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일상 2016. 7. 24. 23:21

엄마가 결국 난소암 판정을 받으셨다. 8월 4일이 수술이고, 개복 후 조직검사를 해야 병기나 이후 항암 치료 등등 그 외의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에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가서 의사가 검사 결과를 말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결과를 들은 뒤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어린 튜링 연기한 애가 연기를 참 잘했다고 느꼈던 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사람이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면 울음도 나오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그 영화 속 아이처럼 그냥 어리둥절 하게 된다.

금요일에 내가 그랬다. 동생은 회사에서 뛰쳐나와서 울면서 인천까지 한걸음에 왔지만, 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엄마는 수술을 받으신 뒤 항암을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극복하실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원자력병원에 의사로 있는 이종사촌 언니에게 난소암은 예후도 좋고 완쾌도 가능한 암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왔다.

엄마는 죽는 건 아무 상관 없다고 하는데, 치료비가 많이 나올까봐 걱정이라고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몰래 다시 병원에 전화해서 사는데 문제 없으니 암수술 안한다고 말했다는 걸 듣고 화가 너무 났다.

세상을 좀 오래 살다보니 돈으로 되는 것 중 중요한 건 단 한가지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대체 엄마는 평생 얼마나 돈에 시달리셨으면 죽어도 상관 없으니 돈을 안쓰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지금 하시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작년에 암에 걸린 친구에게 치료비는 정말 얼마 안된다는 걸 들어서 그 얘기를 하고, 보험회사에 다 전화해서 보험금으로 받는 돈 액수를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엄마가 본인의 건강보다 돈 걱정을 하는 걸 보고 돈이 더 싫어졌다. 내 팔자에 아마 죽을 때까지 풍족하게 살 일은 없을텐데. 부모님의 돈 걱정을 전해 듣는 건 너무 괴롭다.

하지만 엄마에게 화도 안내고 잘 견디고 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신동안 아빠와 둘이 어떻게 지내야할지... 나와 아빠는 엄마가 없으면 언제나 큰 일이 터졌는데. 엄마가 아픈 중에 신경 쓰이지 않도록 아빠랑 잘 지내야 할텐데. 내가 그냥 죽은 듯 살아야 할텐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휴.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만 생각하다니.

하나님이 못되 처먹은 나에게 벌을 주신 것 같다. 차라리 나에게 주실 것이지 왜 평생 고생만 한 엄마에게 주신걸까.

난 작년이 너무 최악이었기 때문에 올해는 좀 즐거운 일이 생길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가 작년보다 더 최악이다 매년 매년 작년보다 올해가 더 최악이라는 생각만 하면서 산지 벌써 이게 몇 년 째인지 모르겠다.

죽지 못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잘해드려야만 한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잘해지고, 운동도 그렇고, 경험이 쌓이면 뭐든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데 불행은 그렇지 않다. 불행한 일을 계속 겪으면 사람은 점점 약해진다.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지는 게 아니라 점점 잃게 된다. 내게 남은 마지막 힘으로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지금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니 힘을 내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