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봄봄봄 1편

일상 2017. 5. 11. 16:58

01234567891011121314151617


 1.  콜드플레이 콘서트 끝나고 하남 사는 친구네 집에 갔었다. 원래는 그냥 집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9호선 줄이 계단까지 늘어져 있고, 늦게라도 9호선을 탄다 한들, 노량진에서 1호선 막차를 놓칠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옷이랑 세면도구를 챙겨오긴 했던 참이라, 잠실에서 하남까지 버스타고 갔다. 친구가 하남에서 잠실 가깝다고 하남도 살 만 하다고 했는데, 내 기준에서는 엄청 멀었다. 그리고 하남까지 가는 파란 버스 배차간격은 왜 그리 길든지.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탑승하여 여행하는 기분으로 바깥 풍경을 보는데 비싸다는 동네 지나갈 때는 과연 쾌적함이 느껴졌고, 서울 변두리 지날 때에는 여기가 서울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낙후함이 느껴졌다. 버스타고 가며 오늘 콘서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말할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네 집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친구의 고양이를 봤다. 친구가 자기네 고양이는 모르는 사람 오면 안보이는데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는데, 나를 보고도 별로 경계를 안한다고 신기하다고 했다. 복실복실한 연회색 털에 동그란 눈을 가진 고양이가 먼 발치에서 '넌 뭐냐?' 라는 표정으로 내 행동을 빤히 쳐다보는데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면서 가까이는 오지 않았다. 내가 자려고 누워서 불을 끄니 그제서야 고양이는 내 머리 맡으로 와서 정수리 냄새를 킁킁 맡았다. 영광스럽게도.

  이번에 친구네 집에 가서 대기업의 위엄 같은 걸 느꼈다. 친구는 여전히 몸이 좀 아프긴 하지만, 첫 직장이자 현재 직장인 국내 굴지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있다. 경력도 계속 쌓고 있고, 연봉도 계속 올랐겠지. 아무리 친구사이여도 연봉이 얼마냐 물어볼 순 없는거라, 친구의 월급이 얼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날 친구네 집 가서 친구가 버는 돈이 어마어마함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내가 지금 하는 일보다 훨씬 힘드니 그 보상으로 많은 월급을 받겠지.

  친구는 대학졸업후  근 10년만에 하남시내에 대단지 아파트를 부모 도움없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사고, 며칠 전에는 새 차까지 샀다. 친구가 너무 잘나서 대단하다는 생각 자주 하고 몸도 안좋은데 좋은 아파트에 살게 되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대체 30대 중반이 되도록 뭐한건가. 싶었다.

  다음날 하남에서 인천까지 지하철 타고 왔는데 배차간격이 똥이라, 3시간 넘게 걸렸다. 오는 길에 핸드폰을 두번이나 떨어뜨려서 산지 3개월도 안된 핸드폰이 순식간에 1년은 쓴 거마냥 후져졌다. 액정 안 깨진 건 다행이지만.

 

2. 친구네집 가서 한번도 느끼지 못한 박탈감 같은 걸 느낀 건 이유가 있다. 요즘 내 모든 역량을 절약에 쏟고 있기 때문이다. 3월말에 목돈 쓸 일이 있어서, 3개월 할부로 목돈을 쓰고 (내 기준에서는 엄청난 목돈) 건강보험정산까지 하고나니, 정말 돈이 없어도 너무 없다.


2번 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짐. (회사에서 쓴건데, 바빠서 더 쓸 시간이 없는 관계로. )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난 내가 다시 학생이 되는 꿈을 자주 꾼다. 교복입고 교실에서 공부하는 꿈 말이다. 난 고등학교 때 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좋은 대학교 입학하고 싶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질 않았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공부가 싫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나 혼자 좋은 대학 가고싶어서 아둥바둥 대는데 우리 엄마아빠는 전문대 가서 돈이나 벌어오면 된다는 주의였다. 나보다 못하는 애들도 좋은 대학 보내려고 부모님이 안달인데, 나쁘지 않은 성적이고 공부를 싫어하지도 않았는데 전문대를 가거나 지방 국립대 전북대 전남대나 가라는 성화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시달렸다. 전학간 학교는 최악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배운 과목 중 처음부터 끝까지 과목을 가르쳐준 적이 거의 없었다. 근데 그 시골에서는 항상 그렇게 해오고 그게 당연했다. 불만을 갖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국어, 물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은 진짜 나 혼자 책보고 공부한 거다.
대학시절에도 취직은 되겠냐, 돈은 벌겠냐 부터 시작해서 내가 돈을 벌어오지 못할 미래에 대한 걱정에 시달렸고, 직장을 관둘 때는 농담이 아니라 부모님은 며칠간 나를 쳐다도 안보셨다. 백수로 지낼 때는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말대로 간호전문대 들어가서 취직이나 할 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지만, 내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을 때 그냥 엉덩이만 쑥 밀어 주셨으면 내 마음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우울하지도 않았을거고, 교실에서 교복입고 공부하는 꿈을 주기적으로 꾸지 않았을텐데.
내가 딸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진짜 돈이 너무 없어서?  요즘도 매일 돈없단 소리에 시달리는데 솔직히 지금 월급으로 집에 내놓을 돈도 더는 없고. 더 두려운 건 나중에 내 자식도 이런 미련에 시달릴 것 같아서... 두렵다. 돈이 진짜 웬수고 돈에 꿈도 결정나고 인생도 결정나고, 마음도 결정나고, 사랑도 결정나고, 성격도 결정나는 거 같다. 돈 싫다.
근데 난 그 드럽고 치사한 돈조차 제대로 못벌어. 그렇게 박박 우겨서 대학 들어와서 졸업했으면 제대로 풀렸어야 할 거 아냐.  4월만 되면 왜 사람은 비관적이 되는거지. 유령처럼 지옥같은 고등학교를 왔다갔다하는 버스 안에서 벚꽃을 보면 그냥 죽고 싶단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그런것인가. 물론 내가 부잣집에서 안정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어도 내 인생은 딱 이 정도 수준이었을 수도 있는거지만... 10년 된 일에 이렇게 미련 갖고 우울해지는 내가 참 싫다. 누가 보면 무서울 정도로 찌질한거지.


카드값 초과

일상 2012. 1. 8. 15:14
난 대학 졸업식에 못갔다.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 아예 작정하고 놀자 싶어서 휴학했을 때 제외하고 예전 회사 관두기 전까지 난 공백 전혀 없이 일만 계속 했었다. 정규직으로 취직되고 나서 약 일년간은 신용카드 없이 살았다. 체크카드로 살다보니 항상 통장잔고에 돈이 있었는데 신용카드를 만든 다음부터는 두둑한 통장잔고를 보기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 월급은 예전회사보다 약 50만원이 줄은 액수, 거기에 사이버대 한학기 수업료가 약 100만원이다. (이건 뭐 학사를 돈으로 사는 수준)
그래서 주기적으로 엄마아빠게 가져다드렸던 돈도 전혀 못드리고 있는 상태이고, 더 문제인건 등록금은 그렇다쳐도 나름 옷이나 신발을 싼 거 사고 안 쓴다고 안 쓰는데도 카드값은 예전 회사 다닐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보니 예금 적금이 만기되어도 밀려 있던 신용카드값으로 다 나가고, 내 손에 쥐고 있는 자산은 27살때나 지금이다 그대로다. 한달에 저금을 하는 돈이 어디에 말하기도 쪽팔린 액수이고..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오다보니 종종 직장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이제까지 갔던 면접에서 모두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없는 내 처지에 난감함을 표했고 결국 다 떨어졌다. 서류에 거짓말로 써놔도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느냐는 대답에는 자신있게 네 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여하튼 결국에는 난 계약기간 끝났으니 넌 짤렸다 하고 짤릴 신세인데, 2010년 4월부터 8월까지 백수로 놀 때 어떻게든 적금이나 예금 안 깨고 버텨보겠다고 카드 리볼빙을 심심치 않게 했었다. 부끄럽지만 그때 당시 병원비, 치과 등으로 인하여 내가 갚아야 하는 할부 총액이 250만원 정도였다. 돈 한푼 안 벌면서 적금 예금 해약을 안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참 기적같은 일이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니까. 
이제 카드 현금서비스도 받아야 하는것인가? 고민할 때 쯤 다행히 취직이되어서 살아났다. 
지금 돈을 벌고 있는데도 저번달도 리볼빙 했고, 이번달도 리볼빙 해야 할 것 같다. 씨티카드는 진짜 나에게 감사해해야 한다. 
전에 두개 가지고 있는 씨티카드 중 한개를 해지하려고 콜센터에 전화했는데 만원 넣어드릴테니 해지 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해지 않고 저번에는 또 오천원을 넣어준다는거다. 그래서 또 해지를 못했다. 그런데 돈 넣어주는 이유가 내 실적이 하도 좋아서랜다. 허허허. 
돈은 쥐꼬리만큼 벌면서 아직도 주제파악을 못하고 이러고 있다. 
다음주에는 외국에서 온 친구와 휴가를 이틀간 가고, 금요일에는 또 2박 3일간 부산고모댁을 간다. 부산 고모께서 한 5년전서부터 한번 내려오라고 성화셨는데 드디어 내려가는 것이다. 내가 부여받은 역할은 부산고모가 동생 양복한벌을 사주기로 했는데 옆에서 감시하면서 되도록이면 비싼 양복을 사게 하는 것이다. 
난 돈버는 사람이라고 아무것도 얻는 거 없을텐데, 팔자에 없던 경부선 한번 타보게 생겼다. 아 근데 내 역할 하나 더 있구나, 동생 차비 대주는 거. 크크크크 KTX 직통 으로 두명 왕복 차비가 25만원이다. 한사람당 편도가 약 5만7천원인데 소요시간 2시간30분, 아 너무 비싼가 싶어서 4시간 40분 정도 걸린다는 고속버스를 보니 고속버스도 4만천원이다. 경부선 ktx 타려면 서울역까지 가야하고 기차시간에 1시간을 더 넣어서 총 소요시간이 3시간 30분인데, 버스는 이제 멀미할까봐 못타겠다. 전에 회식한다고 연수구 쪽으로 학교에서 버스타고 갔는데 멀미나서 한접시도 못먹고 그냥 나와버렸다. 
다음주는 회사도 많이 빠지고 돈은 펑펑 쓰는 한 주가 될 것 같다. 발전이 없구나.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앞으로 모을 일도 없고 또 리볼빙은 리볼빙대로 해야 하고 비싼 리볼빙이자는 이자대로 나가고.
 

돈쓰기

단문 2011. 11. 25. 10:55

25살 때 지금은 민영화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었다. 아르바이트가 그렇듯 내가 하는 일은 잡일이었는데, (크크큭 근데 난 정규직일 때도 지금 계약직도 계속 잡일만 하는거 같아) 회의 준비를 한다며 음료수를 사람 수대로 사서 테이블 위에 놓으란 심부름을 받았다. 그때 당시 음료수 살 돈으로 나에게 배정(?)된 돈은 총 7만원인가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음료수를 열라 넉넉하게 50개 사도 돈이 한참 남았다. 난 음료수만 산 연수증을 법인카드와 함께 드렸다. 7만원보다 한참 모자르게 돈을 쓴 영수증을 본 직원이 "미영씨는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미영씨 사고 싶은 것도 좀 사지. " 이러는 거다. 난 별 대답을 안했는데 결국 그 직원이 지하 매점에서 원두커피 초코렛 휴지 물티슈 등으로 7만원을 가득 채웠다. 그걸 보면서 결국 우리 엄마아빠가 낸 세금은 저런데 다 쓰여지는구나 싶었다.
요즘 학교도 예산 처리 마감일이 다가와서 엄청 분주하다. 내돈도 아닌 돈 쓴 거 처리하느라 나도 죽을 지경. 여하튼 대학생들이 낸 등록금은 이렇게 쓰여지는 것이다. 최신형 컴퓨터와 LED 모니터로 또 회식으로.
교수되는데 돈이 엄청 들고 학생들이 교수에게 지식을 얻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가끔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의식있고 깨여있고는 반값등록금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냥 우리집과 내 통장에는 돈이 참 없는데 어딜가든 돈이 넘치고 다들 돈을 다 쓰느라고 골머리인 것이 아이러니다.

잠이 안온다.또...

단문 2011. 10. 11. 00:54
요즘 학교에서 교수들이랑 일하면서, 그냥 학사만 나온 사람들하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사무치게 한다. 교수 하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어딜가도 대접받을 것 이다. 때문에 누구 명령을 받아본 적도 없고 학교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나를 가끔 미치게 만든다. 전혀 협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25살 이후 돈을 벌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그냥 병신인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어딜가도 이렇게 적응 못하고 홧병날 것 같으면 그냥 내가 병신인거다. 남들은 잘만 사는데 말이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지금 일하면서 배워가는 건 행정력 이라면 행정력인데 좋게 말해 행정력이지 이건 뭐 교수들의 씨다바리 of 씨다바리일 뿐이다.
난 일할 때 똘똘한 편이고 교수들이 뭔가를 얘기하면 나름의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근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거다. 어차피 계약직이라 2년 후 짤리는 거 알고 온거고 1년도 안남아서 참아보려 하지만 몸이 편한 한편으로는 약간의 자괴감을 항상 곱씹으며 돈을 벌고 있는 중이다. 중학교이후로 한번도 어긋난 적 없는 생리주기도 이상해졌다. 날짜가 10일이 지났는데 기별도 없고 배만 묵직하니 아프다.

밥 값 못하고 있다.

일상 2009. 4. 9. 10:48
봄이 되어서 그런가 마음이 붕~ 하고 떠 있는 느낌이다. 요즘 날씨는 또 왜이리 좋은거야.
이렇게 봄에 날씨가 좋으면 언젠가 친구랑 평일 낮에 청계천 가서 룰루랄라 했던 게 생각난다. 사람이 기분을 좀 풀기 위해서는 뭐 대단한 게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그냥 그 정도면 족한데 왜 이런 짧은 시간조차 내기 힘겨워지는 걸까. 그때 점심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 보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난 백수로 놀고 있을 때 조차 직장인이 별로 부럽지 않았다. 취직 안하고 그 후 에서 다이스케마냥 유유자적 사는 게 꿈이었다. 나는야 이기적인 영혼.
예전에 시골살 때 너무 갇혀 있다는 느낌이 싫었는데, 봄하고 여름만은 창밖만 봐도 기분이 꽤 상쾌해지고 그랬다. 일단 우리집 앞에 벚꽃나무가 무지하게 많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까지 있었으니까. 딱 이맘때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연두색 빛 새싹만 봐도 막 심란하고 그랬다.
나도 여자인지라 꽃은 웬만한 건 다 좋아하는데 꽃은 나무에서 피는 꽃이 훨씬 이쁜 거 같다. 벚꽃도 그렇고 복숭아꽃, 사과꽃, 동백꽃, 산수유, 또 나무에 피는 꽃 뭐 있지? 아 목련도 그렇고. 아... 꽃 보고 싶다. 엄마아빠도 맨날 인천에 살다보니 꽃이 피는지 지는지 어쩌는지도 모르겠다고 삭막하다고 하시는데 나도 꽃을 볼 일이 없다. 아 꽃보고 싶다. 그런데 봄에는 꽃도 꽃이지만, 나무에 그냥 작은 잎이 꽃보다 더 이쁠 때도 있는 것 같다. 진초록도 아니고 딱 이맘 때쯤만 볼 수 있는 그런 연두색.
참나. 내가 이렇게 시골을 1g 이나마 그리워하는 일이 있을거라고 누가 알았겠나.
어제는 할 일도 엄청 많았는데 하루 종일 야구관련 기사만 보다가 하루 다 보냈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니 점점 생활에 변화가 생기는구나. 기아는 역시나 꼴찌이지만, 어제 4연패 하는 줄 알았는데 1승해서 기분 좋다.
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보다 못한 연봉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어제 같이 일하는 모습이라면 그 돈도 사실 아깝다. 하지만! 2월부터 너무 업무 때문에 핀치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의 여유가 아주 그냥 꿀맛이었다.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번 일기에도 썼는데, 요즘 없는 월급으로 집안에 일조하고 있어서 보람차기도 하지만 (사실 보람차다고 하면 거짓말) 원래 쓰던 돈이 있어서 그걸 못 줄이다 보니 완전 쪼들리고 있다. 그나마 아주 조금 하던 저금도 전혀 못하고. 나야 뭐 월급이 들어온 것을 보아도 그냥 무덤덤 하지만, 앞으로도 저금을 별로 못할 거라 생각하니 우울하기도 하다. 돈 모아서 하려는 일들도 서서히 이렇게 물거품이 되어가겠구나 생각하니까 우울하다. 그런데 뭐 예전부터 50:50으로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불가능 하다고 해도 장래에 대한 꿈이나 희망 소망 등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현재를 버티는 힘이 되어주니까 내가 나중에 뭘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꽤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내 이렇게 고생해서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단 한가지도 없겠구나 생각하니 좀 허하다.
금요일에는 동대문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이걸 어떤 남자 선배한테 말하니 당연히 퇴폐일 거라고 생각을 하더라. 만약 내가 퇴폐 마사지를 받았다면 이렇게 다른 데 얘기를 하고 다녔겠는가? 기분이 나빠졌다.;; 회사에 나랑 동갑인 얼굴이 엄청 이쁜 친구가 한 명 생겼는데 나랑 연관 부서가 아니라 속 편하고 그렇다. 이번에도 친구가 추천해줘서 같이 간 거. 우리 부서도 그 친구 부서도 다 회사에서 좀 제3의 부서로 취급받는 곳이라 통하는 것도 많고. 5만원 주고 스포츠마사지 받는 거 였는데 황송하기 그지없게도 발도 닦아주셨다. 난 역시 이런 대접에 익숙치 않아. 처음 가는 거라 그냥 약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몸에 기별이 별로 안가더라. 토요일 딱 하루 뻐근한 거 좀 없고, 다시 어깨가 천근만근이네.
봄이라 옷 좀 장만하고 구두도 사고 그러고 싶은데,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주말되면 아무데도 가기 싫고. 며칠 전 싸구려 구두를 2개나 구입했는데 하나는 왼발이 너무 작다. 내 발 크기가 애매해서 어떤 브랜드 거는 230 신고 어떤 브랜드는 225 신고 그러는데 이거는 오른발은 딱 맞는데 왼발이 정말 참고 신어보려고 해도 너무 작다. 하루 신고 나갔다가 길에서 신발 버리고 그냥 맨발로 걸어들어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구두 모양이 이상한지 구두가 걸으면 막 벗겨지려고 한다. 첫번째 구두는 만9천원짜리 두번째 구두는 2만 5천원인데 그 2만 5천원 짜리는 구두가 너무 커서 그런 줄 알고 깔창도 깔고 바닥도 붙여서 만원이 더 들었다. 총 5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는데 제기랄 이거 그대로 다 부산 사는 고모 드리게 생겼다. (내가 잘 못신는 구두는 다 고모네 댁으로 보냄)
차라리 그 5만원에 내 돈 더 합쳐서 백화점 가서 좋은 구두 사고 제대로 신을 걸.

아까 어떤 게시판에서 봤는데 오늘 날씨가 환장하게 좋다고 한다. 지금은 점심시간 10분 전. 나는 점심먹고 한옥마을 산책이나 좀 해야겠다. 시간이 날 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