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소개팅.

일상 2008. 4. 7. 14:42
원래 토요일로 하려고 했던 소개팅을 상대방 남자가 일요일로 미뤘다. 근데 나도 토요일에 동생 면회 가기로 해서 피차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면회가서 연준이랑 엄마아빠랑 밥 먹고 있는데 내일 3시 15분 주안CGV 에서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잰다. 그 상태에서 답문 보내기가 뭐해서 시간 좀 지나고나서 동생 면회때문에 답문이 늦었다고 나는 구월동이 더 좋다고 구월동에서 영화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한편으로는 처음 만나서 영화 보는게 흔한일인가? 난 한번도 없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론 삼국지? 거참 취향 한번 나랑 다르구만. 하고 생각했다.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내가 한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라 그냥 체념하고 있는데 문자가 다시 왔다. 'ㅇㅇ' 이게 왔다. 이응 두개. 난 'ㅋㅋㅋ' 에 대해서는 별 거부감이 없는데 이응 두개 에는 거부감이 상당하다. 내 친구들 중에는 딱 한명 그거 쓰는 애가 있는데 항상 그거 안쓰면 안되냐고 말하고 싶은 걸 억누르곤 한다.
근데 전에 말했다시피 이 남자는 필요이상으로 나한테 전화하고 친한 척해서 부담스러웠는데 내가 구월동이 좋단 말에 이응 두개로 싸늘한 답문을 보낸 건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사항이다. (주안에서 영화보자고 할 때까지만 해도 친절한 모드였다) 주안까지는 가는 버스가 없고 구월동은 우리집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내가 서울에서 보기로 한 걸 우리 집앞에서 보자고 한 것도 아니고 인천 사는 사람한테 주안동 말고 구월동(버스타면 15분 이내)으로 옮기자고 한 게 뭐 그리 잘못인가? 난 주안동도 구월동도 둘다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고 상대방도 그걸 뻔히 다 아는데. 또 그 남자 사는 동네도 내 친구가 살아서 아는데 주안동 구월동 둘 다 한번에 오는 버스가 있을 뿐더러 오히려 구월동이 오기 더 편한데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응 두개에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진 상태로 일요일이 되었다.
근데 이 소개팅을 애초에 주선한 선배가 '그 남자 핸드폰 번호가 다 날아가서 미영씨보고 만날 때 전화 좀 해달래요.' 이렇게 문자가 오는 거다. 한편으로는 아니 주선한 선배한테는 연락을 어떻게 했지? 만약 주선한 선배한테는 연락이 되면 이 선배한테 연락해서 내 전화번호 다시 물어보면 되잖아.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생각은 여자가 먼저 연락 하는 건 안된다. 라는 고정관념에서 생긴 생각이고,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여자냐. 싶어서 2시쯤 문자를 보냈다. '3시 25분 영화면 3시 10분 쯤 보면 되겠네요.' 이렇게. 그랬더니 이번에느 '예' 이 딱 한글자가 온다. 그래서 이번엔 그래도 이응 두개 아니네.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좀 나빴다.
억지로 치장하고 버스를 탔는데 5분정도 늦을 것 같아서 난 너무 죄송하다고 저 5분정도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엇. 화났나? 라는 생각에 바보같이 뛰어갔다.
도착해서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응? 그때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3시 20분에 그 놈 (이제부터 표현 격해짐)이 전화를 해선 지금 집에서 출발한댄다.
그때서부턴 이거 완전 또라이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시 50분이 되었다. 이 상태에서 소개팅을 해도 꼴이 완전 우스워질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남자 없어서 죽겠는 상태도 아니고 소개팅에 목숨 건 것도 아니고, 진짜 친한 사람이 30분 넘어도 한마디 할 판에 처음 만나는 남자를 30분 넘게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게 얼마나 웃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서 만날 필요 없는 것 같으니 집에 가겠다 고 문자를 보내고 구월동에 사는 민양한테 전화를 했더니 민양의 막내동생이 깜찍한 목소리로 언니 없댄다. (내친구 민양은 대한민국국민 3천만명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 진짜 피곤해 죽겠는데 화장하고 치장한 시간이 아깝다. 라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그 놈한테 전화가 온다. 순간 전화 받아서 앞으로는 소개팅 하실 때 40분 늦어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여자랑 하시라고 한마디 하려다 그냥 씹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어디선가 '엇 미영아~~' 하는 거다. 그래서 뒤 돌아보니 민양이 체크치마에 삼선슬리퍼를 신은 내추럴한 모습으로 민양 동생과 함께 이마트 봉지 들고 서 있는거다. 오오오오. 그래서 나 이제금방 너한테 전화하고 없다고 그래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고 나 지금 완전 짜증난다고 말하고 우리 텔레파시 통했다면서 민양동생이랑 같이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앞뒤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얘기하는 중에 문자가 왔다. 본의 아니게 죄송하댄다. 그랬더니 민양 동생이 아니 죄송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해야지 본의 아니게는 또 뭐냐. 라고 얘기하다가 왠지 아쉬워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엄마는 차라리 잘됐댄다. 사실 그 놈이 잘난 놈이었으면 말도 안한다. 이제까지 내가 소개팅 or 지켜봤던 남자 에 비함 한참은 뒤떨어졌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그래 직장 학벌로 남을 평가하는 건 나쁜 짓이야 라는 일념으로 속으로 무시한다거나 업신 여기는 마음 하나 없이 임했는데 나참. 그 놈은 업신여겨 마땅한 놈이었다.
엄마랑 만나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싸구려 티라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에 티랑 가디건을 사고 신세계 백화점에서 3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주는 가방을 하나 얻어와선 친구한테 전화해서 소개팅 뒷 얘기를 했더니 '야.. 너 진짜 안풀린다.' 이러는거다. 그래, 나 연애에 있어선 진짜 안풀린다. ;; 이렇게 되고보니 소개팅 하고 싶은 맘이 싹 가셨다. 난 소개팅이랑은 안 맞는 인간인거다.
여하튼 무슨 거지 깡깡이 같은 놈 때문에 기분이나 다 상하고. (거지 깡깡이 라는 욕 너무 좋다;)
혹시나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거지 깡깡이 같았던 소개팅에 대해서 쓴다. 아.. 4번째 소개팅이었는데, 이 소개팅으로 느낀바가 많아 당분간은 소개팅 안하기로 했다. 혼자라도 좋다고!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