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jJp3kVelU3c

 

  요즘 듣는 두 곡은 무척 분위기가 다르다. 어느 날 퇴근길, 언제나 처럼 울적한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마음에 쏙 드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난 선곡표를 검색한 뒤에야 이 곡이 Phoenix 라는 밴드의 If I ever feel better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밴드의 다른 곡도 좋은 게 있나 앨범을 검색해서 들어봤는데, 애석하게도 이 곡 말고는 좋은 곡이 없었다.

  이 밴드 프랑스 밴드라서 그런건지, 영어로 노래하는데도 이상하게 프랑스어 같은 분위기가 난다. 

  다른 곡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 곡 만큼은 요즘 푹 빠져 있다. 2014년 1월의 가장 큰 쾌거는 이 곡을 알게 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때문에 난 이 곡을 안 뒤로는 하루에 2번 이상 듣고 있다. 산책할때 운전할 때 책 읽을 때 아무때나.

 

  항상 일요일마다 억지로라도 산책을 나가려는 이유는 우울해서다. 그냥 일요일은 요일의 성격 상 우울할 수 밖에 없다. 일요일이 토요일이 되지 않는 이상 아마 죽기 전까지 일요일은 우울할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설 연휴도 끝나고 2월은 우리 회사에서 제일 바쁜 달 중 하나니까, 각오도 크게 해야 하고 해서 오늘도 5시 30분이 넘어서야 산책에 나섰다.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해가 길어지는 게 느껴진다. 해가 길어짐을 체감할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았는데 이상하게 2014년 들어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이 오더라도, 또 그렇게 몇개월 나이만 들겠지 하는 생각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이건 만 30년동안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IPTV 를 단 이후로 주말마다 영화를 2편 정도는 보는 것 같다. 친구를 만나고 들어와도 밤 늦게까지 영화를 보고, 일요일 낮에도 또 보면서, 정말 정말 좋은 영화도 많이 봤다. 좋은 영화는 내 기억 속에 남기고 싶어서 감상문도 쓰고 싶고 그런데, 시간을 못냈다.

 

  요즘 듣는 두번째 곡은 다소 난감한 뮤직비디오의 Begging you 다.

 

http://youtu.be/S1Ke19kxGp8

 

  내가 요즘 관심 있어하는 영국 작가가 좋아하는 밴드라고 해서 Stone roses 의 곡을 찾아 들었는데, 다른 유명한 곡들 보다 이상하게 난 이 곡이 마음에 쏙 들었다. 몇 년도에 발표된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발표 됐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진보적인 곡인 것 같다. 반복되는 멜로디도 무척 중독되고.

  저번주에 토요일 학원가는 길에 용산행 급행 전철 안 에서 완전히 잠이 들어서, 종점까지 쿨쿨자다 어떤 아저씨가 흔들어 깨워주셔서 간신히 일어났다. 이 곡은 이런 상황일 때 좋다. 졸리고 몽롱할 때 잠 깰때. 그래서 이건 토요일 아침에 주로 듣고 있다. 시청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면서.  

 

  30살이 넘고 보니, 20대의 내가 왜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데 현재에 그 이유를 대입해보면 또 나는 잘 모르겠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정말 사람에게는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는 것 같다.

 

  하긴 사실 이건 핑계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노력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거 아닐까. 알면서도 역시 노력하고 싶지 않으니, 다시 언제나 제자리거든.

 

  또 쓰지만, 지금 내 심정을 표현하자면 체호프의 소설 속 문장을 인용 할 수 밖에 없겠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으로 괴로워했으며, 이렇게 빠르고 재미없게 흘러가는 내 삶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렇게 무거워진 내 마음을 가슴속에서 뜯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 다락이 있는 집 중에서.


  밑에 주류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에 대한 독설을 퍼부었지만, 사실 내가 진짜 쓰고 싶었던 건 비주류 강박에 대한 이야기다. 부족한 것 없이 태어나서 본인이 대한민국의 중산층이며 내가 정상이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밥맛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론은 그냥 다 싫다는 건가. 흐흐.

  '다락이 있는 집'에 있는 구절을 배껴 적느라 그 책을 내 노트북 옆에 갖다 놓았는데, 매번 읽던 구절 말고 그 앞을 다시 읽고 있다. 다시 읽어도 정말 주옥같은 소설이다.

  가령 이런 구절 말이다.

 

보통 나는 테라스 아래층에 앉아 있곤 했다. 당시 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으로 괴로워 했으며, 이렇게 빠르고 재미없게 흘러가는 내 삶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렇게 무거워진 내 마음을 가슴속에서 뜯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도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된다. 소설가가 다른 게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정확히 표현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어디선가 봤는데, 난 소설가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안톤 체호프 처럼 표현하질 못하겠다. 하지만 체호프 같이 훌륭한 사람이 대신 표현을 해주고 그걸 또 읽을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 소설을 보면 미슈시의 언니 리다가 나온다. 리다는 부족할 것 없는 러시아의 꽤 높은 직의 공무원으로 일했던 아버지를 둔 훌륭한 가문의 딸로 나온다. 하지만 리다는 항상 민중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민중의 현실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회운동을 한다. 극 중 화자는 정치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며 예술을 사랑하며, 단지 리다의 동생 미슈시를 사랑할 뿐인데, 리다는 그런 극중 소설의 화자를 경멸한다. 그래서 항상 리다와 주인공은 논쟁을 하게 된다.

 

" 전 예전에 그런 얘기들을 들으 적이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만 당신께 말씀드리죠. 그건, 우리가 이렇게 손놓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옳아요. 지식인의 가장 고결하고 성스러운 과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이쓴 만큼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물론 당신 마음엔 안들겠지만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순 없잖아요? "

 

  위 대사는 주인공과 리다가 논쟁하는 중에 리다가 한 말인데, 저 말로 리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저걸 보면서 트위터에서 한국의 정치와 미래에 대해 자신들이 꽤나 선각자가 되는 양, 자기들이 주장하는 게 진리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투로 본인이 꽤나 배운 지식인 인 거 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본인들은 누릴 것을 다 누리면서 말이다. 또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주는 척 하는데, 그러면서 또 나이 든 사람들의 의견은 얼마나 무시하고 자신들의 젊음을 또 얼마나 과시를 하는지. 정말 대책이 없는 부류들이다. 

 

  아마 오래전 러시아에도 저런 부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가난하게 살며 단지 돈 벌기 위해서 단시간내 무지하게 많은 글을 썼던 (하지만 천재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작들을 써낸) 체호프 가 느꼈던 감정이 어땠는지 이 소설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런 비주류 강박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소수의 편을 열혈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외에 뭔가 자신의 삶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어떻게 보면 비주류가 되려고 무지하게 노력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또 자신은 참으로 개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남들과 잘 섞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인양 은연 중에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항상 경계를 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취향이 좀 특이하고 뭔가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할 권리는 없다. 또 자신이 좀 배웠다고 해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거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무시할 권리도 없는 거다.

 

  철딱서니 없이 주변에 민폐 끼치면서 난 내 꿈을 이루겠다 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 못한 게 아니라는 거다. 꿈을 포기하는데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하다. 못나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평범히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끈금없지만 프란츠 카프카도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위대한 소설가 아닌가? 평범히 살고 있는 사람들도 비범할 수 있는 거다. 단지 모를 뿐이지.

 

  결론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길을 충실히 걷고 있다는 것 하나로  남을 무시해도 재수 없고, 자신이 꽤나 비범하다는 착각으로 개성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하나로 남을 무시해도 재수 없다는 거다.

 

  난 그냥 그렇다.

  "내 삶이 특별했으면 좋겠다, 뭔가 재밌는 일이 계속 계속 벌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우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욕심도 없다.

  또 "요즘 어린 것들 쯧쯧쯧", 혹은 "정신 못차렸다, 예의 범절이 없다, 개념이 없다." 는 둥 이런 재수 없는 꼰대같은 말을 하는 나이든 사람이 되는 것도 싫다.

 

   생각해보면 난 취향은 비주류 쪽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또 비주류 안에서의 주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비주류 들이 모여 있는 중에서도 큰 주류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오타쿠는 사회에서 비주류지만, 오타쿠 내에서도 주류가 있는거다. 예를 들면 건담 오타쿠, 에반게리온 오타쿠는 그들 내에서는 엄청난 주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에반게리온 때문에 쫄딱 망한 에스카플로네를 좋아했었지 크크킄)

   또 난 락을 무지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비주류라고 볼 수 있는데,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는 또또 그 사람들 나름대로 룰 같은 걸 만든단 말이다. 예를 들면, 락은 현장에서 스탠딩으로 방방 뛰면서 소리지르면서 봐야한다. 고 하는 거 말이다. 왜 그렇게들 말하고 주장해야 되냐는 말이다. 공연 가서 제대로 못 놀면 바보. 이런거 말이다. 대체 왜 그래야 되냐는 거다.

  난 아무리 엠프에서 큰 소리가 나도 이성이 잃어지지 않고 방방뛰면 땀나고 힘들다. 근데 또 그렇게 비주류인 사람들 조차 나같은 사람은 촌스럽다고 제대로 못 논다고 무시를 하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다.

 

  술도 안마셨는데 이런 고등학생이 쓸 법한 일기를 쓰는 이유는...이게 다 "다락이 있는 집"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만 29년 동안, 평범과 특별함 주류와 비주류 사이를 오가면서 그냥 그렇게  꽤 재밌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개소리나 지껄이는 일기 쓰면서 말이다. 휴.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냉소적이라는 건가.

  보통 이런 일기는 나중에 읽어보면 엄청 쪽팔리고 쥐구멍 있으면 숨고 싶은 기분이 드는 법인데, 다신 읽지 말아야지.  


  어느날 밤 누워서 이 책에 나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내 블로그를 뒤져도 그 글이 안나오는 거다. 정말 아쉬웠다. 내가 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블로그에 이 소설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안 적어두다니.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도 읽지만, 그나마 읽는 책에 대해서도 일일이 포스팅 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을 다 읽은 후 느낀 바를 조리있게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읽어도 좋은 책은 "재밌었어." 나쁜 책은 "재미없어." 이 두가지 이외에는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평 잘하는 사람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안톤 체호프가 쓴 "다락이 있는 집"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단편소설 꼽아보라면, 아마 1위? 그 정도로 좋아한다. (2위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하겠다.) 저 책은 실제로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걸 바닥에 놓고 찍은건데.. 저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는 노란색 태그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사실 태그 테이프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 페이지는 하도 펼쳐봐서 그냥 펼쳐지기 때문에.

  

  "다락이 있는 집" 은 단편소설로, 미슈시라는 여자와 이 소설의 화자인 어느 화가의 짧은 사랑 이야기 이다. 

  큰 사건도 없이 쓰여진 이런 이야기가 이토록 좋을 수 있다니... 아마 감정 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이겠지. 


  다락이 있는 집이 수록된 다른 안톤 체홉프 단편 모음집을 사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출판이 안된 거 같다. 소담 출판사의 저 책은 워낙 오래전 번역된거라.. 요즘 제대로 번역된 건 어떨지 참 궁금한데 아쉽다. (96년에 번역됐어... 세상에나) 오죽하면, 난 이 소설 영문판으로 출판된 게 있으면 그거라도 사서 읽어볼까 생각했으니까. 영문판으로는 제목이 뭔지 몰라서 검색도 못했지만.


  소설 중 아래 제일 마지막 구절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나도 정확히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일 거다. 


P.196

  나는 이제 다락방이 있는 집에 대해서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단지 아주 가끔씩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언젠가 창문을 통해서 보았던 녹색 불빛이나, 사랑에 빠진 내가 추위로 언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가던 밤에 들판에서 들려오던 내 발자국 소리가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더 드물게는 고독감에 젖어 우울해질 때면, 나는 어렴풋이 옛날을 회상하며 그녀 역시 나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고개를 들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슈시, 당신은 어디에!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극 중 화자가 미슈시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의 발자국 소리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미슈시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극중 화자가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