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단문 2012. 7. 9. 17:30

어렸을 때 나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난 어른이 되면 그런 영화나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서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안보면 미칠 것 같은 절절한 사랑이나 연애를 일생에 한번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른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런 경험은 한번도 없고. 막상 지금은 그런 힘든 사랑라면 하고 싶지 않은 생각마저 든다.

상대방을 심하게 좋아하면 괴로운 건 나 자신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된다는 것도 아니까 말이다. 그렇다 난 이미 알만큼 알고 약아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못난 내 연애사 때문에 난 매체에서 모든 사람들의 첫사랑은 아련하고 절절하다고 전제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나같이 첫사랑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는 사람도 꽤 많을텐데. 나만 이 모양인가 싶어서 소외감마저 느낀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음악들 듣고 있는데 러브테마가 듣기만 해도 스토리가 연상될만큼 슬프고 절절하다보니 마음이 동하고, 그렇다보니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여러 영화에서 말 그대로 죽을만큼 사랑했는데 헤어져야 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대리만족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난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보고 느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누군가는" 이라고 항상 기대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