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선생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7.03 Ennio Morricone - Gabriel's Oboe


초등학교 1학년 부터 4학년 1학기 전학오기 전까지 난 피아노를 배웠다. 잘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맞벌이를 하던 엄마는 내가 집에서 돌아오면 갈 곳을 만들어야 했고, 나는 피아노도 안 배우는 동생을 데리고 피아노를 배우러 갔다.

나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여자 피아노 선생님 집에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그 선생님이 연주를 하면 악보도 넘겨주고 패달도 밟아주고 그랬다. (지금은 악보도 전혀 볼 줄 모르는데)

한번은 선생님께서 거실에서 재활훈련 비슷한 걸 하는 걸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힘들다며 눈물을 뚝뚝 흘려서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마 선생님 앞에 나서질 못하고 연습 다 끝났는데도 문 뒤에 숨어서 한동안 못나갔다. 

진짜 보고 싶은 선생님.

선생님한테 피아노를 못배우게 되면서 더이상 피아노를 치고 싶은 생각이 안들어서 난 그 뒤로 지금까지 피아노를 친 적이 없다. 

시험 끝나면 피아노 배우는 애들 모아놓고 불편한 몸으로 파티도 해주셨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여하튼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도 안계시고, 학교에서는 따돌림 당하면서 엄마한테는 말한마디 못하고 지냈던 내가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건 그 선생님 덕도 있을 것이다. 

선생님 집에 있는 책도 빌려서 많이 보게 되고 (어린왕자도 그 때 처음 읽었으니까) 음악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교습 끝나고 천주교 신자셨던 선생님이 이 음악을 CD로 들려주셨는데 이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눈물이 났다. 5층이었던 선생님 집을 걸어내려 오면서도 눈물이 좀 흐를 정도였는데, 그냥 순수하게 이 음악의 멜로디가 아름다워서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많이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야 이 곡이 엔니오 모리코네라는 유명 영화음악가의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음악가 중 한명도 엔니오 모리코네가 되었지만, 뜬금없이 월요일 밤에 선생님 생각이 났다. 

결혼도 하시고, 행복하게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