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에는 회사에서 아주 중대한 나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해결하려고 사장님과 면담하고 부장님과도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 마다 왜 난 왜이렇게 운이 더럽게 없는가. 하는 생각과 아무래도 이 팔자가 내 인생의 전부인가 보다하는 생각, 이직하면 장 땡이다 라는 생각 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을 압도할만큼 큰 감정은 바로 수치심이다. 남들은 다들 잘 이겨내는 일에 왜 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 난 왜이렇게 약해 빠졌나. 난 왜 충분히 좋은 직장에 가지 못했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에 목요일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수치심을 없앨 수만 있다면 뭐라도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제까지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이보다 더 심한 일들도 견뎌내고 지나갔다고 억지로라도 이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세뇌하며 정신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속상하다.

힘든 마음에 좋아하는 소설인 로알드 달의 카티나 를 다시 읽었다. 카티나가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카티나를 읽고 울지 않을 도리는 없다.

금요일에는 투병 중 인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친구도 나에게 아이섀도를 줬는데 색이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선물 받을 입장이 아닌데, 너무 속없이 넙죽 받았나 싶다.

토요일에는 전 직장에서 제일 친했던 대리님의 결혼식에 갔다. 신랑신부 모두 행복해 보여서 흐믓하고 부러웠다. 싱글벙글한 신랑신부와 곱게 차려 입은 친척들까지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가끔 어떤 결혼식은 엄청 우울한 분위기 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혼식 때문에 전 회사 사람들을 사장님 포함하여 잔뜩 만났다. 다들 나보고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그런가…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데. 뭐 그래도 다행이다. 날 욕보인 그 회사에 약한 모습 보인 건 아니니까.

오늘은 회사에서 실수 연발 이었고 말도 막 헛나왔다. 난 평소 실수 많이 안하는데 한번 하면 큰 실수인 경향이 있다. 다음부터 검토를 잘하는 것 밖에 별다른 수가 없지만, 오늘 또 나에게 실망했다. 역시 사람은 교만하면 망한다.


일주일 후.

일상 2010. 3. 11. 11:57
나는 남자가 나에게 호의를 배풀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나한테 호의를 배푸는 때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대학 때도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배풀면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건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물론 호의를 받는 건 복받은 일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눈에 뛰지 않는 나를 발견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처음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나 대학 2학년 때 재수로 들어와서 나랑 딱 한번 포켓볼 같이 친 남자 애가 (도대체 어떤 경로로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냈을 때 편지에 眞光不輝 라는 말을 하며 잠깐 날 감동시켰던 적이 있다. 별로 화려하지 않은 여자한테 하기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난 걔가 날 스토킹 비스므리하게 내 뒤를 밟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워서 피하다가 결국 아무 일도 없이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포켓볼 한 번 치고 1년 넘게 전혀 연락이 없다가 남자친구랑 헤어지자마자 전화한다는 거 자체가 그때 당시에는 쪼금 공포였다.
여하튼, 몇 안되는 남자들이 대학에서 (입사 이후엔 전혀 없었음 큭) 노골적인 멘트를 날려도 못본 체 하거나, 못들은 체 하거나, 화제를 전혀 다른 것으로 돌리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런건데 간혹 그걸 지금 날 무시하는거냐. 이렇게 받아들이는 분도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계속 다른 소리를 하니, 니가 지금 그러는 건 지금 상태가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맞냐고 물어봐서 대답을 못했다. 결국 또 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날렸지만, 모르겠다. 어쩌면 난 진짜 지금 상태가 훨씬 더 편하고 좋은 건지도.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 이건 아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냈을 거 같은데.
그런데 내 지론은 신중해서 나쁠 건 전혀 없다.기 때문에 만족한다. 후회할 짓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