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야 할 일.

일상 2008. 5. 4. 14:09

난 드디어 작년 7월의 사건에서 벗어난 것 같다. 평생을 못 벗어날 줄 알았는데 역시 시간이란 참 정직한 것이다. 이렇게 10개월만 지나면 될 것을 난 왜 더 빨리 헤치워버리지 못했을까. 물론 벗어났다고 해서 그 때 내가 받았던 충격과 공포 그리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대단한 것인거라도 된 양 엄살부리고 과장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에 내가 왜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을까? 부끄러운 과거다. 부끄럽든 안 부끄럽든 어쨌든 과거일이 된 지금 이 상황이 난 정말 즐겁다. 이제 그 일은 내 심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어렴풋하게 느끼고는 있었다. 내가 이렇게 끈질기게 괴로워하는 만큼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나는 이 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그래서 마음껏 괴로워했고, 그 괴로운 감정을 멈추려 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잊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내가 괴로워 해야 하는 양이 정해져 있다면 찔끔찔금 오랜 시간이 걸려 없애는 것 보다는 단 시간에 깔끔하게 끝내버리고 싶었다.
이제서야 이야기 하지만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래도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나한테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귀하에게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정신이 온전할 수 있으랴. 물론 그런 대접을 받아도 싸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에 수긍하니까.

거짓말을 약간 보태자면 난 오히려 이런 일이 2007년 25살의 나에게 발생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살면서 한번은 남자 때문에 흉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한번 흉해졌다고 해서 다음번에 두번 흉해지고, 또 세번 흉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번 흉해지고 나면 깨닫는 바가 크고, 동일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끝에 대한 예상이 명료해지기 때문에 바보가 아닌 이상은 자신을 흉칙하게 만들면서 까지 똑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23살에서 25살까지 그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 30살이 되어서야 똑같은 행동을 했어봐라. 그건 25살 여자가 흉한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22살 쯤이었으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뭐 25살도 나쁘지 않다. 이로써 나는 앞으로 다시는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 전체로 볼 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럴 일은 벼락이 내리 꽂혀 우리집이 홀랑 다 타버릴 확률보다더 더 희박하지만 만약에 다시 연락이 닿는다면 그 사람을 만날텐가? 라고 묻는다면 한 달전만 해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나기 싫다. 를 넘어서 만나든 말든 난 아예 상관이 없다. 또 그 사람이 나한테 한 말이 다 진실이라면 그 모든 진실을 다 알고도 나만큼 그 모든 것을 상관없어하는 여자가 흔할까? 물론 없지는 않을 거다. 사람한테는 그래도 연분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정말 흔치는 않을 거다. 흔치 않다고 이렇게 내가 말은 했지만, 만약 벌써 그런 여자를 그 사람이 만났다고 해도 뭐 난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사람 인생이고 나는 영원히 그 사람 인생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이 나한테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는만큼 나 역시도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앞으로 그만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나?
음.. 이것 역시 한 달 전만 해도 대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예. 라고 말할 수있다. 단, 그럴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겠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난 작년에 그 사람한테 했던 것의 100배 이상은 더 집중하고 위해줄 수 있다. 난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내가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지.

다만 이 일로 인해 난 아마 앞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쉽게 다가가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리 나한테 관심이 있는 남자라 하더라도 내가 먼저 다가갔다가 도망가버리면 어떡하나 라는 두려움 때문에 난 관망하거나 일백퍼센트의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최소한으로 나를 지키키 위한 본능적인 행동 뿐이다. 또 내가 이래야 상대방도 내가 싫어지지 않을거고 더 편할 테니까. 과거의 나는 나도 괴롭지만 상대방도 그만큼 괴롭게 만들었으니까. 소심해 졌다는 표현보다는 현명해 졌다는 게 더 적당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소중한 만큼 내 자신도 소중해져야 한다. 나도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야만 그게 가능한데 내가 했던 건 나만 그 사람이 죽도록 필요하고 상대방에게 난 어떤 특정한 순간에만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언제나 떠나지 않는 사랑도 아닌 뭐라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한 그런 것이었다. 거기엔 짝사랑이라는 말도 너무 과하다. 상대방 말한마디에 바벨탑 꼭대기에 올라간 듯 기뻤다가 또 다른 한마디에 지하 천연 암반수 150미터 아래로 쳐박혀 버린듯 우울한, 그런 드러운 기분을 반복했으니 내가 미칠만도 하지. 이젠 그 사람때문에 날 비하하지도 않을거고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죽을 때까지 내 입장만 변호할 거다.

이러니 저러니 내가 구구절절이 말하고 있지만 중요한 건 이제 과거 일이고,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겉으로만 봐선 이런 내 심경의 변화를 눈치 챌 수 없겠지만, 난 앞으로 2008년 내내 미친 듯 내 자신을 축하하고 축복할 거다. 그래서 그런지 난 요즘 다시 태어난 것 같고 왠지 기분이 째진다.


2주 연속.

일상 2008. 3. 16. 16:10
주5일을 하는 직장이라면 금요일이 제일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엊그제 3월 14일 금요일은 날씨가 그야말로 환타스틱 했다. 목요일 밤에 비가 와서인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요일이었다.
3일연속 일이 별로 없어서 불안했던 내 예감은 완벽히 적중을 해서 내가 불안했던 것 이상으로 목요일부터 이상할 정도로 일이 몰렸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뭣 모르는 중 고등학교 시절 언론사에 종사하길 원했던 내 자신이 치욕적일 정도다. 언론 너무 믿지 말자.
저번주 금요일에도 기분이 뭣 같았는데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딱히 만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와서 혼자 비비큐 치킨이나 시켜먹었는데 이번주 금요일도 마찬가지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왔다. 하지만 누구 만날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일이 많아서 어차피 늦게 끝났으니까.
참담한 기분으로 집에와서 친구랑 전화하면서 그나마 기분이 좀 풀렸는데 누워서 잘 때가 되니까 다시 기분이 다시 안좋아졌다. 서러움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엉엉 울었다. 그냥 가슴이 찡하고 갑자기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불 뒤집어 쓰고 엉엉 울어버린거다. 저번주부터 사무실에서 울랑말랑 하다가 괜찮아졌다 가 계속 반복되는 상태였다. 그러다 뭐 터져버린 것.
내가 이런 내 상태를 얘기하면 다들 똑같이 이야기 한다. 아니.. 완전히 100% 솔직하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내 맘을 말해도 될까? 하고 조금이라도 내 맘을 내비치면 어김없이 똑같은 말이 나온단 말이다.

금요일 밤에도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들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 내가 필요하고 절실한 말은 그게 아닌데."
"그럼?"
"그냥.. 난 예전에 어떤 사람이 지금 내가 한 말이랑 비슷한 말 했을 땐 그렇게 얘기 안했어."

그랬다. 난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얘기하는 그런 말은 안했다. 뭐 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해 주는 게 나 밖에 없다고 한 말이 어쩌면 진짜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풋. 뭐 세상에 자길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건 그냥 그것 뿐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태로 다 끝이나버렸다해도, 그 당시에 나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아마 단 한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막상 거의 동일한 상황이 나에게 당도해보니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날 좋아하고 위해준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결국은 똑같은 말만 하는거다.
난 예전에 그 사람만도 못하다. 예전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때부턴 다시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랑 결국은 그렇게 재수없이 끝나버렸던 그 당시가 생각나서 또 가슴이 아팠다.  

난 지독한 이상주의자다.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고 냉소적으로 보이려 하고 가끔씩 그래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난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기 좀 부끄러울 정도로 이상주의자 인 거다. 하지만 난 30살 쯤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판에 박힌, 어떻게든 불확실한 미래에서 벗어나도록, 그리고 가장 위험부담 없고 안전한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난 작년 이맘때쯤에도 지금도 내년에도 작년에 그 사람한테 했듯, 말할 자신이 있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면 그냥 앞뒤 생각하지말고 거기서 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쳇. 그래. 그러니까 너랑 나랑은 안된다. 이거다. 그 2키로 더 빼라고 한 사건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결국엔 즐거워야할 금요일 밤에 엉엉 울다가 베게나 실컷 적시고 코나 풀고 눈물 때문에 땡기는 눈가에 다시 로숀을 바르고 누워선 음악을 들었다. 최근 3년간 가장 불행했을 때 들었던 음악을 찾았다. incubus, weezer .. 등등.
예전에는 내가 괴로웠을 때 들은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가 무서웠다. 힘들 때 배경음악이 되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약 80% 정도는 그때 그 기분으로 다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정말 힘들 때 오히려 그런 음악을 찾아듣는다. 들으면서 그래 솔직히 예전보다 지금이 10배는 낫지. 안그래? 이러면서 혼자 위로하는거다.

내 곁에 정말 나한테 진정 위로가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걸까? 내가 남탓만 하고 그냥 내 덕이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한테는 완전히 내 뜻을 내 비친적이 한번도 없다. 아마 걔네들은 나한테 똑같은 말로 위로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켠이 이렇게 쓰린 이유는 날 진정 위해주는 '남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인걸까? 하핫.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별 수 없단 말이다.


요즘 날 웃겼던 글

위로 2008. 1. 21. 16:59
내가 잘 가는 모 싸이월드 클럽에서 어떤 스크랩 물이 올려졌는데 통신어가 난무하고 저질이라고 눈살 찌푸릴 수 있지만 난 이거 보면서 한동안 큭큭 대면서 웃었다. 웬만하면 품위있게 유지하려 했던 내 블로그, 하지만 뭐 애초에 주인 자체가 별로 품위 있지 않기 때문에 용기내어 올려본다. 생각보다 할 말이 많다. (그리고 사실 나 이런거 엄청 좋아한다!)
P.S 글을 읽기 전에 주의할 점은 스크롤과 'ㅋㅋㅋ'의 압박.

이 글들의 주제는


참고로.
난 언제 남자가 제일 멋있어 보였던가. 생각을 해보니 딱 한가지 꼬집을 순 없지만...
그냥 '느긋해 보일 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성격 급한 남자여서 그런가?
대책이 없더라도 일단은 맘 편하게 먹고 보는 사람들 보면 의젓해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그랬다.
아. 그리고 글씨 잘쓰는 남자 도 왠지 한번 더 쳐다보게 되던데. 귀여운 글씨 말고 큼직큼직하고 정자체 같은 글씨. 저번에는 어떤 남자가 봉투에 글씨쓴 거 보고 너무 잘써서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놓은 적 까지 있다.
 
그나저나 나 말야. 남자와 상관없이 생활하고 있으면서 남자에 대해서 뭔 할말은 이리도 많은지.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쩝.

송도중학교

일상 2007. 11. 21. 16:32

골초에 주량은 소주 7, 당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이제 와서 청승맞게시리 왜 예전에 알던 남자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괜히 이젠 주변에 남자 없으니까 저런다. 쯧쯧..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여중, 여고를 졸업했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등학교 시절 내내 또래 남자애와 한 번도 대화할 일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몇 번 있었지만) 그 이유를 찾자면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역이 혼자 30분 넘게 걷는 중에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못하는 일도 있을 만큼 시골이었다는 점, 동아리나 학원 등을 전혀 다니지 않은 점, 우리학교 앞이 다 산과 논 밭이었다는 점, 축제 때에도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했다는 점. 등등 찾자면 무궁무진한 이유가 있다. 이래 놓고도 고3때 여대를 가려고 했으니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왠지 한국인은 삼세판! 여중 여고 여대까지 졸업해 주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점수 모자라서 못간 건 그렇다치고;

 

그런 나에게 20살 처음 입학한 대학은 진정한 쇼크! 였다. 후문에 들어섰는데 온통 남자뿐 이었다.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처음에 눈을 어디에 둘지도 몰랐을 뿐 더러 이 세상에 내 또래 남자가 이렇게 많이 살았구나! 하는 거 자체에 좀 놀랐다. 그 덕분에 입학해서 몇 개월간은 오빠 라는 호칭이 굉장히 낯설어서 혼났다. 집에 오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최 불러봤어야지. 안 그러려고 노력은 했지만 남자들 앞에만 서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눈도 제대로 한 번 못 쳐다보고 안절부절 했다. 그래서 너 내외하냐?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지금이야 20살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남자랑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게 나쁜 건 절대 아니지만 그만큼 나이 들어버린 기분이다.

 

어찌되었든 20살의 나에게 생전 처음 듣는 소리만 해주는 남자가 있었다. 내 입으로는 도저히 못할 엄청난 칭찬들이었다. 나를 왜 좋게 봤는지 이해는 좀 안되지만, 사람이 주변에 있든 없든 너무 노골적이고 진지하게 나한테 예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 안 그래도 어색한 사람들 속에서 난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진짜로 이쁘고 귀여운 여자애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애한테 그러시니 주변 사람들이 다 비웃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블로그를 보면서도 비웃는 사람 꽤 될지도 모르지 크크)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이 매일 같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나중에는 내가 생각보다 이쁜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 드린다. 20살 이전에는 한 번도 못해본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해 주셔서.

 

매일 같이 하던 그 말이 진짜였는지 거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구장창 나에게 잘 대해준 것만은 맞는 것 같다. 대학 4년을 통틀어 소갈비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보고. (. 그때 소갈비!!! 진짜 맛있었다!) 그냥 밥이나 그 외의 먹을 거 사준 건 아마 셀 수도 없을 것 같고. 누구랑 밥 같이 먹으면서 그렇게 챙김을 받아보기도 처음이었고. 이거 맛있다 먹어봐라. 저거 맛있다 먹어봐라 등등의 말까지.

 

남자들을 아예 구경도 못해본 나에게 , 담배, 당구 라는 남성적 이미지 (이분을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엄청 잘하는 분이었으니까) 자체는 막연하게 좀 두려웠고. 왠지 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고 그랬다. 선뜻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 예요! 라고 물어 볼만한 용기도 당연히 없었다.

 

그러다가 그 분에게 몇 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여자가 엄청나게 이쁘다는 것 까지. 이거야말로 3단계 펀치 아닌가. 나중에는 친구랑 학교 앞에 그 여자분하고 같이 다니는 걸 목격까지 했는데 그 친구가 날 위로해주려 그랬는지 어쨌는지 전혀 돈독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했다. 듣던 대로 과연 미인이긴 했지만. 근데 뭐 돈독하지 않은데 어떻게 몇 년을 사귀느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 둘은 돈독하구나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여자친구분 엄청 이쁘던데요? 라고 시치미 때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여동생이라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무언(無言)의 인정을 해버렸다. 그리고선 3년 동안 점점 소원해 졌는데 가끔가다 도서관에서 만나거나 친구가 쿡쿡 찌르면서 맛있는 거나 얻어먹자고 부르라고 (맛있는 거 먹으려고 그런 거라기 보단 이 친구는 그 분이랑 내가 잘 되길 원하는 애 중 하나였음) 해서 가끔 밥을 먹을 때의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지금 25살이 되고 생각해보니 절대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그 당시에는 그 분이 나이가 많은 것 처럼 느껴졌고 난 잘 사귀고 있는 사람 떼어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랬다. 지금도 바람둥이인가? 진심이었나? 아리송하지만, 상대방이 이랬든 저랬든 나는 뭐 항상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으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쁜 여자 사귀면서 왜 나 혼자 가슴 설레게 왜 그러나 싶어서 나 가지고 장난 좀 그만 치세요. 거짓말 좀 그만하세요. 등등의 말도 진지하게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벌써 3학년이 되어버린 나에게 그분이 어느 날 이젠 연락 안 하겠다. 여기서 연락을 안하고 안 봐야 나중에 날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는 말을 했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못 만났다. 

 

위에 등장하는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 앞으로 그 이상 남자 없을 것 같은데. 라는 말을 했다. 대부분은 괜찮아.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건데 너무 솔직하게 그렇게 말해버린 내 친구. 그 뒤로 우리 둘의 대화는 이러하다.

아니 그런데 왜 여자친구랑 안 헤어지고 나한테 사귀자고 안 해.

너는 그냥 그 사람이랑 사귀고 헤어져도 나이 어리고 창창하지만, 그 사람은 그 나이에 그렇게 헤어져버림 진짜로 다 끝인데 어떻게 쉽게 그러냐.

아냐 아냐. 진짜 내가 좋았으면 그렇게 했어야 돼.

이게 내 결론이었다. 진짜 좋았으면 그렇게 해야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별 아쉬운 마음도 안 들고 종종 생각나면 그랬었지~ 하고 말아버렸다. .. 사실 이제까지 말 안한 게 있는데 나랑 나이차가 5살 넘게 났으니 좀 나긴 했다. 그래서 매일 나에게 내가 3살만 어렸어도! 이런 이야기를 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늘에 맹세하는데 난 정말 나이차에 대해서는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지금도 뭐 내 위로 10살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고.

 

나에게 그 사람은 그냥 종종 생각나는 정도였고 아주 가끔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현재 나는 이제 그 사람을 생각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곳에 살게 되었다. 언젠가 또 그 분에게 삼겹살을 얻어먹고 있는데 (같이 먹은 음식들이 소갈비에 삼겹살에..;;)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하고 인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아는 사람인가? 하고 말았는데 중학교 동창이라면서 송도중학교 나왔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작년에 이사온 여기 동네가 바로 송도중학교 옆이다. 이제까지 그 송도중학교를 기억하고 있는 나도 웃기지만, 매일같이 출퇴근을 위해 송도중학교를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이 상황도 무지하게 웃긴 거 아닌가.

 

아직도 그 분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유부남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몇 년이 지난 일을 생각하게 되고 그 분을 차마 완전히 지우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저주라면 저주일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자신을 매일 같이 회상하고 곱씹어주는 사람이 지구상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축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은 분명 결혼 후에도 잘 사실 거라 믿는다.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은 나는 매일같이 송도중학교를 지나가겠지만 말이다.

 


 



나 참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다니. 혹시 이 긴 글을 다 읽으신 분이 있다면 축하합니다. 다 읽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