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Patrol - Chasing Cars

음악 2014. 3. 23. 22:40

음악링크 : http://youtu.be/GemKqzILV4w 

 

  주말동안은 좀 속상한 일이 있었다. 나같이 소심하고 속좁은 인간은 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항상 충격을 받고 또 외면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꽤 좋은 여자라고 믿기로 했다. (사실 그 수 밖에는 없다)

 

 

  오늘 부모님도 큰아빠 댁에 가시고, 나는 교회도 안가서 할 일이 없었다. 결국 책 하나를 들고 나의 영원한 안식처인 자유공원으로 향했는데 겨울이랑 비교도 안되게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도저히 걷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땅과 가까운 키의 작은 아이들도 자유공원 광장을 마구 뛰어 다녔다. 신나는 아이들을 보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의자에 앉아서 가져간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피츠제럴드는 미묘하게 내 취향이 아니다.  반절정도 남았던 그 소설을 오늘 끝까지 다 읽었는데. 역시나. 다만, 한 여자를 일생에 걸쳐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만큼 분명 많은 사람이 좋아할 요소를 갖춘 건 부정 못하겠다. 하지만, 문장에 묘사와 은유들이 남발되는 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뭐 그래도 개츠비는 말할것도 없이 정말 멋진 남자 주인공이다. 데이지는 천하의 썅년이고.

 

  책을 다 읽고 배고파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먹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어렸을 때 봤던 고양이의 사체가 떠올랐다.

 

  우리 아빠가 실직했을 무렵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연하게도 우리집은 엄청 가난했고, 내가 살던 아파트는 그 동네에서 제일 후진 5층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 단지의 모든 집은 다 10평대였다. 우리집은 13평 아무리 넓어봤자 17평. 아저씨한테 맞는 아줌마부터, 방화 사건까지 온갖 불량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내가 놀았던 놀이터 옆의 공터에서는 종종 중학생 남자애들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패싸움을 하곤 했다. 꼬마들이 겁에 질려서 피흘리는 오빠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어른 중 누구하나 말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별로 존재감 없고 인기 없는, 생일 파티에도 많이 초대받지 못하는 조용한 꼬마였는데, 그래서 하교길에도 혼자 집에 오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때도 넓은 길보단 좁은 골목으로 오는 걸 좋아했다. 어느날 항상 지나던 더럽고 좁은 골목을 지나고 있는데, 그 골목에 고양이 사체가 보였다. 그런데 그 고양이 사체의 배는 누군가가 일부러 갈라놓았고, 뱃속에 있어야할 내장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골목에는 배가 갈리면서 고통스럽게 죽었을, 눈 뜬 고양이 가죽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사체를 안보려고 노력하며, 뛰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소리한번 못지르고 빠르게 그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아마 그 고양이 사체를 본 뒤로 그 골목은 한번도 못 갔던 거 같다.

 

  이 고양이 사체를 본 사건은 내 입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었다. 오늘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난 그때  무서웠고, 정말 외롭고 하루종일 심심한 꼬마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니가 있기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10살 때도 지금도 난 그냥 외로운 다 큰 32살 짜리 철부지 꼬마일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Snow Patrol 의 곡이 흐르고 나는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사람 한명 없는 국제여객터미널 문 앞을 걸으며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았다.

  한낱 직장인 나부랭이로 살면서 TV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또 하지 않아도 될 쓸데 없는 생각들만 오지게 하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도 했다.

 

  사람들은 백번 보는 것 보다 한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죽어라 생각만 하는 게 한번 경험의 0.001%의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일까. 나의 이런 망상과 기억과 쓰잘데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가 다 나중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조금 슬플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난 할 줄 아는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