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서 전화받기

단문 2015. 2. 10. 23:26

나는 내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에 거의 항상 놀란다. 예정된 전화일 때도 어김없이 놀란다.
아마 성격과 업무 특성 상 핸드폰으로 타인과 전화할 일이 거의 없는 게 첫째 이유겠지만, 학생때도 친하지않은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누워있다가도 자동적으로 벌떡 일어나 바른자세 후 전화를 받곤 했던 것 같다.
오늘도 전화가 오길래 책상에 바른 자세하고 앉아 전화를 받았더니 전화를 한 상대방이 너는 항상 언제나 한결같이 깜짝 놀라고 의외라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를 한다며 웃었다.
여보세요. 이후 목소리와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다르다고.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대충 시간대도 비슷한데 항상 왜 이렇게 놀라는건지 모르겠다. 아마 전화를 한 사람이 나에게는 아직도 어색하고 안친하다 생각하니 무의식 중에 그러는 것 이겠지…라고 생각해본다.


1. 반복 훈련의 효과.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전화가 오면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고 평소때와는 다른 멘트로 전화를 받는다. 전화오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어쩔 땐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순간에 이미 전화기에 손이 가있고  저는 누구누구 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거다. 이제 금방도 그랬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할 때도 난 어떻게 가면 가까운 지 알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어느 새 그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우리집에서 동인천 역으로 가는 경로는 2개인데 어떤 경로가 몇 분 정도 더 빠른지, 이 순간 신호등에 걸리면 다음 신호등에 걸리는지 안걸리는지, 이로 인해 나는 9분 직통을 탈 수 있는지 아니면 16분 직통을 타야 하는지, 버스를 타러 오면서 고개를 들어 신호등을 보고 저쪽 신호등이 켜졌으니 이 다음은 이 신호등 그러니깐 난 여기서부터 뛰어야 한다. 는 것 까지 이젠 다 알게 되었다.
2개의 경로 중 내가 선호하는 경로로 동인천역에 도착했을 경우 4-3칸에 타야 대방역에서 갈아 탈 때 바로 계단과 연결되고 대방역에서 1호선을 탈 때는 10-4칸을 타야 서울역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지만 10-4 칸은 정말 바쁘지 않음 안타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안다. (종점인 용산역에서 안갈아타고 대방역에서 갈아타는 이유는 대방역 환승로가 훨씬 가깝기 때문에) 정말 바쁘면 종종 타지만 그 칸에 탔다가는 단 4정거장만에 힘이 다 빠져버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방역에서부터 10-4번 문 앞은 단 한사람도 못탈 듯 미어터지는데 아무리 미어터져도 용산역에서 기다리던 15명 남짓한 사람 모두 무사히 그 10-4번 칸에 탄다는 것. 항상 그렇다. 그럴 때 마다 난 한국인의 저력을 느낀다. 위대한 한국인들.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출근시간 지하철 안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탈 때는 6-3번 칸 까지 가야 충무로역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는데, 정말 늦지 않았으면 내가 서울역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고 있는데 당고개행 전철문이 열렸다 하더라도 전혀 서두를 것이 없다. 그 시간대 당고개행 전철의 배차간격은 거의 3분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퇴근길에는 정확하게 이 반대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예전에는 집에 지각한다고 시말서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러 열심히 걷냐 싶어서 환승도 느릿느릿 하고 용산역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그냥 서있지 안 걸어올라왔다. 하지만 그렇게 느릿느릿 하다가 직통 한개를 그냥 놓쳐버렸을 경우 굉장히 열 받는단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무조건 환승할 때도 빠르게, 그 경사 심한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막 뛰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은 전혀 관심없을 이런 것들에 쓰는 이유는 갑자기 내가 단 몇개월 위에 것들을 반복한 것으로 지금의 나는 거의 단 한번의 오차도 없이 저 모든 것을 매일 해내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또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생활해야 별 탈없이 일주일이 지나간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렇다. 일부러 다르게 행동해볼테야! 라고 동인천역에서 직통탈 때 1-1칸에 타는 등의 일상에 대한 소심한 반항을 해봤자 고달픈 건 어차피 나 니까.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는 것 처럼 판에 박힌 변명도 없지만.

2. 전철 탈 때 선호하는 옆 사람의 유형.
난 용산-동인천 급행을 종점에서 종점까지 타고 가기 때문에 항상 앉고, 항상 어떻게든 자서 조금이나마 내 피로를 해소하려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급행을 탈 때 옆에 앉는 사람은 나에게 무지하게 중요하다. 옆 사람을 제대로 못 만나면 그 아까운 40분 내내 잠도 못자고 짜증만 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옆 사람은 메트로, 포커스 같은 공짜로 주는 신문을 읽지 않고, 이어폰 음악 소리 크지 않고, 팔장끼고 전철에 앉자마자 자려고 워밍업하고 있는 여자다. 그 이유는 신문을 보는 사람은 보통 신문을 넘기면서 자꾸 내 옆구리를 건드리고, 이어폰 음악소리가 크면 좋지도 않은 노래를 옆에 사람이랑 같이 들어야 하고, 팔장을 끼고 자려고 하는 사람은 어찌되었든 나와 목적이 같은 동지같은 사람이고, 남자는 덩치가 여자보다 커서 가만히 있어도 신체가 접하기 때문에 자는데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 자는데 방해안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는 옆 사람 자는데 방해를 전혀 안하느냐. 그건 아니다. 근데 내가 방해할 때는 이미 내 몸의 상태가 내 의지를 벗어났을 경우다. 즉, 내가 자느라고 고개가 나도 모르게 옆사람의 구역을 계속 침범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문 바로 옆에 자리, 그러니까 머리를 벽에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이럴 때 잘못 자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 채로 잠을 자는데 예전에 된장녀 같은 시리즈가 유행할 때 처럼 별명을 지어보자면 입벌녀 정도 될까? 흐흐. 가끔 날 보면서 흉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별로 신경 안 쓴다. 걔네들이 내 이름 아는 것도 아니고 다시 만날 사람들도 아니니까. 일단! 나에게는 이런들 저런들 자는게 남는 거니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 걱정은 이러다가 좀만 더 가면 침까지 흘리는 거 아닌가 하는 거다. 아무리 낯짝 두꺼운 나지만 침까지 흘리는 건 좀 아니지 싶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침 흘리며 잔 적은 없다.

3. 난 저러지 말아야지.
이 포스팅을 처음 시작한 건 어제였고 난 원래 이 말은 안 쓰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써야겠다. 우리 회사에도 꼴보기 싫은 루꼴라(키드님 블로그에서 차용했습니다)가 있다. 제발 성숙해라. 루꼴라여. 물론 나도 하나도 잘난 거 없는 사람이고 누가 날 옆에서 본다면 욕먹을만한 짓만 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우리회사 루꼴라는 너무 심하다. 그 루꼴라는 가까운 부서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다혈질인데, 뭐 저번에 어떤 사람 말로는 아마 우리회사에서 제일 구린 사람 중 하나. 랜다. 불행히도 그 루꼴라와 나는 일을 같이 한다.(불쌍하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처음 한 3개월 간은 심각하게 다른 이유 하나도 없이 순전히 루꼴라 때문에 회사 관두려고 했다. 근데 3개월 지나니 이젠 이 월급이 없음 생활이 안될 것 같아서 참고 정을 붙여보려고 했다. 지금은 뭐 포기단계다. 왜냐면 대화가 안되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루꼴라 때문에 회사를 관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만 총 8명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만 저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루꼴라는 시도 때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ㅆㅂ 이라는 두글자로 된 욕을 한다. 아... 나도 나름 귀하게 컸는데 저런 욕 들으면서 돈 벌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뭐 더 심할 땐 ㄱㅅㄲ, ㅁㅊㄴ 등 욕도 하고, 그냥 아주 평온한 상태에서는 말 끝마다 씨~ 라는 말을 달고산다. 이제금방도 저런다. 그 입 제발 닥쳐라.
아까 오전에 아주 인텔리젼트 한 모 부장님이 루꼴라한테 왔는데 그 부장님이 루꼴라를 다그치면서 우리한테 원래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은 같은 말을 쓰게 되는데 너희들은(우릴 보면서) 꼭 이사람 말투 배우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넌(루꼴라를 가르치며) 여기 책상위에 있는 약 (약 봉투를 집어들고) 먹고 정신이나 차려. 라고 말하고 가시는 거다. 그 부장님은 오늘부터 2008년 들어 최고 멋있는 남자 1위다.
루꼴라의 황당한 행동을 열거하자면 아예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어서 하루에 하나씩 써도 365일이 모자를 정도이니 이쯤 해야겠다. 내가 루꼴라를 보면서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나는 저러지 말자. 제발' 이다. 그런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들을 다 실천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끔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흠칫 놀란다. 앞으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것에  대해서는 정말 저러지 말아야겠다.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누군가의 눈에 루꼴라 처럼 보이면 당장 충무로역에서 투신자살 해버릴테다.

4. 강력한 마취주사.
난 화요일에 치과에서 마취주사 3방을 맞았다. 치과 점심시간이 1시부터 2시라고 해서 나는 12시에 예약을 했는데 때문에 밥을 못 먹은 상태였다. 상태를 봐선 마취가 당분간은 안 풀릴 것 같고 점심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마취주사가 내 위를 마취시킨 건 아니기 때문에 배는 무지하게 고프고 해서 마비된 왼쪽 대신 오른쪽으로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데 마취가 너무 강력해서인지 씹기가 매우 힘들었다. 고달픈 점심을 다 먹고 휴지로 입을 닦는데 피가 묻는거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응? 이거 왠 피야? 이러고선 거울을 봤다. 그런데 왼쪽 아랫입술과 윗입술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내가 추리해본 바로는 내가 오른쪽으로 씹는다고 씹었지만, 습관적으로 난 왼쪽으로도 씹었고 씹는 과정에서 난 입술을 아주 힘껏! 깨물었다. 그러나 나는 마취가 안 풀린 상태라 그것도 모르고 그냥 계속 샌드위치를 먹은 거였다. 상태를 봐서는 한번 깨문 것도 아니고 아주 여러 번은 깨물은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샌드위치 먹었을 광경을 생각해보니 피는 철철 나는데 나는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고있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그려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제 피는 철철 안났지만 계속 조금씩 피가 났는데 오후 4시 반 경 되서야 마취가 풀리면서 그때서야 나는 입술에서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때문에 그 이후로 나는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오늘 아침에 보니 다행히 붓기는 가라앉았다. 아. 밥먹기 불편하다.

5. 성인 게시판.
내가 사랑하는 한 게시판이 있다. 22살인가부터 가입했던 싸이월드 클럽 익명 게시판인데.. 비밀클럽이고 나잇대가 다 내 나잇대고 무엇보다 웃기다. 가입원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남자도 몇 있긴 하지만 100% 중 한 10% 정도? 내가 요즘 블로그질이 좀 뜸했던 이유 중 거기 익게 읽느라. 도 있다. 심각한 얘기서부터 웃긴 것 까지 많은데 요즘 내가 최고로 웃기게 봤던 게시물은 바로 이거다. (댓글부분은 확대하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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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했던 사무실에서 풋. 하고 웃어버렸다. 저 게시물에서도 알 수 있듯 대부분이 애인이 없고, (그렇다고 애인 없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만든 클럽은 아니다) 또 대부분이 루저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익게에 여기 클럽 여자들은 성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이 느껴진다. 참 걱정이다. 우리 19세 이상 게시판을 만드는 건 어떠냐? 이런 제안을 올려놓은 거다. 난 이거 보면서 참나. 오지랖도 참 넓으셔. 라고 비웃었다. 아니 그래서 자기가 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다 알려주겠다고? 어이쿠~남자 구성애 나셨네. (구성애님 죄송합니다. 저 구성애님 좋아합니다)  
난 그냥 저 남자가 좀 변태같다. 성인 게시판은 도처에 널렸다. 그런데 왜 굳이 여기 클럽에까지 성인 게시판을 만들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남자도 그런 얘기 할 게시판도 많을텐데.. 흠.. 내 머리론 이해가 안된다. 난 왠지 그 게시판 반댈세.

6. 모르는 전화번호.
요즘에는 대출받으라는 전화도 핸드폰 번호로 온다. 벨이 울리자마자 바로 끊고, 나중에 부재 중 전화가 있길래 전화해보면 다 대출 전화. 평소에 하루종일 문자 하나 안오는 날도 허다한 (자랑이냐) 나는 처음에는 그런 부재 중 전화가 있으면 전화를 해봤다. 몇 번이나 그런 시도를 했다가 이제는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와도. 응. 그래 대출? 이러고 만다. 조금 오래 되었지만, 저번에도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와 있었다. 근데 그 번호로 두번이나 부재중전화가 온 것이 아닌가. 흠... 2번이나 똑같은 번호로 대출 전화가 오진 않던데. 싶어서 다시 전화를 해봤다. 엇. 컬러링이 들리잖아. 대출받으란 전화가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드니까 괜시리 가슴이 두근 두근 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뒷자리 4자리가 내가 알던 번호랑 조합 딱 한번만 달랐던 것이다. (가령 원래가 1234 면 1324 로) 2번이나 전화를 해봤으나 끝내 전화를 안 받았다. 난 그때는 그냥 그래 뭐 잘못 전화했나보다. 하고 말았다. 근데 우울했던 어느날 밤 나는 통화목록을 검색하여 그 전화번호를 끝내 찾아냈다. 골똘히 그 전화번호를 바라봤다. 누굴까? .. 도대체 누굴까... 혹시? 너? 이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 그 번호 하도 되내여서 외워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전화했든, 내가 지금 생각하는 사람이 전화했든, 아니면 전혀 상상치도 못한 사람이 전화했든 달라지는 게 무어냐. 얼마나 생활이 무미건조하면 이따위일에 마음이 동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궁금한 게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의 100분의 1정도라도 그 사람은 힘들었을까? 아쉬운 건 좀 있었어도 힘든 건 별로 없었겠지.란 생각이 드는데.. 참나. 아직도 이모양 이꼴이니. 질기다 질겨.

+1. 병주고 약주기.
원래 6번까지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저 6번 이야기가 너무 우울한 관계로 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하나더 써놔야겠다. 이것은 욕먹을 각오로 쓴다. 금요일에 휴가를 친구와 보내고 토요일은 집에서, 일요일 역시 집에서 그냥 인터넷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나보고 살빼라고 말했던 분이 자기 기숙사 복귀하기 전에 저녁이나 먹잰다. 비도 오고 날도 춥고 나가기 귀찮았지만 그래도 토요일 일요일 내내 집에 있기 싫어서 나갔다. 사람이 많았다.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데 난 원래 하던데로 후드자켓에 붙어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묵묵히 걸어가는데 이럴 땐 보통 팔짱끼지 않냐? 이러길래. 어 그래? 그러고선 그냥 뭐 까짓것. 하고 팔짱을 꼈다.
저녁먹고 차를 마시는데 또 아니 살빼라고 해놓고 왜 또 좋다고 그래? 흥? 이런 얘기나 하고 있는데 우리 미영이는 거의 요정이지 요정. 이러는거다. 살빼라는 얘기도 요정 이라는 말도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얘기니 상쇄하여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나보고 요정이래. 왠일이야. 푸하하하핫. 진짜 웃기다. 아니 웃긴 것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병주고 약주는 건 안좋은 것이지만, 난 병주는 것 보단 약주는 것의 효과가 훨씬 커서 항상 잘 넘어간다. 귀가 얇아서 칭찬하면 진짜인 줄 알고 좋다고 또. 이런 지조 없는 성격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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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의 사진을 공개하는 건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워크샵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 사진만큼 적절한 것이 없기에 공개한다.
옆에보이는 저 쭈그려 자고 있는 인물은 여러분들도 예상하셨다시피 본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사진이 찍혔는가. 그렇다. 난 워크샵을 갔던 금요일 밤 술에 완전히 취해서 화장실 앞에서 잤다. (왼쪽에 조금 열린 문이 화장실 문 임)
  우리회사는 그닥 큰 회사가 아니라서 숙소를 좋은 곳을 잡지 못했는데 뭐 자는 곳이야 그렇다치고 금요일날 4시간 넘게 행사가 있었던 '실내'는 말이 실내지, 사람들이 물을 바닥에 흘리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리는 그야말로 바깥 보다 못한 실내였다. 진짜로 발이 얼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장님의 동물적 센스로 인해 우리팀은 워크샵 행사에 참가 안하고 주관하는 쪽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뮤지컬이나 난타 마임 탈춤 등 다른 사람들이 하는 초큼 민망한 행사에 다 열외로 빠질 수 있었다.

  금요일 행사가 다 끝나고  술을 마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어느자리에서고 술 못마셔서 고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난 우리 집안의 나름 탁월한 알콜분해효소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알콜분해효소와 함께 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타고났다. 헐)
  1차로 식당에서 팀끼리 술을 적당히 마시고 방으로 왔는데, 우리 방은 사원급만 5명이서 쓰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맘이 편했고, 또 다들 나랑 친한 선배들이랑 방을 같이 쓰게 되서 난 매우 만족하면서, '우리 다른 방에서 안부르면 그냥 나가지 말고 씻고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보다가 잠들어요. 호호호!!!' 하고 짝짜쿵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우리 팀 최고 주당인 대리님께서 바로 전화를 하셔선 당장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다.(대리급들 방은 밑에 층 이었음) 거깃다 그 대리님은 대학 선배이기 까지. 이미 1차에서 나를 '자기~~ ' 라고 부르시며 옆에 끼고 연거푸 쏘맥을 들이키라고 강요하셨던 대리님이셨다. 아아. 맞다. 예전에 '난 니가 탐나' 비법을 알려주신 대리님이라고 말하면 편하겠구나. 워낙 대리님 성격이 호탕하고 웃기기까지 하셔서 내가 좀 따르는 분이라.. 안내려가기도 뭐했다.
  이미 1차에서 그 대리님이 쏘맥을 직접 제조해서 주시며 원샷 원샷을 외치셨고, 내가 좀 끊어 마시니까 "식도를 열고! 한번에 원샷!" 라고 뭐라 하신 상태였고, 내려가서도 날 옆에다 앉히고 컵 없으니까 아쉬운대로 커피잔에라도 마시라면서 손잡이 달린 커피잔에 계속 쏘맥을 주시는거다.

  난 순수하게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술자리는 별로 즐기질 않아서 대학 내내 쏘맥을 마셔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 주변도 쏘맥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쏘맥은 소주와 맥주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또한 이제까지 10명이상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남자가 없었던 적도 한번도 없었다. 친구들이랑 마실때 많아야 3명이지 여자 10명이서 미친듯 술을 마시는 시츄에이션은 평소 때 만들기 힘든 시츄에이션 아닌가.
 도저히 못 마시겠다고 도망도 가봤지만 결국엔 발을 잡고 질질 끌려와서 술을 마셨는데 심지어 내가 옷장안에 숨으려고 까지 했댄다.(본인은 기억 안남) 그때 난 이미 적어도 소주 2병 맥주 3병 이상을 섞어마신 상태였다.
이 다음부터 필름이 끊긴 것 같은데, 지금 상태에서 기억나는 상황을 말하자면.

  더 이상 못 마시겠다고 아예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옴 - 술을 깨야겠다고 생각하고 야외 주차장을 두바퀴 걸음 - 그래도 술이 안 깨서 로비에 있는 쇼파에 앉으려다 강하게 엉덩방아 - 전화함 - 전화 내용 기억 안남 - 전화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 방으로 돌아감 - 어쩌다 화장실 앞에서 자게 되었는지 기억 안남 - 화장실에다 두차례 토함 - 지쳐 잠듬.

  일단 취중에도 내 방을 제대로 찾아간건 칭찬해줄만 하다. 취한 기분에 다시 그 술판이 벌어지는 방으로 들어갔음 진짜 큰일날 뻔 했지. 그 술판은 새벽 4시경 끝났다는데 4시에 돌아와보니 내가 위에 보이는 사진 처럼 화장실 앞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다. 더욱 충격적인 건 내가 토하느라고 입과 머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있고 나머지 목부터는 방바닥에 있었다는 건데, 다행이다. 그 사진은 안 찍혔다. ;; 근데 이 사진을 찍은 분들 진짜 야속한 게 날 아침까지 저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방안에서 이불 덮고 자고 나는 화장실 앞에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아침에 깼다. 흑. 내가 도대체 왜 나를 그대로 두신 거냐고 뭐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웃겨서' 였다. 아니 웃겨서라니!!!!!!!

  토요일에 일어나서도 나는 속이 미식거려서 밥 한 술 못먹었는데, 토요일에 저 진짜 미칠 것 같다고 말했더니만 어제 뛰쳐나갈 때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이었댄다. 절대 정상이 아니었는데. 또 하나의 실수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토를 했다는 건데 이것 때문에 같이 마신 사람들이 다 내가 '술 엄청 마시고도 멀쩡한 애' 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뭐 술병이 나고, 쏘맥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진 것과 나중에 또 술을 엄청 마실 가능성이 높아진 것 이걸 다 제쳐두고라도 사실 진짜 큰일은 따로 있다. 위에서 강조한 것으로 예상하셨겠지만, 저 전화가 문제다. 왜 전화를 그 오빠한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도대체 왜 예전에 사귀던 사람한테도 안하고, 죽도록 좋아했던 사람한테도 안하던 짓을 도대체 왜 한 건지!!!! 여기서 말한 그 오빠는 힘든 일 있음 매일 상담해준다는 그 오빠인데. 토요일 아침에 밥을 못 먹겠어서 충주호 주변을 혼자 산책하다가 불현듯 내가 어제 전화한 게 꿈이었나 아니었나 긴가 민가 해서 전화목록을 봤더니 떡하니 그 분 이름 세글자와 함께 새벽 1시 58분 이 찍혀 있는 거 아닌가. 거기에 전화도 짧게 한 것도 아니고 14분 09초 씩이나.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걸 어떻게 하나 하다가 '그래 그냥 아예 기억 안나는 척 하는거야!' 라고 마음을 굳힌지 5분도 안되서 결국 궁금한 마음에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거냐고 전화로 물어봤는데, 한동안은 얘기를 안해주다가 저번주 금요일에서야 그 답을 들었다. 일단 그 당시 나는 4개의 문장을 무한 반복했고. (무려 14분 동안이나) 막판에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하다가 끊었다는데, 그 말을 그 분에게 들으면서 얼굴이 어찌나 화끈 거리든지.
  거기에 한 편으로는 그 분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 지 뻔히 아는데 취중에서까지 미안하단말만 되풀이 한 것 때문에 미안해져버렸다. (헉. 미안한게 또 미안해져버렸네) 하긴, 미안하단 말 듣는게 얼마나 짜증나는 건지 아는 나는 맨정신에선 미안하단 말을 한 번도 안했지.
 
  웃기는 건 이정도 했음 좀 쪽팔리고 어색해질만도 한데 결국 또 그 분과는 예전 그 상태로 그대로 돌아왔다는 거다. 역시 우리 둘이 그 분이 원하는 대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장애물은 너무 편해서인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분과 이제 약 7주간은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7주동안 있어보면 결판이 날 지도 모르겠다. 허전할 수도 있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