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에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아마 올해와 비슷했나보다.

24일에는 회사에서 좀 시달렸다. 쓸데없는데 삘 꽂힌 어떤 사람 때문에 계속 시달려서 평소보다 두 배는 피곤했다.

저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이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어느 회사나 회사의 윗사람들은 본인들이 직원들에게 준 것이 엄청나게 큰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들이 준 것의 효용 가치가 직원에게 1 밖에 안 되는데 10을 준 것 마냥 행동하고, 직원들도 10만큼의 고마움을 표현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제발 그런 짓 좀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만 든 24일이었다.

일을 간신히 업무 시간 내 마치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친구와 수다를 떨고, 생일 선물을 받아왔다. 친구의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이 났다. 항암 끝에 오는 괴로운 몸의 변화를 한번 더 견뎌 내야겠지만, 이제 1월부터 친구는 머리카락도 나고, 항암도 안 받아도 된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내다니 정말 장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푹 쉬었다. 24일에 생각보다 많이 시달렸는지 잇몸이 다 상했다. 집에 있으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었는데 잇몸 때문에 그러질 못해 우울했다.

저녁쯤에는 엄마와 이마트에 갔다. 이마트에서 내 케익도 사고 오랜만에 마트 구경을 했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틀어주는 겨울왕국을 보며 이마트에서 사온 칭따오를 마셨고, 맥주에 먹으려고 산 수제 소시지를 먹다 잠이 들었다.

먹자마자 잤더니 속이 부대껴 다시 일어나서 밤 1시까지 쓸데없이 스마트폰 보다가 크리스마스가 끝이 났다.

26일에는 커피가 떨어져 용인 친구네 집으로 원두를 사러 갔다. 친구네 카페에서 1년만에 만난 다른 친구와 회사 얘기를 했고, 성남의 동생보고 카페로 오라고 하여 걔를 태워서 인천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는 부모님과 동생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초를 껐다. 남동생과 떨어져 사니까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동생이 연봉 올랐다고, 선물을 비싼 거 사준다고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20만원 내외의 어떤 물건을 사야 제일 보람차고 즐거울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남동생은 나보고 스마트 워치 사라는데, 그건 전혀 사고 싶지 않고.

그리고 오늘 내 생일은 역시 엄청나게 추웠다. 12 27일 내 생일의 추위 신화는 오늘도 깨지지 않은 것이다. 안 춥다가도 내 생일만 되면 엄청나게 추워진다.

오늘 몇 명의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도 고마웠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에서 남의 생일을 다 알려줘 기억할 필요 없지만, 그래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거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내일은 아침에 영하 9도라는데, 3일 쉬고 출근하려니 우울하다.

회사를 너무 많이 옮겨 다닌 탓일까? 이제 회사에 거는 기대 자체가 없다. 어딜 가도 괴로울 것이고 답답할 것 이다. 그러니 그냥 군말 말고 다녀야지 싶다.

어제 친구랑 얘기하다 알게 된 건데, 지금 회사에 온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다. 6개월도 안된 거 치고 잘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실수 하나에 절절 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너무 위축되지 않기로 했다.

아까 어떻게 입어야 내일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심사숙고하여 두꺼운 옷을 골라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다음주에는 2015년이 끝이 나고, 난 한 살 더 먹는다. 내년에 올해보다는 나아질 거라 믿는다. 그렇게 되도록 다른 해보다 조금 노력도 해볼 작정이다.


회복 알림

일상 2015. 12. 9. 13:26

내 블로그 맨 위에 있는 글이 괴로울 때 썼던 글이라, 볼 때마다 다시 짜증이 솟구치는 것 같아 이를 무마하고자 근무시간에 짧은 글을 쓴다.


지금부터 죽을 때 까지 영혼과 신체를 분리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스트레스 안받고 내 뜻대로 살려면 꼭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다. 영혼까지 거론하며 거창하게 말했지만, 쉽게 말하면 난 멍하니 있는데 남들은 내가 멍한지 못 알아채도록 하는 연습을 하겠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종종 써먹고 있다.


기분이 생각보다 좋아졌다. 저번주 내린 함박눈이 역할을 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근 10년 동안 눈에 관련된 추억은 모두 엉망진창인 것 밖에 없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 보면 아마 강원도 살던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언젠가는 눈와서 엄청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보다. 그 때 사진을 보면 대부분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고, 난 모자와 목도리안에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있다.


강원도에 살던 시절, 눈이 쌓인 공터에 가서 내 몸보다 큰 눈덩이를 굴렸던 기억이 이상하게 또렷하다. 눈덩이 두개를 만들었지만, 한 눈덩이를 다른 눈덩이에 올릴 수가 없어서, 결국 누워있는 눈사람을 만들었고, 누워있는 눈사람을 만화에 나오는 것 처럼 흙없이 깨끗한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까만 부분마다 흰눈을 붙여 땜질했던 생각이 난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 커서 겪고 행하는 일이 훨씬 많지만, 각자의 정신의 핵심은 만 10세 이전에 거의 형성되는 것 같다.


작년 12월에 존메이어 1집을 너무 열심히 들어서 그런지, 가끔 길을 가다가도 존 메이어 1집에 있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또 12월말에는  내 생일이 있기 때문에 종종 Blur 의 Birthday 라는 노래가 또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호밀밭의 파수꾼 생각도 나고. 겨울이 정말 싫지만 낭만으로 따지면 겨울이 사계절 중 최고인 것 같다. 겨울이 배경인 사랑 영화는 수없이 떠오르는데, 여름이 배경인 사랑 영화와 소설은 인도차이나, 그 후 정도 밖에 안 떠오르는 걸 봐도 그렇고.


저번 1월에 생일인 친구에게 생일 잘 보냈냐 물었더니 Blur 의 Birthday 같은 분위기로 보냈다고 했는데, 나도 아마 올해 그럴 거 같다. 뭐 올해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매년 그랬다.



2015년은 지긋지긋해서 이렇게 끝나는 게 전혀 아쉽지 않다.


생일

일상 2014. 12. 29. 00:22

 

​  원래 내 생일날은 매년 지독하게 추웠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춥지 않았다. 동생한테 선물 받고, 엄마는 맛있는 반찬을 많이 해주셨다. 미역국도 물론 끓여주셨고.

  결국 또 한살 먹었고, 이제 2014년도 끝난다.

  난 가끔 다른 사람들한테 딱한 취급 당하기 싫어서 가끔 여러사람을 기만할 때가 있다. 그거 때문에 요즘 조금 우울하다. 이게 내 자존감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쩌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긴대로 내 감정 다 표출하고 살면 모르긴 몰라도 친구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나고 회사에서는 짤리겠지.

  우울할 땐 음악 들으면서 산책을 가는데, 산책 가는길에 개항로 라고 불리는 자유공원 가는 길 장식이 날 기분 좋게 했다. 특히 저 눈 결정 모양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될 때도 있지만, 사람이 생각없이 사는 것 보단 쓸데 없는 생각이라도 좀 하면서 사는게 나은 것 같다.


감흥없는 2013년

일상 2013. 1. 6. 01:11

1. 연말 - 연말에는 많이 바빴다. 아직도 회사에서 내 정체성이 무엇일까 고민 중인데,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하다보면 늘 시간이 없고 벅찼다. 가끔 내가 일반 회사를 벗어나 학교에서 2년동안 일해기 때문에 일하는 감이 떨어진 것인가, 못올 곳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보면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난 유능한 직장인 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나 싶었다. 이 모든 생각이 피곤함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매일 매일 밤 10시 혹은 11시가 다 되서 도착을 하니까 운전해서 들어가는 길도 외롭고 집에 와서도 몸이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2. 생일 - 12월 27일에는 내 생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생일이면 케익도 사주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10만원도 주는데 한창 바쁠 때 생일이라 차려주는 것만 남이 차려주고 나중에 생일 케익 치우고 음료수 치우고 설겆이 하는 건 내 몫이었다. 이러려면 왜 생일축하 해주나 싶어서 좀 화가 났다. 왜 내 생일에 내 일을 만들어줘. 이러면서 투덜댔지만 그래도 10만원 받았으니까. 10만원은 엄마께 5만원 아빠께 5만원 드렸다. 불행히도 12월 27일에는 회사에 물건이 20개가 넘게 들어와서 하루종일 입고 물품 정리를 했는데 그거 하느라고 그날도 역시 9시가 넘어 집에 갔다. 차장님은 그냥 집에 가라고 하셨지만, 괜히 생일이라는 핑계로 일 안하고 갔다고 안들어도 될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12월에는 야근이 너무 잦아서 웬만해선 직장 있는 걸 감사히 알라며 직장에 대하여 불평하면 무조건 회사편 드는 우리 엄마도 니네 회사 사람 더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근데 나는 매일 10시 쯤 집에 가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저쪽 팀 다른 여직원은 새벽 1시 2시 어쩔 땐 3시에 간 적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서 혼자 좀 두려워 하고 있다. 난 솔직히 새벽에 퇴근하면서까지 일할 자신은 없어. 

3. 팀의 변화 - 새해가 되면서 팀의 변화가 좀 생겼다. 나 있던 부서에서 무역 관련 업무가 다 빠지고 나는 원래 부서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중의 내 경력을 고려해서는 무역일을 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원래 팀의 차장님이 좋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근데 나 같은 애가 경력 얘기하면 웃기기도 하네. 계속 옮겨다니고 계속 새로운 일을 해 왔으니... 딴 부서로 안 가게 되서 원래 자리에 그냥 있으면 되기 때문에 짐 옮기는 귀찮은 일이 하나 줄었다. 하지만 난 금요일 저녁에 새로운 업무와 부서에 대한 공지를 받는 순간 표정관리가 안됐다. 왜냐하면 입고 물건 확인 업무를 그대로 나한테 남겨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힘든 건 그냥 니가 계속 해라 이 말인데 우리 부서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나한테 떡하니 그 업무가 남아있는 걸 보니 화가 나고 그 쪽 부서 사람들 속도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꼴찌로 들어와서 그런건데 누구를 탓하나 싶었다. 뭐 이 힘든 일은 내 밑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냥 영원히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한편으로는 물건 확인할 때는 전화안받아도 되고 딴 일 안시키니까. 

4. 운전 - 점점 운전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난 이제 출퇴근 길은 어느 정도 잘 하는 것 같다. 아직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밤이나 눈이 오는 날에는 안해봤지만 요즘에는 처음 운전 했을 때 처럼 심장이 차창 밖으로 나갈 것 같은 상태도 아니고 음악도 흥얼거리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내가 모르는 길은 못가겠다. 네비게이션이 어디로 가라고 말해도 아직 찬스도 잘 못잡겠고, 겁도 엄청 많으니 말이다. 이제 회사에서 어디 갔다오라고 하면 갔다올 수준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팀원이 줄어들면서 더욱더 그런 압박이)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생각도 하는데 여하튼 새해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전 더 잘하는 것이. 아 그리고 운전하면서 더욱 더 깨달은 게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것이다. 어디를 가야한다 생각을 하면 대략적으로라도 길의 방향이 생각나야 하는데 전혀. 전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 신이시여. 난 대체 잘하는 게 뭡니까. 

5. 서른한살 -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내가 서른한살이라는 것이. 아마 서른살이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겠지.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조금 외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참 다행스러운 점이 난 의외로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나를 딱하고 불쌍한 여자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 가끔 은연 중에 내가 혼자 늙어가는 걸 불쌍하고 큰일이라고 얘기하면서 은근히 자기가 나보다 낫다는 걸 주지시키려는 사람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기 인생이 재미 없으면 남을 깍아내리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할까 싶다. 

내일은 끔찍한 월요일 한동안 휴일이 중간중간 끼어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지겨운 5일을 버텨야만 주말이 오겠구나 싶어서 한숨이 난다. 날씨도 너무 춥고. 난 기본으로 4겹을 입고 (가끔 5겹도 입는다. 나도 놀랐다. 내가 5겹을 입고도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털달린 레깅스에 니트 치마를 입고 발바닥에 핫팩까지 붙이면서 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 생일과 그 밖에

일상 2010. 12. 28. 09:25
강원도 원주에서 내가 태어나는 날은 생각보다 별로 춥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매년 내 생일 쯤은 엄청나게 추웠다. 어제는 눈까지 왔다.

01

요즘 연말이라 학교는 엄청 바쁘다. 난 방학하면 한가할 줄 알았더니만 성적마감에 예산마감에 장학금 신청에 졸업사정까지 온갖 잡일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 가꿀 기력도 없었고. (하지만 항상 마음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음)

일단 소개팅 이후의 그 사람과의 진행과정을 말하자면, 알쏭달쏭한 것이 나랑 소개팅한 여자 이상으로 발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확신을 했는데 12월 초에 소개팅을 하고 주말마다 보고 있는데 아직 전혀 아무런 모션(?) 이 없다. 하다 못해 전화라도 한통해야 하는데 전화도 없으면서 주말에는 또 보잰다. (그러면서 매 주말 나가고 있는 난 뭐? ) 그리고 이건 아주 사소하면서 큰 문제인데 만날 때 마다 윗도리 아랫도리 신발 가방까지 세트로 항상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도 좀 신기한 점이고. 그래 뭐 사실 직장 다니면 토요일에 그 옷 입고 주중에 빨아서 또 주말에 입고 그러나보지뭐.(애써 그렇게 생각)
여하튼 문자만 보내면서 주말마다 보자고 하고 또 그 이상은 없는 건 그냥 나랑 친구하고 싶다는 건가? 응? 친구하고 싶은건가? 자네?

저번주 수요일에는 학교 안에 있는 "정규직"에 가서 면접을 봤다. 내가 졸업한 과 교수가 추천서까지 쓰면서 날 들여보내주려 노력해줬지만 난 보기 좋게 떨어졌다.  나에게는 면접 징크스가 있다. 혼자서 들어가서 보는 면접은 대부분 붙었고, 여러 명이서 들어가는 면접은 다 떨어졌다. 대학 졸업 후 부터 계속 똑같다. 1차 때 개인면접이면 붙고 2차 때 한 3명 들어가면 떨어진다. 이번에도 원래는 개인 면접이었는데, 교수가 늦게 오면서 면접자 전부 다 들어갈 때부터 좀 불길했는데 뭐 보기 좋게 떨어졌지 말입니다.  내가 여러 명 사이에 있으면 좀 덜떨어져 보이나? 왜 항상 그렇지?

백수로 놀 때는 그냥 정기적인 주 수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28살에 2년 후에 짤릴지도 모르는 자리에서 일하다보니 또 새로운 내 자리를 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건가? 내가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학교 진도 못 쫓아가고 눈치 없고 공부도 못하는 찌질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난 나보다 훨씬 못했던 사람보다 더 못해져버렸다. 뭔가 잘 풀려간다 싶으면 망하고 또 잘 됐으면 좋겠다 싶으면 망하고. 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큰 사고 없이 살고 있다는 것에 위로를 해야겠지.

내일부터는 여기 블로그에 짧게라도 기록을 해야겠다. 의무감을 안 느끼려고 노력하지만 워낙 오랜기간 지속된 습관이라 이 습관을 버린다면 내가 내가 아닌 게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생일축하합니다.

일상 2007. 12. 27. 09:20
저는 1983년 12월 27일 오전 11시 반쯤
(호적등본상에 따르면)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미상번지 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농촌에서 1년 중 최고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이맘때는 먹을 쌀이 있어서 하루 세끼 다 챙겨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논리로 아버지는 제가 제일 좋은 때 태어났다고 합리화 시키시지만 원래는 1년 중 가장 춥고 힘들 때 태어난거죠. 그것도 강원도에서.

원래 저는 1월 10일 쯤 태어났어야 하는데 그냥 일찍 나와버렸다고 합니다.
저는 못내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호적에 84년으로 올려주지. 라면서.

덕분에 저는 주민등록 생일도 실제 생일도 12월 27일 생입니다.

축하해주세요!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