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지 않는 꽃

단문 2015. 4. 15. 00:53

우리동네에서 월미도 가는 길에는 도무지 정이 안가는 공장이 쭉 늘어서 있다. 평일 낮에 그 길을 걸어가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엄청난 고압전류가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그 동네 공장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게 벚나무가 무척 많이 심어져있다. 매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항상 예쁘지만, 봐주는 이는 적다.
삭막하고 외로운​ 곳에서 그 나무들이 피워낸 벚꽃은 정 떨어지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존재지만,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다.
난 나 혼자라도 걔네들의 아름다움을 봐주리라 결심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올해도 난 그 꽃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이틀째 비오는 밤에 운전을 했더니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이 비와 함께 꽃도 다 떨어질 것이다.
나 자신을 꽃에 비유하기도 웃기지만, 공장 앞 꽃들에게 정이 갔던 건 묘한 동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 이미 지고 있는데, 가장 예뻤던 때 부터 지금까지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준 이는 없었다는 슬픈 생각에 봄마다 좀 우울해진다.
괜히 봄에 자살을 많이 하는 게 아니다. 이상하게 봄만 되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
며칠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의 수신자는 아마 영원히 그 편지를 읽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고 보냈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편지에 답장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거짓말이다. 난 죽을 때 까지 기다릴 것 같다. 절대 오지 않을 답장을.


올해는 런던올림픽이 열린다. 아빠가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집이 같은 집에서 두번째로 올림픽을 시청하는 건 처음이다."라고. (베이징 올림픽, 런던올림픽)  그렇다. 우리집은 8년 이상 한 곳에서 거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집에서 올림픽 뿐 아니고 월드컵도 두차례 봤다. 독일월드컵, 남아공월드컵.

평소 고향사랑이 지극한 아빠를 보면 한 곳에서 오래살면 저런 애정이 생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고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하심) 나도 요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인천 전체를 좋아하지 않고, 전국에서 인천만큼 삭막하고 인간미 없는 곳도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운치없고 멋대가리 하나 없는 지저분한 동네를 걷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영화감독이면 우리동네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소설가면 우리동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한다.

나도 이런데,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을 보낸 "고향"이 있는 사람이면 그 곳에 대한 애정은 엄청난 것이겠지. 소설가 이청준도 자기가 자란 고향에 대한 글을 꽤 많이 남겼으니까. 그리고 나도 태어나서 7살까지 살았던 강원도에 대한 아련함 같은게 있으니까 말이다. 기억도 거의 없는데.

 

서두가 길었지만, 저번 주 살을 빼겠다는 의지가 갑자기 불타올라서 우리집에서 자유공원까지 걸어가서 공원에서 평소 안하던 뜀박질을 좀 했는데, 주 초에는 자유공원에 어서 빨리 도달하여 운동을 하고야 말겠단 생각으로 지나가는 길에 있는 꽃이나 건물에 전혀 눈길을 안주다가 금요일 저녁에는 주말을 앞둔 너그로운 마음으로 사진도 찍고 천천히 동인천 시내를 걸었다.

 

 

자유공원 가는길의 작은 꽃밭

 

내가 본 우체국 중 제일 예쁜 인천 우체국. 저런 우체국에서 애인한테 쓴 편지 부치고 싶다.

 

1923년에 건축되었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인성여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길에 있는데, 교정이 아담하고 예뻤다.

 

동인천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카페. 이 카페 말고도 예쁜 카페가 많아서 친구와 언제 한번 날 잡아 가기로 했다.

 

 

인천항 개항이 1883년 이었고, 개항 후 일제시대 그리고 한 20년 전까지는 우리 동네가 인천에서 제일 잘나가는 동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 일본애들이 지어놓은 건물이나 집이 있고, 거리 구획도 일본 여행 갔을 때 본 거랑 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동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 관광특구로 조성해서 나무와 꽃도 잘 심어놓았고, 오래된 건물들도 잘 보존하고 있어서 걷는 재미가 좀 있다.  

자유공원 가는 길에 있는 인성여고와 제물포고는 내가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의 모습이고, 그 안에서 뭔가 재미난 스토리가 마구마구 생겨날 거 같이 낭만적인데, 썩을 제물포고가 우리동네 후졌다고 송도로 이전계획을 세워놔서 동네 사람들이 결사반대 데모 중이다. 아니 인천항 보이고 자유공원에 꽃피고 부지도 엄청 넓고 좋은데 왜 망해가고 유령도시같은 송도로 간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제물포고가 빠져나가면 아마 우리동네는 더 황량해지겠지. 지금도 충분히 황량한데.

 

 

이 건물 역시 요코하마에서 봤던 옛날 외교관 주택이랑 건물양식이 약간 비슷하다. 저 에어컨 실외기 좀 어떻게 하면 안되나... 건물은 예쁜데 확 깼다.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혼자 꽃구경 제대로 했다.

 

혼자 사진찍고 있는 내또래 여자. 나도 저렇게 혼자 사진 찍었다.

 

내가 뛰는 코스 중 하나. 금요일 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뛸 수 없었다.

 

자유공원에 있는 벚나무는 웅장했다!!!!

 

조명으로 물든 벚꽃.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문.

 

원래는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편인데, 이 날은 위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문을 기필코 통과하고 싶은 맘이 들어서,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봤다. 금요일 밤이라 음식점에는 사람이 가득하고, 자유공원에서 꽃구경 하는 사람들 얼굴이 다 즐거워보이고 엄마아빠랑 놀러온 애들도 귀엽기가 그지 없었다.  으으 하지만 목줄 안매고 자기네 집 개 산책시키는 사람들은 좀 때려주고 싶었다. 난 아무리 작은 치와와여도 목줄 안걸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개는 엄청 무섭던데. 자유공원 안내에도 분명히 목줄 매라도 되어 있는데 한글 못 읽으시나들. 

검정 츄리닝 바지에 하늘색 가디건을 입은 돈 한푼 없이 버스카드 달랑 한장을 든 나는 차이나타운을 타박타박 걸어서 내려왔다. 근데 한참 계단을 내려와보니 바로 앞에 인천역이 딱 보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집에서 인천역까지 걸어오다니. 좀만 더 걸어가면 월미도라 더 걸어갈까 하다가 너무 시간이 늦어서 포기했다. 근데 문제가 난 동인천역에서 우리집 오는 길은 알아도, 인천역에서 우리집 오는 길은 모른다는 것 이었다. 아무 버스나 타면 동인천역으로 가겠지 싶어서 인천역 맞은편에서 28번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가 화평동을 가더니 점점 서구 가좌동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또 아무 정류장에나 내려서 동인천역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걷다보니 여기가 어딘지 대충 어딘지 감이 왔다.

아. 이런 것이 "동네느낌?" 흐흐흐.

 

그렇게 황량한 동인천역 뒷골목을 걷고 있자니 좀 무서워서 서둘러 걸어 동인천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부턴 도저히 우리집까지 걸어갈 힘이 안나서 난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항상 타는 마을버스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고,

'오늘 엄청 걸은 거 같은데?' 하고 체중을 재보니 1키로가 빠져 있었다. 난 겨우 1키로에 "얏호!!" 하고 쾌재를 부르고 야구를 시청하고 설레는 주말을 기다리며 금요일 밤을 마무리 지었다.


밥 값 못하고 있다.

일상 2009. 4. 9. 10:48
봄이 되어서 그런가 마음이 붕~ 하고 떠 있는 느낌이다. 요즘 날씨는 또 왜이리 좋은거야.
이렇게 봄에 날씨가 좋으면 언젠가 친구랑 평일 낮에 청계천 가서 룰루랄라 했던 게 생각난다. 사람이 기분을 좀 풀기 위해서는 뭐 대단한 게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그냥 그 정도면 족한데 왜 이런 짧은 시간조차 내기 힘겨워지는 걸까. 그때 점심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 보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난 백수로 놀고 있을 때 조차 직장인이 별로 부럽지 않았다. 취직 안하고 그 후 에서 다이스케마냥 유유자적 사는 게 꿈이었다. 나는야 이기적인 영혼.
예전에 시골살 때 너무 갇혀 있다는 느낌이 싫었는데, 봄하고 여름만은 창밖만 봐도 기분이 꽤 상쾌해지고 그랬다. 일단 우리집 앞에 벚꽃나무가 무지하게 많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까지 있었으니까. 딱 이맘때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연두색 빛 새싹만 봐도 막 심란하고 그랬다.
나도 여자인지라 꽃은 웬만한 건 다 좋아하는데 꽃은 나무에서 피는 꽃이 훨씬 이쁜 거 같다. 벚꽃도 그렇고 복숭아꽃, 사과꽃, 동백꽃, 산수유, 또 나무에 피는 꽃 뭐 있지? 아 목련도 그렇고. 아... 꽃 보고 싶다. 엄마아빠도 맨날 인천에 살다보니 꽃이 피는지 지는지 어쩌는지도 모르겠다고 삭막하다고 하시는데 나도 꽃을 볼 일이 없다. 아 꽃보고 싶다. 그런데 봄에는 꽃도 꽃이지만, 나무에 그냥 작은 잎이 꽃보다 더 이쁠 때도 있는 것 같다. 진초록도 아니고 딱 이맘 때쯤만 볼 수 있는 그런 연두색.
참나. 내가 이렇게 시골을 1g 이나마 그리워하는 일이 있을거라고 누가 알았겠나.
어제는 할 일도 엄청 많았는데 하루 종일 야구관련 기사만 보다가 하루 다 보냈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니 점점 생활에 변화가 생기는구나. 기아는 역시나 꼴찌이지만, 어제 4연패 하는 줄 알았는데 1승해서 기분 좋다.
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보다 못한 연봉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어제 같이 일하는 모습이라면 그 돈도 사실 아깝다. 하지만! 2월부터 너무 업무 때문에 핀치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의 여유가 아주 그냥 꿀맛이었다.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번 일기에도 썼는데, 요즘 없는 월급으로 집안에 일조하고 있어서 보람차기도 하지만 (사실 보람차다고 하면 거짓말) 원래 쓰던 돈이 있어서 그걸 못 줄이다 보니 완전 쪼들리고 있다. 그나마 아주 조금 하던 저금도 전혀 못하고. 나야 뭐 월급이 들어온 것을 보아도 그냥 무덤덤 하지만, 앞으로도 저금을 별로 못할 거라 생각하니 우울하기도 하다. 돈 모아서 하려는 일들도 서서히 이렇게 물거품이 되어가겠구나 생각하니까 우울하다. 그런데 뭐 예전부터 50:50으로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불가능 하다고 해도 장래에 대한 꿈이나 희망 소망 등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현재를 버티는 힘이 되어주니까 내가 나중에 뭘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꽤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내 이렇게 고생해서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단 한가지도 없겠구나 생각하니 좀 허하다.
금요일에는 동대문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이걸 어떤 남자 선배한테 말하니 당연히 퇴폐일 거라고 생각을 하더라. 만약 내가 퇴폐 마사지를 받았다면 이렇게 다른 데 얘기를 하고 다녔겠는가? 기분이 나빠졌다.;; 회사에 나랑 동갑인 얼굴이 엄청 이쁜 친구가 한 명 생겼는데 나랑 연관 부서가 아니라 속 편하고 그렇다. 이번에도 친구가 추천해줘서 같이 간 거. 우리 부서도 그 친구 부서도 다 회사에서 좀 제3의 부서로 취급받는 곳이라 통하는 것도 많고. 5만원 주고 스포츠마사지 받는 거 였는데 황송하기 그지없게도 발도 닦아주셨다. 난 역시 이런 대접에 익숙치 않아. 처음 가는 거라 그냥 약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몸에 기별이 별로 안가더라. 토요일 딱 하루 뻐근한 거 좀 없고, 다시 어깨가 천근만근이네.
봄이라 옷 좀 장만하고 구두도 사고 그러고 싶은데,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주말되면 아무데도 가기 싫고. 며칠 전 싸구려 구두를 2개나 구입했는데 하나는 왼발이 너무 작다. 내 발 크기가 애매해서 어떤 브랜드 거는 230 신고 어떤 브랜드는 225 신고 그러는데 이거는 오른발은 딱 맞는데 왼발이 정말 참고 신어보려고 해도 너무 작다. 하루 신고 나갔다가 길에서 신발 버리고 그냥 맨발로 걸어들어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구두 모양이 이상한지 구두가 걸으면 막 벗겨지려고 한다. 첫번째 구두는 만9천원짜리 두번째 구두는 2만 5천원인데 그 2만 5천원 짜리는 구두가 너무 커서 그런 줄 알고 깔창도 깔고 바닥도 붙여서 만원이 더 들었다. 총 5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는데 제기랄 이거 그대로 다 부산 사는 고모 드리게 생겼다. (내가 잘 못신는 구두는 다 고모네 댁으로 보냄)
차라리 그 5만원에 내 돈 더 합쳐서 백화점 가서 좋은 구두 사고 제대로 신을 걸.

아까 어떤 게시판에서 봤는데 오늘 날씨가 환장하게 좋다고 한다. 지금은 점심시간 10분 전. 나는 점심먹고 한옥마을 산책이나 좀 해야겠다. 시간이 날 지 모르겠지만.

Off day.

일상 2008. 4. 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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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너무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잤던 휴가. 민양과 내가 한일은 결국 서울시청에서 만나서 밥 먹고 청계천 좀 구경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기. 난 스타벅스가 좋다거나 거기 커피 아니면 안마신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서울에서 놀기만 하면 스타벅스 혹은 커피빈에 가게 된다. 그냥 뭐 마시면서 수다 떨고 싶은데 일반 카페는 담배피는 사람이 너무 많고, 원래 가던 습관도 있고 해서 결국에는 그런 다국적인 별다방 콩다방에 가게 되는 것. 회사 다니면서 뭘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다면 세계 일주, 애인만들기(애인 만드는 게 언제부터 거창한 게 되버렸다냐) 같은 거창한 건 말 안할거다. 그냥 하고 싶은 건 쉬기, 사람없는 평일 낮에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기 정도다. 이렇게 소박한 소원인데 그게 참 힘들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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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민양이 핸드폰이 없다보니 민양한테 가끔 집에 전화를 하면 이상하게 그럴때마다 민양이 집에 없다. 그래서 맨날 민양 어머님하고 전화를 하는데 우리가 하도 자주 만나니까 민양 어머님이 우리보고 사귀냐고까지 물어보셨다. 그래도 시간 날 때 자주 그리고 오래 만나주는 친구가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애인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친구랑 아무리 친해도 애인이 있어야 한다지만 난 아직 그 단계까진 당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친구 만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 저기 사진에 있던 스탬프 세트는 결국 나도 따라 구입했다. 이제까지 이쁜 스탬프 봐도 꾹꾹 참고 있었던 이유는 한번 사기 시작하면 계속 살까봐 였는데 이건 꽤 여러개 들어있어서 추가로 안사도 될 것 같다. 4월 들어서 다이어리에 스탬프 엄청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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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하도 무료해서 친구한테 뭐하냐 물어봤더니 지금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 백화점이라도 갈까. 하고 만나서 진짜 백화점에 갔다. 4월 12일에는 원래 아는 언니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는데 몸살기가 있어서 미안하다고하고 약속을 취소했다. 어찌나 미안했든지. 토요일 하루 푹 쉬었더니 몸이 원상복귀가 되고, 엄마 아빠는 큰아빠 농장에 가셨고 집에 혼자 TV만 보고 있자니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같이 만난 친구랑 같이 산 옷은 이제까지 거의 성공을 해서 이번에도 같이 가서 이거 저거 구경을 하면서 여성스러운 옷을 살 것인가 그냥 맨날 입는 청바지를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샀다. 취직하고 얼마간은 이제 나도 직장인~ 이러면서 꽤 여성스러운 블라우스나 치마 같은 거 샀는데 결국 한달에 한번 입을까 말까 한 옷이 되어버리더라. 그리고 우리 회사 그냥 청바지 입고 다녀도 되니까. (심지어 난 구두도 안 신음)
세일이라고 해서 백화점 가서는 세일 안하는 바지를 샀는데, 그 바지 입고 나왔을 때 '야 난 민망해서 이거 도저히 못 입을 것 같다. 어떻게 입어~' 이랬는데 친구 말로는 그보다 더 심한것도 잘만 입고 다닌다고 강권 하는거다. 결국 귀 얇은 나는 10만원이 훌쩍넘는 돈을 주고 그 바지를 사버렸다. 대학 다닐 때는 돈이 없어서 그냥 1~2만원짜리 청바지 입었다. 근데 입는 바지마다 다 허벅지하고 엉덩이는 맞는데 허리는 남아도는 난감한 모습이 되는거다. 내 체형이 이상한 줄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서야 내 체형에 딱 맞는 바지 브랜드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런가 계속 사입게 되네. (이번이 3번째)
다른 얘기로, 난 이번 봄에도 결국 벚꽃놀이를 못갔다. 예전 대학 다닐 때는 학교 안에 벚꽃이 많아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벚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때는 항상 시험기간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밤에 혼자 집에 들어가면서 밤, 4월, 가로등, 벚꽃 등이 만들어내는 쓸쓸한 분위기 때문에 감상적이 되선 '아 오늘밤도 새야 하나' 라고 한숨 쉬곤 했는데. 난 왜 매해 4월은 이렇게 혼자인 것 같은지. 예전 남자친구도 벚꽃피기 전에 입대했고, 걔랑 사귀는 동안에도 벚꽃핀 길을 걸을 땐 항상 혼자였던 것 같다. 유난히 외로운 4월 같으니라고.
대전에서 살던 저층 아파트 화단에는 목련이 엄청 많았다. 사람들은 목련 떨어지면 지저분해서 싫대지만, 벚꽃을 생각하면 맨날 밤에 혼자 터덜터덜 걸어왔던 게 생각나고 목련을 생각하면 중학생이었던 나와 그때 친구들이 생각나서 난 목련이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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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 팔자 좋게 휴가를 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저번주는 너무 지치고 지쳤던 한 주였다. 결국 눈치 엄청 보면서 저 금요일에 쉬겠다고 하고 쉬었다. 몸이 안좋아서 쉬기로한 것이니만큼 별다른 약속은 잡지 않았다. 단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건 CGV 포인트 쓰기.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 모두 이번 4월 30일 날짜로 포인트가 다 소멸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만육백점이나 되는데 영화를 보려고 봤더니 보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저번 포인트 쓸 때는 보고 싶은 게 없었음에도 포인트 쓰는 마지막날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메종 드 히미코' 를 봤는데 재미 없었다. 이 영화 좋았던 사람들 도대체 어느 점이 좋았는지요? 난 진짜 재미없어 죽는 줄 알았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될 것 같아 직원한테 이 포인트로 그냥 영화관람권이나 상품으로 주시면 안되냐고 물어봤더니 작년 12월을 끝으로 그런건 없어지고 포인트는 현장 발권만 된다는거다. 결국 목적 달성 못하고 오후 5시경에 친구랑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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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45번 버스를 탄 나는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냥 종점인 월미도까지 가기로 했다. 그날에서야 안 건데 인천역을 지나서 월미도 가는 길 주변에 피어 있는 나무가 알고보니 다 벚나무였다. 월미도 가는 길에는 남항 입구가 있어서 컨테이너 박스도 산처럼 쌓여있고, 대한제분, 무지개 사료, 대한제당 등 무지막지하게 크고 삭막한 공장들이 즐비하고 바퀴 10개이상 달린 트럭들도 쌩쌩 달리는데 그런 길에 피어 있는 벚꽃이라. 이색적이고 멋질 것 같은데 이미 다 지고 바닥에 그나마 남은 벚꽃잎들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놓쳐버린 것이 원통하기까지 했다.
난 원래 부터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니다 보니 이젠 혼자가 편해진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년에 제분공장 옆 벚꽃을 또 혼자와서 구경하더라도 별 상관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