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생이 자대 배치를 받고 우리는 4월 5일에 면회를 갔다. 특공부대여서 그런건지 그 부대가 원래 특이한 건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랑 난 내동생 내무반까지 구경가고, 부대 내 행정실에서 행정보급관, 지역대장, 심지어 대대장까지 면담을 했다. 뭐 난 옆에서 구경하는 거였지만 말이다.
아.. 동생 면회 간거에 대해서는 워낙 할말이 많아서 나중에 또 다시 쓰겠다.
근데 그 이후로 내동생이 전화해서 말하길 군대에 있는 모든 간부가 동생을 볼때마다 나랑 2지역대장 이랑 만나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는 거다. 2지역대장이면 중위라는데. 나 참. 군대에서 소개팅 제의가 들어올 줄이야.
우리가족은 4월에 면회 갔으니 이젠 5월달에나 다시 면회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4월 19일에 걔네 부대에서 원래 봄마다 하는 행사가 있다는거다. 우리가 이런 저런 눈치로 살펴 본 결과 그 날은  막내네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것 같고 행정보급관이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고 해서 우린 2주만에 또 면회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걔네 내무반 애들한테 먹을 거 줘야 하는 거라서 엄마도 도와줘야 하고 해서 결국 나도 또 갔다.
근데 진짜 4월 19일에 갔을 때도 그 부대 모든 간부가 다 제2지역대장 잘생겼다고 한번 만나보라고 하는게 아닌가. 동생이 이미 누나가 생각없다고 했다고 말해놓은 상태라 나도 뭐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또 간부들과 인사를 끝마치고 동생 내무반 애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여자초과인생의 표본인 내가 아무리 군인 어린이 들이지만 남자에 둘러싸여 있으려니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애들 밥먹고 있는 걸 훔쳐보고 있었다.
10명도 안되는 애들이 밥 먹고 있는데 2시방향에 앉아서 밥먹는 놈을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다른 애들은 다 2D 로 보이는데 어떤 놈 하나만 3D  입체영상으로 보이는 느낌이랄까? 서로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난 갑가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난 결국 그 이후로 놈을 한번도 제대로 못 쳐다봤는데 그러고나니 또 그 다음부턴 다른 소리는 다 mono 인데 그 놈 목소리만 stereo 로 들리는 거다.
그 놈은 이제 제대 40일 남겨놓은 병장이라는데. 미쳤나. 어려도 한참 어린놈한테. 동생 부대 소대장이 83년생이라는데 말 다했지.
결국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외면하면서 집으로 왔고 다음날 동생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내가 집에 가고 나서 그 병장이 나한테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내가 자기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는거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무진장 좋았다. 어찌 안 좋을 수가 있나. 눈 한번 못 마주치고 말 한번 못하고 헤어졌지만 눈에 들어왔던 남자가 관심을 표명하는데. (헉 심지어 나 그 병장 이름도 몰라)
한편으로는 또 슬펐다. 그 병장이 내 나이를  동생한테 듣고 쇼크 받았다는 거다. (자기 또래인 줄 알았다나) 하긴 나도 쇼크 받았다. 86이라니! 아.. 86. 이 3살 아래라는 나이는 호감을 잃기에는 충분한 나이 차 아닌가. 적어도 나한테는. 내가 늙었음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4월 19일 이후로 가끔 그 병장이 생각난다. 그 병장이 좋아졌다기 보단,
처음보고 서로 괜찮게 생각했다는 그 상황 자체가 신기하고 좋다.
말로만 듣던 게 가능한 거구나. 하는 희망도 갖게 되고 또 나는 남한테 호감을 갖는 데 단 1초도 안걸리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다.

참고로 19일에 하도 들어서 결국 이름까지 외워버린 2지역대장님은 그날 다른데서 훈련을 받느라 자리에 없었다. 소개팅 할 생각이 없긴 해도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긴 했는데. 흣.


p.s 백만년만의 여유라 오랜만에 2개나 포스팅. 아. 내가 4월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렇게 4월이 날 배신하나. 너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