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기는 늦봄과 초여름인 것 같다. 더운 게 좋진 않지만, 늦봄 그리고 여름 입구에서 여름이 아직 무지하게 많이 남아 있고, 아직 1년이 많이 남아 있고, 추운 겨울이 닥칠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안도를 하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그러니까 요즘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때이고 그래서 막 기쁜 사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좋다. 


저번주에는 일이 정말로 많아서 매일 매일 10시 넘어서 집에 왔다. 마음이 막 피폐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삶의 질은 퇴근시간이 빠를 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업무 조정이 되면서 나한테 좀 책임이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걱정이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확신도 없고.

월화수목 계속 10시 쯤 퇴근하다가 금요일에는 칼퇴를 해서 예전 회사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랑은 하도 회사에서 함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고등학교 동창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 회사는 파티션도 없어서 정말 고등학교 짝꿍처럼 맨날 붙어서 일했는데, 회사 동료로서 맨날 붙어 있으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 후배는 170cm 의 키에 얼굴도 예쁘고 눈도 엄청 큰데 여전히 예쁜 모습에 얘기를 들어보니 벌서 그 회사에서 5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맡고있는 일도 엄청 많은 것 같았다. 

내가 그 회사에 계속 있었으면 대리 달고 걔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을까. 싶었다. 나 있을 때는 직원이 350명이었는데 지금은 500명 이랜다. 

다른 건 안그리운데 솔직히 충무로는 좀 그립네. 퇴근 후에 서울 시립 미술관도 가고 명동도 갈 수 있었는데.


원래는 금요일에도 남아서 일해야 하는걸 무리해서  칼퇴를 한 덕에 토요일에는 눈뜨자마자 밤 11시까지 일만 했다. 회사는 가기 너무 싫어서 그냥 집에서 내 컴퓨터로 일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토요일 하루에 목표를 달성했다. 다음주도 이번주처럼 일이 바쁘면 안되는데. 오늘 교회도 안갔네. (교회가서 기도를 좀 해줘야 하는데) 

집에서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음악도 찾아 듣고 검색도 하고 했는데, 정말 사고 싶은 음반이 있는데 미국 이베이에서만 중고로 팔아서 처음으로 해외 구매를 해봤다. 대만 사람이든데 그 사람이 나한테 사줘서 고맙다고 이메일도 보내줬으니. 잘 오겠지. 


오랜만에 동생이 집에 왔다. 여름옷이 없다고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백화점 가서 동생 옷을 골라줬다. 50만원 어치나 샀는데, 동생은 그 돈 다 갚을 수 있는건가. 대단한 놈. 한번에 50만원 어치를 사다니... 

동생네 집은 엄청 후미진 곳에 있는데 며칠전서부터 바퀴벌레가 보인다고 한다. 걔네 동네 바퀴벌레 뿐 아니라 쥐도 엄청 우글우글 할 것 같다. 나는 곤충은 안 무서워 하고 나한테 다가와도 그냥 그런데 정말 바퀴벌레 만은 너무 너무 싫다. 거의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같다. 그 반짝이는 등도 싫고 빠른 움직임도 싫고. 그냥 혐오 그 자체다. 불쌍하다. 그런 바퀴벌레와 함께 살아야 하다니. 

동생의 회사 상사들 얘기를 들으니 좀 재밌었다. 남의 회사 얘기는 언제나 재밌다. 특히 회사 사람들 얘기 같은 거. 난 엄청 좋아한다. 


24일 받은 급여명세서에 6월 부산 지점 근무를 희망하면 말하라는 메세지가 적혀 있었다. 이 메세지가 나한테만 적힌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회사에서 나보고 부산 내려가라고 하면 진짜 관둘거다. 3월 경에 필요하면 미혼자들 중심으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엄청 심란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또 "부산" 이라는 말을 보니 심란했다. 내가 지금 최고 싫어하는 사람 두명이 부산 확정이라는데 거길 왜가. 미쳤다고.


어제 영화를 보면서 또다시 든 생각인데 난 아직도 결혼하기가 너무 싫다. 결혼하면 완전한 생활인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또 동생한데 니 누나 소개팅 좀 시켜주라고 성화셨다. 

동생이 대학 다닐 때는 누나 너무 늙었다고 그랬는데 회사에 가더니 자기네 회사에서 어리다고 생각한 선배가 딱 내 아이였다며 그 뒤로는 나보고 늙었단 소리를 안한다. 


일과 공부하고 있는 사이버대 시험 때문에 여행 관련 책을 하나도 못 읽었다. 그래놓고 어제 또 책을 샀다. 다음 주는 기아 타이거즈가 야구도 3일씩이나 안하지만, 그래도 퇴근 빨리 해서 책 좀 읽고 이제 도착할 음반들도 좀 듣고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