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식

단문 2019. 7. 24. 15:25

  동결한 배아가 하나도 안남아 7월부터 다시 주사 맞고 난자 채취를 준비했다. 초음파로 난소를 봤을 땐 난자가 15개 정도 채취될 것 같다고 했는데 막상 채취날 채취해보니 38개가 나왔다.

  수술이든 난자채취든 시작 전에 소독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소름이 끼치고 기분 나쁘고 아프고 무섭다. 난 그냥 빨리 수면 마취를 해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꼭 소독까지 끝난 후 수면마취를 하더라. 힘을 주지 말라는데 어떻게 힘을 안주나. 이 사람들아!!

  옮긴 병원에서는 주사도 조금 다르게 쓰고 먹는 약도 있었고, 배양도 보통 3일 하는데 이번에는 5일 배양한 배아를 이식하기로 했다. 3일 배양보다 5일 배양이 훨씬 확률이 높다고 해서 기대를 안하려고 하는데도 자꾸 기대가 된다.

  내일 이식날인데 벌써 떨리고 이번에 피검사 결과까지 어찌 기다리나 싶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그런지, 회사에서도 자꾸 실수하고 자괴감에 시달린다.


새해 2019년

일상 2019. 1. 17. 14:30

1. 남편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새해다. 나와 남편은 남들과 좀 다른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편하기도 하고 우리가 좀 이상한건가 싶기도 하다. 나랑 남편이 10살 어린 나이에 만났으면 지금처럼 무덤덤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다가도 30대 후반에 결혼한 부부라면 다 우리같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다. 몇십년 후를 예측할 순 없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지금 상태로 쭉 가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신혼부부마냥 엄청 뜨겁게 살고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2. 자식

  이번 주 화요일부터 생리를 시작했는데, 난 내가 임신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할 줄 알았다. 이번 생리가 결혼하고 3번째 생리니까 내가 3번이나 임신을 못하고 넘겼다는건데, 이거 때문에 너무 힘들다. 임신을 못해서 힘든 게 아니고 우리 엄마 때문에 힘이 든다. 우리 엄마는 나를 허니문 베이비로 낳고 내동생도 임신 계획을 세운 직후 가임기에 바로 맘먹은대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이 엄청 쉬운 줄 안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임신일 수도 있으니깐 약먹는거 조심하라고 하며 임신을 너무 기대하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어제 지금 생리 중인데 무슨 임신이냐고 했더니 너 지금 나이에 임신 안되서 고생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며 왜 노력을 안하냐고 늙어서 임신 못한 거 하나로 또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3. 나이

  위에 이어서 하는 말이지만, 35살 넘었을 때 마음 속으로 결혼안하고 사는게 내 운명이라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5살 넘어부터는 엄마아빠가 단지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사회의 낙오자 취급을 하며 시시때때로 늙어서 애도 못낳고 시간은 가고 어떡하냐고 해서 정말 문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편으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지 말란 거 안하고 말썽한번 안 일으키고 살았는데 고작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죽일년 취급을 받는 게 억울했다. 난 가족이라면 결혼을 안해도 애를 안낳아도 나름 세상 잘살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부모님은 가만 있다가도 결혼 못한 거 하나로 날 얼마나 구박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엄마아빠의 잔소리가 잔소리를 넘어 저주로 들릴 정도였다. (혼자 늙어서 보호자도 없을거라는 둥, 외로울 거라는 둥 기타 등등의 저주) 

  작년에 드디어 엄마아빠가 그렇게 바라는 결혼을 하고나니 이제는 나이 많은데 왜 애를 안 갖느냐고 성화다. 나도 내 나이 많은 거 알고 나이 많으면 애 낳기도 키우기도 힘든 거 안다. 그런데 만약 애를 낳고 싶은데도 나이가 많아 임신이 안된다면 제일 슬프고 속상한 건 나 아닌가. 그런 나한테 왜 자꾸 그러시는걸까. 아직 아픈 엄마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엄마가 임신 얘기 꺼낼 때마다 너무 힘들다.  


4. 치매 

  원래 일기를 쓴 목적은 매주 가는 교회에 치매 노인에 대해 쓰기 위해서였다. 우리집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에 매주 가고 있는데 그 교회에 항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오신다. 시도때도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저번 주 예배시간에는 엄청난 난동을 부리며 막 욕까지 하셨다. 그런데 젊은 담임 목사님께서 치매 노인이 큰 소리를 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설교를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 

  결혼 주례 때문에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게 큰 교회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시부모님이 목사님을 어찌나 어려워하든지, 남편이 비유하길 대학교로 치면 총장님 1:1로 만나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많이 어려운 자리인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싶었다. 

  그런데 난 그냥 그 대형교회가 싫었다. 원래도 싫었지만 직접 가보고는 더 싫어졌다. 큰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게 대단한 줄 아는 대형교회 교인들과 예수님이 증오해 마지 않던 성경 속 바리새인들과 다른 게 뭔가 싶었다. 중간 기도도 교회 부흥을 위해 하는 거 정말 내 기독교 상식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 태도 때문에 그날 남편이랑 결국 싸웠다) 

  저번에도 썼지만, 난 장담한다. 예수님이 만약 다시 세상에 오시면 우리나라 대형 교회 목사들이 앞다투어 예수님을 못에 박아버릴 것임을.  

  권위적이지 않고, 치매 노인을 별나게 대하지 않는 우리동네 목사님 존경한다. 계속 다녀볼 생각이다.  


5. 회사

  난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회사 사람들한테 짜증 잘 부린다. 오늘 아침에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회사 있는거라 부끄러워 큰 불만 안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회사 사원 월급에 인사재무총무 하여튼 온갖 잡일 다 하고 있는데 은근슬쩍 또 관둔 직원이 하던 일을 나한테 시키는 행태를 보고 화가 안날 수 없었다. 

  이 회사도 너무 오래 다녔나보다. 

  너무 짜증이 나서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이직에도 소극적이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이직이 아니고 그냥 온전히 때려치고 노는 건데, 이제 가정까지 생겨 더더욱 회사 사람들 짜증나서 못다니겠단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관둘 수 없게 되었다. 


6. 외모

  남편 얼굴이 잘생겨서 같이 외출을 하면 기분이 좋다. 남편 만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는데, 내가 이제껏 결혼 안한건 내 맘에 드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없어서 였다는 거. 솔직히 조건 좋은 남자도 많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외모가 별로라 마음이 안갔다.

  못생긴 건 유전되고 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외모가 남자가 가진 조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튼 난 내 선택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남편 외모 내 맘에 드는 거 어찌나 흐믓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