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질 일만.

일상 2014. 11. 3. 00:41

 

 

  저번 주 블로그에 쓴 것 처럼 더이상, 옷 정리를 미룰 수 없었다. 엄마랑 땀 흘리면서 옷정리를 다 끝냈다. 아주 후련하다.

  어제는 따뜻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고, 추위가 막 몰려 오는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1년 중 내가 춥다는 말을 하는 월은 10월말,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초 이정도다. 겨울이 길어도 너무 너무 길다. 거의 반년동안 난 춥고, 손 발이 시렵고, 옷을 껴 입고, 날씨 예보를 주의 깊게 살피며 내일은 어떻게 입어야 따뜻할 것인가를 궁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4계절이 뚜렷하다지만, 4계절이 있긴 있어도 겨울의 비율이 지나치게 무지하게 무자비하며 압도적으로 높다. 무려 반년이 춥다니. 비극이다.

  

  옷정리를 다하고 오늘 한번도 바깥에 안나갔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서 나갈 채비를 하고 공원까지 걸어갔다왔다. 남방에 니트만 걸쳤다가 추위에 덜덜 떨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걸어갔다 왔다. 여름에는 6시쯤 가면 밝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깜깜한 밤이었다. 일요일 밤의 공원은 참 쓸쓸하고, 사람을 처량하게 만든다. 걷다보면 또 지금 이시각 이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오늘 밤 자유공원의 나뭇잎들은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강한 바람에 흩날리며 외로운 소리를 냈다.

 

  공원에는 촬영차가 2대 정도 와 있었고, 엄청 많은 스텝들이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는 홍예문에서 촬영하는 거 봤는데... 이 동네가 좀 다른데랑 다른 기운과 분위기를 갖고 있긴 한 거 같다. 나만 해도 이상하게 자유공원만 가면 고독해진다. 참 이것도 이 동네가 갖고 있는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망나니처럼 깔깔 웃고, 나이에 안 맞게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집을 나섰어도, 공원 올라가서 바다만 바라보면 마법처럼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니 말이다. 항상 혼자와서 내 마음을 여기 저기 묻어두었던... 예전의 추억이 겹겹 쌓여서 그런걸까? 휴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 똑같은 기분으로 공원을 내려왔다. 

 

  어제 친구가 이 블로그만 보면 내가 엄청나게 우울해 보인다는 말을 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일기쓰기를 시작한 이유 자체가 내 우울함을 타파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친구 얘기를 들으니 이 블로그만 보는 사람은 내가 사회 부적응자에 맨날 우울한 것만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웃긴 얘기도 많이 하고, 어쩔 땐 나와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재밌었음 하는 생각에 재밌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재밌게 해주려고 무지 노력도 하는데 말이다. 기본적으로 비관주의자에 가깝지만, 내 마음 속 부정적 정서를 어떻게든 타파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난 완전히 마음이 병든 사람은 아니다.

 

  음... 예전에 난 이정도면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내 예전 사건들에 대해 어떤 남자에게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를 떠나면서 니가 우울하다고 하는 것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며 그동안 너의 별 거 아닌 얘기 들어주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그렇다. 난 부모님은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내 친한 사람이 죽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별 것도 아닌 어렸을 적 사건의 그늘에서 아직까지도 완전히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서른 두살씩이나 먹어선 아직도 말이다. 꽤 노력하고 있다. 내 우울함을 주변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게 일기쓰기니까. 이걸 보는 사람들은 조금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혹시... 그 때 날 떠난 남자처럼 이 블로그에 있는 내 일기를 보며 얘는 뭐 이렇게 심각하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오해를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난 웃기단 얘기도 꽤 듣는 사람이다.


4번째 소개팅.

일상 2008. 4. 7. 14:42
원래 토요일로 하려고 했던 소개팅을 상대방 남자가 일요일로 미뤘다. 근데 나도 토요일에 동생 면회 가기로 해서 피차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면회가서 연준이랑 엄마아빠랑 밥 먹고 있는데 내일 3시 15분 주안CGV 에서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잰다. 그 상태에서 답문 보내기가 뭐해서 시간 좀 지나고나서 동생 면회때문에 답문이 늦었다고 나는 구월동이 더 좋다고 구월동에서 영화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한편으로는 처음 만나서 영화 보는게 흔한일인가? 난 한번도 없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론 삼국지? 거참 취향 한번 나랑 다르구만. 하고 생각했다.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내가 한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라 그냥 체념하고 있는데 문자가 다시 왔다. 'ㅇㅇ' 이게 왔다. 이응 두개. 난 'ㅋㅋㅋ' 에 대해서는 별 거부감이 없는데 이응 두개 에는 거부감이 상당하다. 내 친구들 중에는 딱 한명 그거 쓰는 애가 있는데 항상 그거 안쓰면 안되냐고 말하고 싶은 걸 억누르곤 한다.
근데 전에 말했다시피 이 남자는 필요이상으로 나한테 전화하고 친한 척해서 부담스러웠는데 내가 구월동이 좋단 말에 이응 두개로 싸늘한 답문을 보낸 건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사항이다. (주안에서 영화보자고 할 때까지만 해도 친절한 모드였다) 주안까지는 가는 버스가 없고 구월동은 우리집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내가 서울에서 보기로 한 걸 우리 집앞에서 보자고 한 것도 아니고 인천 사는 사람한테 주안동 말고 구월동(버스타면 15분 이내)으로 옮기자고 한 게 뭐 그리 잘못인가? 난 주안동도 구월동도 둘다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고 상대방도 그걸 뻔히 다 아는데. 또 그 남자 사는 동네도 내 친구가 살아서 아는데 주안동 구월동 둘 다 한번에 오는 버스가 있을 뿐더러 오히려 구월동이 오기 더 편한데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응 두개에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진 상태로 일요일이 되었다.
근데 이 소개팅을 애초에 주선한 선배가 '그 남자 핸드폰 번호가 다 날아가서 미영씨보고 만날 때 전화 좀 해달래요.' 이렇게 문자가 오는 거다. 한편으로는 아니 주선한 선배한테는 연락을 어떻게 했지? 만약 주선한 선배한테는 연락이 되면 이 선배한테 연락해서 내 전화번호 다시 물어보면 되잖아.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생각은 여자가 먼저 연락 하는 건 안된다. 라는 고정관념에서 생긴 생각이고,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여자냐. 싶어서 2시쯤 문자를 보냈다. '3시 25분 영화면 3시 10분 쯤 보면 되겠네요.' 이렇게. 그랬더니 이번에느 '예' 이 딱 한글자가 온다. 그래서 이번엔 그래도 이응 두개 아니네.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좀 나빴다.
억지로 치장하고 버스를 탔는데 5분정도 늦을 것 같아서 난 너무 죄송하다고 저 5분정도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엇. 화났나? 라는 생각에 바보같이 뛰어갔다.
도착해서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응? 그때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3시 20분에 그 놈 (이제부터 표현 격해짐)이 전화를 해선 지금 집에서 출발한댄다.
그때서부턴 이거 완전 또라이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시 50분이 되었다. 이 상태에서 소개팅을 해도 꼴이 완전 우스워질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남자 없어서 죽겠는 상태도 아니고 소개팅에 목숨 건 것도 아니고, 진짜 친한 사람이 30분 넘어도 한마디 할 판에 처음 만나는 남자를 30분 넘게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게 얼마나 웃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서 만날 필요 없는 것 같으니 집에 가겠다 고 문자를 보내고 구월동에 사는 민양한테 전화를 했더니 민양의 막내동생이 깜찍한 목소리로 언니 없댄다. (내친구 민양은 대한민국국민 3천만명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 진짜 피곤해 죽겠는데 화장하고 치장한 시간이 아깝다. 라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그 놈한테 전화가 온다. 순간 전화 받아서 앞으로는 소개팅 하실 때 40분 늦어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여자랑 하시라고 한마디 하려다 그냥 씹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어디선가 '엇 미영아~~' 하는 거다. 그래서 뒤 돌아보니 민양이 체크치마에 삼선슬리퍼를 신은 내추럴한 모습으로 민양 동생과 함께 이마트 봉지 들고 서 있는거다. 오오오오. 그래서 나 이제금방 너한테 전화하고 없다고 그래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고 나 지금 완전 짜증난다고 말하고 우리 텔레파시 통했다면서 민양동생이랑 같이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앞뒤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얘기하는 중에 문자가 왔다. 본의 아니게 죄송하댄다. 그랬더니 민양 동생이 아니 죄송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해야지 본의 아니게는 또 뭐냐. 라고 얘기하다가 왠지 아쉬워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엄마는 차라리 잘됐댄다. 사실 그 놈이 잘난 놈이었으면 말도 안한다. 이제까지 내가 소개팅 or 지켜봤던 남자 에 비함 한참은 뒤떨어졌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그래 직장 학벌로 남을 평가하는 건 나쁜 짓이야 라는 일념으로 속으로 무시한다거나 업신 여기는 마음 하나 없이 임했는데 나참. 그 놈은 업신여겨 마땅한 놈이었다.
엄마랑 만나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싸구려 티라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에 티랑 가디건을 사고 신세계 백화점에서 3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주는 가방을 하나 얻어와선 친구한테 전화해서 소개팅 뒷 얘기를 했더니 '야.. 너 진짜 안풀린다.' 이러는거다. 그래, 나 연애에 있어선 진짜 안풀린다. ;; 이렇게 되고보니 소개팅 하고 싶은 맘이 싹 가셨다. 난 소개팅이랑은 안 맞는 인간인거다.
여하튼 무슨 거지 깡깡이 같은 놈 때문에 기분이나 다 상하고. (거지 깡깡이 라는 욕 너무 좋다;)
혹시나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거지 깡깡이 같았던 소개팅에 대해서 쓴다. 아.. 4번째 소개팅이었는데, 이 소개팅으로 느낀바가 많아 당분간은 소개팅 안하기로 했다. 혼자라도 좋다고!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