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흥없는 2013년

일상 2013. 1. 6. 01:11

1. 연말 - 연말에는 많이 바빴다. 아직도 회사에서 내 정체성이 무엇일까 고민 중인데,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하다보면 늘 시간이 없고 벅찼다. 가끔 내가 일반 회사를 벗어나 학교에서 2년동안 일해기 때문에 일하는 감이 떨어진 것인가, 못올 곳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보면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난 유능한 직장인 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나 싶었다. 이 모든 생각이 피곤함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매일 매일 밤 10시 혹은 11시가 다 되서 도착을 하니까 운전해서 들어가는 길도 외롭고 집에 와서도 몸이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2. 생일 - 12월 27일에는 내 생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생일이면 케익도 사주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10만원도 주는데 한창 바쁠 때 생일이라 차려주는 것만 남이 차려주고 나중에 생일 케익 치우고 음료수 치우고 설겆이 하는 건 내 몫이었다. 이러려면 왜 생일축하 해주나 싶어서 좀 화가 났다. 왜 내 생일에 내 일을 만들어줘. 이러면서 투덜댔지만 그래도 10만원 받았으니까. 10만원은 엄마께 5만원 아빠께 5만원 드렸다. 불행히도 12월 27일에는 회사에 물건이 20개가 넘게 들어와서 하루종일 입고 물품 정리를 했는데 그거 하느라고 그날도 역시 9시가 넘어 집에 갔다. 차장님은 그냥 집에 가라고 하셨지만, 괜히 생일이라는 핑계로 일 안하고 갔다고 안들어도 될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12월에는 야근이 너무 잦아서 웬만해선 직장 있는 걸 감사히 알라며 직장에 대하여 불평하면 무조건 회사편 드는 우리 엄마도 니네 회사 사람 더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근데 나는 매일 10시 쯤 집에 가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저쪽 팀 다른 여직원은 새벽 1시 2시 어쩔 땐 3시에 간 적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서 혼자 좀 두려워 하고 있다. 난 솔직히 새벽에 퇴근하면서까지 일할 자신은 없어. 

3. 팀의 변화 - 새해가 되면서 팀의 변화가 좀 생겼다. 나 있던 부서에서 무역 관련 업무가 다 빠지고 나는 원래 부서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중의 내 경력을 고려해서는 무역일을 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원래 팀의 차장님이 좋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근데 나 같은 애가 경력 얘기하면 웃기기도 하네. 계속 옮겨다니고 계속 새로운 일을 해 왔으니... 딴 부서로 안 가게 되서 원래 자리에 그냥 있으면 되기 때문에 짐 옮기는 귀찮은 일이 하나 줄었다. 하지만 난 금요일 저녁에 새로운 업무와 부서에 대한 공지를 받는 순간 표정관리가 안됐다. 왜냐하면 입고 물건 확인 업무를 그대로 나한테 남겨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힘든 건 그냥 니가 계속 해라 이 말인데 우리 부서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나한테 떡하니 그 업무가 남아있는 걸 보니 화가 나고 그 쪽 부서 사람들 속도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꼴찌로 들어와서 그런건데 누구를 탓하나 싶었다. 뭐 이 힘든 일은 내 밑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냥 영원히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한편으로는 물건 확인할 때는 전화안받아도 되고 딴 일 안시키니까. 

4. 운전 - 점점 운전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난 이제 출퇴근 길은 어느 정도 잘 하는 것 같다. 아직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밤이나 눈이 오는 날에는 안해봤지만 요즘에는 처음 운전 했을 때 처럼 심장이 차창 밖으로 나갈 것 같은 상태도 아니고 음악도 흥얼거리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내가 모르는 길은 못가겠다. 네비게이션이 어디로 가라고 말해도 아직 찬스도 잘 못잡겠고, 겁도 엄청 많으니 말이다. 이제 회사에서 어디 갔다오라고 하면 갔다올 수준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팀원이 줄어들면서 더욱더 그런 압박이)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생각도 하는데 여하튼 새해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전 더 잘하는 것이. 아 그리고 운전하면서 더욱 더 깨달은 게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것이다. 어디를 가야한다 생각을 하면 대략적으로라도 길의 방향이 생각나야 하는데 전혀. 전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 신이시여. 난 대체 잘하는 게 뭡니까. 

5. 서른한살 -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내가 서른한살이라는 것이. 아마 서른살이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겠지.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조금 외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참 다행스러운 점이 난 의외로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나를 딱하고 불쌍한 여자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 가끔 은연 중에 내가 혼자 늙어가는 걸 불쌍하고 큰일이라고 얘기하면서 은근히 자기가 나보다 낫다는 걸 주지시키려는 사람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기 인생이 재미 없으면 남을 깍아내리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할까 싶다. 

내일은 끔찍한 월요일 한동안 휴일이 중간중간 끼어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지겨운 5일을 버텨야만 주말이 오겠구나 싶어서 한숨이 난다. 날씨도 너무 춥고. 난 기본으로 4겹을 입고 (가끔 5겹도 입는다. 나도 놀랐다. 내가 5겹을 입고도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털달린 레깅스에 니트 치마를 입고 발바닥에 핫팩까지 붙이면서 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