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19년

일상 2019. 1. 17. 14:30

1. 남편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새해다. 나와 남편은 남들과 좀 다른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편하기도 하고 우리가 좀 이상한건가 싶기도 하다. 나랑 남편이 10살 어린 나이에 만났으면 지금처럼 무덤덤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다가도 30대 후반에 결혼한 부부라면 다 우리같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다. 몇십년 후를 예측할 순 없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지금 상태로 쭉 가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신혼부부마냥 엄청 뜨겁게 살고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2. 자식

  이번 주 화요일부터 생리를 시작했는데, 난 내가 임신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할 줄 알았다. 이번 생리가 결혼하고 3번째 생리니까 내가 3번이나 임신을 못하고 넘겼다는건데, 이거 때문에 너무 힘들다. 임신을 못해서 힘든 게 아니고 우리 엄마 때문에 힘이 든다. 우리 엄마는 나를 허니문 베이비로 낳고 내동생도 임신 계획을 세운 직후 가임기에 바로 맘먹은대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이 엄청 쉬운 줄 안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임신일 수도 있으니깐 약먹는거 조심하라고 하며 임신을 너무 기대하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어제 지금 생리 중인데 무슨 임신이냐고 했더니 너 지금 나이에 임신 안되서 고생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며 왜 노력을 안하냐고 늙어서 임신 못한 거 하나로 또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3. 나이

  위에 이어서 하는 말이지만, 35살 넘었을 때 마음 속으로 결혼안하고 사는게 내 운명이라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5살 넘어부터는 엄마아빠가 단지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사회의 낙오자 취급을 하며 시시때때로 늙어서 애도 못낳고 시간은 가고 어떡하냐고 해서 정말 문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편으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지 말란 거 안하고 말썽한번 안 일으키고 살았는데 고작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죽일년 취급을 받는 게 억울했다. 난 가족이라면 결혼을 안해도 애를 안낳아도 나름 세상 잘살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부모님은 가만 있다가도 결혼 못한 거 하나로 날 얼마나 구박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엄마아빠의 잔소리가 잔소리를 넘어 저주로 들릴 정도였다. (혼자 늙어서 보호자도 없을거라는 둥, 외로울 거라는 둥 기타 등등의 저주) 

  작년에 드디어 엄마아빠가 그렇게 바라는 결혼을 하고나니 이제는 나이 많은데 왜 애를 안 갖느냐고 성화다. 나도 내 나이 많은 거 알고 나이 많으면 애 낳기도 키우기도 힘든 거 안다. 그런데 만약 애를 낳고 싶은데도 나이가 많아 임신이 안된다면 제일 슬프고 속상한 건 나 아닌가. 그런 나한테 왜 자꾸 그러시는걸까. 아직 아픈 엄마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엄마가 임신 얘기 꺼낼 때마다 너무 힘들다.  


4. 치매 

  원래 일기를 쓴 목적은 매주 가는 교회에 치매 노인에 대해 쓰기 위해서였다. 우리집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에 매주 가고 있는데 그 교회에 항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오신다. 시도때도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저번 주 예배시간에는 엄청난 난동을 부리며 막 욕까지 하셨다. 그런데 젊은 담임 목사님께서 치매 노인이 큰 소리를 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설교를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 

  결혼 주례 때문에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게 큰 교회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시부모님이 목사님을 어찌나 어려워하든지, 남편이 비유하길 대학교로 치면 총장님 1:1로 만나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많이 어려운 자리인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싶었다. 

  그런데 난 그냥 그 대형교회가 싫었다. 원래도 싫었지만 직접 가보고는 더 싫어졌다. 큰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게 대단한 줄 아는 대형교회 교인들과 예수님이 증오해 마지 않던 성경 속 바리새인들과 다른 게 뭔가 싶었다. 중간 기도도 교회 부흥을 위해 하는 거 정말 내 기독교 상식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 태도 때문에 그날 남편이랑 결국 싸웠다) 

  저번에도 썼지만, 난 장담한다. 예수님이 만약 다시 세상에 오시면 우리나라 대형 교회 목사들이 앞다투어 예수님을 못에 박아버릴 것임을.  

  권위적이지 않고, 치매 노인을 별나게 대하지 않는 우리동네 목사님 존경한다. 계속 다녀볼 생각이다.  


5. 회사

  난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회사 사람들한테 짜증 잘 부린다. 오늘 아침에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회사 있는거라 부끄러워 큰 불만 안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회사 사원 월급에 인사재무총무 하여튼 온갖 잡일 다 하고 있는데 은근슬쩍 또 관둔 직원이 하던 일을 나한테 시키는 행태를 보고 화가 안날 수 없었다. 

  이 회사도 너무 오래 다녔나보다. 

  너무 짜증이 나서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이직에도 소극적이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이직이 아니고 그냥 온전히 때려치고 노는 건데, 이제 가정까지 생겨 더더욱 회사 사람들 짜증나서 못다니겠단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관둘 수 없게 되었다. 


6. 외모

  남편 얼굴이 잘생겨서 같이 외출을 하면 기분이 좋다. 남편 만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는데, 내가 이제껏 결혼 안한건 내 맘에 드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없어서 였다는 거. 솔직히 조건 좋은 남자도 많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외모가 별로라 마음이 안갔다.

  못생긴 건 유전되고 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외모가 남자가 가진 조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튼 난 내 선택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남편 외모 내 맘에 드는 거 어찌나 흐믓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