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간 동생한테 면회 갔다온 얘기를 갑자기 하고 싶었다. 우리엄마는 필요이상으로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싸 가는데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저번에는 심지어 새우랑 꽃게를 저기 연안부두 가서 엄청 많이 사서 삶아갔다. 내동생은 굿 초이스라고 미친듯이 새우 까먹고. (맛있긴 하더라)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원래 맨날 토요일에 가다가 일요일에 한번 면회간 적 있었다. 우리 엄마는 동생이 다니는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가봐야겠다고 가자고 그래서 결국 우리 가족 4명이 군대에 있는 교회에 갔다. 결국 우리만 사복입고 맨 뒤에 앉았다. 사람들이 신기한지 힐끔힐끔 쳐다보고 어휴. 진짜. 찬송가도 거기서 들으니 완전 군가야.

이제 거기 젊은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는데 군인 애들이 아예 대놓고 엎드려서 자는거다. 내동생 말로는 교회오는 이유가 일요일에 내무반에 멀뚱멀뚱 앉아있기 싫어서 그냥 자러 오는 거랜다. 뭐 그 목적에 충실하게 거기 있는 거의 3분의 2 이상이 다 엎드려서 자는데 설교하던 목사님 옆에 있던 드럼에서 갑자기 챙! 하는 소리가 나는거다. 그래서 아니 이건 뭔소리인가. 하고 쳐다봤더니 그 목사 왈 이제부터 예배시간에 2분의 1이상이 자면 드럼을 치기로 했다고. 크크크크. 별 거 아니지만 예배보다 갑자기 드럼 치는 그 상황과 아이디어가 너무 웃겨서 혼자 킥킥 댔다.

내동생 밑으로는 이제 3명이나 들어오고 대구에서 온 애는 오자마자 일주일만에 12키로가 빠져서 얼핏보면 주진모 같이 생긴 미남이 되었다고 그러고 울산에서 온 애는 경상도에서 왔는데도 사투리 하나도 안 쓰는 애고 서울에서 온 애는 뭔가 맘에 안든댄다. 서울에서 온 애가 89년 생이랜다. 맙소사. 군인아저씨가 89년생이래. 대단하다.
국군의 날 행사 때문에 두달 넘게 연습하고 대통령 앞에서 깃발들고 미친듯이 뛰어다녔는데 휴가도 안준다고 짜증부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2008년 내에는 휴가 못나올 듯 싶다. 아.. 추운데 또 우리 엄마는 면회가자고 하겠지. 내동생네 부대 짱추워. 미안하다 동생아. 난 이기적인 누나야. 누나는 추워서 가기 싫어.

대학 때 그나마 최고 친했던 친구를 안 만난지 1년이 되간다. 보고싶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이 친구 뿐 아니라 대학 때 알던 모든 사람을 안만난지 거의 6개월 이상이다. 이상하게 시간이 안나는데 주말에 보면 하는 건 잠 퍼자고 인터넷 하는 것 뿐이니..
갑자기 허하고 그래서 걔 이메일로 꽤 긴 편지를 보냈다. 답장 확인하는 걸 까먹고 있다가 일주일 지나서 확인했는데 너무 짧은 답장이 와 있었다. 별 거 아닌데 갑자기 너무 외로웠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매주 누구 만날지 시간표 만들어서 만나고 다녀야 모든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걸까?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들구나.

오늘 아침에 아파트 통로를 나왔는데 바닥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눈은 오는데 우산가지러 올라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눈 맞으며 걸어갔다. 새벽에 혼자 출근하면서 맞는 첫눈이라. 꽤 괜찮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시 외로워졌다. 이젠 새벽이 괴로운 계절 시작이구나.

오늘은 회사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꼬였다. 짜증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데 그나마의 위로는 내 눈이 겉 보기에도 조금 부어 있어서 이번 토요일 행사에는 빠지게 되었다는 거. 나 이번 토요일에 안과나 가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 대학 선배가 보잰다. 그 선배는 참~~ 특이한게 꼭 내가 동생면회에 가 있거나 다른 친구 만날 약속 잡아놓고 이러면 뭐하냐고 물어보더라. 크크큭 안만난지 거의 8개월이 넘었네. 아 근데 별로 안 땡긴다. 이제 사람 만나는 것도 어색해져버렸는지 귀찮다.


군인 동생

일상 2008. 4. 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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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첫 면회.
난 군인들한테 면회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예전 남자친구는 공군이라 6주마다 한 번 나오는데 무슨 면회냐 싶어서 한번도 안갔다. 그리고 너무 산골이라서 혼자 면회갈 엄두도 안났고. (그래 결국은 사랑이 부족했던거야)
동생네 부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차를 타면 한시간 정도면 충분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별 부담은 없었다.
우리 엄마는 첫 면회라고 음식을 너무 오바해서 많이 싸서 민망할 정도였다. 동생이 아직 오바로크가 안되서 다른 사람 이름 적혀진 군복을 입고 나왔더랬다. 우리 엄마는 눈물 뚝뚝 흘리고, 동생도 눈물 뚝뚝. 하여튼 우리 엄마는 좀 극성스러운 면이 있다니까. 난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그런가 눈물은 커녕 무덤덤 했는데.
처음 면회가서는 동생이 있는 지역대 건물에 들어갔다. 70년대 지어진 시골 교육청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로 치면 행정실 같은데 들어가서 얘기를 하는데 거기 있는 사람이 엄마 아빠를 어떻게든 안심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예리한 내 눈으로 보건데 거기서 말했던 사람 우리회사 루꼴라랑 성격이 99% 일치할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동생한테 물어보니 싱크로율 거의 100%. 그래 어딜가나 그런 골치 아픈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아주 흔한 유형의 사람이기도 하고.
그 행정실서 들은 얘기 중 가장 웃긴 얘기는 동생이 여기 부대(그냥 육군보다 훈련 多)  로 오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여자관계가 깨끗해서. 라는 거다. 상담 하는데 "여자관계가 아주 깨끗하더라구요. 내가 하도 여자친구 때문에 이상한 행동 하는 애들을 많이 봐서 이번에 뽑은 애들은 다 여자친구 없는 애들로만 뽑았어요." 하는거다. 동생한테 " 이야.. 여기서는 여자친구 없는게 특장점이다?" 하고 놀렸다. 여자친구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것 때문에 특공부대오고. 어떻게 생각하면 불쌍한거지. 훈련이 많은 대신 잡일은 없다고 하니까 나름 장점이 있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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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두번째 면회.
4월 19일은 원래는 부대에서 벚꽃축제라고 한건데, 벚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서 한일은 앞에 블로그에도 썼듯이 동생 내무반 사람들 밥 먹이기. 그러다가 그 한눈에 반한 병장을 본 거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무슨 군인들이 준비한 공연를 앉아서 구경하는 거였는데, 군복입고 creep 을 부르고, 마지막엔 땡벌로 마무리 되는 신기한 공연이었다. 애들이 어찌나 땡벌을 크게 따라 불렀던지 (당신을 사랑해요 땡벌~ 땡벌!!!!)  엄마, 아빠, 나 는 면회 갔다온 며칠동안 땡벌 이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엄마 아빠한테 "아.. 나 계속 땡벌 생각나 미치겠어. " 라고 말했더니 "너도 그러냐." 고 하셨음.
공연은 운동장 천막 아래서 봤는데, 테이블엔 과일이랑 먹을 게 좀 있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남자들이 많은 곳에는 있어본 적이 없어서 공연을 볼 때도 정신집중해서 공연하는데만 눈을 집중하다가 테이블에 있는 거 뭐 좀 먹을까 하고 뒤 돌았다가 허걱 하고 다시 앞만 봤다. 내 뒤에 30명쯤 되는 군인들이 드글드글 하고 일순간에 걔네들 모두와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원래 프로 마술사로 활동하가다 입대한 애 공연을 봤다. 근데 정말 프로로 활동한 거 맞나? 너무 어설펐다. 물론 기구가 얼마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빈약한 음향효과와 무대 때문에 더욱더 그 허술함이 부각되는 마술이었다. 거기 서서 마술하고 있는 애도 불쌍하고 보고 있는 우리까지 다 불쌍해지는 마술이랄까?
근데 그 내가 눈여겨 보고 있던 병장은 연신 내 뒤에서 큰소리로 "언빌리버블!!!" 을 외치는거다. 웃겨서 난 쿡쿡대며 웃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걔한테 관심 있어서 stereo 로 들린게 아니라 걔 목소리 자체가 원래 큰 걸지도.  아님 둘 다 거나.
공식적 행사는 그걸로 끝나고 우리는 부대 안에 있는 동산 가서 동생이랑 마지막 인사를 한답시고 다시 자리를 펴고 앉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거기서 그냥 누워서 잠들었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자고, 집에 와서도 샤워하고 8시도 안되서 바로 잤다.

p.s 민양하고 민양동생한테 면회 갔다온 얘기를 하는데, 동생네 부대가 아주 약간 특수부대라 애들이 다 키가 크다고 완전 지상낙원이라고 얘기했더니 민양 동생이 "나 내일부터 입대준비한다." 이래서 엄청 웃었다. (민양동생은 88년생 여자) 그리고선 진짜 진지하게 "언니. 그 여군은 공부 잘해야 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어보는거다. 또 다른 내 친구한테는 "나 한달내내 볼 남자 다 보고 온 거 같애." 라고 얘기했더니 다음번에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난리다. 아.. 내가 '젊은'남자 볼 수 있는 기회가 동생 면회 가는 거 밖에는 없다니. 나 좀 불쌍한 거 같다.

내동생이 자대 배치를 받고 우리는 4월 5일에 면회를 갔다. 특공부대여서 그런건지 그 부대가 원래 특이한 건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랑 난 내동생 내무반까지 구경가고, 부대 내 행정실에서 행정보급관, 지역대장, 심지어 대대장까지 면담을 했다. 뭐 난 옆에서 구경하는 거였지만 말이다.
아.. 동생 면회 간거에 대해서는 워낙 할말이 많아서 나중에 또 다시 쓰겠다.
근데 그 이후로 내동생이 전화해서 말하길 군대에 있는 모든 간부가 동생을 볼때마다 나랑 2지역대장 이랑 만나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는 거다. 2지역대장이면 중위라는데. 나 참. 군대에서 소개팅 제의가 들어올 줄이야.
우리가족은 4월에 면회 갔으니 이젠 5월달에나 다시 면회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4월 19일에 걔네 부대에서 원래 봄마다 하는 행사가 있다는거다. 우리가 이런 저런 눈치로 살펴 본 결과 그 날은  막내네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것 같고 행정보급관이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고 해서 우린 2주만에 또 면회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걔네 내무반 애들한테 먹을 거 줘야 하는 거라서 엄마도 도와줘야 하고 해서 결국 나도 또 갔다.
근데 진짜 4월 19일에 갔을 때도 그 부대 모든 간부가 다 제2지역대장 잘생겼다고 한번 만나보라고 하는게 아닌가. 동생이 이미 누나가 생각없다고 했다고 말해놓은 상태라 나도 뭐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또 간부들과 인사를 끝마치고 동생 내무반 애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여자초과인생의 표본인 내가 아무리 군인 어린이 들이지만 남자에 둘러싸여 있으려니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애들 밥먹고 있는 걸 훔쳐보고 있었다.
10명도 안되는 애들이 밥 먹고 있는데 2시방향에 앉아서 밥먹는 놈을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다른 애들은 다 2D 로 보이는데 어떤 놈 하나만 3D  입체영상으로 보이는 느낌이랄까? 서로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난 갑가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난 결국 그 이후로 놈을 한번도 제대로 못 쳐다봤는데 그러고나니 또 그 다음부턴 다른 소리는 다 mono 인데 그 놈 목소리만 stereo 로 들리는 거다.
그 놈은 이제 제대 40일 남겨놓은 병장이라는데. 미쳤나. 어려도 한참 어린놈한테. 동생 부대 소대장이 83년생이라는데 말 다했지.
결국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외면하면서 집으로 왔고 다음날 동생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내가 집에 가고 나서 그 병장이 나한테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내가 자기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는거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무진장 좋았다. 어찌 안 좋을 수가 있나. 눈 한번 못 마주치고 말 한번 못하고 헤어졌지만 눈에 들어왔던 남자가 관심을 표명하는데. (헉 심지어 나 그 병장 이름도 몰라)
한편으로는 또 슬펐다. 그 병장이 내 나이를  동생한테 듣고 쇼크 받았다는 거다. (자기 또래인 줄 알았다나) 하긴 나도 쇼크 받았다. 86이라니! 아.. 86. 이 3살 아래라는 나이는 호감을 잃기에는 충분한 나이 차 아닌가. 적어도 나한테는. 내가 늙었음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4월 19일 이후로 가끔 그 병장이 생각난다. 그 병장이 좋아졌다기 보단,
처음보고 서로 괜찮게 생각했다는 그 상황 자체가 신기하고 좋다.
말로만 듣던 게 가능한 거구나. 하는 희망도 갖게 되고 또 나는 남한테 호감을 갖는 데 단 1초도 안걸리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다.

참고로 19일에 하도 들어서 결국 이름까지 외워버린 2지역대장님은 그날 다른데서 훈련을 받느라 자리에 없었다. 소개팅 할 생각이 없긴 해도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긴 했는데. 흣.


p.s 백만년만의 여유라 오랜만에 2개나 포스팅. 아. 내가 4월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렇게 4월이 날 배신하나. 너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