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동생

일상 2008. 4. 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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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첫 면회.
난 군인들한테 면회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예전 남자친구는 공군이라 6주마다 한 번 나오는데 무슨 면회냐 싶어서 한번도 안갔다. 그리고 너무 산골이라서 혼자 면회갈 엄두도 안났고. (그래 결국은 사랑이 부족했던거야)
동생네 부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차를 타면 한시간 정도면 충분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별 부담은 없었다.
우리 엄마는 첫 면회라고 음식을 너무 오바해서 많이 싸서 민망할 정도였다. 동생이 아직 오바로크가 안되서 다른 사람 이름 적혀진 군복을 입고 나왔더랬다. 우리 엄마는 눈물 뚝뚝 흘리고, 동생도 눈물 뚝뚝. 하여튼 우리 엄마는 좀 극성스러운 면이 있다니까. 난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그런가 눈물은 커녕 무덤덤 했는데.
처음 면회가서는 동생이 있는 지역대 건물에 들어갔다. 70년대 지어진 시골 교육청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로 치면 행정실 같은데 들어가서 얘기를 하는데 거기 있는 사람이 엄마 아빠를 어떻게든 안심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예리한 내 눈으로 보건데 거기서 말했던 사람 우리회사 루꼴라랑 성격이 99% 일치할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동생한테 물어보니 싱크로율 거의 100%. 그래 어딜가나 그런 골치 아픈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아주 흔한 유형의 사람이기도 하고.
그 행정실서 들은 얘기 중 가장 웃긴 얘기는 동생이 여기 부대(그냥 육군보다 훈련 多)  로 오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여자관계가 깨끗해서. 라는 거다. 상담 하는데 "여자관계가 아주 깨끗하더라구요. 내가 하도 여자친구 때문에 이상한 행동 하는 애들을 많이 봐서 이번에 뽑은 애들은 다 여자친구 없는 애들로만 뽑았어요." 하는거다. 동생한테 " 이야.. 여기서는 여자친구 없는게 특장점이다?" 하고 놀렸다. 여자친구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것 때문에 특공부대오고. 어떻게 생각하면 불쌍한거지. 훈련이 많은 대신 잡일은 없다고 하니까 나름 장점이 있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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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두번째 면회.
4월 19일은 원래는 부대에서 벚꽃축제라고 한건데, 벚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서 한일은 앞에 블로그에도 썼듯이 동생 내무반 사람들 밥 먹이기. 그러다가 그 한눈에 반한 병장을 본 거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무슨 군인들이 준비한 공연를 앉아서 구경하는 거였는데, 군복입고 creep 을 부르고, 마지막엔 땡벌로 마무리 되는 신기한 공연이었다. 애들이 어찌나 땡벌을 크게 따라 불렀던지 (당신을 사랑해요 땡벌~ 땡벌!!!!)  엄마, 아빠, 나 는 면회 갔다온 며칠동안 땡벌 이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엄마 아빠한테 "아.. 나 계속 땡벌 생각나 미치겠어. " 라고 말했더니 "너도 그러냐." 고 하셨음.
공연은 운동장 천막 아래서 봤는데, 테이블엔 과일이랑 먹을 게 좀 있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남자들이 많은 곳에는 있어본 적이 없어서 공연을 볼 때도 정신집중해서 공연하는데만 눈을 집중하다가 테이블에 있는 거 뭐 좀 먹을까 하고 뒤 돌았다가 허걱 하고 다시 앞만 봤다. 내 뒤에 30명쯤 되는 군인들이 드글드글 하고 일순간에 걔네들 모두와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원래 프로 마술사로 활동하가다 입대한 애 공연을 봤다. 근데 정말 프로로 활동한 거 맞나? 너무 어설펐다. 물론 기구가 얼마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빈약한 음향효과와 무대 때문에 더욱더 그 허술함이 부각되는 마술이었다. 거기 서서 마술하고 있는 애도 불쌍하고 보고 있는 우리까지 다 불쌍해지는 마술이랄까?
근데 그 내가 눈여겨 보고 있던 병장은 연신 내 뒤에서 큰소리로 "언빌리버블!!!" 을 외치는거다. 웃겨서 난 쿡쿡대며 웃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걔한테 관심 있어서 stereo 로 들린게 아니라 걔 목소리 자체가 원래 큰 걸지도.  아님 둘 다 거나.
공식적 행사는 그걸로 끝나고 우리는 부대 안에 있는 동산 가서 동생이랑 마지막 인사를 한답시고 다시 자리를 펴고 앉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거기서 그냥 누워서 잠들었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자고, 집에 와서도 샤워하고 8시도 안되서 바로 잤다.

p.s 민양하고 민양동생한테 면회 갔다온 얘기를 하는데, 동생네 부대가 아주 약간 특수부대라 애들이 다 키가 크다고 완전 지상낙원이라고 얘기했더니 민양 동생이 "나 내일부터 입대준비한다." 이래서 엄청 웃었다. (민양동생은 88년생 여자) 그리고선 진짜 진지하게 "언니. 그 여군은 공부 잘해야 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어보는거다. 또 다른 내 친구한테는 "나 한달내내 볼 남자 다 보고 온 거 같애." 라고 얘기했더니 다음번에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난리다. 아.. 내가 '젊은'남자 볼 수 있는 기회가 동생 면회 가는 거 밖에는 없다니. 나 좀 불쌍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