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소원

단문 2019. 8. 29. 09:55

  결혼 후 첫 남편의 생일이었다. 생일이지만 야근을 하고 9시쯤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미역국을 사서 스팸과 함께 저녁을 차려줬다. 나처럼 요리를 못해도 그럭저럭 집밥을 먹고 산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둘다 케이크를 안 좋아해서 작은 미니 케이크를 사서, 숫자 초를 꽂고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초를 끄기 전에 소원을 빌라고 했더니 남편이 눈을 감고 진지하게 소원을 빌었다. 몇 초면 끝날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소원을 빈다. 눈감고 소원을 빌고 있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찡해졌다.

  아마도, 나와 똑같은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내일 드디어 수술을 한다. 아무리 별 거아니라고 해도 떨리고, 이틀이나 집을 비우며 머리도 못 감을 생각을 하니 싫다. 잘 끝나고 9월 4차 시험관 시술도 무사히 받을 수 있길.


수술 후

일상 2016. 8. 16. 12:54

엄마가 그렇게 아파하는 걸 처음 봤다. 수술 전에 엄마랑 농담으로 애 낳는게 아플까. 이 수술이 더 아플까. 하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엄마는 마취에서 깨서 정신 없는 와중에도 이게 백배는 더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수술 전날 입원한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계속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좀만 더 지나면 꿈에서 깨어나고, 우리 엄마는 건강하게 일도 하고 평소처럼 깔깔깔 웃으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환자복 입고, 병실에 누워 있는 걸 보니 정말 현실이구나 싶었다.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엄마도 나도 엉엉 울 것 같아서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간신히 엄마는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엄마가 60대가 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건강하실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보다 일찍 엄마와 이별할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 혼자 남겨놓고 가면 도저히 편히 눈을 못감을 것 같다고 하신 것이 떠올라 그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내일 당장 아무 남자와도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수술 침대에 누워서 울고 계시는데, 나는 도저히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못볼 것 같아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엄마 손을 잡아줬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우리 엄마는 결국 4기초 진단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의사가 치료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큰 일이 닥치고 보니 정말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간혹 전이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서 개복하자마자 닫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수술을 6시간 가량 하셨으니 치료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좌절하다가, 지금은 엄마가 항암치료가 가능한 정도라는 것에 감사드린다.

일요일에 교회만 가는 정도였는데, 큰 고난이 닥치고보니, 종교가 큰 힘이 된다. 기도를 하면 엄마가 완치될 것만 같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제 나도 책임이 좀 무거워졌다. 제일 걱정인 건, 아빠다. 아빠가 잘 하실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 다르게 엄마 마음 편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이런 때 일수록 나나 동생이 아빠랑 잘 지내서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어쨌든 2016년 이 덥고 또 더운 여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잊고 싶은 여름이 되겠지만, 아마 절대 잊지 못하겠지. 


우리 엄마

일상 2016. 7. 24. 23:21

엄마가 결국 난소암 판정을 받으셨다. 8월 4일이 수술이고, 개복 후 조직검사를 해야 병기나 이후 항암 치료 등등 그 외의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에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가서 의사가 검사 결과를 말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결과를 들은 뒤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어린 튜링 연기한 애가 연기를 참 잘했다고 느꼈던 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사람이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면 울음도 나오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그 영화 속 아이처럼 그냥 어리둥절 하게 된다.

금요일에 내가 그랬다. 동생은 회사에서 뛰쳐나와서 울면서 인천까지 한걸음에 왔지만, 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엄마는 수술을 받으신 뒤 항암을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극복하실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원자력병원에 의사로 있는 이종사촌 언니에게 난소암은 예후도 좋고 완쾌도 가능한 암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왔다.

엄마는 죽는 건 아무 상관 없다고 하는데, 치료비가 많이 나올까봐 걱정이라고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몰래 다시 병원에 전화해서 사는데 문제 없으니 암수술 안한다고 말했다는 걸 듣고 화가 너무 났다.

세상을 좀 오래 살다보니 돈으로 되는 것 중 중요한 건 단 한가지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대체 엄마는 평생 얼마나 돈에 시달리셨으면 죽어도 상관 없으니 돈을 안쓰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지금 하시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작년에 암에 걸린 친구에게 치료비는 정말 얼마 안된다는 걸 들어서 그 얘기를 하고, 보험회사에 다 전화해서 보험금으로 받는 돈 액수를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엄마가 본인의 건강보다 돈 걱정을 하는 걸 보고 돈이 더 싫어졌다. 내 팔자에 아마 죽을 때까지 풍족하게 살 일은 없을텐데. 부모님의 돈 걱정을 전해 듣는 건 너무 괴롭다.

하지만 엄마에게 화도 안내고 잘 견디고 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신동안 아빠와 둘이 어떻게 지내야할지... 나와 아빠는 엄마가 없으면 언제나 큰 일이 터졌는데. 엄마가 아픈 중에 신경 쓰이지 않도록 아빠랑 잘 지내야 할텐데. 내가 그냥 죽은 듯 살아야 할텐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휴.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만 생각하다니.

하나님이 못되 처먹은 나에게 벌을 주신 것 같다. 차라리 나에게 주실 것이지 왜 평생 고생만 한 엄마에게 주신걸까.

난 작년이 너무 최악이었기 때문에 올해는 좀 즐거운 일이 생길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가 작년보다 더 최악이다 매년 매년 작년보다 올해가 더 최악이라는 생각만 하면서 산지 벌써 이게 몇 년 째인지 모르겠다.

죽지 못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잘해드려야만 한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잘해지고, 운동도 그렇고, 경험이 쌓이면 뭐든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데 불행은 그렇지 않다. 불행한 일을 계속 겪으면 사람은 점점 약해진다.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지는 게 아니라 점점 잃게 된다. 내게 남은 마지막 힘으로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지금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니 힘을 내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겠다.


작년과 올해

일상 2016. 7. 16. 15:58


작년 이맘 때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에서 짤렸다. 내가 사표를 내긴 했지만, 사표를 쓰라는 압력이 있었으니 짤린 거나 다름 없었다.

이 모든게 겨우 1년 밖에 안된 일이라니... 아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데 말이다.

작년 여름의 가장 더운 시절은 모교에서 보내고, 지금 직장에 온지도 1년이 되간다.


저번 주 화요일에는 교육 때문에 신답역에 갔다. 서울에 이렇게 아담하고 귀여운 역이 있다니... 흥미로웠다. 플랫폼에 저렇게 작은 수풀도 우거져 있고, 단 하나뿐인 출구로 나와도 어찌나 고요한지. 서울은 언제 어디서나 북적거리고 사람으로 넘쳐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신답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집 인천에서 이렇게 먼 곳을 누비며 회사 생활을 할 지 꿈에도 몰랐다. 난 대학 졸업할 때도 이직을 고려할 때도 항상 인천 우선으로 직장을 구했는데, 이상하게 인천이랑은 연이 닿질 않는다.


작년에 몹쓸 여자 하나 때문에 회사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올해는 좀 평안하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요즘 우리집 분위기는 오늘 날씨만큼이나 우울하다.


엄마가 8월 4일에 수술을 하신다. 암인지 아닌지는 수술해서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조직검사하는데 한 일주일은 걸리니까.. 8월 둘째주까지는 엄마의 병이 암이 아니길 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궁근종이야 워낙 흔한 병이고, 주변 자궁근종 환자들도 근종 제거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우리 엄마는 생긴 모양이나 위치가 누가봐도 양성 근종은 아닌 모양이다.


너무 큰 비극은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비관론자라고 해도 누구나 '나에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리 없다' 고 생각하는 일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난 당연히 엄마가 큰 병이 아닐 거라 믿고 있다. 만약 암이라고 해도 폐나 간, 대장암보다는 제거가 쉬운 부위고 완치율도 높은 암이니 씩씩하게 치료 받으시면 완치될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 엄마가 암 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엄마의 병이 별거 아니라는 말을 지금 당장 들을 수 있다면, 작년에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열번 쯤 더 당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현재로선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