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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호텔
: 겨울 冬, 봄 春

아사다 지로

문학동네











일단은 며칠 전에 이 책을 다 읽었다. 4권 중 가장 볼만한 권을 뽑으라면 4권을 뽑겠다. 흠.. 마지막에 기도 고노스케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점잖아진 건, 아니 갑자기 어떻게 왜?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애초에 작가가 이 소설을 여러 연관관계를 두고 심각하게 쓴 소설이 아닌 듯 보였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사다 지로가 원래 그런건지는 다른 소설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4권을 다 통틀어서, 그리고 현재의 내 상황과 부합하는 글이 있었다.

" 잘 들어, 사장.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도박의 오의(奧 '깊은' 義 '뜻' - 난 이 '오의'라는 뜻을 국어사전을 찾아본 후에야 무슨 뜻인지 알았다)를 지금 가르쳐주지. 하나도 어렵지 않아."
"오의......?"
오마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 것. 누가 뭐라 하든 나쁜 눈이 나온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 것. 사발 바닥에 사오륙 갓파기가 나오는 광경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거야. 그것만 생각해. 그러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

-프리즌 호텔 4권 봄 P.288-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은 언제나 안전하다. 위험부담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다. 나는 위의 글을 읽으며 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대로 이 모든 것이 나빠진 것 아닐까? 내가 예측을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니까 무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된다고 생각하면 (만약 그것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된다고 생각한 그 시간 동안은 행복하게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안된다고 생각하면? 이 모든게 부질없어지고 귀찮을 뿐이다 이거다.

2008년은 대운이 온다. 분명히 대운이 온다고 믿고 있다. 2006년에 내 운은 바닥을 쳤다. 이보다 나쁠 순 없다고 몇 번을 되내였고, 현재까지는 최악의 해였다. 2007년은 좋지는 않았지만, 2006년보다는 좋았다. 2008년은 아마 더욱 멋진 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 이순간 나는 1그램의 의심도 없이 2008년은 2007년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것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간에, 첫걸음은.
반드시 된다고 믿을 것. 그리고 반드시 된다는 내 믿음이 어리석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
설사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숭고한 일이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들을 마음껏 비웃어 줄 수 있는 위대한 행위 아니더냐.

2008년에는 단 한순간만이라도 저 다짐에 충실하도록 해야겠다.
어울리지 않게 이런 긍정적 다짐을 하고나니 어쩐지 기분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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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호텔 : 가을 秋
아사다 지로
문학동네

솔직히 말해서 이번 권은 완전히 실망스러웠다. 진부하고 또 진부했다. 진부함을 노리고 이렇게 쓴 거라면 대성공.
물론 나는 아사다 지로의 만분의 일 만큼도 글을 못쓰지만 어찌되었든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
물론 여타 소설가 나부랭이라고 우리나라 서점가를 완전히 점령해버린 젊은 일본작가들보단 괜찮지만.

나카조삼촌의 사랑(보스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뻔한)도, 경찰과 야쿠자가 화해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인 기도 고노스케 라는 작자도 마음에 안들었다. 더 괜찮은 캐릭터가 나와줬음 했는데 나나 라는 여자도 매력 없고 기분 나빴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와타나베 간사와 가가와 신스케 라는 사람이 등장했던 것.

이렇게 평면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돌머리를 탓하시든지 말든지. 기도 고노스케 라는 인물은 애정을 갖고 봐달라는 캐릭터인지 환멸하라는 캐릭터인지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성질머리가 드럽다고 해도 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요 캐릭터는 정말 아니올시다 이다.

물론 기도 고노스케 라는 인물이 그렇게 폐륜아가 되어버린 건 그로 인해 나카조 삼촌하고 친엄마가 죄책감을 안겨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은 알겠다. 내가 기분 나쁜 건 기도 고노스케가 아니다.
개페미 라고 해도 이 말은 해야겠는데, 남자한테 얻어터지고 막말을 들어가면서도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건 개잡스런 허상이다. 설마 모든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하겠지만 아무리 소설이고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요코라는 인물이 이해가 안가고 나나 라는 인물도 이해가 안간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역겨워하고 혐오스러워 마지 않는 것이 이런 관계다. 이렇게 기분 나쁜 상태에서 왜 계속 읽느냐 집어쳐라 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냥 시작은 했으니 끝은 봐야겠다.

다음은 인상 깊었던 구절.

"어느 날 밤, 학교에 가보니 캠퍼스가 개판이 되어 있더군. 책상과 의자는 바리케이드로 변하고, 영문 모를 구호가 캠퍼스에 메아리치고, 한구석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어. 교정은 폐허나 마찬가지였지.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우리는 아냐. 부모에게 학비 받으면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학교에 오는 놈들이었어. 대단한 말들을 하더군. 일본제국주의 타도, 안보반대, 체제분쇄라고 말이야. 제국주의가 대체 어디 있는데. 그런 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 허리까지 차는 눈길을 헤치고 고향을 떠나 개처럼 일을 해서 이제 겨우 대학이라는 문을 뚫고 들어왔는데. 즐거움이라고는 고작해야 일요일 밤에 신주쿠의 라이브 찻집에서 고함 한번 질러보는 것밖에 없었던 나한테 제국주의니 안보니 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냔 말이야. 그렇지 않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편하게, 그리고 게으르게 살아온 인물이지만.. 취업전선에 있으면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오빠가 했던 말처럼 '그 사람들이 뭔데 사람 평가를 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말 재주가 없어서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충분한 비용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심적 여유가 있어서 내 의지에 의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예정대로 행한 사치와도 같은 '고생' '고뇌'에 대하여 그것의 자신의 심오한 경험인양, 마치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양 포장하는 것도 짜증이 났고, 그 포장대로 옳타쿠나 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다.
그에 비해 예상치도 못하게 내가 정말 피하고 싶은 고통을 남들한테 말한마디 못하고 고독하게 아무도 모르게 다 감당해온, 그걸 견디느라고 남들은 멋있다고 말하는 경험 한 번 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왜 위에 말한 별것도 아닌 것들보다 못나게 그리고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냔 말이다. 그리고 왜 더 게으르고 할 일없이 시간만 보낸 한심한 인간 대접을 받느냐 이거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 억울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난 그야말로 귀찮아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니까 이 벌을 달게 받겠지만,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승승장구 하고 정말로 힘들게 견뎌온 사람이 겉에서 보기에는 초라하디 초라한 20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조금 화가 났다. 저 가가와 신스케의 말 처럼 말이다. 그냥 남들이 하는 거 평균정도만 하기에도 여러가지로 힘든 사람들이 있는거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안그런 사람들을 평생을 두고 비웃고 애송이라 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억울한데 당하는 사람은 어떻겠어.

다음은 내가 결정적으로 실망했던 계기.

나카조 오야붕은 주위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여흥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구먼. 자, 이제 칸막이도 없어졌으니 여기서는 딱딱한 이야길랑 집어치우고 신나게 한번 놀아봅시다.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면 또 어떻소. 어이! 술,술 가져와. 술이고 안주고 있는 대로 몽땅 가지고 와!"
예잇, 하고 여급들이 먼저 웃음을 되찾고 달려나갔다.
까까머리를 맞댄 채 손을 꼭 잡고 있던 구로다와 마쓰쿠라 계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슨 오물이라도 만진 듯 손을 털고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돌렸다.


이 앞에서 부터 위의 장면이 있는 페이지를 읽으면서 대략.
'설마 아사다 지로.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경찰과 야쿠자가 화해하는 것은 아니겠지.'
'헉. 왠지 불길한 예감이'
'아아아아악. 안돼. 아사다 지로.. ㅠㅠ'
이런 상태였다. 소.. 솔직히 난 더 드라마틱한 화해를 원했다고.

어찌되었든 난 2권을 다 읽었고 현재 3권 즉 겨울 이야기 편을 읽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반 정도 읽은 지금 내 느낌으로 봐서는 가을보다는 훨씬 훌륭한 것 같다. 이게 시리즈 물이고 어떤 권을 맨 처음으로 읽든지 내용파악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리포터처럼) 인물소개를 또 해주고 또 해주고 하는 건 좀 지겹지만.

아아. 그래도 아사다 지로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 지겹지 않게 해주셔서.; 적응안되는 저 표지는 그렇다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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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호텔 : 여름夏
아사다 지로
문학동네


아사다 지로가 4년간에 걸쳐 발표한 소설.
야쿠자들이 세운 오쿠유모토수국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유티크한 표지 덕분에 지하철에서 저 책을 빼서 읽고 있으면 다들 한번씩은 책 표지를 쳐다봤다.
한때 평론가를 꿈꾸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뭔가에 대한 감상을 전달하는데 서툰 내가 또 어땠다 저쨌다 하는 것 보다는 괜찮았던 구절을 적어 놓는 것이 내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일 터.

-상대가 격렬한 하드보일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알고 보면 그런 놈일수록 젓가락 같은 몸매에 심성도 유약하기 짝이 없는 법이다. 창조의 근원은 변신을 바라는 마음이다. 매사에 꼼꼼하기 짝이 없는 내가 거칠기 짝이 없는 조폭소설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만.

-"아니, 그렇지만, 그들의 논리라는 건 애당초 사회적인 더덕률이 통하지 않아."
  "통해요. 그들이 우리와 뭐 다른 생명체인가요? 당신의 사고방식은 늘 차별적이에요. 공포는 차별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꼭 일 년 동안 자세히 분석하고 정보를 모아서, 이 수국 호텔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극락 리조트로 만들어줄 사나이를 찾았지. 아니나 다를까, 쓸 만한 인간은 하나도 없더군. 하나같이 그렇고 그런 호텔맨뿐이고, 사람의 정을 끌어모을 만한 사내는 없었던 거야. 그런데, 한 사람을 찾아냈지. 십 년 전에 아카사카 크라운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놈. 가는 곳 마다 지배인과 싸우고 한 곳에 일 년도 채 머물지 못하는 방랑 호텔맨. 그런 주제에 손님에게 감사장을 산처럼 받아챙기고, 택배로까지 선물을 받는, 그러나 그 선물이 도착할 즈음에는 그 호텔을 떠나고 없는, 너무나도 멋진 사나이. 어이 하나자와 선악과 힘의 크고 작음은 다른 거야. 늘 자네가 나빴던 건 아니야. 크라운 호텔이 나빴어. "


만약에 이 책을 다 읽는다면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이후로 4권 이상의 시리즈 책을 읽는 건데 지금으로 봐서는 다 읽을 듯 싶다. 결말이 벌써부터 궁금하니까.

혹시 수국이라는 꽃을 아는지 모르겠다. 강원도 산골에서 리얼 컨츄리스럽게 자란 나는 이 수국꽃을 본 기억이 난다. 커서도 종종 봤는데, 지금 서울과 인천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인 호텔에 수국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나도 오랜만에 수국을 보고 싶어졌다. 난 보라색 수국을 제일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 살던 동네 뒷편에는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나오는 메밀꽃이 지천 이었다. 그 곳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메밀꽃 필 무렵을 읽으며 '맞아.. 메밀꽃이 꼭 이렇게 생겼지." 라고 공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 우리가 살던 빌라 화단에 제일 많은 꽃은 맨드라미 였다. 여름에 항상 피어 있는 맨드라미를 보면 이 꽃은 왜 이리 못생겼을까.. 싶다가도 그 꽃을 만져보면 담요같은 감촉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그 꽃을 쓰다듬고 있다가 놀이터로 놀러가곤 했다.
해바라기도 있었는데 해바라기는 우리 동네보단 엄마 아빠와 같이 다니던 교회에 더 많았다.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면 해바라기보다 훨씬 키 작은 내가 어려야만 입을 수 있는 원피스를 입고 웃고 있다. 생각해보니 내동생 태어난지 한 2주 정도 되었을 때 갓난아기인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배경도 해바라기 였군. 가끔 해바라기 씨를 빼 먹곤 했는데 씨를 빼 먹으면 왠지 해바라기 꽃이 못생겨지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 박완서가 쓴 '두부'라는 책을 읽다가 길을 가다가 옛날 채송화가 너무 이뻐서 캐와서 집 앞 마당에 옮겨 심었다는 내용을 봤다. 그것을 계기로 10년이 넘게 잊고 있었던 채송화 라는 꽃이 생각이 났다. 채송화!!!! 채송화 역시 반팔 입는 때 피는 꽃인데 민들레 처럼 땅에 딱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소꼽놀이 할 때 많이 애용하던 꽃 이었다.

프리즌 호텔 얘기하다가 왜 꽃 얘기로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저번에 친구가 이번 년도에 책을 이만큼 읽었는데.. 근데 1권에서 4권까지 읽은 시리즈책은 한 권 읽었다고 치냐. 4권 읽었다고 치냐. 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 흠.. 내가 한 권 아냐? 했더니. 친구는 싫어 4권으로 칠래. 했다.
책 얼만큼 읽었다. 통계를 내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나도 친구 따라서 그냥 4권 으로 치기로 했다.

현재 읽는 책은 프리즌 호텔 : 가을秋
여름편보다 훨씬 두껍다.
현재 맘에 드는 캐릭터는 역시 나카조 삼촌. 하지만 더 매력적 캐릭터가 나왔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