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월미공원과 여러가지

일상 2016. 10. 10. 09:36

1. 평일에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보니 건강이 점점 나빠진다. 환절기라 ​비염 때문에 점점 더 괴로워서 토요일에 내과에 가 약을 받아왔다.

요즘 친구 만나서 웃고 떠들 기분이 아니고 또 공교롭게도 주말마다 몸이 좋지 않아, 요근래 주말에는 거의 요양하며 집에 있는다.

2. 점점 아빠와 외출을 꺼리게 된다. 아빠가 야외에서 사고 칠까봐 외출해서도 내내 눈치보고 노심초사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빠와 내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걸 느끼며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가 많이 아픈데도 전혀 변화 없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더 절망하고 포기하게 되고 그렇다. 아빠와 최소한의 대화를 하고 최소한 짧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게 유일한 해답인 거 같다. 저번 상담해주시던 선생님 조언대로 아빠께 솔직한 감정을 말하고 변화를 촉구하기엔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솔직히 말하면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빠다. 하지만 그런 말을 아빠에게 하는 거 조차 힘겹고, 수고스러워 관두기로 했다. 아빠의 병은 일종의 발달 장애니까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바뀔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요즘 들어선 엄마가 아빠의 성격을 왜 평생 참고 사신 건지 원망스러운 기분도 든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도 그 나름의 고충과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엄마아빠가 서로 맞지 않는 걸 인정하고 헤어졌으면 요즘 이처럼 괴로운 기분은 아니었을 것 같다.  

3.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번 주 목요일에는 가족이 주는 행복과 불행 중 대체 뭐가 더 큰 걸까. 하는 생각에 유서라도 먼저 써놔야 되나 싶었다. 엄마가 또 아빠 때문에 또 힘든 일을 겪는다면 정말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4. 토요일에 아빠가 대전에 가셔서 모녀만 집에 남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월미공원에 갔다. 주말에 엄마 데리고 어디를 가고 싶어도 아빠만 집에 혼자두기 뭐해서 못갔는데 토요일에는 기회가 좋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약간 추웠지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때문에 엄마도 나도 기분전환 확실히 했다. 오랜만에 토끼들을 가까이서 봤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여워 걔네들 노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랑 외출하는 것 보단 나랑 나가는 게 편하실 테니 시간 나면 함께 시간 보내드려야지.. 하고 다짐했다.

5. 여기 쓴대로만 보면 난 인생 포기한 것처럼 사는 것 같지만 의외로 회사 생활 착실히 잘 하고,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한테 우울한 모습도 안 보인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최대 단점은 월급인데 이걸 무마할 정도로 큰 장점이 몇 개 있다. 몇 개를 나열하자면, 회식이 거의 없는 점, 야근 없는 점, 전화 응대 적은 점,직원들이 사생활 관련 질문 안 하는 점. 정도? 특히 마지막 장점이 너무 좋다. 전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나에게 했는가.. 정말 끔찍했다. 엄마가 치료 받으시는 동안은 군말없이 지금 회사에 몸 담으며 일 열심히 하기로 했다. 엄마가 입원하실 때마다 눈치 안보고 휴가 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이니.

6. 저번 주에 노트북이 완전히 고장나서 AS 센터에 보냈는데, 수리비가 14만원이 나왔다. 하드디스크가 완전히 못쓰게 됐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SSD로 교체했는데, 과연 얼마나 좋아졌을지. 돈을 들였으니 앞으로 한 10년은 더 쓰려고 한다.




가장 피곤한 일

일상 2016. 6. 13. 17:13

트위터를 가입한 계기는 좋아하는 야구구단 뉴스와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이젠 웃긴 사진 보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데,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은 통하는 것도 없는데 잘 통하는 척 해야 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 이라는 글을 보고 많은 공감을 했다.

그렇다. 그 느낌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거짓 맞장구도 쳐줘야 하고 거짓 추임세도 넣어줘야 하고 거짓으로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해야 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정말 그보다 피곤한 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직과 모임에 어떻게든 섞이고자 노력하고 교류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 하려면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유리하겠지..

하지만 난 거짓행세하며 슬픈 느낌드는 모임이라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다.

서른살이 되면서 너무 우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는 엄청난 시도 (하지만 남이 보기엔 정말 소심한 시도) 를 해본 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깨달은 바는 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된다는 거다.

잔소리꾼 동생한테 주말에 내 문제에 대해 열심히 또 야단을 맞았는데, 어쩔 수 없다. 난 그냥 나 나름대로 잘 살아보는 수 밖에 없다.


맥없이 이번 목요일에 휴가를 냈다. 할 일도 딱히 없는데, 휴가가 너무 남아돌고 또 이 회사는 연차수당 같은 것도 없으니 그냥 휴가를 낸 것이다. 뭘 할지는 차차 정하겠지만, 회사 나와서 일하는 것보단 뭘하든 재밌을 것이다.


봄은 왔지만.

일상 2016. 3. 6. 23:24

볼을 스치는 바람이 날카롭지 않고, 장갑을 끼지 않고도 걸을만 하다. 내가 집을 나서는 7시 10분에 이미 해도 떠 있다. 겨울이 되자마자부터 계속 봄을 기다리는 나는 이제 좀 살만한 날씨구나.. 생각한다.

삼일절에는 오랜만에 친가 식구들을 만났다. 할아버지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갔는데, 아주 애 같기만 했던 사촌오빠의 자식들이 벌써 고3이고 중학생이고 참 쑥쑥도 컸더라.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식구들은 내 나이를 듣고 다들 깜짝 놀란다. 하긴 나도 내 나이에 가끔 놀라니까.

어린 시절 30살이 넘으면 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상상할 때는 분명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앞으로 더 멋지고 좋은 날이 펼쳐질거란 기대를 품고 사는 것이 참 힘이 든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이제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거창하고 큰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을텐데.. 왜 나에게는 일생에 걸쳐 이렇게 어렵기만 한건지.



평소 라이브 앨범은 웬만해선 사지 않고, 듣지도 않는 편이다. 라이브 공연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잡음 없이 깨끗하고 좋은 음질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곡을 좋아하는데, Ryuichi Sakamoto 의 Media Bahn Live 앨범은 작년에 구입한 후 지금까지도 이틀에 한번 이상 이 앨범의 곡을 한곡 이상은 무조건 듣는다.

유튜브 찾아보니 이 공연이 86년 공연이라는데, 다시한번 80년대의 일본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실감하는 중이다. 86년에 녹음된 라이브 앨범의 음질 상태가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86년도에 연주된 곡이 이렇게 (체제 전복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혁신적일 수 있는 건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80년대의 일본인으로 살아보고 싶을 정도다.


1. 남자의 연봉

30살 넘어 만난 남자들은 심심치 않게 자기 연봉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본인 연봉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건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들 말하니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참 난감하다. 우와. 능력 있으시네요? 이래야 하는건지... 보통은 아~~ 하고 마는데.

묻지도 않는 연봉을 첫 만남에 말한 어떤 남자와 2번 함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금 내 처지에 그 정도 남자가 연락하고 시간 같이 보내주면, 적극적으로 해도 될까 말까 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참 심드렁하다. 3월의 비극적 사건 이전의 평온한 마음으로 되돌아 간 것 같다. 남자에게 집착도 노력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그런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2. 학원까지 차 끌고 가기

평생 발이 완쾌되지 않을까봐 두렵다. 엄마 말로는 내가 걸을 때 아직도 약간의 절뚝거림이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걸으려고 무지 노력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평생 약간 절뚝거리면서 걷게 되는건 아닐까 싶어서.. 너무 우울해지고 불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겠지 싶다.

학원에 너무 많이 빠져서 이제 더이상 빠질 수 없고, 전철은 계단 때문에 발에 무리가 가서, 저번 주에는 차를 끌고 학원이 있는 광화문까지 갔다. 내가 생각한 인천에서 광화문까지의 드라이빙은 한강 다리를 쌩쌩 달리고 창 밖으로는 여의도의 마천루가 보이는 그런 드라이빙이었는데, 상상과 실제는 달랐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차는 더럽게 밀렸고, 전철타면 1시간30분 걸리는데 운전을 해서 갔더니 1시간 10분 걸렸다. 올때는 차가 더 밀려서 1시간 24분이나 걸렸다.

거기에 주차료가 3만4천원이 나왔다. 미친 주차료... 결국 이번주에는 그냥 전철타고 학원에 갔다.

 

3. 피아니스트 언니

학원에서 친해지고 싶은 피아니스트 언니가 생겨서 언니 친해지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니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이번 주말에 언니의 연습실로 놀러 갔다. 언니가 독일에서 유학하다가 한국 온지 얼마 안되서 친구가 별로 없고, 친하게 지내면 자기는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언니는 잘난 체도 안하고, 고집이 좀 있긴 하지만, 특유의 순수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나이에 비해 순진한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닌데 아직도 순진한 나는 내 또래 다른 직장인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그들과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거북해진다. 그들의 세상물정 밝음과 모든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조언을 들을 때마다 얘네는 뭐 이렇게 만사에 자신만만할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언니와 한 3시간 대화 하는 데 그런 느낌이 없었다. 종종 놀러가려고 한다.

나는 클래식은 안 듣지만, 책에서 클래식 작곡가들의 삶 같은 건 좀 읽었고,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슈베르트가 유독 너무 불쌍했다. 볼품없는 외모, 살아 생전에 명성도 못 얻었고, 평생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하였고, 짝사랑만 하다 창녀에게 옮은 매독으로 혼자 죽어간 슈베르트.

그래서 언니에게 슈베르트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더니, 뭐가 불쌍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몇 백년 지난 지금도 우리가 슈베르트 얘기 하는데 전혀 불쌍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여전히 너무 불쌍한데 말이다. 난 후대에 내 이름 석자 아무도 몰라도 상관 없으니까 현생에서 행복하게 살다 죽고 싶다.

 

4. 한단계 위 수업

영어 학원에서 레벨 업을 해줬다. 어제가 그 수업 첫번째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의사 언니가 자기는 외국인 선생님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맘을 먹은건지, 노골적으로 날 무시하고 얘기를 안하려고 해서 기분 나빴다. 그 언니 매주 오는 것 같든데 다음부터 절대 같이 안앉기로 했다. 영어 그렇게 잘하는 거 같지도 않든데 흥.

한단계 위 수업이 별로 재미가 없다. 선생님도 한단계 아래반 선생님보다 재미 없고. 이 수업이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서 시계를 몇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5. 미용실 언니

날이 갈수록 내 성격이 유해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 아저씨나 미용실 언니들이 말거는 게 너무 싫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아직도 좀 싫은데, 미용실 언니들하고는 이제 한 15분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어제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 언니와 즐거운 대화를 했다. 내가 머리 감고 대충 드라이로 말리기만 하는 걸 알아 챈 언니가 드라이하여 헤어스타일 예쁘게 하는 열심히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유익해서 열심히 듣고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언니가 나에게 "즐거웠어요." 라고 인사를 했다.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오늘 아침에 언니가 말한대로 드라이 해봤는데 확실히 그냥 마구잡이로 드라이 한 것보다 예쁘게 되서 앞으로도 계속 언니 말대로 하려고 한다.

 

6. 잘못된 결혼

대학 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남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했다. 나는 아직 혼자인데 그 남자는 결혼해서 이번 달에 애도 낳는다고 하니, 난 실패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문자로 안부만 묻는 그 남자는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미혼 여자이기 때문에 일부러 불행한 체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에게 아직 맺힌 감정이 있는지, 가끔 악담을 하며 내 속을 뒤짚어 놓곤 한다.

며칠 전에는 그 남자가 나에게 미친 제안을 했다.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된다는 걸 그 남자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하니, 좀 딱하다. 나도 딱하지만 그 남자도. 하지만, 뭐 내가 남 걱정할 때 아니니, 신경 끄기로 했다.  

 

7. 목련

나는 만개 했을 때 목련이 벚꽃보다 더 좋다. 목련은 나중에 질 때가 별로라고들 하지만, 그 나중을 다 고려해도 목련이 더 좋다. 흰 목련.

우리 아파트 앞 다른 아파트에 목련이 피는데, 10년 째 그 목련을 봄마다 보고 있다. 아직 피진 않았는데, 목련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목련은 꽃이 내 주먹만 하고 색도 순결하고, 고귀한 느낌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아무래도 목련인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기는 늦봄과 초여름인 것 같다. 더운 게 좋진 않지만, 늦봄 그리고 여름 입구에서 여름이 아직 무지하게 많이 남아 있고, 아직 1년이 많이 남아 있고, 추운 겨울이 닥칠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안도를 하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그러니까 요즘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때이고 그래서 막 기쁜 사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좋다. 


저번주에는 일이 정말로 많아서 매일 매일 10시 넘어서 집에 왔다. 마음이 막 피폐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삶의 질은 퇴근시간이 빠를 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업무 조정이 되면서 나한테 좀 책임이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걱정이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확신도 없고.

월화수목 계속 10시 쯤 퇴근하다가 금요일에는 칼퇴를 해서 예전 회사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랑은 하도 회사에서 함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고등학교 동창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 회사는 파티션도 없어서 정말 고등학교 짝꿍처럼 맨날 붙어서 일했는데, 회사 동료로서 맨날 붙어 있으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 후배는 170cm 의 키에 얼굴도 예쁘고 눈도 엄청 큰데 여전히 예쁜 모습에 얘기를 들어보니 벌서 그 회사에서 5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맡고있는 일도 엄청 많은 것 같았다. 

내가 그 회사에 계속 있었으면 대리 달고 걔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을까. 싶었다. 나 있을 때는 직원이 350명이었는데 지금은 500명 이랜다. 

다른 건 안그리운데 솔직히 충무로는 좀 그립네. 퇴근 후에 서울 시립 미술관도 가고 명동도 갈 수 있었는데.


원래는 금요일에도 남아서 일해야 하는걸 무리해서  칼퇴를 한 덕에 토요일에는 눈뜨자마자 밤 11시까지 일만 했다. 회사는 가기 너무 싫어서 그냥 집에서 내 컴퓨터로 일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토요일 하루에 목표를 달성했다. 다음주도 이번주처럼 일이 바쁘면 안되는데. 오늘 교회도 안갔네. (교회가서 기도를 좀 해줘야 하는데) 

집에서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음악도 찾아 듣고 검색도 하고 했는데, 정말 사고 싶은 음반이 있는데 미국 이베이에서만 중고로 팔아서 처음으로 해외 구매를 해봤다. 대만 사람이든데 그 사람이 나한테 사줘서 고맙다고 이메일도 보내줬으니. 잘 오겠지. 


오랜만에 동생이 집에 왔다. 여름옷이 없다고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백화점 가서 동생 옷을 골라줬다. 50만원 어치나 샀는데, 동생은 그 돈 다 갚을 수 있는건가. 대단한 놈. 한번에 50만원 어치를 사다니... 

동생네 집은 엄청 후미진 곳에 있는데 며칠전서부터 바퀴벌레가 보인다고 한다. 걔네 동네 바퀴벌레 뿐 아니라 쥐도 엄청 우글우글 할 것 같다. 나는 곤충은 안 무서워 하고 나한테 다가와도 그냥 그런데 정말 바퀴벌레 만은 너무 너무 싫다. 거의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같다. 그 반짝이는 등도 싫고 빠른 움직임도 싫고. 그냥 혐오 그 자체다. 불쌍하다. 그런 바퀴벌레와 함께 살아야 하다니. 

동생의 회사 상사들 얘기를 들으니 좀 재밌었다. 남의 회사 얘기는 언제나 재밌다. 특히 회사 사람들 얘기 같은 거. 난 엄청 좋아한다. 


24일 받은 급여명세서에 6월 부산 지점 근무를 희망하면 말하라는 메세지가 적혀 있었다. 이 메세지가 나한테만 적힌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회사에서 나보고 부산 내려가라고 하면 진짜 관둘거다. 3월 경에 필요하면 미혼자들 중심으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엄청 심란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또 "부산" 이라는 말을 보니 심란했다. 내가 지금 최고 싫어하는 사람 두명이 부산 확정이라는데 거길 왜가. 미쳤다고.


어제 영화를 보면서 또다시 든 생각인데 난 아직도 결혼하기가 너무 싫다. 결혼하면 완전한 생활인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또 동생한데 니 누나 소개팅 좀 시켜주라고 성화셨다. 

동생이 대학 다닐 때는 누나 너무 늙었다고 그랬는데 회사에 가더니 자기네 회사에서 어리다고 생각한 선배가 딱 내 아이였다며 그 뒤로는 나보고 늙었단 소리를 안한다. 


일과 공부하고 있는 사이버대 시험 때문에 여행 관련 책을 하나도 못 읽었다. 그래놓고 어제 또 책을 샀다. 다음 주는 기아 타이거즈가 야구도 3일씩이나 안하지만, 그래도 퇴근 빨리 해서 책 좀 읽고 이제 도착할 음반들도 좀 듣고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