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답장

단문 2015. 10. 30. 19:13

고모는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셨다. 공부를 잘했지만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고, 전국을 돌며 밤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다 돈 한푼없이 독일에 가셨다고 한다.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독일 부자집 청소를 해주며 돈을 벌었고, 마침내 늦긴 했지만 결혼을 하여 베를린에 정착하셨다.

고모가 내 인생을 얕잡아 보지 말라고 답장을 주셨다.
바보같이 메일을 보다 울었다. 그렇다. 특별할 거 없고 재미도 없는 내 인생을 이제까지 나는 계속 얕잡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내가 날 얕잡아보는 데 누가 날 인정해주겠으며 어떤 좋은 일이 나에게 찾아오겠는가.


부산 고모댁

일상 2012. 1. 17. 23:12
저번주 금요일 밤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워낙 먼 곳이다 보니 갈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큰 맘먹고왕복 KTX 타고 다녀왔다.  화요일 수요일 친구와 파주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오히려 몸이 안좋져서 가기 전에는 약간 미열도 나고 목은 말도 못하게 아팠다. 정말 무거운 몸이었는데 다녀오니까 그래도 할도리를 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밤 12시에 부산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부산 고모댁으로 가는데 골목에 골목을 지나고, 오르막에 오르막을 올라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서 작고 추운 집으로 들어섰다.
어렸을 때 내동생이 태어나기 전 하나뿐인 귀한 외동딸이었을 때 아가씨였던 고모는 강원도 홍천까지 놀러와서 내 방에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그림도 크게 그려서 붙여주시고, 빨대와 리본을 이용하여 내 미닫이방에 커튼 까지 만들어서 붙여주셨었다. 그림도 잘그리고, 손재주도 좋아서 내가 디게 좋아했는데.. 오실때마다 풍선그림도 그려주고 꽃도 그려주고 하셔서 내 방 벽은 항상 알록달록 예뻤다. 대학 들어갈 때는 목걸이도 사주시고 가족들 만나는 자리에서도 날 그렇게 반가워하고 이뻐해주셨는데 그런 춥고 좁은 곳에서 살고 계신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평소 내가 너무 이모들만 좋아하고 너무 고모에게 신경을 못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들었고, 나름 나에게 딸 때문에 느끼는 고민을 털어놓으실 때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기도 해서 앞으로 교회 가면 고모 기도도 하기로 했다. 
재작년 친구네 집 다녀와서 친구의 어머니와 친구의 우울한 얼굴이 생각나서 자려다 말고 일어나서 혼자 엉엉 울었는데, 이번에 고모댁 다녀온 뒤로도 계속 마음이 좋지 않다. 친하고 나에게 맘써 준 사람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게 생각보다 잔잔하게 계속 괴롭다. 문득문득 그 슬픈 눈동자랑 추운 집이 생각이 나서 말이다. 
친구가 혹은 친척이 넉넉하게 못살고 있는 모습을 봐도 이런 마음인데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아. 나는 정말 어떻게든 잘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