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런던올림픽이 열린다. 아빠가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집이 같은 집에서 두번째로 올림픽을 시청하는 건 처음이다."라고. (베이징 올림픽, 런던올림픽)  그렇다. 우리집은 8년 이상 한 곳에서 거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집에서 올림픽 뿐 아니고 월드컵도 두차례 봤다. 독일월드컵, 남아공월드컵.

평소 고향사랑이 지극한 아빠를 보면 한 곳에서 오래살면 저런 애정이 생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고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하심) 나도 요즘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인천 전체를 좋아하지 않고, 전국에서 인천만큼 삭막하고 인간미 없는 곳도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운치없고 멋대가리 하나 없는 지저분한 동네를 걷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영화감독이면 우리동네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소설가면 우리동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한다.

나도 이런데,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을 보낸 "고향"이 있는 사람이면 그 곳에 대한 애정은 엄청난 것이겠지. 소설가 이청준도 자기가 자란 고향에 대한 글을 꽤 많이 남겼으니까. 그리고 나도 태어나서 7살까지 살았던 강원도에 대한 아련함 같은게 있으니까 말이다. 기억도 거의 없는데.

 

서두가 길었지만, 저번 주 살을 빼겠다는 의지가 갑자기 불타올라서 우리집에서 자유공원까지 걸어가서 공원에서 평소 안하던 뜀박질을 좀 했는데, 주 초에는 자유공원에 어서 빨리 도달하여 운동을 하고야 말겠단 생각으로 지나가는 길에 있는 꽃이나 건물에 전혀 눈길을 안주다가 금요일 저녁에는 주말을 앞둔 너그로운 마음으로 사진도 찍고 천천히 동인천 시내를 걸었다.

 

 

자유공원 가는길의 작은 꽃밭

 

내가 본 우체국 중 제일 예쁜 인천 우체국. 저런 우체국에서 애인한테 쓴 편지 부치고 싶다.

 

1923년에 건축되었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인성여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길에 있는데, 교정이 아담하고 예뻤다.

 

동인천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카페. 이 카페 말고도 예쁜 카페가 많아서 친구와 언제 한번 날 잡아 가기로 했다.

 

 

인천항 개항이 1883년 이었고, 개항 후 일제시대 그리고 한 20년 전까지는 우리 동네가 인천에서 제일 잘나가는 동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 일본애들이 지어놓은 건물이나 집이 있고, 거리 구획도 일본 여행 갔을 때 본 거랑 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동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 관광특구로 조성해서 나무와 꽃도 잘 심어놓았고, 오래된 건물들도 잘 보존하고 있어서 걷는 재미가 좀 있다.  

자유공원 가는 길에 있는 인성여고와 제물포고는 내가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의 모습이고, 그 안에서 뭔가 재미난 스토리가 마구마구 생겨날 거 같이 낭만적인데, 썩을 제물포고가 우리동네 후졌다고 송도로 이전계획을 세워놔서 동네 사람들이 결사반대 데모 중이다. 아니 인천항 보이고 자유공원에 꽃피고 부지도 엄청 넓고 좋은데 왜 망해가고 유령도시같은 송도로 간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제물포고가 빠져나가면 아마 우리동네는 더 황량해지겠지. 지금도 충분히 황량한데.

 

 

이 건물 역시 요코하마에서 봤던 옛날 외교관 주택이랑 건물양식이 약간 비슷하다. 저 에어컨 실외기 좀 어떻게 하면 안되나... 건물은 예쁜데 확 깼다.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혼자 꽃구경 제대로 했다.

 

혼자 사진찍고 있는 내또래 여자. 나도 저렇게 혼자 사진 찍었다.

 

내가 뛰는 코스 중 하나. 금요일 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뛸 수 없었다.

 

자유공원에 있는 벚나무는 웅장했다!!!!

 

조명으로 물든 벚꽃.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문.

 

원래는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편인데, 이 날은 위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문을 기필코 통과하고 싶은 맘이 들어서,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봤다. 금요일 밤이라 음식점에는 사람이 가득하고, 자유공원에서 꽃구경 하는 사람들 얼굴이 다 즐거워보이고 엄마아빠랑 놀러온 애들도 귀엽기가 그지 없었다.  으으 하지만 목줄 안매고 자기네 집 개 산책시키는 사람들은 좀 때려주고 싶었다. 난 아무리 작은 치와와여도 목줄 안걸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개는 엄청 무섭던데. 자유공원 안내에도 분명히 목줄 매라도 되어 있는데 한글 못 읽으시나들. 

검정 츄리닝 바지에 하늘색 가디건을 입은 돈 한푼 없이 버스카드 달랑 한장을 든 나는 차이나타운을 타박타박 걸어서 내려왔다. 근데 한참 계단을 내려와보니 바로 앞에 인천역이 딱 보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집에서 인천역까지 걸어오다니. 좀만 더 걸어가면 월미도라 더 걸어갈까 하다가 너무 시간이 늦어서 포기했다. 근데 문제가 난 동인천역에서 우리집 오는 길은 알아도, 인천역에서 우리집 오는 길은 모른다는 것 이었다. 아무 버스나 타면 동인천역으로 가겠지 싶어서 인천역 맞은편에서 28번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가 화평동을 가더니 점점 서구 가좌동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또 아무 정류장에나 내려서 동인천역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걷다보니 여기가 어딘지 대충 어딘지 감이 왔다.

아. 이런 것이 "동네느낌?" 흐흐흐.

 

그렇게 황량한 동인천역 뒷골목을 걷고 있자니 좀 무서워서 서둘러 걸어 동인천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부턴 도저히 우리집까지 걸어갈 힘이 안나서 난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항상 타는 마을버스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고,

'오늘 엄청 걸은 거 같은데?' 하고 체중을 재보니 1키로가 빠져 있었다. 난 겨우 1키로에 "얏호!!" 하고 쾌재를 부르고 야구를 시청하고 설레는 주말을 기다리며 금요일 밤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