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만나기.

일상 2010. 6. 26. 16:06
내가 블로그에 회사 친구 만나는거 기대되서 포스팅 까지 했는데 그 친구가 약속을 취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 만나러 가신 거 같다. 얼굴이 워낙 예쁘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빈정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화성인 바이러스나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배 제가 지금 어디 가고 있게요~"
이러길래
"인천!!!!"
이라고 말했더니 빙고였다.

예전 다니던 회사에서 난 도저히 그건 못하겠다고 하고 관둔 일을 후배가 하고 있었다. 내가 안관뒀다면 내가 그러고 있었겠지. 회사에서 시킨 일은 불만 고객 집에 직접 방문하라는 거였는데, 모르겠다. 물론 영업을 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고 나도 과외하면서 남의 집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걸 내 평생 業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지같은 상사 얼굴 보느니 외근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어떤 양아치 남자 고객을 한번 만나러 갔는데 그 남자가 나를 차에 태우고 경인고속도로를 전력질주 해버린 이후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제발 내려달라고 빌어서 온수역에서 내렸지만 가슴이 뛰어서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난 울었다. 크크큭

인천으로 온 후배를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부평에서 만나서 요즘 회사 굴러가는 상황을 듣다보니까 그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면서 나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후배랑 내 후임으로 들어온 그 친구가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았다. 물론 회사에서 돈 버는 일은 다 힘들고 어느 정도 스트레스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후배가 지금 맞대하고 있는 회사의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었다. 아직 일한지 2년이 안되서 꾹 참고 다니고 있다지만, 어떻게 그 회사에서 2년 넘게 버텼나 싶기도 하고 더 악화되기 전에 발을 뺀 내가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넌 26살이라 아직 젊고 이쁘니까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오늘도 출근한다는데 야외에서 하는 일인데 그나마 비가 안와서 다행이다.
요즘 할부값에 치이고 병신같은 채용공고를 클릭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대로 평생 사회에서 잉여로 살 수 도 있겠구나 싶어서 우울했지만, 다시한번 나의 퇴직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공고히 하는 시간이었다.

사요나라. 충무로

일상 2010. 4. 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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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누구나 한번씩은 생각한다는 사직서를 썼다.꼭 자필로 작성하라고 해서 자필로 작성을 했다. 퇴직 사유에 구체적으로 기술하라고 써 있었는데 적성에 안 맞는다고 썼다.학창시절에 적성검사도 하고 학교 선생들이 생활기록부에 적성에 대해서도 써주고 하는데 왜 난 28살이 되도록 내 적성하나 못 찾아서 이러고 있나 싶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생각보다 사직서를 쓰는 기분은 담담했다.
우리 부모님은 나때문에 심란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보면서 난 한 직장에서 오래 붙어 다녀야지 결국 3년을 못 넘겼다. 그래도 참고 참아서 2년 9개월임.
25살에서 28살 어떻게 보면 제일 좋다면 좋은 시절을 회사에서 보낸 건데 생각 나는 거라곤 기상, 출근, 업무, 퇴근이것 밖에 없다.한의원에서 나한테 한약 지어먹으려고 지어낸 말일지도 모를 나의 80세 노인 체력으론 솔직히 회사 다니면서 다른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 너무 무난하게 살아온 거 같아서 갑자기 우울해진다. 그렇다고 특출나게 살고 싶은 것도 아닌데. 적어도 모든 것이 불만인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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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일하는 곳은 다른 팀과는 분리되어 있는 곳이었다. 유리로 막혀 있었는데 앞에 앉는 새로온 사람이 달력을 덕지 덕지 붙여 놓는 바람에 바깥 동향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도 작년 다이어 살 때 준 12월치 다 나와 있는 달력을 붙여 놓으니까 일하기 편하고 그래서, 사서 붙여놨었다. 저 달력은 새로온 분한테 주고 왔다. 집에 있을 땐 12개월치 다 보면서 일할필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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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달력 밑으로 내려오면 다른 달력이 보인다. 퇴직 전까지는 스케줄이 빼곡하나 그 이후로는 하얗다. 탁상 달력을 대학 때는 전혀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사용해보니까 편하다. 앞으로는 애용해주기로 했다. 탁상달력 옆에는 스피커, 그 앞에는 핸드폰 꽂아놓는 강아지. 그리고 모니터. 모니터 옆에 붙어 있는 건 자주 사용하는 전화번호 모니터 뒤의 코르크 보드에도 자주 사용하는 전화번호 혹은 필요한 사이트 비밀번호 아이디 목록. 모니터 밑에 있는 건 내가 사용하던 노란 연습장. 난 A4 만한 연습장을 세로 말고 가로로 놓고 쓰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해야 내 책상에 놓고 쓰기 편했다.. (이 사진 한번도 사용안해본 DSLR 로 찍었는데 촛점이 저기 연필꽂이에 딱 맞았다) 그리고 사진 제일 앞쪽으로 보이는 건 사원증하고 교통카드 넣고 다니는 카드지갑이랑 남들은 웬만해선 안쓰지만 한번 사용해보면 편한 푸카 모양의 팔꿈치보호대. (강추합니다. 여름에 팔꿈치 아프지 않아요) 그리고 내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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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뒤로 보이는 코르크보드는 처음 왔을 때 부터 붙어있었던 건데, 잡다한 영수증, 버리기도 뭐하고 언젠가는 한번 찾아볼 거 같은 메모를 죽 꽂아놓기에 안성맞춤. 내 방에도 붙여놓고 싶은데, 지저분할까봐 참는다. 저기 있는 코르크보드 상태는 내가 정리하느라고 엄청 깨끗해진 상태이다. 코르크보드 최고 상단 가운데에는 기형도의 우울증 걸릴 것만 같은 시 "질투는 나의 힘" 이 붙어 있다. 그 앞으로 보이는 최근 교체하여 준 흰색 컴퓨터 본체. 그리고 그 본체 위에 있는 샤파.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난 일하면서 연필을 애용했다. 컴퓨터 본체 옆에 보이는 플라스틱 검정 책꽂이는 원래는 자주 사용하는 클리어파일이랑 서류를 보관했다. 그 앞에 보이는 건 물 넣어뒀던 던킨도너츠 텀블러. 책꽂이 옆에는 엄청 편리한 미니 서랍. 미니 서랍 안에는 한 달에 한번 할까말까면서도 색조화장품(마스카라 아이섀도, 블러셔 등)을 잔뜩 넣어놨었고, 챕스틱이랑 하드렌즈 케이스 등을 보관했다.  미니서랍 위에는 아직도 정을 못 붙인 레드스타 화분. 화분 옆에는 생명과도 같았던 핸드크림. 난 비누로 손 씻는 걸 좋아하는데, 약한 체력으로 감기도 안걸리고, 눈병에도 잘 안걸리는 이유가 손을 자주 씻어서가 아닌가 싶다. 대신 손에 주름이 많다.;; 여기엔 안 찍혔지만, 회사에 핸드워시도 가져다 놨었다. 그리고 키보드 옆에는 마우스와 타이거 맥주 마크기 찍혀 있는 마우스패드랑 손목보호대. 난 오른손잡이인데도, 마우스를 왼쪽에 놓고 썼는데 왼쪽에 놓는게 빈자리가 많아서 배치하기 쉬웠던 것도 있지만, 오른손을 너무 많이 쓰니까 오른쪽 어깨만 너무 아파서, 일부러 왼쪽에 놓고 썼다. 왼손으로 마우스 하면서 오른손으로 글씨쓰기도 편했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보니까 사진 한장이면 다 들어가는 좁은 공간에서 참 오래도 뭉갰다는 생각이 든다.



 


손해보는 기분

일상 2010. 3. 24. 00:04
회사에서 친했던 대리님이나 과장님들이 어떻게 의논 한마디 없이 나갈 수 있냐고 미련하댄다.
그런데 회사에서 내가 관둠으로 해서 타격이 1g 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내 고충을 털어놓았다면 분명히 자기한테 손해가 안오는 방향으로 답변했을거라 내 손목을 걸고 확신할 수 있다. 원래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은 이기적인 법이니까. 아... 점점 더 비관론자가 되어가고 있는 거 같지만, 내가 일하면서 느낀 바다.
내가 본사에서 제일 천사라고 생각했던 ㅇ씨도 오늘 내 소식을 들었다.
아마 다른 일 하면서도 천사 ㅇ씨는 생각날거야. 진짜 천사. 이 블로그를 빌어 ㅇ씨는 진짜 복받을거라 믿습니다. 이 그지같은 회사에 ㅇ씨같이 천사 같이 직장생활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신기하였어요. 흐흐흐.
작년 내내 뼈빠지게 일해놓고 이제 나갈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2009년 인사고과 최하점을 받았다. 나간다고 말하기 전에 나왔던 고과도 다 무시됐다. 내가 나가는 사람이긴 하지만 2009년 1월부터 12월까지 일했는데 너무하는 거 아니냐 이 사람들아. 제길 연봉계약 인상 시점은 1월이고 4월이면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치 연봉인상분을 산정해서 주는 것이 맞는 건데, 다 필요없고 그냥 나가랜다. 크크크.
이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는 엄청 짜증이 나다가, 그래 뭐 지금 이회사가 나같은 인간 하나 생각해 줄 겨를이 있는 회사가 아니지 생각하고 따지기도 포기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4년차 현재 연봉으로 관두는 게 쪽팔리지만, 회사가 이런 곳이겠지.
내 억울한 심정을 회사 좀 오래다닌 대리님 과장님들에게 얘기했더니, 그러니까 왜 자기한테 의논을 안했냐고 하신다. 그런데 다들 하는 말씀이 나도 첫직장에서 엄청 손해보고 나왔다고 하시더라. 그래 내가 아직은 순진한 면이 남아 있어서 손해본다 생각하자.
그래 뭐 나도 이렇게 사회 물 들어가면서 내 몫 챙기고 그러는 기술도 늘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지금 마음 같아선 다시는 이런 잔인한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이기려고 발버둥 치고, 내 앞가림 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정도 발전한 것이겠지만 그런 사회 안에서 돈 한푼 벌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2년 9개월동안 힘들었다. 여기에서는 2년 9개월 그 바로 전 잡일 계약직까지 합치면 만 3년이 되었다. 이 정도면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살아갈 날이 까마득하구나.

그나저나, 부모님 드려야할 돈, 노트북, 치과까지 관두는데 당장 나갈돈이 후덜덜하고나. 으하하하하하.
12시인데 심란해서 못자고 있다가 또 끄적대다가 밀린 일어 교재 풀다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