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의 매주 혼자 영화를 보고 있다.

저번 주에는 싱스트리트를 봤다. 1980년대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귀여운 음악 영화다. 발그레한 볼의 주인공 아이가 내 취향의 미소년이라 보는 재미도 있고, 영화 내내 80년대 팝과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OST 곡이 흘러나와 듣는 재미도 있다.

이 영화 보면서도 느끼는건데, 영화에서 교복을 입는 남자 학교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최근의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도 남자 고등학교는 정말 끔찍하고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번 영화인 싱스트리트도 마찬가지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간 코너가 괴롭힘 당하는 장면을 보니 좀 안타까웠고, 남자끼리 모이면 허구헌날 하는 일이 서열 정하는 것 밖에 없는가 싶어 남자로 사는 것도 참 피곤하겠단 생각했다. 항상 영화나 소설에서 남자 고등학교는 정글 처럼 묘사가 되는데, 이러한 묘사는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대해 묘사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예술에서조차 '난 무시무시한 세계에서 살아남았지. 훗' 이런 식의 마초적 자부심 은근히 드러내는 것은 정말 싫다. (이 영화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

영화를 보니 더블린에 다시한번 가고 싶었다. 아일랜드 자체가 인구도 적고 유럽 대륙과 동떨어진 나라라 그런지,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인데도 시골같이 한가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또 어찌나 친절한지... 1박 밖에  못했지만 정말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도시이다.

영화의 완성도로 보자면, 이 영화에 그리 대단한 점수를 줄 순 없을 것 이다.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미국 영화 중 하나인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의 결말이 떠올랐다.

내가 나이들고 워낙 매사 냉소적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젊음'과 '사랑'이 주된 주제일 경우, 나쁘지 않은 영화와 좋은 영화의 차이는 "젊으니까, 우린 사랑하니까, 다 이겨낼 수 있어." 라는 결말은 전자, "이 세상은 녹록치 않아.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니." 라는 담담한 결말은 후자인 것 같다. 순수한 영화적 메시지에 더이상 감명받지 못하는 나는 타락한 것일까 생각 해보았는데,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가 스무살 쯤 본 영화였던 걸 감안하면 난 원래 이랬다.

주인공인 코너가 좋아하는 '라피나'를 맡은 배우는 전형적으로 서양에서는 좋아하는데 내 눈에는 전혀 예쁘지 않은 (사각 턱에 여성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외모였다. 그리고 그 얼굴이 16살이라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다.

뭐 그래도 2시간 정도 즐겁게 시청했고, Drive it like you Stole it. 은 상큼하고 좋은 곡이라 영화 본 이후 하루에 한번씩은 듣는다.



전자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M83 의 Go 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듣고 반했다. 이 곡에 흐르는 기타 연주가 너무 멋져서 자주 듣고 있다. 연주자가 유명한 분이라는데, 과연 연주가 일품이다.



윤상에 대한 팬심으로 러블리즈의 곡을 다 들어봤는데, 그 중 비밀여행 이라는 곡이 좋아서 자주 듣는다. 가사가 귀엽다. (너와 나 단 둘이라면 좋아~) 하도 들어서 이제 가사도 다 외우는데, 이 곡은 대중들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한 곡인 듯 하다. 왜지?? 좋은데..


우울한 계절

일상 2013. 12. 16. 01:09

  다른 사람도 이렇게 겨울이 되면 우울한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종일 낮잠이나 자고 먹고 그랬다. 부모님이랑 함께 살면 엄마가 방청소도 해주시고, 밥도 해주시고, 청소도, 빨래도 모두 다 해주신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대화를 할 수 있다. 혼자살 때 힘들었던 게 바깥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그 일에 대해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랑 술마시고 실컷 떠들다 와도 버스타고 오는 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중에 이미 다시 우울해져 버리곤 했다.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지독히 싫었다. 하지만, 한가지 좋았던 점을 꼽자면 (아마 이게 유일하게 좋은 점 일 거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었다는 거다. 부모님이 계시면 마음껏 울 수도 없다. 긍정적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정적 정서를 드러내면 부모님이 너무 걱정을 하신다. 어렸을 때는 문 걸어잠그고 울고 그랬지만, 다 커서는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별로 울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 감정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우울해도 예전보다 덜 우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정이 메말랐을지도 모르고.

  난 울고나면 후련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에는 동조할 수 없다. 울고나면 후련해지긴 개뿔. 오히려 더더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세상 살아 뭐하냐. 하는 생각만 들게 되더라. 나는. 그러니까 12월 내내 한번도 울지 않기로 오늘 밤에 다짐을 해본다. 

  

  12월에 들어오면서 일이 많아져서 퇴근시간이 늦어져서 몸이 피곤하니까,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정신은 결국 신체 상태의 반영이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운전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부터는 서운분기점에서 차선 변경하는 것이 까다로워서 피했던 외곽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밤에 그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저 멀리 정면으로 인천의 야경이 보인다. 야경을 보다보면 기분이 아득해지고, 어둠 속에서 속도를 한껏 내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거기에 배경 음악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내 하루의 가장 완벽한 짧은 순간이 된다. 어쩌면 내가 이 퇴근길을 달리려고 오늘 하루 개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 배경음악은 Gorillaz 음악인데, 지금 내가 쓰는 일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내가 더블린 여행가서 돈 오백 들여와서 왜 나는 다쳐서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혼자 서러운 엉엉 울었을때 Black Bird 는 완벽한 배경음악이었다. 근데 웃긴 건 그 배경음악을 내가 유튜브에서 찾아서 손수 재생을 했다는 것이다. 크크크크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우울하고 비통한 사람에게 딱 맞는 배경음악이 나오듯 내가 딱 그 음악을 재생했다. 

  한참 울다가, 이런 와중에서도 배경음악 틀어놓는 내가 너무 웃겨서 피식 웃고 다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Black Bird는 내가 울기 직전에 갔던 술집에서 연주하던 아저씨가 기타 조율 중에 잠깐 쳤기 때문에 머릿 속에 띠리링 하고 떠올랐고. 


  오늘 일기를 쓴 게 하루종일 한 짓 중 제일 의미있는 짓이었다. 다행이군. 




여행 후

일상 2013. 9. 29. 23:28

 런던이랑 서울과 시차가 꽤 많이 나서, 나는 런던가서도 한동안은 새벽 5시에 일어나고 한국와서는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그랬다. 저번주에는 3시 쯤에 잠들고, 또 언젠가는 5시까지도 잠을 못자서 회사에 앉아 있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눈치 안보고 6시반 땡하자마자 일어나서 바로 집으로 갔다. 운전하면서도 어찌나 졸리든지.

 아무래도 다음 주 중에는 꽤 바쁜 일이 기다리고 있던데, 아마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회의도 하겠지. 끔찍하다. 휴. 회의 때 또 무슨 소리를 하실 것인가... 

 직장인이 되어서 여행을 가서 좋은 건 딱 하나인 거 같다. 당분간은 아무도 날 못 건든다는 거. 설령 큰 일이 터졌다 해도, 비행기 타고 날아오라고 하진 못할테니까 말이다. 

 어제는 10월 5일에 하는 the killers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1집만 좋아하는데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소리를 좀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다른 더 좋은 공연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별로 없더군. 프란츠 퍼디난드보다는 그래도 킬러스를 더 좋아하니까. 1집 이외 다른 앨범은 거의 안들었지만, hot fuss 앨범은 1번 부터 끝 곡까지 다 가사 외우니까. 공연 위해서 다른 앨범 찾아듣거나 그러진 말아야지. 

 런던에서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밴드는 Arctic Monkeys 인 거 같았다. 음악도 많이 나오고 포스터도 많고 TV에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관심 갖고 들어봤는데 영 별로네. 런던 음식은 지독하게 맛없지만, 아무 음식점을 들어가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많이 나와서 좋았다. 오래된 앨범인 Ok computer 에 들어있는 곡도 꽤 들었다. 

 그리고 런던에는 잘생긴 남자가 많아서 좋았다. 뭐 그래도 제일 멋진 남자는 아일랜드에서 봤지만. 서양인들 기준에서 그게 잘생긴건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바로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남자들이 길에 즐비했다.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또, 난 어학연수 가는 애들 대학 때 하나도 안 부러웠고, 오히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서 좋겠다. 하는 반감과 조소를 좀 하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어학연수 다녀온 애들이 부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어학 연수 다녀온 애들은 영어 술술 나오겠지 싶어서 말이다. 영국애들은 내 영어 발음을 못알아들었다. 내가 외국 가서 살 건 아니지만, 여행 다닐 때 불편함 없을 정도로는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사무치게 하고 왔다.

 

 여행 전 더블린에서 딱 하룻밤 자는데, 이걸 넣을까 뺄까 엄청 고민했었다. 그러다 결국 넣었는데 안갔으면 엄청 서운할 뻔 했다. 다녀와서 아일랜드에 관심이 생겨 '슬픈 아일랜드' 라는 책을 읽고 있다. (꽤 재밌다.) 다음에 아일랜드만 다시 가고 싶을 정도다. 

 더블린은 참 멋진 도시인 거 같다. 유네스코에서 문학의 도시로 지정했다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문학"의 도시라니. 엄청 폼난다. 지금 아일랜드는 영어와 더불어 캘틱어를 사용하려고 정부 차원에서 노력 중이라고 한다. 근데 또 이게 애매한 것이,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소설은 다 영어로 쓰였고, 나는 잘 모르지만, 지금 영문학계에서 잘나가는 아일랜드 출신이 많다는데, 이제와서 영어를 버릴 수도 없고. 700년 넘게 영어를 써왔으니 쉽게 버리진 못하겠지.

 2013년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생각했던 여행을 끝내고 나니 조금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밥먹듯이 가는 사람들이야 별 거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정말로 크나큰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우울하다. 여행 후 에는 더더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억지로라도 많이 돌아다니고, 아무거나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엄마, 아빠, 동생 선물과 정말 친한 친구 3명꺼만 선물을 샀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선물을 너무 잘 골랐다.

 엄마에게는 면세점에서 팔찌를 사드렸고 아빠께는 언제나 처럼 술 한병과 에딘버러에서 산 캐시미어 목도리, 동생꺼는 시계를 샀는데 선물 나눠줄 때 정말 행복했다. 어제도 친구에게 러쉬에서 산 핸드크림을 주고 오늘은 에딘버러에서 산 장갑을 줬는데 다들 맘에 들어해서 뿌듯했다. 어쩌면 이 맛에 여행가는 거 같기도 하고. 특히 혼자가는 여행은. 돌아가면 선물 줄 사람이 있어서 행복했다. 여행하는 내내.


 그래도 2013년은 꽤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벌써 지금 직장에서 일한지도 1년이나 됐고.


 휴 근데, 엊그제 차장님이 에너지버스 라는 책을 읽으라고 주셨는데. 정말 내가 대체 뭘 잘못한건지 모르겠다. 그런 책을 읽으라고 하시다니.......너무 가혹한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