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팔자

단문 2015. 3. 30. 00:36

교회를 다니고,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로 보던 타로나 사주 같은 걸 다 끊었다. 그런데 어제 지하상가를 가다가, 5천원인데 재미로 한번 타로나 볼까 하고 부스에 들어갔다가 3만원짜리 사주를 보고 왔다.

사실 사주 같은 거 전혀 안 믿는다. 33살 된 여자가 사주보러 와서 제일 관심 갖는게 솔직히 뭐 결혼 밖에 더 있겠나. 고민이야 끽해야 결혼이나 직업 둘 중 하나겠고, 내가 먼저 남자 얘기를 꺼내면 옳타쿠나 하고 연애나 결혼에 대해 말하면 되고, 연애가 잘되가는 사람이 사주보러 왔을리는 만무하니 그냥 깨졌구나 하고 물어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엔 몇 월에 다시 인연이 생긴다는 둥 이런 식으로 희망을 주는 말 몇마디 하면 사주보러 온 사람은 사실도 아닌 말을 믿으면서 돌아서겠지.

어렸을 때 재미로 본 사주가 하나도 맞지 않았기 때문에 안 믿는 것도 있는건데, 어제 나는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내가 평생 결혼을 못하는 사주냐. 하고. 다행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언제 하느냐 이런건 물어도 안봤다. 어차피 안 믿으니깐. 그런데 어디서 들으니 결혼 못하는 사주는 또 따로 있다는 걸 들은 거 같아서.. 그것만 물어본 건데, 그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뭐 다른건 안 물어보고 그냥 3만원 주고 나왔다. 뭐 결혼을 한다 뿐이지 그 결혼이 쉰살이 될 수도 환갑이 될 수도 있는거니, 큰 의미부여는 안한다.

아저씨 말로는 올해는 남자하고 뭘해도 깨지고 작년이 남자가 들어오는 운이었다는데, 들어오긴 개뿔. 역시 사주는 별로 믿을 게 못된다.

아저씨가 나는 평생 외로울 팔자라는데, 그래서 결혼을 해도 남자랑 주말부부로 살거랜다. 이건 뭐 나중에 두고보면 될 일이고. 평생 외로운 거야 누구나 그런거라 생각하니깐..

오늘 교회가서 사주본 거 회개하려고 했는데, 늦잠 자서 못갔다. 오늘 기도하고 자야겠다.


용산역에서 내 20대.

일상 2013. 8. 12. 00:47

친구와 영화를 보기 위해 용산역 롯데시네마에 갔다. 용산역과 바로 연결되는 CGV 와는 다르게 롯데시네마는 3번출구로 나가서 꽤 많이 걸어야했다. 8월 1일에 새로 롯데시네마가 개관한건데, 아마 거기 다른 극장이 있었는데 롯데시네마가 인수한 모양이었다.

인수해서 인테리어를 거의 대부분 남겨놓은 것인지, 내가 갔던 다른 롯데시네마들과는 내부 디자인이 많이 다르더군?

영화가 1시 30분 영화여서 우리는 12시 반 쯤 만났는데, 그리고 집에 9시에 들어왔으니 하루종일 친구와 함께 한 셈이다. 그게 조금 무리였는지 난 오늘 하루종일 먹고 자고 쇼파에서 자고 침대에서 자고 거실에서 자고 여하튼 계속 잤다.

친구나 나나 용산역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조금 헤맸는데, 헤매다가 내가 27살 어느 겨울 공항버스 정류장을 찾느라 헤매던 곳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대로였다.

 

2009년 12월과 2010년 1월, 그 겨울 기록적인 폭설로 1호선은 한 일주일간 멈추거나 아예 안가거나 했고, 만약 인천행 기차가 오면 그 차에 얼마나 사람이 많던간에 나는 무조건 그 열차를 타야만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있는데도 내 갈비뼈가 이러다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니깐.

내가 위에 말한 그날은 영화 15도에 칼바람이 무지하게 불어대던, 바로 한 이틀 전 미친듯이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날이었다.

어느날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오다가 고민을 했다. 급행을 탈 것인가 그냥 지금 탄 인천 완행을 탈 것인가.

그러다 나는 급행을 타기로 하고 용산역에서 내렸는데 아뿔싸.

내가 내렸던 그 인천 완행이 인천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였던 것이다. 동인천 급행도 없고, 그 열차 뒤로는 모든 열차가 고장이라 이제 인천행 열차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절망적인 코레일의 방송 잊을 수가 없다.

인천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 했는데 도로 사정을 봐서는 도저히 택시를 탔다간 밤을 새도 인천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또 인천까지 간다는 택시기사가 있을리도 만무했다.

나는 용산역에 앉아서 무한정 기다렸다. 나 같이 인천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인천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지 많았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데도 도저히 복구될 기미가 안보였다. 밤이 되면 날이 더 추워지니까.. 다 망가져서 못달리는 열차가 단시간에 다 복구될리도 없었겠지. (그때 그냥 선량한 소시민 코레일 직원들도 아마 시민들 불평 불만 다 받아주는 방패하느라 무지 고생했을 거다. 그 사람들 잘못은 아닌데. 여러모로 참 슬픈 겨울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생각한 것이 용산역에 KTX 가 있으니 공항 가는 버스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였는데, 당시에는 스마트 폰이 없었기 때문에 공항가는 버스 정류장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역내 직원에게 물어 물어서 용산역 주변을 목도리 두르고 돌아다니는데 난 정말 춥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냐면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해서 나 이렇게 집에 가려고 개고생 하고 있다고 말할 사람도 없었고, 애타게 찾는 공항버스 정류장은 나오지도 않고. 어찌저찌 정류장을 찾아서 주변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공항버스 오려면 40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영하 10도가 넘는 그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다행히 공항고속도로는 말끔하게 제설이 되어 있었고, 빠른 시간 내 공항에 도착했지만, 공항에서 또 버스를 타고 우리집 오는데 평소면 30분 걸리는 길을 한시간이 넘게 걸려서 왔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나선 뒤 거의 4시간이 넘게 걸려서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아빠에게 엄청 짜증을 부렸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그때 쯤 이 지긋지긋한, 그만둘까 말까 입사하는 첫날부터 고민했던 그 직장을 때려쳐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불행했던 위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용산역 바깥을 나가본 거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난 여전히 외롭다는 슬픈 소식이다. 오늘 그래서 집에서 많이 우울했다. 물론 내색은 안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어렸을 때 부터 평생 외로운 것이 내 팔자인가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