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지만, 오로지 잘생긴 매튜 구드에 대한 팬심하나로 이 영화를 찾아 봤다. 어둠의 경로로 영화를 볼 때마다, 번역과 자막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낀다. 이번에도 품위없는 자막에 고통받았다.

  개봉한 영화가 아니라 정보가 거의 없으니 줄거리를 좀 자세히 쓰겠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본 이 영화는 조금 아쉬운 영화였다. 더군다나 에블린 워가 쓴 동명의 소설은 아직 한국에 번역 출간되지 않아서 영화에서 풀리지 않았던 내 궁금증을 풀 수도 없으니, 아..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쉬워 죽겠다. 해리포터도 원문으로 읽다 포기한 내가, 이런 심오한 소설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을리가 만무하니 원문을 읽을 수도 없다. 내용만 봐서는 너무 읽고 싶은 주제인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에블린 워 책을 출간한 민음사에 메일 보내서 제발 이 책 좀 번역해 달라고 사정해봐야하나 고민했다.

  방대한 스토리를 영화로 옮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를 생략하기 마련인데, 내 생각에 주제를 위해 꽤 중요한 몇가지 이야기가 영화에 드러나지 않아, 완벽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 첫번째로 세바스찬과 줄리아가 어머니의 종교적 억압에 평생 괴로워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신적 학대가 어느 정도 였는지 영화로는 짐작할 수 없다. 저택 안에 거대하고 화려한 예배실이 있고, 매일 매일 가족 미사를 드리지만, 그것만으로는 플라이트 부인의 종교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중반 쯤 세바스찬이 엄마 앞에서 야단맞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플라이트 부인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죄인이라는 '원죄' 개념을 주입시키며 남매에게 정신적 학대를 했을 거라 나 혼자 추측만 했는데, 과연 내 추측이 맞았는지 궁금하다. 세바스찬이 단지 찰스를 여동생에게 뺏겨서 그렇게 폐인이 되고, 치료 의지도 상실한 채 모나코에서 죽어갔을까? 그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찰스와 줄리아에 대한 배신감과 도저히 집에 머무를 수 없을만한 다른 종교적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아아... 결론은 어서 책이 출간되어야 되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찰스 라이더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찰스가 군인으로 다시 브라이즈헤드를 찾았을 때, 내가 가진 건 죄책감 뿐이라고 말한다. 찰스는 세바스찬이 폐인으로 죽은 이유 중 자기가 가장 큰 이유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고, 줄리아 역시 브라이즈헤드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랑한 면이 없지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내용을 알 수 있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맨 첫장면에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독백 하나로 말하기엔 너무 중요한 내용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음.. 어쩌면 소설에서도 찰스 본인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어 방황을 하거나 혼란스러워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그 조차도 나오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또 선상 전시회에서 찰스와 줄리아가 재회했을 때, 둘은 행복해 하며 하루밤을 보낸다. 난 근데 줄리아와 찰스가 다시 만나서 마냥 좋아만 하는 게 정서적으로 납득이 안됐다. 줄리아에게 친오빠이자 찰스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세바스찬이 먼 타국에서 거지 꼴을 하고 비참하게 죽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둘이 마냥  좋기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영화의 베드신도 둘이 키스하고 벗고 껴앉고 침대에 눕는데 갑자기 흘러나오는 느린 피아노 소리가 좀 촌스러웠다. 뭐 어떤 사람에겐 그 장면이 아름답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애초에 다시 만났다고 그저 서로 좋아만 하는 게 너무 이해가 안가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만이 더 컸다. 찰스가 진짜 세바스찬을 친구로 생각은 한걸까? 줄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했던걸까!! 너무 궁금하다. 아... 결국 원작 소설을 읽고 싶다는 마음만 더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건 영화로 알 수 없는 점이라기 보단 한 편의 영화로서 나에게 제일 아쉽게 느껴졌던 점인데 바로 캐스팅이다. 영화에서 플라이트 부인 역을 맡은 엠마톰슨 외 등장인물들이 너무 역할에 안 어울린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매튜 구드도 찰스 역할에 안 어울린다. 영국에서 80년대 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 5부작 드라마에서는 찰스 역을 '제레미 아이언스' 가 맡았다고 한다. 젊은 제레미 아이언스는 찰스 역에 잘 어울렸을 것 같다. 못봤지만. 이 찰스라는 남자는 남매 모두에게 사랑받는 넘치는 매력의 소유자면서 야망도 있고 또 이기적인 면도 있는 남자다. 그런데 나의 매튜는 여전히 잘생겼지만, 찰스가 느끼는 혼란, 죄책감, 무신론자로서의 신념 등을 잘 표현했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일 심각한 건 바로 줄리아다. 그 배우 이름도 모르긴 하지만 너무 매력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레고머리 같은 끔찍한 단발머리에 매튜보다 더 넓은 어깨와 뭉뚱한 코를 가진 여배우를  줄리아 역에 캐스팅할 수 있단 말인가!!! 벤 위쇼는 세 인물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연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도 안든다. 역시 이 영화에서는 줄리아가 최악이었다. 줄리아역 맡은 여배우 때문에 국내 정식 개봉이 안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다.


   아쉬운 점만 며칠간 쓸 정도인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길고 긴 리뷰를 쓰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사진출처-Daum 영화 (여기 적힌 별점은 제 개인 의견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퓰리처상 사진
국내도서
저자 : 핼 부엘(Hal Buell) / 박우정역
출판 : 현암사 2011.10.31
상세보기

 

  요즘에는 소설을 보면서 감정을 소모하는 것 조차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 잘 안보고 있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 대부분 읽는 책들이 그림 혹은 사진에 설명이 있고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책들이다. 하긴 그마저도 잘 안 읽고 있지만.

  퓰리처상 사진 이라는 책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서 침대에서 읽을 때 애를 좀 먹었다. 확실히 재미있었고, 읽으며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를 다시 한번 깊이 반성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큰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난 상을 수상할 당시의 세계적 사건을 작은 사진과 함께 짧게 기술한 부분이 오히려 더 재밌었다. 또 나는 이 책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사건을 처음 알게 되었다.

 

두산백과

가이아나인민사원집단자살

[Guyana-, ─ ]

요약
1978년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정글에 위치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에서 교주를 포함해 914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
언제 1978년 11월 18일
어디서 가이아나의 정글에 있는 인민사원
누가 교주 짐 존스 및 신도 914명
무엇을 집단 자살
어떻게 교주 존스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강제로 독극물을 마시게 함
혼자 목숨을 끊기 싫어서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밀림에 위치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에서 이 사교집단의 창설자이자 교주인 짐 존스(Jim Jones)를 비롯해 총 914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집단 자살한 사건을 말한다.

존스는 감리교 교리를 비틀어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사회개혁을 내세우며 좋은 목적으로 출발하는 듯하였다. 그러다 근거지를 가이아나밀림으로 옮겨 신앙촌을 건설한 뒤에는 제2의 예수, 진정한 사회주의자, 최후의 인도주의자 등으로 자처하며 사설 왕국의 제왕이자 군주로 군림하였다.

그의 개인 자산이 1,500만 달러에 달했고, 거의 신적인 존재로서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자 존스의 정신도 병적으로 변하였고, 갈수록 폐해가 심해졌다. 심지어 자신이 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차에 인권유린 여부를 조사하러 온 미국 하원의 조사단원 3명이 이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의 추궁이 두렵고, 또 자신이 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고 믿고 있던 존스는 결국 미국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자신 혼자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 죽음의 여행에 신도들을 동참시키로 결심하였다. 그는 11월 18일 모든 신도들을 신앙촌 광장에 모아놓고 오렌지주스에 독극물을 타 강제로 마시게 한 다음, 연설을 통해 '이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한 개혁 혁명'이라고 설파하였다.

이 사건은 종교에 대한 그릇된 광신과 맹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세계인에게 경종을 울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이아나인민사원집단자살 [Guyana-, ─人民寺院集團自殺] (두산백과)

 

 

  바로 이 사건이다.

 

  나는 한 때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심리학을 조금이나마 배운 사람으로서, 극단적으로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평생 못할 연구겠지만... 말도 안되는 종교에 깊이 빠지는 사람 중 대부분은 삶을 포기하고 싶을만큼 큰 시련을 겪은 사람들일 것이다. 라고 짐작만 한다. 

  과거 유럽에서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절, 개종하면 살려준다고 회유해도 개종하지 않고 돌도 안된 어린 아이를 안고 스스로 화형대에 서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작년에 읽었던 미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중세가 아닌 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인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니, 정말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나는 극단적으로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어리석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는 진심어린 말 한마디도 그렇게 힘이 되고 고맙다. 그들은 아마도 종교인이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진심인양 위장하여 건낸 격려에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정도로 약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1970년대에 교주인 짐 존스는 인종차별의 완전한 철폐를 주장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수의 흑인이 신도였고, 그들은 가이아나에서 기꺼이 자살을 택했다. 이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 결국 약자들이 상처받는 사회일수록 종교가 기승을 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럽의 신교, 구교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비정상적으로 병든 당시 사회였을 것이다.

  모든 종교가 종말을 이야기 하고 종말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세상이 내일 당장 망할 것 처럼 어둡다면 당연히 종교의 힘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아무 증거도 없이 성경을 믿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주님도 믿는 기독교인다. 분명 나는 하나님 때문에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대답에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사실 '종교' 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이성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믿다보면 내 삶에 적정한 수준의 신앙을 나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다. 또 하나님 팔아먹는, 꼭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 같은 거짓 기독교인 구별하는 눈도 어느정도 생기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종교를 혐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들을 혐오해 마지 않고.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조선 말기를 살았던 증조할아버지의 자서전이 있었다. 다 한자라서 나는 못 읽었지만,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친아버지가 도저히 증조할아버지를 키울 여력이 안된다며, 증조할아버지의 양아버지 될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들었다. (원래 양자로 가려던 집이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집안이라 입양을 철회하는 이야기도 나옴) 평범한 조선말기 전라남도 사람이었던 증조할아버지가 자서전을 남긴 이유는 종교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믿게 되고 숨어서 예배드린 이야기를 남기셨고, 결국 우리 할아버지는 침례교 목사님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집안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도 기독교를 믿은 역사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1% 이내일 것이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대형 교회 다니는 사람 친척 중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확신한다. 유명하다는 대형 교회 목사들은 만약 이 땅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제일 앞장서서 예수님을 못박을 사람들임을.

 

  결론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이아나인민사원집단자살사건 접하고 생각이 많아졌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건데, 괜히 솜씨도 없으면서 글이 길었다.

  역시 어떤 책이든 읽으면 인생에 도움이 된다.


Incendies 를 보고

위로 2016. 1. 31. 22:47

시카리오를 본 후, 단번에 드니 발뇌브 감독의 팬이 되기로 결심하여 지난 주말 그을린 사랑을 봤다.
한국 제목을 참으로 잘 지었다. 시적이고, 영화의 배경인 중동과도 딱 맞는다. 원제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엄마의 유언을 위하여 이란성 남녀쌍둥이인 잔느와 시몬이 과거 지독한 내전을 겪었던 중동국가 다래쉬를 방문하여 알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래쉬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지만, 영화 속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레바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본격 정신 학대 영화라고 표현해 놓은 걸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역시도 정말 괴로웠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레바논 내전의 모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몇 년 전 보았던, 허트 로커, 이번의 그을린 사랑 그리고 매일같이 접하는 시리아 뉴스를 보며 대체 중동은 답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예수님이 태어난 땅이고, 구약과 신약 성경의 주무대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또 난 개인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중동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중동은 왜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전쟁이 나면 아직 예비군인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대 전쟁 중 전체 사상자 중 군인의 비율은 7% 정도라고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종교와 진실,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종교인으로서 가끔 종교가 인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 좋다. 아마 죽을 때 까지 종교인으로서 살 것이다. 하지만 종교가 인류에 미치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 을 따져보면 나쁜 영향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종교적 신념은 일반적인 신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 신념 앞에서 사람들은 죽음도 불사하게 되고, 그 어떤 짓도 신의 이름을 앞세워 행할 수 있다.
종교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싸우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닐까. 더 잔혹하게 더 잔인하게 싸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신을 앞세워 보복하고 끝도 없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인류를 몰아넣고 있다. 어떤 종교든 악을 설파하지 않을텐데, 어쩌다 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인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롯하여) 종교를 갖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할 뿐이다.
가끔 블로그에도 썼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은 그냥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나왈 마르완은 자기의 자식들이 기가 막히도록 더럽고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 진실을 마주해야만 용서도 가능하니까 아마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악의 고리를 끊는 것은 결국 용서다. 보복은 더 큰 보복과 더 큰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어떤 용기 있고 대단한 사람의 용서만이, 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아니라.
가련한 나왈 마르완의 인생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서로 용서하고 함께 잘 살아보자. 그리고 제발 싸우지 말자. 일 것이다.
시카리오도 그렇고 이번 그을린 사랑도 그렇고, 드니 발뇌브 감독은 복잡하고 민감한 세계적 핫이슈인 주제를 정말 잘 다루고, 실제 일어난 참혹한 사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다. 주제의식, 스토리, 배우의 연기 뿐 아니라 화면의 구도나 톤, 사운드 등에도 엄청나게 세심하게 공들인 티가 난다.
영화 때문에 오랜만에 Radiohead 의 You and Whose army? 라는 곡을 들었다. 난 이 곡 들어 있는 Amnesiac 앨범 정말 싫어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음반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첫 장면에서 폭격을 받은 소년 고아원의 아이들이 이슬람 민병대에 끌려가 강제로 머리를 미는 장면과 이 음악이 정말 잘 어울리고 강렬했다. 노래의 "너는 너무 쉽게 잊는다." 는 가사가 영화를 보면 정말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화 중반쯤 이 영화의 반전을 눈치챘다. 하지만 설사 반전을 다 듣고 봤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나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반전보다 더 충격적인 건, 레바논에서 그런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 시리아에서도 똑같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P.S 그을린 사랑으로 검색하여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제목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