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olia

위로 2007. 12. 11. 22:07
사용자 삽입 이미지

Paul Thomas Anderson

188분

1999년작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1999년에 본 영화라 확실치 않지만,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대략 이렇다.

어린남자애는 퀴즈쇼에서 승리를 거듭하는 아이이다. 그애의 엄마는 하루종일 책만 읽히라고 시킨다.
(퀴즈쇼의 상금을 주는 사람이었는지 방송국의 사장이었는지 기억 안나지만) 간신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부자 할아버지가 있다.
그 할아버지와 결혼한 젊은 여자가 있다.
그 할어버지가 어렸을 때 버린 아들이 있다.
퀴즈쇼를 진행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친딸을 성추행 했다.
그 남자의 친딸은 어렸을 적 상처 때문에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
그 딸은 경찰인데 총이나 잃어버리는 남자를 만난다.

한 명은 잘 기억안나지만 어찌되었든 이 영화는 각 주인공이 어떤 배우인지 거의 중요치 않은 영화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주인공들은 그들은 각각 자기의 삶을 살아가며 영화는 저 모든 인물의 숨겨진 상처를 아무 감정없이 묘사한다. 저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풀어냄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인물의 감정과 상처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감독의 솜씨에 감탄하게 되고 이는 소름까지 오싹 돋는 수준이다.  

특히나 모든 등장인물이 갈등에 다달았을 때, 그리고 그 갈등이 기적과도 같은 비가 되어 내릴 때. 전 출연진이 wise up 을 따라부를 때. 이 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 완전히 벅차오르도록 하는데 당신이 조금 우울하고 충분히 울만한 상황이 되었다면 당신은 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괜히 눈물이 났다. 영화에서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감정의 과잉도 전혀 없는데 말이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조선일보에서 이동진 기자가 했던 평이 생각난다. 별 다섯개 만점에 다섯개를 매기면서 "별 다섯개는 이런 영화를 주라고 만든것!" 이었다.

다시한번 보기에는 내 감정이 너무 약해진 상태라 볼 용기는 없다. 매그놀리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치유하고 싶다면, 188분이라는 다소 긴 시간을 투자해서 크게 감동받고, 그 감동 때문에 며칠간 잔상에 시달리고 싶은 당신이라면 한 번 볼만한 영화라 생각한다.

영화내용도 제대로 기억 못하면서 이렇게 소개글을 쓰고 이 소개글 역시 형편없지만 내가 그 때 느꼈던 감정은 생생하기 때문에 믿어도 좋다. 적극추천!


단 하나 뿐인 상대

일상 2007. 12. 6. 21:59
내친구의 편지 내용 중에서 (친구도 이정도 공개는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

가끔, 몇년전 생각을 자주 해. 모두가 서로를 장기판 졸이요.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으로 보고 사는 세상에서 의미있는 미소, 존중하는 눈빛과 따뜻한 대화로 호의를 확인하는 거. 진짜 생각보다 귀한거였어.
운명이래도 놓칠 수 있는거야. 다만 자기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상대인거지.
운명이라고 잡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보증이라면 세상에 비극이 왜 있겠어 그치?

-----------------------------------------------------------------------------------------------------

내가 이성애자라는 가정하에
영원히 동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과 영원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
꼭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뭘 택할까.
예전에는 당연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을 택한다고 말을 했다.
이성들하고 어울리는 시간보다 동성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만신창이가 되어서 세상에서 겪은 설움을 눈녹듯이 녹여줄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난 이 친구한테도 저 친구한테도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남자한테는 그게 또 아니다. 너 아니면 누구한테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남자에게만은 우정처럼 너도 이만큼 좋고 너도 이만큼 좋아. 난 너에게 못받음 다른 사람에게 가면 돼. 이게 안된다. 적어도 나는.
(그래서 인기가 없나)

내 친구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관계가 바로 친구 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하긴 여타의 의무관계가 없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남녀는 헤어지면 끝 이니까 말이다. 속으로는 이랬었지 저랬었지 생각하고 가끔씩은 무릎꿇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은 맘도 들고 날 특별한 여자 대접 해줘서 고마웠다고 진심으로 인사해주고 싶고 그런데.
정작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에게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그놈의 자존심과 이러면 내가 또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싶어서 마음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고 억누른단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라는 우려때문에 그런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상대방을 다시 한번 잡아보고 싶다거나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동에 장애가 되는 생각은 '거절당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상대가 부처수준의 자비과 관대함을 발휘하여 참아줄 수는 있지만 헤어질 때의 여러가지 정황과 상대방의 행동 말 등을 통해 '나와는 되지 않을 사람' 이라는 것을 신체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꼈다면 그건 거의 맞을 경우가 높단 말이다. 아니 높은 정도가 아니라 그게 진실이다. 믿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치고 시덥지 않은 말로 그렇지 않다는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도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자신이 다 알고 있을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내가 이렇게 한 번 무너져서 예전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 우스워지고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할 뿐이다. 속으로는 골백번 매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려 하면 할수록 난 비참해지고 웃기는 여자되고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고 내 소중했던 진심, 내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어려웠던 결심  그 조차도 희화화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번도 시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절대 아니다. 시도했을 때는 안 그랬을 때의 백배도 넘는 후회와 자기혐오감이 밀려든다.  

그런데도 정말 내가 싫어지는 건. 예전보다 현명해진 지금 상태에서도
내가 한 번만 더 잡았으면 지금 우리는 함께였을까?
나 정말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놓친 건 아닐까?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똑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아주 강하게 든다는 거다.

그리고 더욱 슬픈 건 나만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또 다행스러운 건 단 한순간이라도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 그러니까 내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고, 놓쳐서 조금은 아깝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었다면. 내가 가끔 이것 때문에 울곤 하는 것 처럼 진심을 다해 단 1초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정말로 고마워할만큼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는 거다.

풋. 술도 안마셨는데 이런 거나 쓰고 있고.
요즘 아주 배불렀다 배불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