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늦게 생겼으면 그냥 어디가서 자고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유 방임이라고 해도 될만큼 어렸을 때 잔소리를 안하셨다. 공부해라는 말은 한번도 안들어본 것 같고, 치워라, 씻어라. 이런 잔소리도 거의 들어본 기억이 안난다.
그런 부모님 밑에선 난 이상하게 엄청 계획적인 사람으로 자랐다.
그래서 내 계획에도 없는 회식에 가고, 원래 자던 시각보다 늦게 잠을 자야하는 것에 다소 거부감이 있다.
결정적으로 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술 마시기 대회를 하듯 쏘맥을 연거푸 마시며 취하가는 걸 보는 그런 술자리가 너무 싫다. 유흥을 못하고 싫어하는 한국인으로 사는 게 정말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같은 성격 아니면 모르겠지.
업무 후 술자리가 어떻게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것인지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왜 사회생활에 특화된 사교적 한국인 성격을 타고나지 못한 것일까. 하고 직장 생활 초기에는 좌절도 했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고쳐지지도 않을 걸 아니까.


1. 석회화건염
토요일에 직전회사에서 친했던 대리님이랑 송도에서 맛있는 걸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에 왼쪽 손목이 참을 수 없이 아픈거다. 너무 아파서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눈물이 핑 돌았다. 약속을 취소하고 급히 송도의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니 의사가 심드렁하게 석회화건염이라고 했다. (정말 별 이상한 병도 다 있지. 왜 관절에 석회가 생기는 건지.)
이틀동안 극심한 통증때문에 지옥을 경험하고, 월요일 아침에 정식 진찰시간보다 빨리 대학병원에가서 진료를 기다렸지만, 손목전문의가 없다고 1년차 어린 의사는 나에게 그 어떤 처치도 해주지 않았다. 뭔 놈의 병원이 의사 출근날을 가려 환자를 받나 싶었다. 결국 화요일에 다시 가서 특진으로 5만원 넘게 돈을 지불한 뒤 진료를 받았고 왼팔에 반깁스를 했다.
사실 토요일에 비하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깁스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엄마는 이틀이나 휴가 냈으니 아픈 척 해야한다면서 그냥 깁스를 하고 출근하라고 하셨다. 올해 두번째 깁스다.
하는 수 없이 깁스를 하고 오늘 하루종일 독수리타법으로 키보드를 치며 일했다.

2. 왼손과 오른손
4일간 왼손을 못쓰면서 느낀 건 오른손잡이인 나의 오른손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왼손 못써도 밥도 먹고 샤워도 할 수 있고 글씨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왼손을 못쓰니 내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묶을 수가 없고, 화장실에서 한 손으로 바지를 올리고 내려야 했다.
저번에 어깨뼈가 세조각나서 재활하던 언니가 아직도 머리 혼자 못 묶는다며 한탄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머리를 묶는게 보통 복잡한 행위가 아니다. 한손으로 절대 못 묶는다.

3. 전쟁드라마
휴가기간동안 손목이 아파서 신경질적이 되고, 바깥에 나갈 수 없으니 집에서 티비보다 책보다만 했다. 그러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Band of brothers 를 봤다. (거금 9천원을 결제했다)
철저하게 승자 관점에서 서술된 드라마였다. 드라마 내내 독일군의 입장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미군들은 그 치열한 전투를 겪었음에도 정신적으로 거의 아무 이상도 없다. 대부분 화에 전투신이 나오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끝이 없겠지만, 엄청 재밌긴 하다. 또 보고 싶을 정도. 올레티비의 시리즈는 부상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줘서 좋았다.

나는 생긴 것과 전혀 어울리지않게 전쟁 영화를 좋아했는데 한동안 시들하다가 워호스 본 뒤로 전쟁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에 다시 불이 붙었다.
요즘 읽는 책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이다. 화기와 비행기, 전차의 나라별 모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많아서 막 재밌진 않지만 꽤 읽을만 하다.
The pacific 이 Band of brothers 의 후속이라는데 선뜻 볼 용기가 안난다.
Thin red line 이라는 태평양전쟁을 다룬 영화를 어렸을 때 봤는데, 정말 충격이 컸다.
한국인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군이 나오니 유럽전선을 다룬 여타 영화에 비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홀로코스트를 제외하면 전투 중 잔인하고 끔찍했던 건 태평양전선이 유럽전선보다 더했음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전쟁이 악마적인 건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모든 걸 혐오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걔네들한텐 정이 안간다. 오키나와와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치가 떨린다.

4. 송년회식 장소
회사에서 송년회 때문에 죽을 맛이다. 내가 예약을 맡았는데 어딜 정해도 100% 만족은 없을테니 제발 그냥 내가 정하는대로 따라와줬으면 좋겠다. 장소 때문에 거의 3주째 갈팡질팡 중 이다.

5. 볼 영화들
007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 영화 두개다 보고싶다. 마션은 결국 티비로 보게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돌아가시면 슬퍼서 울 것 같다. 그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내가 본 모든 그의 영화는 모두 지극히도 영화적 이었다. 존경한다. 또 워호스 얘기를 하게 되지만 그 누가 말의 시각으로 유치하지 않게 전쟁 영화를 그렇게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다.


금요일밤 회사 회식

일상 2009. 11. 2. 15:05
금요일에는 회식을 했다. 요즘에는 금요일에는 회식 안하는 분위기라던데, 난 차라리 금요일이 좋더라. 평일 때 늦게까지 회식이나 야근 하고 다음날 출근하려면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회식이나 야식이나 싫기는 매한가지고 그나마 주말을 위로 삼아 기꺼이 참을 수 있다. 금요일이라고 해봤자 약속도 없고, 아무리 금요일이라고 해도 난 약속없이 집에 들어가는 게 좋지 어쩔 수 없이 약속 생기고 피곤하게 집에 들어가는 건 싫다.(내 주변은 이런 나의 상황만 이해해주는 사람하고만 친하므로 자주 만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오늘은 월요일. 주말이 앞으로 구만리구나.
가끔 보면 난 주말은 엄청 기다리는데, 세월이 가는 것에 대해선 슬퍼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주말은 엄청 기다려지지만 2009년의 끝이 오는 건 싫다. 벌써 november 다. 뒤에 "ber" 자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1년 끝난 거 같고 슬프던데 이제 11월. 아...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11월만 되면 왜 아직도 수능날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난 수능을 11월 7일에 봤는데 평소 운 없기로 소문난 나이니만큼 엄청 추운 자리에 배정되서 덜덜 떨면서 시험을 봤다.
금요일 회식 주제는 우울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는 회사 생활이 왜 이렇게 우울한가 더 즐거운 회사생활을 위하여 아이디어를 내보자. 하는 것 이었다.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건 직장 생활 하는 사람은 알지 않을까? 저번에 블로그 하면서 썼던 말 중에 지다님이 하셨던 말 중에 명언이 생각났다. 천국도 직장 사람과 함께라면 싫다는 말. 크큭. 옳타 옳타 하면서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생각해보라고 하니... 그래도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보나마나 흐지부지 될 거 뻔하다.
사람들은 뷔페를 좋아하는데 (근데 뷔페 라는 거 부페 인지 뷔폐 인지 햇갈려서 네이버에서 사전 검색했다 큭) 난 별로 안 좋아한다.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고 난 한가지 제대로 된 거 먹고 싶지, 여러가지 고만 고만 한 거 먹기 싫어서... 빕스 갔는데 거기서 제일 맛있었던 건 튀긴 감자였다. 고기는 이상하게 별로 안 땡겨서 안 먹었다. 저번 주 신체 검사 했는데 일생 일대의 몸무게가 나왔다. 내 일생의 최대치 몸무게를 훨씬 갱신한 수치였다. 밤마다 옥동자 먹고 밥먹고 옥수수 먹고 감자먹고 했더니 살이 찌는구나.
예전에는 칼로리 보면서 뭐 사먹는 여자애들 보면서 뭐 저렇게 세상을 복잡하게 사나.. 하면서 욕했다. 그러면서 오늘 점심 때 편의점 가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살 덜 찔 거 같은 두유를 구입하였다. 과연 덴마크 요구르트나 내가 최고 좋아하는 덴마크 우유에서 나온 카페모카보다 칼로리가 낮았다.
오늘 아침부터 하드렌즈가 말썽이다. 저저번주 금요일에 휴가 냈을 때 안과를 갔는데 정확한 시력을 재려면 2주동안 하드렌즈를 빼야 한다기에 그냥 그대로 왔다. 다시 맞춰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꽤 부담스러운 액수인데 이렇게 내 눈에서 말썽을 일으키면 문제가 많지.
지금 내 눈에 하얀색 엄청 큰 눈곱이 낀 것처럼 보이는데 이 렌즈를 빼면 하나도 안 보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끼고 있다. 내일 부터 그냥 안경 끼고 이번 주 토요일에 그냥 안과가보자. 내가 가는 안과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그냥 그 자리에서 하드렌즈 맞추겠단 사람한테 시력이 정확치 않으니 2주 후에 오라니. 저번에 갔을 때는 렌즈 잘못으로 눈 아픈거 같다고 새로 하고 싶다고 하니까 렌즈 잘못 아니고 안구건조증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약만 처방해줬다.
11월 첫 근무일. 역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심란하다.

기다려주는 마음.

일상 2009. 8. 15. 16:50
어제는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다. 팀장이 보낸 메일을 보니 부담없이 참석할 수 없으면 안와도 된다는 말이 붙어 있길래 난 참석하지 않았다.
월요일에는 회사 일 때문에 정말 험한 일을 겪었다. 우스갯 소리로 납치 당할 뻔 했다고 말을 했지만, 그 때 당시는 우스갯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왜 회사 때문에 이렇게 낯선 남자 차에 끌려서 고속도로까지 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진정한 눈물 두줄기가 흘렀다.
가슴이 떨리고 다시한번 결심을 했고, 당연히 어제 회식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회식에 간 사람이 전화를 해서 우리 파트에 어떻게 한명도 회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냐고 질타같은 충고를 들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우리 파트장을 불쌍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한명도 안와서 그럴 수가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은 나와 회사에서 제일 친한 사람이고, 내가 이미 관둘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난 이미 마음이 떠났고, 개인주의라서 그랬나보다. 보기에 그렇게 안 좋아보였다면 그게 맞겠지. 하고 말했더니 미영아 우리 직장생활 하자. 이런 말을 들었다.
한달에 한번 월급 받는데 하루 정해진 8시간 이외에도 많은 걸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어제는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그래 알겠다. 내가 잘못했다. 하고 사죄하는 모양세가 되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거 그거 참 힘든 것 같다.
내가 오죽하면 제일 친한 너에게 이런 말을 하겠냐고 말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 난 이제까지 살면서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 해본 적이 없어서 놀랬다.
난 맹세코 나랑 친한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 이해가 안 간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몇 년동안 직장생활 하는 사람은 위와 같은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파트가 남의 파트보다 웃겨 보이면 안되고 내 윗사람이 남의 윗사람한테 제대로 안보이면 안되고 그런거.솔직히 말하면 난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인간적 유대감은 단 1%도 없다. (근데 내 밑으로 들어온 애는 엄청 착해서 걔는 내가 엄청 챙기고는 있다. 내 기준에선. 내가 회사를 관두는데 걸리는게 있다면 바로 그 후배니까)
다른 사람이 걱정되는 마음이 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날 보는 눈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난 회사에서 그런 거 까지 상관하고 싶지 않다. 너무 복잡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제 통화에서 이야기가 발전해서, 요즘 회사에서 내 모습은 점점 원래 좋았던 모습이 없어져 간다는 이야기로까지 발전을 했다.
저번주 금요일에는 내가 나에게 상처를 받은 날이었다. 평소 때면 버스안에서 절대 화를 안낼 일인데 어떤 아줌마에게 완전 화를 냈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하필 또 너무 착한 아줌마였다. 나한테 미안해요. 라고 말을 하는데 마침 내가 바로 내리는 정류장이라서 괜찮다는 말을 못했다.
별거 아닐 수 있는데 그 다음날 토요일까지 계속 평소같지 않은 내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
그래 내가 25살 22살 이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그냥 나 자신도 어느정도는 그런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난 내가 이렇게 된 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화로 그렇게 확인사살까지 받고 나니 바보같이 눈물이 흘러서 어제 새벽까지 울다 잤다.

전화한 사람에게는 신경쓰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이미 걔가 한 말에 난 엄청나게 상처를 받았다. 나중에는 걔도 미안하다고 했지만 말이다.

모르겠다. 잘난 척 하는걸로 보일지 몰라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거고 그게 당황스러우면 그냥 원래 모습대로 되돌아 오길 기다려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다 본성 이라는 게 있어서 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본성이라는게 쉽게 없어진다고는 생각 안한다. 일시적으로 다르더라도 그냥 이해해주고 옆에서 너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지 말고, 완전히 변할까봐 조바심 느끼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치사하게 나 혼자 이렇게 일기로 쓰지 말고 어제 걔한테 해야 하는 말이지만.

오늘 퉁퉁 부은 눈으로 TV를 켰는데 불량공주 모모코를 하길래 봤다. 거기서 나온 이치고 저번에 녹차의 맛에서 나온 애던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리고 약간 사각턱인 후카다 쿄코 도 이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