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스무살 때 남자친구를 비롯한 친구들이 스키장에 가자고 했지만 결국 끝까지 안갔고, 난 지금까지도 스키장 한번 못가본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여전히 난 왜 그 추운날 찬바람 쐬면서 엄청 빠르고 무서워보이는 스키를 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겨울은 애증의 계절이다. 추위에 엄청 취약하지만, 난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 춥고 추운 강원도에서 태어났다는 게 참 맘에 든다. 

싫긴 하지만, 겨울에는 눈이 쌓인 시골에 가서 나가기만 해도 좋고, 차갑고 깨끗하고 순수한 공기도 좋고. 금방이라도 쨍하고 깨질 것 같이 맑은데도 배신감 들게 엄청 추워서 사람 괴롭게 하는 것도 맘에 들고. 겨울은 역시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겨울은 조용한 계절. 눈도 조용하게 쌓이고 겨울에는 음악을 들어도 유난히 크게 들리고. 겨울에는 계절에 맞게 조용하게 보내고 싶다. 겨울이 끝나면 마냥 좋다가도 또 다음 겨울도 다음 겨울도 살아남고 싶고 그렇다.

 

나는 샤워 다하고 15년이 넘은 내 침대위에서 전기장판 켜놓고 오디오로 음악 들으면서 책읽는 게 제일 행복하다. 봄이나 여름 혹은 가을에는 이만큼 행복하지않다. 겨울에는 유난히 책도 잘 읽어지더라. 

나는 이제 서른한살인데도 고민스러울 정도로 여전히, 아직도 혼자 있는 게 최고로 좋다. 

아무도 나의 깊은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슬프고  지독하게 고독하지만 행복한 이 기분과 지금의 내 취향과 영원히 안녕하게 된다면 엄청 슬플 것 같다.  

나는 중3 전까지만 해도 친구가 없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중3 때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고, 하나님께서 운명처럼 나에게 음악을 주고, 또 그 때마다 적절하게 좋은 영화도 보게 해주신 덕분에 외로움에 대처할 수 있게 자라났다.

16살의 그런 고난과 외로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깊이 없고 재미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익숙해지진 않아도 남들보다 잘 대처는 하는 것 같다.

회사에 지금도 충분히 유복하고 돈잘버는 남편과 함께인 과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서초동의 부자들을 부러워 하면서 사는데 그 과장님 때문에 내 장점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면서도 그 누구도 크게 부러워하지 않는 이상한 성격을 가졌다. 나는 의외로 그 누구도 별로 부럽지 않다. 진심이다. 


줄 곳 없는 마음.

일상 2010. 10. 7. 17:55
나는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덩그라니 혼자.
혼자 일하니까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난 교수 9명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비서와 다름없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대학원 행정 업무도 매일 대학원 행정실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교수님이랑 몇마디 할라 치면 혀가 굳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런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 교수들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예전 회사도 내가 나이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대리 과장도 거의 30대였고 심부장도 40살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학교는 나이든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색하고 도대체 그 나이대 아저씨 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 하면 뭔가 한가한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난 정말 과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뭐해라 뭐해라 계속 공문이 온다. 공문 보면 기한이 항상 있는데 난 그 기한내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지금 내 업무 능력 안에서는 모든 기한이 다 촉박하기만 하다. 거기서 하라는 내용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또 여기는 엄청 외롭다. 전화가 많이 오니까 음악을 틀어놓기도 뭐하고 교수님을 맞상대해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한명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을 함께 토로하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
회사에서 사귀는 친구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 좀 씁쓸했지만, 친구사이인 척 하는 한시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지낼 딱 한 사람은 필요한 거 같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라디오 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기도 하고.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어디에 있든 진짜 친한 한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로움도 안느끼고 잘 지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 한사람이 없네.
아. 청승맞게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아... 힘들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예전 회사에서는 거기만 벗어나면 장밋빛 행복한 미래일 줄 알았는데.

내동생이 여자한테 차였고 그 뒤로 못 잊고 있다. 내동생의 신변을 위하여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동생보면서 예전 생각이 나서.
난 내가 참 친구가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주변을 보면 다들 마찬가지인 거 같다. 다른 사람을 보면 다들 나보다 덜 외로운 것 같지만 결국에는 정말 친한친구는 한 두명 이내고, 그보다도 못한 사람이 많았다. (난 행복한 사람이야. 그나마)
난 남자때문에 괴로울 때 그나마 만나주는 친구가 몇 명은 있었는데 복학생에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동생 주변에는 불행히도 그런 친구도 없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내가 남자에게 차였던 때 주변 사람들이 참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줘서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았는데 결국 그게 다 맞는 말이었고 나 역시 동생의 고민상담에 똑같이 대답하고 있다.

사랑을 못 받아서 외롭다는 감정은 좋아하는 특정 사람이 있을 때만 느끼는 감정인 거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느끼는 근본적인 외로움이야 어렸을 때 부터 계속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하지만 길가다가 전화하고 싶고, 지금 불러내서 맥주나 마시고 싶고, 문자보내고 싶은데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전화하면 안 받을 거 같고, 맥주 마시자고 불러내면 안나올 거 같고, 문자보내면 씹힐 거 같은 그런 두려움과 비참함은 또 그런 근본적인 외로움과는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외롭다' 고 표현하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건 외로운 게 아니고 비참한 건데. 그런 류의 비참함은 특정 사람이 날 사랑해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어떻게 보면 정답이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별 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야 뭐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날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는 어떻게 보면 짝사랑 하는 여자보다도 못한 상태지만, 난 지금이 좋다. 롤러코스터 노래 가사 중에 '차라리 다시 아플 수 있다면' 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난 지금 이 상태까지 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 감정적으로 편하고 좋다. 절대 다시 아프고 싶지 않다.
그때 당시 내가 주변 사람 특히 가족들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가끔 쪽팔려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결국 내가 그 당시 정말 듣기 싫어했던 말이 정답이었지만 난 쓰잘 데 없이 내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했다.

요즘은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그냥 미래에 누군가는 내 곁에 있겠지. 하는 생각도 하고 하루에 닥친 일을 하면서 살다보면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안든다. 혹시 내 친구나 가족 중에 날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빨리 포기하고 외롭지는 않고 조금 심심한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은 개인 공간에서 남 욕 하는 거 같아서 정말 하기 싫었지만.

나 아는 친구 한 명이 있는데 걔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은 남자친구랑 싸우거나 헤어지면 하소연 들어주기 인 거 같아서 갑자기 울컥했다. 물론 친구사이에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 이야기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나에게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이유의 99.9% 가 남자친구랑 싸운 이야기나 헤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거면 조금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0.1%도 처음에는 남자친구 이야기는 안하지만 필경, 남자친구가 문자를 씹었거나, 남자친구가 전화를 안받거나, 남자친구가 약속을 취소했거나 했을 때 허한 느낌에 전화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생각해보니 걔랑 부쩍 친해진 때도 남자친구랑 헤어진 후 였다.
나에게 전화하여 나도 너처럼 독립적으로 혼자서 즐기며 살 거다. 매번 나한테 결심을 하더니 3달도 안되서 다른 분을 만났다. 뭐 이런 것에 대해서 비난을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 친구는 키크고 이쁘고 (항상 부럽다)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던 사람이니까 그러는 것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왜 하필 내가 남자친구랑 싸우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 된 건지 모르겠다. 왜 하필 하고 많은 사람과 많은 역할 중 그게 나 냐고요.

저번 주말에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완전 헤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뭐 내 예상대로 결국 하루도 안지나서 화해하고 다시 만나고 있지만 말이다. 다음에 전화가 또 온다고 해도 아마 남자친구랑 이번엔 진짜 헤어졌다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은 직 후 "또 남자친구 문제구나?" 라고 말해볼까. 하는 이런 찌질한 생각. 크크크큭.
 
가끔 연애하는 여자애들을 보면 상대가 좋지 않아도, 일단은 사귀고 보는 애들을 보는데 진짜로 이해가 안된다. (남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여자는 남자 입장에선 참 고마운 여자랜다. 근데 대부분이 그렇다) 남자가 좋다고 하면 시간 지나면 절로 좋아진다는데 나한테는 그게 전혀 해당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결국에는 지금 남자친구 맘에 안들어 안들어. 빨리 다른 남자 만나고 싶다 싶다 싶다 이런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헤어져서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서 혼자가 된 당시에 나를 좋다고 하는 남자랑 사귀는 경우가 다반사. 그런게 바로 외로움의 노예지 뭔가.
난 안그러겠다. 이야기를 했더니 니가 그래서 연애를 못하는 거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사귀어보고 별로면 헤어지면 그만이라는데 진짜로 그런건가!!!
 
물론 결혼 전 여러 남자 만나서 괜찮은 배우자랑 가정을 이루는 것이 모든 인간의 미덕이라지만, 단순히 여러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성공적으로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아무리 별로여도 남자를 일단은 만나야 한다는 주장은, 자기가 그 남자를 만나는 이유가 단지 외롭고 심심해서 라는 진짜 이유를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낸 비겁한 명분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그리고 그거 때문에 만나고 있는 남자도 불쌍하고)

계속 혼자다 보니 혼자에 익숙해 진건지 내가 혼자인 걸 원래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 진짜 좀 이해가 안간다. 항상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보다 괜찮은 남자는 이 세상에 깔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지 외로워서 원래 당연한건가. 아니면 내가 남자친구가 없으니까, 그냥 내 앞에서는 연애가 별 거 아니라는 걸로 위로를 하려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거라면 난 열라 불쌍)

나랑 진짜로 친한 고등학교 친구에게 위 내용에 대해 말했더니 원래 다 그런거랜다. 나도 그랬던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은 안나지만, 난 안그러겠다. 결국 이런 불만 내용을 쓸 때마다 나오는 "난 안그러겠다." 지만, 이제까지 내가 안그러겠다 결심한 걸 진짜로 안하고 살면 난 훌륭한 사람이 될 거 같다. 여하튼, 친구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은 맘에 안든다고.

2주 연속.

일상 2008. 3. 16. 16:10
주5일을 하는 직장이라면 금요일이 제일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엊그제 3월 14일 금요일은 날씨가 그야말로 환타스틱 했다. 목요일 밤에 비가 와서인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요일이었다.
3일연속 일이 별로 없어서 불안했던 내 예감은 완벽히 적중을 해서 내가 불안했던 것 이상으로 목요일부터 이상할 정도로 일이 몰렸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뭣 모르는 중 고등학교 시절 언론사에 종사하길 원했던 내 자신이 치욕적일 정도다. 언론 너무 믿지 말자.
저번주 금요일에도 기분이 뭣 같았는데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딱히 만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와서 혼자 비비큐 치킨이나 시켜먹었는데 이번주 금요일도 마찬가지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왔다. 하지만 누구 만날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일이 많아서 어차피 늦게 끝났으니까.
참담한 기분으로 집에와서 친구랑 전화하면서 그나마 기분이 좀 풀렸는데 누워서 잘 때가 되니까 다시 기분이 다시 안좋아졌다. 서러움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엉엉 울었다. 그냥 가슴이 찡하고 갑자기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불 뒤집어 쓰고 엉엉 울어버린거다. 저번주부터 사무실에서 울랑말랑 하다가 괜찮아졌다 가 계속 반복되는 상태였다. 그러다 뭐 터져버린 것.
내가 이런 내 상태를 얘기하면 다들 똑같이 이야기 한다. 아니.. 완전히 100% 솔직하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내 맘을 말해도 될까? 하고 조금이라도 내 맘을 내비치면 어김없이 똑같은 말이 나온단 말이다.

금요일 밤에도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들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 내가 필요하고 절실한 말은 그게 아닌데."
"그럼?"
"그냥.. 난 예전에 어떤 사람이 지금 내가 한 말이랑 비슷한 말 했을 땐 그렇게 얘기 안했어."

그랬다. 난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얘기하는 그런 말은 안했다. 뭐 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해 주는 게 나 밖에 없다고 한 말이 어쩌면 진짜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풋. 뭐 세상에 자길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건 그냥 그것 뿐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태로 다 끝이나버렸다해도, 그 당시에 나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아마 단 한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막상 거의 동일한 상황이 나에게 당도해보니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날 좋아하고 위해준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결국은 똑같은 말만 하는거다.
난 예전에 그 사람만도 못하다. 예전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때부턴 다시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랑 결국은 그렇게 재수없이 끝나버렸던 그 당시가 생각나서 또 가슴이 아팠다.  

난 지독한 이상주의자다.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고 냉소적으로 보이려 하고 가끔씩 그래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난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기 좀 부끄러울 정도로 이상주의자 인 거다. 하지만 난 30살 쯤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판에 박힌, 어떻게든 불확실한 미래에서 벗어나도록, 그리고 가장 위험부담 없고 안전한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난 작년 이맘때쯤에도 지금도 내년에도 작년에 그 사람한테 했듯, 말할 자신이 있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면 그냥 앞뒤 생각하지말고 거기서 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쳇. 그래. 그러니까 너랑 나랑은 안된다. 이거다. 그 2키로 더 빼라고 한 사건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결국엔 즐거워야할 금요일 밤에 엉엉 울다가 베게나 실컷 적시고 코나 풀고 눈물 때문에 땡기는 눈가에 다시 로숀을 바르고 누워선 음악을 들었다. 최근 3년간 가장 불행했을 때 들었던 음악을 찾았다. incubus, weezer .. 등등.
예전에는 내가 괴로웠을 때 들은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가 무서웠다. 힘들 때 배경음악이 되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약 80% 정도는 그때 그 기분으로 다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정말 힘들 때 오히려 그런 음악을 찾아듣는다. 들으면서 그래 솔직히 예전보다 지금이 10배는 낫지. 안그래? 이러면서 혼자 위로하는거다.

내 곁에 정말 나한테 진정 위로가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걸까? 내가 남탓만 하고 그냥 내 덕이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한테는 완전히 내 뜻을 내 비친적이 한번도 없다. 아마 걔네들은 나한테 똑같은 말로 위로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켠이 이렇게 쓰린 이유는 날 진정 위해주는 '남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인걸까? 하핫.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별 수 없단 말이다.


짧은 순간

일상 2008. 3. 13. 15:51
1.
전철을 타고 가는데 창문으로 흐릿하게 내 모습이 보였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앞머리 몇가닥은 묶이질 않아서 이마 옆에 지저분하게 내려와 있고, 중학교 때 샀는데 아직까지도 입는 짙은 회색 코트가 그 날 따라 더욱 우중충해 보였다. 난 이제 다 풀어져 가는 파마때문에 머리는 질끈 묶었고 유행에 뒤떨어진 안경을 끼고 다닌다. 축 쳐진 모습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나를 보니 갑자기 처량했다. 그 상태로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아마 난 모른 척 하고 도망갔을 거다.

2.
어제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9시쯤에야 퇴근을 했다.
우리회사 건물은 무지하게 낡아서 어쩔 땐 비까지 새는 데 옛날 건물 답게 반투명유리로 작은 창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샷시도 옛날 거라 엄청 뻑뻑하지만, 창문이 있는 건 좋다. 예전에 통유리로 된 건물에서 일할 때는 뭐 아무리 천장에 있는 환풍구로 공기 순환을 한다고 해도 공기가 매우 나빠서 머리가 지끈 거렸다. 하지만 지금 건물은 낡긴 했지만 머리 아플 때 창문을 열 수 있어서 좋다.
어제 저녁 8시가 넘어서 무심코 그 작은 창문 밖의 풍경을 봤다. 은행도 있고 사람도 지나다니고 차도 지나다녔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한순간 바람이 훅 하고 불어들어왔다.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해지면서 외로웠다.

아.. 온 몸의 세포들이 느끼고 있다. 분명 봄이 오고야 말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 S 저번주에는 날 살려두지 않을 작정인양 일이 차고 넘치더니 이번 주는 왜 이리 한가한지 모르겠다. 3일 연속으로 너무 한가하다 보니깐 이젠 점점 불안하다. 꼭 이러다 한순간 확 일이 밀리던데.  

비애

일상 2008. 1. 26. 00:32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을 맞대하면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단순히 말하는 애인이 없기 때문에 친구가 없기 때문에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이런 외로움은 내가 처음으로 구구단을 외울쯤때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으로 이유는 전혀 없는 순도 100%의 비애다.
이유도 없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고 당분간은 그저 이러고 있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안다.  
저번에 박완서 소설 중에서 어렸을 때 마루에서 서서 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는데,
8살 때였나 9살 때였나 혼자 놀러 나간 날, 산 뒤로 해가 기울기 시작해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그 자체가 갑자기 너무 슬퍼서 눈물만 뚝뚝 흘렸던 경험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 나이 때부터. 그리고 지금 26살이 된 지금까지도 잊을만 하면 고개를 쳐드는 이 감정은
어차피 안될 걸 알기 때문에 정신없이 그 감정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결국에는 자기 전 혼자 훌쩍 거리며 우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그런 감정.
그렇게  울다가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스스로가 가증스러울 정도로 내가 언제 울었냐는 듯.
원래 하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하고 또 그냥 그런 하루가 끝나버리는.

하지만 아무도 모르겠지.
나 조차도 외면하고 싶어 발악하는 그 끝도 없는 외로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