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 누워서 이 책에 나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내 블로그를 뒤져도 그 글이 안나오는 거다. 정말 아쉬웠다. 내가 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블로그에 이 소설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안 적어두다니.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도 읽지만, 그나마 읽는 책에 대해서도 일일이 포스팅 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을 다 읽은 후 느낀 바를 조리있게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읽어도 좋은 책은 "재밌었어." 나쁜 책은 "재미없어." 이 두가지 이외에는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평 잘하는 사람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안톤 체호프가 쓴 "다락이 있는 집"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단편소설 꼽아보라면, 아마 1위? 그 정도로 좋아한다. (2위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하겠다.) 저 책은 실제로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걸 바닥에 놓고 찍은건데.. 저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는 노란색 태그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사실 태그 테이프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 페이지는 하도 펼쳐봐서 그냥 펼쳐지기 때문에.
"다락이 있는 집" 은 단편소설로, 미슈시라는 여자와 이 소설의 화자인 어느 화가의 짧은 사랑 이야기 이다.
큰 사건도 없이 쓰여진 이런 이야기가 이토록 좋을 수 있다니... 아마 감정 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이겠지.
다락이 있는 집이 수록된 다른 안톤 체홉프 단편 모음집을 사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출판이 안된 거 같다. 소담 출판사의 저 책은 워낙 오래전 번역된거라.. 요즘 제대로 번역된 건 어떨지 참 궁금한데 아쉽다. (96년에 번역됐어... 세상에나) 오죽하면, 난 이 소설 영문판으로 출판된 게 있으면 그거라도 사서 읽어볼까 생각했으니까. 영문판으로는 제목이 뭔지 몰라서 검색도 못했지만.
소설 중 아래 제일 마지막 구절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나도 정확히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일 거다.
P.196
나는 이제 다락방이 있는 집에 대해서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단지 아주 가끔씩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언젠가 창문을 통해서 보았던 녹색 불빛이나, 사랑에 빠진 내가 추위로 언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가던 밤에 들판에서 들려오던 내 발자국 소리가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더 드물게는 고독감에 젖어 우울해질 때면, 나는 어렴풋이 옛날을 회상하며 그녀 역시 나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고개를 들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슈시, 당신은 어디에!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극 중 화자가 미슈시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의 발자국 소리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미슈시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극중 화자가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