회 등록하지 말고 다니자고 그랬는데 우리엄마는 결국 등록을 해버렸다. 일요일 아침마다 난 안간다고 버티고 엄마는 가자고 그러고... 내 성격 상 앞으로도 영원히 교회 다니면서 신께 기도할 순 없을 듯 하다.

엄마아빠는 이모 문병가신다고 나가고 나는 누워서 자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거실 바닥에서 2시 반 부터 자다가 일어나보니 7시였다. 그렇게 내 26살 크리스마스는 지나갔다. 히히히. 좋은거야 나쁜거야.

우리집은 약간 남서향으로 창이 나 있는데 서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인다. 멋있는 바다는 아니지만 해 질 때쯤 되면 멍하니 해지는 모습을 쳐다보고 그런다.
난 해지는 거 보는게 너무 좋다. 어렸을 때 해 지는 거 멍하니 쳐다보다가 눈물이 나왔다는 얘기도 썼지만, 그냥 난 해지는 거 보는 게 좋고 하루 중에 최고 좋은 시간도 해진 직후다.
맨날 12시 쯤 일어나서 느릿느릿 씻고, 느릿느릿 할 일 하다가 월미도 가서 해지는 거 구경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만 24살의 마지막 밤인데 머리에는 기름만 가득하고 하루종일 빈둥거렸구나.
억울하거나 우울한 느낌은 전혀 없고, 그냥 오래만의 이 여유로움이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친구네서 1박

일상 2007. 12. 22. 22:33

어제는 서초동으로 이사간 친구네 집에서 1박을 했다.
집들이 선물로 '유기농'잡곡하고 현미, 크림치즈, '유기농'유자차를 줬다.
난 집들이 선물로 잡곡 주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거야.
라고 말했고, 친구는 이제까지 받은 집들이 선물 중 최고야 최고! 라며 기뻐해줬다. 그덕에 괜히 난 우쭐해졌다.
친구네집은 베란다가 없어서 외풍이 너무 심했다. 커튼이 시급해 보였다. 커튼이 안되면 문풍지라도.
난 자취할때도 가스비는 절대 아끼지 않았다. (자랑이냐)
다른 애들 방보다 좁은 원룸이었음에도 가스비가 4만원이 넘게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열이 잘 안되서 내 맘에 흡족할 정도로 따뜻하진 않았다.
혼자 자취하면서 매일 아침 밥을 해 먹는다는 친구의 열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내가 밥을 안 먹느냐. 그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아침을 안먹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겠다. 우리 엄마는 내가 늦게 일어나서 밥을 못 먹고 드라이로 머리 말리고 있으면 국에 밥 말아서 가져온다. 그러면 나는 머리 말리고 화장하면서 밥 한수저씩 떠먹고. (나도 엄마도 좀 유난떨긴 한다)
내친구도 내가 사준 잡곡 가지고 계속 아침밥 잘 챙겨먹었음 좋겠다.
싱글침대에서 둘이 자는 건 아무리 여자 둘이라고 해도 좀 좁았다. 흠.. 예전에 내동생은 어떻게 키183에 80키로 거구랑 싱글에서 같이 잤다는거지. 징그러운 녀석들.

친구와 나는 공통적인 신체적 컴플렉스가 있는데, 바로 볼륨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슴이) 없다는거다.  민망한 주제긴 하지만 사실 난 정말로 한국 속옷 사이즈 중에 내 가슴둘레에 맞는 속옷이 없다. 고2때는 몸무게는 우리반에서 가장 적게 안나가면서 가슴둘레는 최하를 기록했다. 씁. 모 브랜드에서 75보다 작은 가슴둘레 사이즈의 속옷이 나와서 디자인 그리고 값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쪽 속옷만 사입고 있다. 울분을 토하다보니 우리는 몇십분간 그 얘기만 하고 있었다. ;

그 후에는 싸이월드 염탐을 통해 요즘 얘기 하면서 말했던 남자들의 사진을 봤다. 그 남자들은 두여자가 자기 사진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거 알면 기분 나쁘겠지만.
내친구가 2년 넘게 사우디로 해외파견 나가는 남자도 괜찮다면 소개팅을 시켜준댄다. 그냥 난 그런 남자가 내 애인이라면 나랑 결혼해서 나도 데려가줬음 좋겠어 라고 말했는데, 진심이다. ; (소개팅도 안해놓고 벌써 이런 생각까지, 이러니 애인이 없지)
아.. 요즘 같아선 진심으로 결혼해서 집에서 놀고 먹고싶다.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하기가 싫어서. 에휴. 하지만 결혼은 혼자서 하나.
 
염탐을 끝마치고 침대에서 도전슈퍼모델9를 보다가 결국 우리 둘은 너무 졸려서 불끄고 잤다.
좁아서 중간중간 깨긴 했지만, 내 친구의 잠버릇은 정말  best  였다. 숨소리도 없고 뒤척거리지도 않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가 부천에 있는 결혼식 간다고 해서 같이 전철타고 난 집에 도착해서 2차로 낮잠을 잤다.

크리스마스가 내일 모레인데 난 계획이 없다. 회사에서 가까운 시청앞 광장도 한번 안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틀 뒤인 내 생일에도 계획이 없다.

아.씨. 연말은 여러가지로 내가 불쌍해지는 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