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계절

일상 2013. 12. 16. 01:09

  다른 사람도 이렇게 겨울이 되면 우울한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종일 낮잠이나 자고 먹고 그랬다. 부모님이랑 함께 살면 엄마가 방청소도 해주시고, 밥도 해주시고, 청소도, 빨래도 모두 다 해주신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대화를 할 수 있다. 혼자살 때 힘들었던 게 바깥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그 일에 대해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랑 술마시고 실컷 떠들다 와도 버스타고 오는 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중에 이미 다시 우울해져 버리곤 했다.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지독히 싫었다. 하지만, 한가지 좋았던 점을 꼽자면 (아마 이게 유일하게 좋은 점 일 거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었다는 거다. 부모님이 계시면 마음껏 울 수도 없다. 긍정적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정적 정서를 드러내면 부모님이 너무 걱정을 하신다. 어렸을 때는 문 걸어잠그고 울고 그랬지만, 다 커서는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별로 울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 감정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우울해도 예전보다 덜 우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정이 메말랐을지도 모르고.

  난 울고나면 후련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에는 동조할 수 없다. 울고나면 후련해지긴 개뿔. 오히려 더더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세상 살아 뭐하냐. 하는 생각만 들게 되더라. 나는. 그러니까 12월 내내 한번도 울지 않기로 오늘 밤에 다짐을 해본다. 

  

  12월에 들어오면서 일이 많아져서 퇴근시간이 늦어져서 몸이 피곤하니까,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정신은 결국 신체 상태의 반영이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운전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부터는 서운분기점에서 차선 변경하는 것이 까다로워서 피했던 외곽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밤에 그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저 멀리 정면으로 인천의 야경이 보인다. 야경을 보다보면 기분이 아득해지고, 어둠 속에서 속도를 한껏 내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거기에 배경 음악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내 하루의 가장 완벽한 짧은 순간이 된다. 어쩌면 내가 이 퇴근길을 달리려고 오늘 하루 개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 배경음악은 Gorillaz 음악인데, 지금 내가 쓰는 일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내가 더블린 여행가서 돈 오백 들여와서 왜 나는 다쳐서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혼자 서러운 엉엉 울었을때 Black Bird 는 완벽한 배경음악이었다. 근데 웃긴 건 그 배경음악을 내가 유튜브에서 찾아서 손수 재생을 했다는 것이다. 크크크크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우울하고 비통한 사람에게 딱 맞는 배경음악이 나오듯 내가 딱 그 음악을 재생했다. 

  한참 울다가, 이런 와중에서도 배경음악 틀어놓는 내가 너무 웃겨서 피식 웃고 다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Black Bird는 내가 울기 직전에 갔던 술집에서 연주하던 아저씨가 기타 조율 중에 잠깐 쳤기 때문에 머릿 속에 띠리링 하고 떠올랐고. 


  오늘 일기를 쓴 게 하루종일 한 짓 중 제일 의미있는 짓이었다. 다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