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없어서 혼자 출판사 건물 1층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 를 읽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서점에서 서서 다 읽고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읽으니 소설의 문장이 전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흐르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바닐라라떼를 마시는 중이다. 청승맞게.
정말... 이렇게 짧고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이 존재한다니.


"사람은 대개 추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이따금 선원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추악하고, 심지어 가장 추잡한 짐승보다도 더 추악해진다. 짐승은 본능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인생을 잘 모르는 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원들에겐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미워하고 욕할 이유가 많은 것 같다. 언제고 돛대에서 떨어져 파도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고, 물속에 빠지거나 거꾸로 떨어질 때만 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뭐가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보드카를 퍼마시며 방탕하게 사는데, 바다에서는 누구에게, 왜 선이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공동 선원실에서 빠져나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두웠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이 내눈 속에 나타났을 것이다. 나는 밤의 어둠 속에서 여러 형상들을 분간했고, 아직 젊었지만 이미 망가진 내 인생에서 결핍되었던 것을 보았다."

-오늘 새로 산 안톤 체호프 책 안의 "바다에서 - 한 선원의 이야기" 중에서.


  어느날 밤 누워서 이 책에 나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내 블로그를 뒤져도 그 글이 안나오는 거다. 정말 아쉬웠다. 내가 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블로그에 이 소설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안 적어두다니.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도 읽지만, 그나마 읽는 책에 대해서도 일일이 포스팅 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을 다 읽은 후 느낀 바를 조리있게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읽어도 좋은 책은 "재밌었어." 나쁜 책은 "재미없어." 이 두가지 이외에는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평 잘하는 사람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안톤 체호프가 쓴 "다락이 있는 집"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단편소설 꼽아보라면, 아마 1위? 그 정도로 좋아한다. (2위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하겠다.) 저 책은 실제로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걸 바닥에 놓고 찍은건데.. 저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는 노란색 태그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사실 태그 테이프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 페이지는 하도 펼쳐봐서 그냥 펼쳐지기 때문에.

  

  "다락이 있는 집" 은 단편소설로, 미슈시라는 여자와 이 소설의 화자인 어느 화가의 짧은 사랑 이야기 이다. 

  큰 사건도 없이 쓰여진 이런 이야기가 이토록 좋을 수 있다니... 아마 감정 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이겠지. 


  다락이 있는 집이 수록된 다른 안톤 체홉프 단편 모음집을 사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출판이 안된 거 같다. 소담 출판사의 저 책은 워낙 오래전 번역된거라.. 요즘 제대로 번역된 건 어떨지 참 궁금한데 아쉽다. (96년에 번역됐어... 세상에나) 오죽하면, 난 이 소설 영문판으로 출판된 게 있으면 그거라도 사서 읽어볼까 생각했으니까. 영문판으로는 제목이 뭔지 몰라서 검색도 못했지만.


  소설 중 아래 제일 마지막 구절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나도 정확히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일 거다. 


P.196

  나는 이제 다락방이 있는 집에 대해서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단지 아주 가끔씩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언젠가 창문을 통해서 보았던 녹색 불빛이나, 사랑에 빠진 내가 추위로 언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가던 밤에 들판에서 들려오던 내 발자국 소리가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더 드물게는 고독감에 젖어 우울해질 때면, 나는 어렴풋이 옛날을 회상하며 그녀 역시 나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고개를 들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슈시, 당신은 어디에!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극 중 화자가 미슈시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의 발자국 소리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미슈시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극중 화자가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