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휴가였던 금요일에 친구와 4시반에 헤어진 게 그 하루의 끝은 아니었다. 평소에 '굳이 안해도 될 불쌍한 짓을 괜히 만들어서 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나는 또 한 가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월미도에 가야겠다"    바로 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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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미도는 가면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는 곳이라 인천사람들도 굉장히 무시하는 곳이고 나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만,

우리집 앞에 있는 표지판

월미도
月尾島
wolmido

↑ 3.2 km

이 표지판을 보고 나서 부터 태도를 180 도 바꿨다.


우선 이름의 뜻  - 월, 꼬리 미, 도. 너무 아름다운 이름아닌가.   특히 '꼬리 미' 자라니!!!!

  이름 때문에 좋아졌다면 사실 좀 거짓말이고 우리집에서는 저 멀리로 바다가 보이는데, 인천 앞바다의 석양이 꽤나 이색적이면서도 쓸만하다는 걸 몇개월간 살면서 알았기 때문에 좋아졌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다.

  다시 금요일의 내 소중한 첫 휴가 때로 되돌아 가자면, 4시반에 집에 들어와서 그럭저럭 TV나 인터넷을 하면서 내 소중한 첫 휴가를 보내기엔 뭔가 안타까웠다. 바닷바람이 꽤 차겠지 싶어서 난 두꺼운 옷과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서선 45번 버스에 혼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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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의 목적은 해가 진 직후를 보는 것 이었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바람에 해가 진 직후라기보단 깜깜해지기 직전 에 가까운 바다를 보게 되었다. 애초의 목적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썰물이라서 바닥에 바위만 보고 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완벽한 밀물이라서 물은 충만했다!
  월미도에 가면 사람이 없는데 워낙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공장 뿐이고 음식점들도 다들 촌스러움과 동시에 엄청 맛없어 보이는 외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주 오래전서부터 그렇게 천천히 빛바래오고 재미없는 장소가 되어버린 월미도의 처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월미도지만,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아니던가! 그것도 다 이런 처량하고 처연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갔을 때도 거의 1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월미도 주변을 걷고 있었다. 나로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보단 왠지 끝없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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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몇 분 사이에도 바다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싸구려 카메라인데다 사진 찍는 기술이 없어서 첫번째 사진과 두번째 사진의 변화가 별로 안 느껴지지만 말이다. (하늘색만 비교하면 미세하게나마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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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온 아저씨 한명이 눈에 뛰었는데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다가 좀 웃겼다. 저렇게 바위위에 올라가셔서 폼 잡으실 것 까진 없으실텐데 싶었다. 푸흐흐. 포즈로 봐서는 소리라도 크게 지를 태세지만, 그냥 저러고 멍하니 계시다가 바위에서 내려와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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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바다에 모래사장이 있는 건 아닌가보다. 월미도에는 모래사장 따위 없다. ;; 대신 바닷물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바로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계단.

이거야 말로 Stairway to heaven  인가?

훗. 계속 걸어들어갔다간 동사하기 딱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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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그래봤자 얼마 안되니까. 바닷바람도 쐬고. 카메라로 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미처 장갑까지는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었다. 손이 상상초월로 시려웠다.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서 이사짐 나를 때 쓰는 흰색 장갑을 하나 사서 끼었다. 훨씬 손이 따뜻해졌다.
  음악이 딱 필요한 순간이었는데 한쪽 이어폰 고무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너무 손시려워서 정신없는 동안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뭐 그렇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물결 소리라서 안들어도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 이어폰이 고장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노래들을 들었을 것 같다.

   -제목과는 달리 노래 분위기는 자살 직전에 들음 딱일 것 같은 radiohead의 Optimistic
   -1집 2집과는 달리 정붙이기 힘들었던 coldplay 3집의 x and y
   -'나는 널 위해 여기 있어. 나의 꿈에 들어와.' 서울전자음악단 의 꿈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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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과 상태는 정말 안좋았는데 뭐 좋다고 웃었나 모르겠다 흐흐. 이 사진을 찍고 새삼 나이들은 티 나는 내 모습에 놀랬다. 하긴 내년이면 이제 누구에게 말해도 20대 후반인 나이가 아니던가. 20대 중반이 더 가깝긴 하지만. 그리고 왠지 내 얼굴이 낯설어졌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싶기도 하고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갑자기 말하고 싶어서 말하지만 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눈동자안에 점이 있다. 왠만한 관찰력이 아니고는 발견 못하는 건데, 왼쪽 동공 바로 밑에 약간 미세하게 동공 색과 비슷한 게 또 하나 있다. 아직까지는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보는 사람을 못봤다. 그냥 내 신체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인거 같아서 말하는 거다. 어렸을 때 잘못된 줄 알고 엄마가 안과에 데려갔는데 사는데 아무 지장없고 종종 이런 경우 있다고 말했댄다.
 
  완전히 어두워진 월미도에서 단 몇 분동안 아주 골똘히 했던 생각은.

"지금이 '그때'만큼 힘드냐?"
"지금 힘든 게 도저히 감정조절 하기 힘들 정도냐?'

하는 질문이다.

  두 질문 모두 대답은 '아니오.' 다. 그래. 아니니까, 버티자 이거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난 남자가 아니라 군대에 안가고 앞으로도 갈 일 없지만, 거기서 버티는 원동력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거 아니겠나. 군대와 직장은 다른 거지만. 나도 그냥 끝을 기다리는 맘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루하루 시간은 가는거니까.

  내가 지금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굉장히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과 시간은 가는거니까 그리고 굉장히 고맙게도 그 시간이 다른 때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 처럼 느껴지니까 괜찮을거다. 라는 위안을 얻고 나니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배가 많이 고프기도했고, 더 있기에는 내 손이 완전히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나중에는 장갑도 소용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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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점포수 1위라는 GS25에 들어가서 내 손을 녹여줄 막강한 임무를 맡길만한 음료수를 찾다가 생전 처음 보는 '로얄 밀크티'라는 따뜻한 캔음료를 마셨다.

  종점이라 멈춰있는 버스를 잡아타고 동인천역을 지나서 집에 오면서 '이제 겨우 3일중 하루가 지난거잖아!' 라는 생각이 드니 기뻤다.

  그리고 이제 5분만 있으면 월요일이다. 월요일. 스크롤의 압박이 굉장할 이 포스트를 끝마치고 잠이 들어 눈을 뜨면 나는 또 하루하루를 죽이려 회사로 간다.

다음주부터는 회사에서 굉장한 일이 있을 예정인데, 월미도에서 느꼈던 그 자신감은 어디가고 벌써부터 무서워지고 있다.
 
   나 견딜 수 있을까?... 

P.S 마지막으로 내가 처음으로 찍은 월미도 동영상까지 올린다. (그냥 걸어가면서 찍은 아주 재미없는)
      훗. 이걸로써 휴가일기 진짜로 끝!


휴가 일기

일상 2007. 11. 1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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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축할 일이면서도 슬퍼해야할 일이다. 도저히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눈치보면서 휴가를 냈고 받아들여졌다. 입사이후 처음 월차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연달아 쉴 수 있다. 현재 12시 58분이니 벌써 토요일이 되고도 한시간이 다 되가는구나.

  휴가 때 뭐할거예요? 물어봤을 때 늦잠이요. 라고 대답했다. 계획대로 오늘 12시에 일어났고 부랴부랴 챙겨서 오후 2시에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휴학했을 때 이틀이 멀다하고 만났던 내친구. 농담삼아.. '사귀는 사이에도 이렇게 자주 만나기 힘들거야 그치?' 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는데 요즘에는 한 달에 한 번정도만 만나니.. 그때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걔나 나나 오늘이 어제같고 오늘은 또 내일 같은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별 할 말은 없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할말이 참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만나도 별 말 없이 앉아 있는 상황이 슬픈 건 아니다. 그만큼 편한 사이라는 증거일 수 있으니.

  백화점 앞에서 만나서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 구월동 던킨도너츠를 찾았다. 오 구월동 던킨도너츠!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우리가 항상 앉는 자리가 비워져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난 친구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돈주고 산 건 아니고 디카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따라온건데 내 손목에는 너무 크고 놓아둬봤자 아무도 안 쓸 것 같아서. 선물을 주고 나니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 기분 좋았던 건 요즘 던킨도너츠에서 사은품 행사를 하는데 난 4등에 당첨되서 쿠숀을 받았다. 꽤 크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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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코엑스나 인사동 둘 중 한군데를 갈까 했는데, 친구가 항상 멀리 다니는데 쉬는 날도 멀리가면 피곤하지 않겠어? 하길래. 흠. 그것도 그렇군 해서 결국 구월동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으론 그러길 잘한 것 같다. 가끔.. 내가 주말에까지 서울에 가야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주말에 혼자 용산 직통 지하철을 타면 출근하는 기분 나서 심히 기분이 묘하면서 나빠질 때도 있고.. 주말에는 아비규환 같은 구월동도 금요일 오후에는 한가했다.

  오늘은 정말로 고마운 날씨였다. 친구 말로는 하루하루가 예술이라는데, 난 오늘에서야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어딜가든 기분이 좋아질만한 날씨였고, 우리는 예술회관에서 곧장 걸어가면 나오는 작은 공원에서 이제 일주일이면 낙엽도 다 떨어지겠지. 제길. 이라며 뜬금없이 인생무상을 논했다;

  왠지 이번 주말이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만 같은데.. 괴로운 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친구와는 4시반 쯤 헤어졌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친구가 색,계 를 봤다는데 나도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 오늘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와는 안그런 친구들보다 '얘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라는 생각 들기가 힘든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친해봤자 여동생이나 언니만큼 친한 친구는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친한 친구 4명중 이 친구는 유일하게 여자형제가 있는 친구인데.. 그런 생각이 자주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나면, 난 이 친구랑 색,계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이미 여동생이랑 봐버렸다고 말하니.. 서운해서 흑. (별 게 다 서운하다) 아무래도 또 혼자 봐야할 듯 싶다. 내일에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