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를 보고

위로 2015. 4. 5. 21:07

  저번에 왕가위 감독이 극장에서 누구와 봤는지, 함께 영화 본 후 뭘 했는지 까지가 한 영화의 완성이라고 하는 인터뷰를 봤다.

  왕가위 말대로 라면 이 영화는 나에게 엄청 나쁜 끝을 선사한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잘 되간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팽 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괜찮았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 만큼 최고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바로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그런 때일 수록 작은 실수를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 지나친 자기 파괴적 열정과 집착은 나도 망치고 주변 사람도 망친 다는 것. 큰 열망을 품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삶이 과연 그렇지 않은 삶보다 못하다고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 등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인상깊게 본 장면이 많다. 천장에 카메라를 놓고 찍은 연주 장면들과 플랫처와 앤드류가 기싸움 할때 플랫처와 앤드류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카메라의 움직임, 앤드류의 여자친구가 고향을 그리워 하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게 싫다고 말하는 장면, (개인적 경험도 있어서 울 뻔했다)  마지막에 플랫처 교수가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고 말하는 장면에서 충격과 공포와 그에 대한 앤드류의 멋진 대처도 좋았고, 앤드류가 자동차 사고 날 때는 너무 현실적이라서 극장에서 소리 지를 뻔 했다.

  앤드류가 정말 일반 음대생 같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이렇게 평범하게 생긴 헐리우드 배우도 없을거다. 악마같은 플랫처 교수를 맡은 J.K 시몬즈도 적역이다.

  감독이 85년생이라고 한다. 세상에 참 대단한 사람이 참 많다. 나보다 2살 어린데,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 대단하다. 제목이 채찍 이라는 뜻인데, 정말 딱 맞는 내용이다. 호된 채찍을 맞아가며 최고가 됐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일까? 난 아닌 것 같다. 최고가 되서 이름은 남기겠지만 한번 사는 인생 평생 불행하게 살았다면 무슨 소용이겠나..


처량한 여자.

단문 2015. 3. 21. 18:54

작년에 지하상가를 지나가다가 가죽으로 된 치마를 샀다. 락커들이 입는 그런 검정 가죽치마 아니고, 진짜 예쁜 치마였다.
지하상가 치마인데도 7만9천원씩이나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이건 아마 명품 카피일 것이다. 내가 모르는 명품디자인을 배낀 거 겠지. 겨울에 입기엔 추워서 오늘에서야 이 치마를 입었다.
새로산 아이섀도우도 하고, 립스틱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바르고 나왔다. 드디어 모직옷을 벗어던지고 살구색 봄자켓도 입었다.
그렇다. 오늘은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오늘이 4번째 만남이었다. 이건 개인적으로 신기록이다. 남자를 소개를 받은 후 4번이나 보는 건. 3번까진 있었지만, 4번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기로 하고, 위플래쉬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그는 미안한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며 회사로 갔다. 회사가 경기 동부의 끝이니까, 아마 이번 주말은 볼 수 없겠지.
오늘 차려 입은 옷과 공들인 화장이 아까워서 혼자 더 있다 가려고 스타벅스에 들어와서 카모마일 티를 마시는 중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시간보낼 책도 없고 그냥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행인들을 보는 중이다.
나도 직장인이니까, 윗 사람이 갑자기 호출하면 가봐야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처량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괜찮다고 말하고 보냈지만, 사실 괜찮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신기록을 세운 남자이기 때문에 특별하지만, 뭐 걔한테는 4번 만난 여자일 뿐일 수도 있고.
일주일동안 오늘 뭘 어떻게 할까만 기다려온 나는 정말 실망스럽고 우울할 수 밖에 없다. 하아. 이 차만 다 마시고 나도 그냥 택시 타고 집으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